다시 보는 ‘그때 그 사건’…살인공장 만든 지존파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08/15 [11:55]

다시 보는 ‘그때 그 사건’…살인공장 만든 지존파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08/15 [11:55]

지존파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잔혹범죄 중에 가장 손꼽힌다. 이 사건은 19937월부터 19949월까지 12개월에 걸쳐 전남 영광군을 거점으로 6명으로 결성된 범죄 조직이 5명을 연쇄 살인하고 강도, 성폭행 등의 범행을 저지른 사건이다. 지존파는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이어가고도 사회 부조리가 자신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며 범행을 정당화하려 했다.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지존파를 재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똘똘 뭉친 없는 것들의 살인조직

지하실 살인공장만들어 12개월 동안 5명 연쇄 살인

 

돈이 많아 보였다…그랜저 승용차 탄 사람 노려 범행

피해자 여성, 도주 후 신고…여자는 믿지 말라 했는데

 

▲ 지존파 두목 김기환은 강간미수로 체포된 후에도 면회를 통해 조직에 지시를 내렸다.    <사진=MBC 히스토리 후 캡처>

 

[사건의내막=임대현 기자] 지존파의 원래 이름은 따로 있다. 야망이라는 뜻의 헬라어인 마스칸(maskan)’이었는데,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고병천 수사과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훈련할 때 이마에 지존(至尊)’이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을 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고반장이 조직원들과 합의 하에 지었다.

 

이들은 행동강령도 있었는데, 4가지 원칙을 명시했다. 강령을 살펴보면 ▲돈이 많은 자를 증오한다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신자는 죽인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으로 이뤄졌다.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지존파의 결성 계기는 대학입시부정사건에 분노하여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들을 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지존파는 두 번 결성 됐었다. 첫 결성 당시 조직원들이 모두 도망쳐 다시 재결성한 것이다.

 

지난 1992년 말, 김기환(당시 25)은 고소득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살해하는 범죄조직을 조직할 계획을 세울 결심을 했다. 김기환은 탄광 일을 할 때 알게 된 조모씨에게 살인을 제외한 범죄 계획을 알려주며 설득에 나섰다. 평소 조씨의 경제적 여건과 성정을 알고 있던 김기환은 설득에 성공했고, 조씨의 친구와 도박을 하며 알게 된 사람 세 명을 포섭해 조직을 결성했다. 그러나 그 범죄 계획에 살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직원들이 이를 꺼려 결국 해체됐다.

 

1차 조직 결성 실패 후 1993년 초, 갈 곳이 없어진 김기환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탈퇴한 전 멤버 이주현의 소개로 비밀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김기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더 못 배우고 부자에 대한 증오심이 훨씬 강한 자들을 포섭하려 했다. 실패 요인을 없애기 위해 대화술 관련 서적을 읽으며 더 철저하고 견고한 조직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해 3, 고향 후배인 강동은(21)과 접촉해 그들에게 범죄 계획의 일부를 조금씩 흘려가며 차분히 설득에 나섰다. 자기 의지로 가담할 수 있게 1개월이라는 유예기간도 줬다. 강동은이 적극적으로 찬성을 외치자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인 문상록(23), 후배 송봉은(17)도 동의하여 세 사람은 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김기환 외 세 명은 전주로 이동해 함께 생활하며 조직 결성과 범죄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동은이 교도소 동기였던 백병옥(20)을 떠올렸고 당시 천안에서 막노동하던 백병옥을 합류시켰으며 문상록은 같은 곳에서 일했던 강문섭(20)을 강동은에게 소개해 포섭했다. 이주현은 같은 해 6, 평소 은행강도가 되고 싶다던 김현양(22)을 김기환에게 소개해 조직에 합류토록 했다.

 

이렇게 조직은 김기환을 중심으로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송봉은으로 결성됐다. 이미 한 번의 실패경험이 있었기에 김기환은 조직의 유지에 굉장히 신경 썼는데, 평소 배신한 자는 반드시 처단한다면서 잘 때 내 가슴을 열어놓고 잘 테니 나가고 싶다면 내 가슴에 칼을 꽂고 가라. 다만 그러지 못하면 지옥까지 쫓아가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에 김기환의 수감 후 부두목이 된 강동은이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애인이자 영광의 한 술집 종업원 이경숙을 합류시켰다. 하지만 이경숙이 가담한지 이틀 만에 전원 검거되어, 그녀는 살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두목인 김기환은 3세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대신 해 당시 겨우 9살이던 누나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파출부 일을 시작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어릴 적엔 자신은 학교에서 밥을 먹고 왔다며 형제들에게 음식을 양보할 정도로 정이 많았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을 받았고 반장을 해본 경험도 있었으며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사항엔 지도력이 강하고 급우를 잘 통솔하며 간섭이 좀 심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특히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할 때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살 돈이 없어서 안 가져갔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친구들 것을 뺏어서라도 가져왔어야지라고 혼냈다. 그래서 친구들의 준비물을 훔치기 시작했고, 그러면 선생님은 날 혼내지 않았다. 난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기환은 중학교 시절에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운동능력과 글짓기 실력도 우수했다. 다만 생활기록부상에 준법정신이 낮은 수준으로 기록돼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형마저 병에 걸리자 학교를 자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그는 부산으로 내려간 후 가장 먼저 신발공장에 취직했다. 월급 대부분은 어머니께 보냈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학업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틈틈이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그 후 몇 년간 대한석탄공사에서 잡부 일을 하거나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나름 성실히 일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검정고시 준비도 그만두고 후엔 직장도 그만둔 뒤 고향집으로 돌아와 잠시 가족들과 지냈다.

