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회칙 반드시 고쳐야하는 이유

“빛나는 국어 운동 전통 부정하지 말라!”

김영환 부경대학교 교수 | 기사입력 2018/03/25 [09:59]

한글학회 회칙 반드시 고쳐야하는 이유

“빛나는 국어 운동 전통 부정하지 말라!”

김영환 부경대학교 교수 | 입력 : 2018/03/25 [09:59]

한글학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학회다. 그 역사는 겨레 역사의 온갖 어려움을 넘어선 여러 영광을 함께 안고 있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우리겨레 말글살이의 주춧돌을 놓아,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남북이 기본적으로 같은 맞춤법을 쓰게 되었다. 우리말 도로찾기는 대중의 적극적 호응을 얻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뒤틀리기 시작했던 우리말 운동중심에 있던 서울대

 

사실상 종신제 평의원간선제 폐지하고 직선제 해야

 

 

▲ 지난 1908년 설립된 국어연구회 창립터에서 찍은 한글학회 회원 기념사진 (현 서울시 서대문구 봉원사) <사진출처=국가기록원>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는 체육 용어가 서로 달라 소통에 문제가 있기도 했는데 북녘의 우리말 사랑이 돋보였다. 북쪽에서는 골리, 디펜스, 문지기, 수비수, 쳐넣기로 바꾸었다. 이런 남북의 차이는 남쪽에서 한글 사랑, 우리말 사랑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뒤틀리는 학회

 

이렇게 우리말글 연구와 운동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유산이 서울대를 통하여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1945년 이후 조선어학회는 한자 폐지-한글사랑 운동에 큰 힘을 기울여왔다. 한자 혼용 운동의 또 다른 표현이 서울대의 이희승과 이숭녕으로 대표되는 과학적국어학이었다. 경성제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는 서울대 중심의 세력이 내세운 이데올로기였다.

 

그들은 과학적-민족주의적이분법에 따라 주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을 학문성이 없는 이데올로기로 배척하였다. 한자 폐지 운동은 우리 지식인의 오랜 무지와 편견 때문에 반대가 거셌지만, 근대 이후 말글살이의 근대화, 규범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이었다. 초등학교 한자 교육 문제를 두고 끝없이 시비에 말린 것도 그것이 한자 폐지 문제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글로만 쓰기는 왕조 시대의 지배 계급의 지식 독점을 깨뜨리는 민주주의 운동이었고, 겨레 문화의 독립 운동이기도 했다. 최근의 쉬운 헌법 만들기 운동에서도 한글 운동이 민주주의와 일치함을 다시 확인하였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분단된 우리에게 자주 독립의 상징인 한글이 목숨인 현실은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제가 퍼뜨린 이데올로기인 과학적국어학 청산 운동이 일어났지만 학회는 적극적으로 이 일에 나서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인 양 대응이 굼뜨고 미지근했다. 이러니 한자파와의 싸움도 주도적으로 매듭짖지 못했다.

조선어학회 전통을 부정하며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서울대파가 관료와 손잡고 일본을 본떠 국어연구원을 만들고 <표준 국어대사전>을 만들어 조선어학회의 전통을 박물관에 가두어 두려하는데도 제대로 목소리를 못 냈다. 국제화 세계화의 바람이 몰아쳐 미국말이 한자 한문 자리를 대신하는데도 제대로 된 대응을 못했다.

 

이명박 정권 때 한글학회 회장은 미국 선교사 헐버트가 주시경의 스승이라는 독창적인주장을 내세우며 우리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조선일보>에 보냈다. 마치 400년 전의 성리학자들의 작은 중화사상을 연상시켰다. 오늘날 그토록 바라던 한글로만 적기가 이루어졌으나 미국말이 넘쳐나 빈껍데기가 되었다. 한글학회가 제대로 일을 했더라면 이렇게 되었을까.

 

▲ 김영환 부경대학교 교수   

 

학술과 실천 이분법

 

한글학회 회장은 평의원회에서 뽑는다. 한글학회 회장을 정회원이 직선으로 뽑지 못한다. 이사가 평의원을 추천해서 임명하고, 그 평의원이 이사를 뽑는 회칙을 갖고 있다. 이사가 회장을 뽑는다. 평의원은 사실상 종신제다. 오랜 전통을 가진 한글학회가 왜 이런 상식 밖의 회칙을 갖고 있는가. 이러니 정회원은 회비만 내는 거수기로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회원이 회장을 뽑자는 회칙 개정안이 나와 324일 총회에서 이 개정안을 두고 토론을 가졌다. 지난 2월 한글학회 이사회는 회칙 개정안을 회원에게 알렸다. 개정안에 대한 부대 의견에서 몇몇 구차한 이유를 대며 개정안에 반대하며 간선제 유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한글학회는 연구 단체지 운동 단체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학회는 이름 그대로 학술단체다라고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은 말했다. “학술단체의 기본은 학자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라며 무슨 한글협회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라고 했다.

 

그럼 이제까지 겨레 역사와 함께 해온 한글 운동의 역사는 무엇인가. 국어 운동의 으뜸 주체는 한글학회 회원이었다. 빛나는 한글 학회의 역사를 왜 스스로 부정하는가. 국어 연구와 국어 운동을 함께 해온 학술단체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해온 한자 폐지 운동,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운동은 무엇인가. 왜 이론(학술)과 운동(실천)의 이분법인가. 이론이란 언제나 실천적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어떤 학문에서도 실천을 떠난 순수한 학술 이론은 공허한 관념의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학술은 운동을 뒷받침하고 운동은 학술에 생생한 문제 의식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흔히 생각하듯, 순수한 이론이 먼저 있고 실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서로 손잡고 가야 할 두 영역이다. ‘과학적국어학을 내세우는 서울대 중심의 교수들이 한글 학회가 운동에 치우쳤다고 비판하던 무지와 편견을 스스로 내면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빛나는 전통 이어야

 

한글 학회가 아직도 많은 국어 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아직도 우리말과 글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이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무지와 편견은 현재 한글학회 이사진이 학술(이론)과 운동(실천)의 분리라는 경성제국대학이 남긴 이데올로기의 유산을 그 뿌리에서부터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글로만 쓰기 맞춤법 통일안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인 학술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운동이었다. 이런 운동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한글과 우리말을 연구하며 가르치며 국어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글학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한글학회가 제 역사와 전통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학자들만의 것으로 될 수는 없다. 한글학회는 자주, 민주, 통일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겨레 문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뭉쳤던 그때로 되돌아가야 한다.

 

자그만 기득권에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한글학회를 제자리에 바로 세울 수 있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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