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비트코인, 기술개발의 역사

“가치 등락 일희일비 말고 기술 흐름 읽어라”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2/02 [15:18]

가상화폐 비트코인, 기술개발의 역사

“가치 등락 일희일비 말고 기술 흐름 읽어라”

이일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2/02 [15:18]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가상화폐’의 원조 ‘비트코인’(bitcoin)이 탄생한 이후 ‘비트코인’을 개발한 인물 ‘나카모토 사토시’(Nakamoto Satoshi)에 대한 실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이와 같은 ‘비트코인’은 2008년 8월 ‘bitcoin.org’라는 도메인이 등록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도메인 ‘bitcoin.org’는 등록자와 관리자의 소재지가 파나마 국(Panama)이라는 사실만 공개되고 있을 뿐 도메인의 정보를 제공하는 후이즈(Whois) 검색에서 ‘후이즈 프로텍션’(Whois Protection) 혹은 ‘후이즈 가드’(Whois Guard)라는 보호 시스템에 비밀처럼 가려져 있습니다.

 


 

베일에 싸여있는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

리먼 브라더스 파산한 2008년 최초 공개하면서 시작

비트코인 개발자 “투자 대상이 아닌 실험 통화” 강조

현실에서 제도권 화폐로 대체될 가능성 크게 회의적

 

▲ 비트코인은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인 ‘나카모토 사토시’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출처=PIXABAY> 

 

베일의 인물 ‘나카모토 사토시’는 ‘bitcoin.org’ 도메인이 등록되고 3개월 이 지난 후 2008년 11월 ‘비트코인: 일대일 전자 화폐 시스템’(Bitcoin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비트코인의 탄생

 

이와 같은 시점은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최대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 이루어져 세계의 금융 위기를 초래하였던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또한, 2009년 1월 3일 공증된 분산 거래 장부라 할 수 있는 ‘블록체인’(Block chain)기술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생성시킨 ‘암호화폐’(cryptocurrency) ‘비트코인’이 최초로 탄생한 시점과 제2차 금융위기가 시작된 시기가 맞물려 있는 점도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나카모토 사카시’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2009년 1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제공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자료 저장 사이트인 ‘소스포지’(SourceForge.net) 에 네트워크를 시작한 ‘비트코인’ 소프트웨어 버전이 공개되었습니다. 이후 가장 먼저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거래한 인물은 ‘콘솔 게임’(console game)의 선구적인 개발자 ‘할피니’(Hal Finney. 1956~2014)이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게임 전용기로 구동되는 ‘콘솔게임’의 역사와 연관된 이해가 필요합니다. ‘콘솔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유대계 독일출신의 미국인 ‘랠프 헨리 베어’(Ralph Henry Baer, 1922~2014)에 의하여 1972년 ‘마그나복스’(Magnavox)사의 ‘오디세이’(Odyssey) 게임이 최초로 개발되었습니다. 이후 1977년 바둑에서 활로가 없는 단수(單手)를 뜻하는 일본어 ‘아다리’(アタリ)에서 유래한 미국의 게임회사 ‘아타리사’(Atari)가 개발한 게임기 ‘아타리 2600’(atari 2600)이 출시되어 북미 게임 시장을 장악하였으나 1980년대에 시장이 몰락합니다.

 

이후 등장한 기업이 일본의 최대 게임 기업 ‘닌텐도’(Nintendo)사입니다. 이러한 ‘닌텐도’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1889년 공예가 출신의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 1859~1940)가 창업한 상점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에서 출발한 기업입니다. 당시 일본의 전통 화투인 ‘’하나후다‘(花札)’를 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1949년 창업자의 아들에 이어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山内溥. 1927~2013)가 가업을 물려받아 1963년 ‘닌텐도’사로 개명하여 1977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1981년 비디오 게임 '동키콩’과 1983년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을 개발하여 이른바 ‘슈퍼 마리오’ 열풍으로 북미 게임 시장에서부터 전 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게임 시장은 2000년대로 이어지면서 ‘닌텐도’사의 ‘GBS’와 ‘DS’ 그리고 ‘소니’사의 ‘PS2’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XBOX360’과 같은 게임기의 출현으로 활황기를 맞았으나 PC게임 그리고 모바일 게임과 같은 시대의 변화에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어느 분야이든 역사적인 흐름에는 서로를 발전시켜가는 연관성을 가진 힘들이 변화의 물결을 만들게 마련입니다. ‘비트코인’이 탄생하고 나서 가장 먼저 ‘비트코인’을 얻었던 ‘할피니’(Hal Finney. 1956~2014)가 콘솔 게임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던 내용에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후 ‘할피니’는 이메일 및 데이터 암호화 전문업체인(PGP Corporation)에서 활동하였습니다. ‘PGP’(Pretty Good Privacy)란 우리가 오늘날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이메일(e-mail) 보안 시스템을 말합니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 인물이 1991년 이와 같은 이메일(e-mail) 보안 시스템 ‘PGP’(Pretty Good Privacy)을 개발한 컴퓨터 과학자 ‘필 짐머맨’(Phil Zimmermann. 1954~)입니다. ‘필 짐머맨’이 개발한 이메일 보안시스템의 바탕은 비대칭 암호화 알고리즘 중에서 오늘날 표준으로 사용되는 ‘RSA 알고리즘’입니다.