 

그러다 도박에 빠져 도박으로 인한 빚도 지게 된다. 당시 김기환은 포커를 잘해서 지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이 지존이란 별명은 조직 결성 후 부하 조직원들에 의해 두목을 대신하는 칭호로 쓰이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필요했던 김기환은 가진 자들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들의 돈을 갈취하여 살해하는 조직 결성이라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조직 결성을 위해 각종 범죄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처세, 대화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조직 결성 후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조직원들에게 지리산에서 일주일간 물 한 병과 칼 한 자루로 버티도록 훈련을 시키고, 조직원들과 막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어머니가 기거하던 집을 살인 아지트로 개조한다. 평소엔 동네 형처럼 조직원을 대했지만 강압적인 리더십으로 조직원들을 복종케 했으며 조직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첫 번째 피해자인 최미자씨와 송봉은 살해를 주도한다. 실제로 조직원들은 송봉은 살해 당시 두목인 김기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잔혹하게 살인 행위를 했다고 한다.

 

아지트 완공을 얼마 앞두고 실전에 돌입하기 전인 1994617일 김현양의 생일날, 조직원들과 술을 마신 후 밤에 불현듯 자리를 비워 선배의 집에서 보일러 수리를 하러 갔다가 자고 있던 선배의 중학교 1학년 조카를 강간해 체포된다. 이때 김기환은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는데, 전문가들은 김기환이 직접적인 범행으로부터 손을 떼고 중죄를 면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김기환은 수감된 후에도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임명해 부하 조직원들에게 범행을 지시했다. 수감되어 있는 중에도 그의 말은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법이었다.

 

▲ 지존파 김현양은 어머니가 재혼한 후 가출해 막노동을 전전했다.   <사진=MBC 뉴스 캡처>

 

조직적인 범죄 준비

지존파는 건설공사 막노동으로 돈을 모은 다음 한적한 농촌에 농장을 구입하여 아지트로 삼았다. 명목상으로는 어머니를 모신다고 했다. 나중에 기자들이 이 집은 무슨 돈으로 지었는가?’, ‘어머니를 모시려고 지었다는데 사실인가?’ 등을 묻자 피식 웃으면서 아냐 이거 하려고 지었지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집에 지하실을 짓고 경찰서 유치장을 본뜬 철창이 달린 감옥과 화장을 하기 위한 아궁이를 만들었다.

 

이들은 19937월 충청남도 논산시 두계역 부근에서 23세 여성 최미자씨를 납치하여 성폭행 후, 살해해 암매장했다. 첫 범죄부터 결성 이유와 어긋났다. 이들은 이 범죄에 대해 연습이라고 설명해 충격을 줬다.

 

첫 범죄 이후 같은 해 8월엔 전 조직원이었던 송봉은을 살해 후 시체를 불태워서 암매장했다. 이유는 18세에 불과한 송봉은이 자신의 나이를 23세로 속여서 형님 대접을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조직원들이 모아놓은 돈을 300만원을 훔쳐 달아나려는 것이 적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살해방법도 잔인했는데, 김현양이 보신탕이나 먹자고 송봉은을 산으로 불러낸 다음에 돌을 가져와 머리를 가격해 죽였다. 이후 1미터나 되는 구덩이를 파서 묻고 근처에 불을 질러 냄새까지 지웠다. 그 뒤에 지존파는 1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다 두목 김기환이 학교 선배의 조카를 강간하다가 들켜 강간치사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김기환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삼은 뒤 모든 지시를 면회를 통해 하게 된다.

 

그러다 19949836세의 악사 이종원씨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다시 살인을 시작했다. 같은 해 915일까지 연쇄 살인을 벌이고, 921일 체포되었을 때까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들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하여 당시 백화점 신용판매부 직원이었던 김민경씨로부터 백화점 고액 거래자 명단을 구입한다.

 

이후 지존파는 주로 백화점에서 벤츠나 그랜저 등 고급차를 타고 나오는 복부인 등을 대상으로 하여 범행을 하려고 했다. 피해자들의 현금만 빼앗고 협박이나 어떠한 협상 없이 그 자리에서 토막 살인하는 극악무도한 행위를 계획했다.

