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극한직업 ‘에어컨 설치기사’
“남들 시원하게 하려고 매번 식은땀 흘리네요”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7/06/30 [11:31]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면서 폭염이 시작된 가운데 ‘에어컨’의 계절이 왔다. 그러나 위험한 난간에 몸을 의지하며 변변한 안전장비 없이 보조기사의 도움을 받아 에어컨 실외기를 아슬아슬하게 설치하는 풍경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서 에어컨 수리기사가 추락사한 것을 계기로 에어컨 제조사에서 튼튼한 ‘안전바’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지만 빨라야 내년에 갖추어질 전망이어서 그들의 ‘위험한 작업’은 계속되는 실정이다. <편집자 주>
성수기 1인 근무 하청업체…비성수기엔 고용 불안도 커
일정 밀려 한밤중 설치 다반사…안전바 보급 이제 시작
| ▲ 에어컨 설치기사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빠져있다. <사진=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 사건의내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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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지난해 6월 수리기사 진모(당시 42세)씨가 에어컨 수리를 하다 난간이 뜯겨 9m 아래로 추락해 숨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작업 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청년 노동자 사망과 함께 사회적인 논란이 됐었다. 지금도 수리 한 건당 1시간이라는 사측의 시간제한과 대목에 추가 수당을 벌어야 연중 생활이 가능한 상황에서 기사들은 작업을 무리하게 서둘렀다. 안전을 위한 2인 1조 작업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열악한 근무환경
실제로 한 에어컨 설치기사는 “하루 평균 다섯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는데 밤 11~12시까지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라며 “오늘은 설치 일정 한 곳이 취소되는 바람에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간신히 저녁을 챙겨먹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들은 대기업이 생산한 에어컨을 배달하고 설치하는 일을 하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다. 2인 1조로 보통 일하면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설치시간은 에어컨 한대당 2~3시간이 걸린다. 강남 서초 송파 하남 지역을 담당하는 A사의 에어컨 설치 대리점에는 35~40명 정도의 기사가 일하고 있다. 성수기에는 이들 인력으로는 밀려드는 설치물량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에어컨 구매 건에 대한 배송 설치는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전자 로지텍이, LG전자는 LG 계열 범한판토스가 인수한 하이로지스틱스가 물류를 담당한다. 이들 물류 자회사가 직접 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아닌, 하청을 주는 구조다. 에어컨 설치기사들은 전국 각 대리점에서 건당으로 물량을 받아 처리한다. 비정규직 하청 기사들은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아파트 빌트인 에어컨 매립이나 보일러 설치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에어컨 설치기사는 “요즘과 같은 성수기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내기 어렵다”며 “설치가 밀린데다 여름 성수기에 바짝 벌어야 하기 때문에 지난 4월부터 토·일요일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설치한 에어컨 대부분 한 달 전에 주문한 제품들이다.
밤에는 실외기 설치가 더욱 위험하다. 하지만 당일 설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하다는 것이 설치 기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야간 설치의 경우에 이웃들의 소음 민원도 있어서 설치기사는 더욱 애를 먹는다. 에어컨 설치 기사는 “오래된 아파트는 난간이 헐거워진 경우가 많고, 빌라의 경우 난간이 부실 시공된 곳도 많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약 7년간 수도권 내 에어컨 설치 하청업체 여러 곳을 다녔다는 그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고가 나거나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어디에다 대고 말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분당 등 경기 남부 지역 대리점 소속 설치기사는 “설치 대리점이나 센터장들은 대부분 삼성이나 LG 등에서 퇴직한 직원들인데 이들이 회사에 억단위 보증금을 내고 대리점을 내는 구조라 현장의 열악함이나 개선해야 할 점들을 본사에 건의하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로고를 붙이고 다니지만 차량은 본인이 사서 배달 다니는 구조다.
이처럼 에어컨 수리기사들은 성수기인 6~8월에 최대한 일을 많이 해야 나머지 9개월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월 60건까지는 130만원 정도의 기본급만 받고 61건부터는 건당 1만 8000~2만 5000원의 수당을 받기 때문이다. 숙련공은 성수기 한 달간 150~200건 정도를 처리하고 400만원 정도를 번다.
한 수리기사는 “남들은 이 시기만 보고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데 더운 날씨에 목숨 걸고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 버는 돈”이라며 “무리하다 보면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비로 날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수기를 제외하면 오토바이 배달이나 대리운전 등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에서도 가장 밑바닥으로 분류되는 ‘간접고용 근로자’라는 굴레다. 대기업 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고 대기업의 지시에 따라 제품을 고치지만, 소속은 하청업체다.
같은 기업이라도 지역마다 에어컨 기사를 관리하는 업체가 달라 임금과 처우도 천차만별이다. 한 에어컨 설치기사는 “센터 간 격차를 줄이고,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 기본급은 최저임금 1만원 수준인 209만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소속 기사 진씨는 노원구 월계동의 한 빌라 3층에서 혼자 안전장치 없이 고장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 난간이 무너지며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 ▲ 지난해 에어컨 설치기사가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근무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kbs 뉴스 갈무리> © 사건의내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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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대책은 있는가
추락사 이후 고용노동부는 산하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등 에어컨 제조사와 하이마트 등 유통업체, 설치업체 관계자를 불러 대책회의를 갖고 추락사고 재발방치대책을 업체별로 마련해 이행하라고 독려했다.
이후 삼성전자서비스가 방문틀에 고리를 거는 방식의 ‘안전바’를 제작해 안전보건공단의 강도 테스트를 거쳐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공단 자문을 거쳐 ‘안전바’를 제작 중이다.
설치기사들이 ‘안전바’를 의무적으로 사용해 추락을 방지하도록 하고, 설치 약관에 안전바를 사용 의무조항을 넣거나 안전바를 사용해 설치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제시된 상황이다. 설치가 위험한 곳에는 설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강화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성수기내에 안전바가 충분히 보급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또 안전을 위한 권고사항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감독하는 것도 또다른 숙제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아무래도 하청에 또 하청을 주는 형태다보니 제조사의 권고사항이 현장까지 다 전달되는지 잘 지켜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효과적인 사고 방지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조사들과 머리를 맞대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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