 

이러한 ‘RSA 알고리즘’은 MIT 공대 교수인 ‘로널드 로린 라이베스트’(Ronald Lorin Rivest, 1947~)와 이스라엘의 암호학자 ‘아디 샤미르’(Adi Shamir. 1952~), 그리고 DNA 분자를 사용하여 강력한 연산 능력을 갖는 생체 컴퓨터(bio-computer)의 선구적 초석인 DNA 컴퓨팅을 개발한 ‘레오나르도 애들먼’(Leonard Adleman. 1945)세 사람이 1983년 MIT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입니다.

 

이와 같은 세 사람의 이름에서 첫 글자를 따온 ‘RSA알고리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의 첩보국 중 하나인 정보통신본부(GCHQ)에서 근무하던 수학자 ‘클리퍼드 콕스’(Clifford Cocks. 1950~)가 1973년 개발한 ‘비대칭 암호 방식’(Public-key cryptography)과 같은 개념입니다. 이는 암호화하는 키와 해독하는 키가 같지 않게 고안된 방식으로 두 개의 큰 소수를 곱해서 얻은 더 큰 수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키의 해독성이 소수의 나열에서 그 규칙은 있지만, 임의성의 예측이 불가하다는 리만의 법칙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RSA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이미 국가정보 문서에 적용되던 내용을 메일 보안시스템 ‘PGP’(Pretty Good Privacy)로 개발하여 1991년 공개한 ‘필 짐머맨’(Phil Zimmermann. 1954~)의 회사에 훗날 최초의 비트코인 채굴자이며 거래자로 역사에 남은 ‘할피니’(Hal Finney. 1956~2014)가 오랫동안 근무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정황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비트코인’이 탄생한 시기에 ‘할피니’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부근의 ‘템플 시티’(Temple City)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이곳 인근에 거주하였다는 정황도 보도되었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으며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은 일부보도에서 공개되었습니다.

 

▲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 할 피니.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비트코인은 실험작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역사를 종합하여 보면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뛰어난 감각을 가진 프로그래밍 전문가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비트코인’의 기술적 구조와 시스템의 메커니즘이 가상화폐와 연관된 오랜 역사적인 내용을 종합적으로 취합한 흔적이 쉽게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베일의 인물 ‘나카모토 사토시’를 직접 만났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의 최초 채굴자이며 거래자인 ‘할피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할피니’는 자신이 연구한 ‘재사용 작업증명’(RPOW)방식을 통한 ‘통화증명’ 즉 디지털 화폐 기능에 대하여 ‘나카모토 사토시’에게 설명하자 ‘사토시’의 표정이 급하게 굳어갔다는 증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덧붙여 그는 ‘사토시’에 대하여 일본계의 유능한 젊은 청년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추적자들은 이러한 내용이 ‘나카모토 사토시’의 역할까지 1인 2역을 해온 ‘할피니’의 주장이라고 반박하였습니다.

 