 

하지만 당시 지존자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상류층이나 재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살해한 이종원씨도 부유층과는 거리가 먼 밤무대 악사였으며, 이 밤무대 악사는 차를 타고 이모씨(26)와 함께 이동 중에 지존파에게 포착되어 이씨와 함께 납치됐다.

 

지존파는 단지 타고 가던 차가 고급차인 그랜저라서 돈이 많은 사람이거나 상류층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랜저 승용차는 이종원씨가 무리해서 중고로 구입한 중고차였으며 몸값을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지존파는 당황했다.

 

또한, 같이 납치했던 이씨는 조직 내에서 살려두자는 의견과 죽여야 한다는 의견 충돌이 있었으나 결국 살려주고 살인에 가담시키기로 한다. 이종원씨는 검은 비닐로 질식사시키고, 이 과정에서 지존파는 이씨에게 참여할 것을 지시했다. 지존파는 시신을 희생자의 차에 태워 절벽에서 밀어서 떨어뜨리는 완벽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위장시켰다. 위장을 위해 사전 답사는 물론 스키드마크까지 남기는 치밀함을 보였다.

 

불과 4일 후인 추석 전날 912일에 벌초를 하다 경기도 성남시 남서울묘지에서 납치되어 살해당한 모 회사 사장 소윤오, 박미자 부부는 돈이 많은 사람이기는 하였으나 졸부나 방탕한 상류층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빚을 내어 새로 공장 인수한 건실한 사업가였다. 소윤오, 박미자 부부 또한 범행 대상이 된 이유는 타고 나왔던 차가 고급차인 그랜저라는 이유였다.

 

지존파는 이들 부부를 납치해 1억 원을 주면 살려서 돌려 보내주겠다고 말해 회사 총무과장에게 버스터미널 앞에서 돈을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돈을 다 받았는데도 1억을 달라고 하는데 8000만 원을 준 이유로 소윤오, 박미자 부부를 살해한다.

 

이들은 최후에 경찰서를 습격해 경찰관들을 죽이고 총기를 탈취, MBC 방송국을 습격할 계획을 꾸몄으나, 그 전에 검거되어 다행히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현양은 검거 후 인터뷰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지금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 내가 MBC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못 가게 됐다고 말했다.

 

▲ 지존파는 아지트에 감옥과 같은 철창과 시체를 태울 수 있는 아궁이를 만들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유일한 생존자

지존파의 검거에는 세 번째 희생자 이종원씨와 함께 차를 탔다가 납치된 이씨의 극적인 탈출이 있었다. 이씨는 납치되었을 당시 지존파의 아지트에 감금된 후 살려 달라 애원해도 살려주지 않을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현양이 이씨에게 연정을 품게 되어 그를 죽이려는 조직원들을 설득시키면서 이씨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목숨은 부지하게 됐으나 입막음용으로 살인에 가담할 것을 강요받은 이씨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인이었던 이종원씨, 중소기업 사장 소윤오, 박미자 부부를 죽이는 데에 동참한다.

 

이씨의 탈출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다뤄 손과 발에 부상을 입었던 김현양이 실밥을 풀고 상처부위에 소독을 받는 날, 이씨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김현양에게 병원에 동행하게 해달라고 한다.

 

김현양은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고 이씨는 그와 동행하게 된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 김현양은 현금 50만 원이 든 지갑과 휴대폰을 이씨에게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이씨는 재빨리 병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지존파의 행동반경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해남경찰서로 가달라고 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하차하고 포도밭 인근의 농가에 숨어든다.

 

비닐하우스 안 평상 밑에 몇 시간을 숨어있던 이씨는 집주인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집주인의 지인의 차를 얻어 타 대전까지 이동했다. 그 뒤 대전 톨게이트에서 택시를 잡아 서울의 한 모텔에 도착한 뒤 자신이 일하던 카페에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당시 카페 주인의 남동생은 평소 카페를 즐겨찾던 고병천 반장(당시 서초서 강력반장)에게 연락해 사건을 알리게 됐다.

 

체포작전은 수월했다. 먼저 트럭을 타고 나간 강동은을 미행해 검거했고, 김현양과 이경숙, 문상록에게 강동은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한 뒤 불러내 검거했다. 나머지 조직원들은 아지트에 있다가 아지트를 급습한 경찰들에 의해 모두 검거됐다.

 

이들은 이씨의 탈출 후 하루라도 빨리 아지트를 떴으면 검거되지 못했겠지만, 지존파 일당은 이씨의 탈출 성공 후 영광파출소 앞에 잠복해 경찰들의 동태를 살폈으나 평소와 같아 이씨가 신고하지 않은 것이라 짐작해 남아있었다고 한다. 체포경위를 들은 김기환이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고 했는데, 바보 같은 놈들이라며 질타했다고 한다.

 

지존파 6명은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1995112일 두목 김기환을 포함해 모두 신속하게 사형이 집행됐다. 보통 기존 대통령 임기 중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사형집행 결정도 최소 2년은 기다려 주는 게 관례임을 생각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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