베일의 인물 ‘나카모토 사카시’는 2010년까지 여러 인물과 협력하여 ‘비트코인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한 이후 시스템의 소스 코드 저장과 네트워크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그동안 협력하였던 ’개빈 앤드리슨‘(Gavin Andresen)에게 양도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가상화폐와 연관하여 등록한 여러 도메인을 ’비트코인‘ 시스템에 협력한 회원에게 양도하고 발전을 거듭하던 ’비트코인‘ 프로젝트의 참여를 중단하면서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권한을 양도받은 ’개빈 앤드리슨‘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3D 그래픽 및 가상 현실 소프트웨어의 전문가로 인터넷 음성 서비스를 개발한 회사에서부터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게임을 개발한 회사를 비롯한 여러 벤처 기업에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2010년 ‘비트코인’ 시스템의 디자인 작업을 맡아 능력을 인정받은 이후 비트코인 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용 클라이언트 프로그램 ‘비트코인 코어’(Bitcoin Core)의 개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 그는 ‘비트코인’ 출범 당시에 약 백만 개의 ‘비트코인’을 채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베일의 인물 ‘나카모토 사토시’ 에 대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나카모토 사토시’가 개인이 아닌 구성원의 표현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글의 주요한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비트코인의’ 고유권한을 위임받은 ‘개빈 앤드리슨’와 합류하여 ‘비트코인 시스템의 개발에 5년 동안 주력하였던 ‘마이크 헌’(Mike Hearn)이 지난 2016년 ‘비트코인’을 떠난 이후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이 투자 대상이 아닌 실험 통화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모든 실험은 실패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어 자신은 더는 ‘비트코인’의 개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이 소유한 ‘비트코인’을 처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중요한 기관’이 부재하며 소수에 의하여 통제되는 시스템과 네트워크의 기술적 붕괴의 위기를 주요한 이유로 파악하였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메커니즘이 훼손되어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능가해야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화폐란 무엇인가

 

이러한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헤아림을 통하여 잠시 화폐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화폐-돈(Money)은 인류가 생활이라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면서 역사라는 오랜 교훈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가장 과학적인 약속입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멩거(Carl Menger)의 말처럼 ‘화폐는 물물교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라는 말과 함께 경제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곧 흥망이라는 결과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교과서적으로 돈은 실물경제 규모보다 많이 풀리면 그 가치가 떨어지며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이와 반대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줄어들면 생산이 위축되어 실업자가 늘어납니다. 이에 경제활동이 원활하도록 시중의 유통화폐의 적정량을 유지하는 곳이 독립된 주체인 중앙은행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적정한 화폐의 유동성을 측정하는 지표가 통화지표입니다. 통화지표란 통화정책과 모든 경제정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표입니다.

 

오늘날 화폐의 기능이 아닌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관심이 집중된 가상화폐에 대한 논란은 뜨겁습니다. 미래의 기술적 비전의 가능성과 함께 제도권의 발행 주체가 분명한 고유한 화폐의 대체에 회의를 가지는 상반된 견해를 안고 오늘도 오르고 내리는 등락의 그래프를 열심히 그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내용이 환율입니다. 우리가 쉽게 외국 돈을 살 때 지불하는 외국 돈의 가격을 환율이라 합니다. 일정한 상품이 수요와 공급으로 그 가격의 변동이 생겨나는 것처럼 외환시장에서 해당 나라의 화폐에 대한 수요와 공급으로 환율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이 늘어나거나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의 투자자금이 늘어나게 되면 우리 돈의 가치가 오르게 되어 환율이 오르게 되고 반대가 되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뜨거운 감자 ‘가상화폐’는 이러한 환율에 변동하지 않고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나라의 결제 대금의 환율만 적용되고 있는 아이러니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인정된 화폐의 순기능이 아닌 상품의 거래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가상화폐 시장의 일일 거래량 규모는 실로 천문학적입니다. 이에 많은 나라가 이에 따른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세력의 불법적인 자금의 거래창구가 되고 금고가 된다면 인류가 추구한 신기술의 덫에 세계의 흥망이 걸리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온 세계는 이를 주시하여 이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가상화폐가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에서 제도권 화폐로 대체될 가능성에 대한 문제점을 깊게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각 나라의 제도권 은행에서 가상화폐의 기술적 내용을 바탕으로 간편한 송금 방식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수수료 절감을 얻게 된다면 가상화폐의 입지는 더욱 불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는 초기에 채굴한 천문학적인 평가액의 ‘비트코인’을 안고 베일의 장막 뒤로 사라졌으며 최초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거래한 ‘할피니’는 지난 2014년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진취적 기술의 흐름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개발에 5년여 동안 주력하였던 ‘마이크헌’(Mike Hearn)이 지난 2016년 ‘비트코인’을 떠나면서 투자가 아닌 실험의 대상 ‘비트코인’으로 언급한 내용에 담긴 행간을 깊게 인식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은 오르고 내리는 가상화폐의 등락에 젊음을 바치지 말고 ‘가상화폐’가 탄생한 역사의 행간에 담긴 진취적인 기술의 흐름을 읽어내어 세계 속에 새로운 실험의 장을 열어가는 젊음을 펼쳐가라고 말입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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