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 본 병든 우리 사회 진단서

“불편한 진실 외면…혹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

정리/김보미 기자 | 기사입력 2013/12/20 [17:56]

범죄로 본 병든 우리 사회 진단서

“불편한 진실 외면…혹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

정리/김보미 기자 | 입력 : 2013/12/20 [17:56]
       묻지 마 범죄 유독 한국에서 빈발…잠재적 분노 임계점 넘었나?
       공소시효 뿌리는 일본 형법 베끼기…국가철학 부재로 비극 시작
       국가보안법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갈라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

▲ 연쇄살인, 엽기 범죄 등 각종 범죄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 사진출처=김영사
 
한국적 범죄의 인큐베이팅에서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한 경찰까지, 친필 편지에 담긴 신창원의 안타까운 고백에서 연쇄살인을 복제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고리까지, 백트래킹 프로파일링에서 과학수사를 파괴한 사법 시스템까지, 정의로운 경찰관의 고독한 딜레마에서 국가에게 버림받은 원혼들의 복수까지.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범죄로 본 병든 우리 사회의 진단서이며 과학수사의 모든 것이 담긴 한국 범죄학의 바이블 <공범들의 도시-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김영사)이란 책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표창원·지승호 두 사람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이웃들에게 “혹시,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라고 묻는다. ‘공범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는 대체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정리/김보미 기자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표창원 교수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한국 범죄학에 대해 나눈 대화를 엮어 책으로 내놨다. 연예인의 인권 그늘, CSI 신드롬과 CSI 이펙트, 범죄 영화에 대한 분석 등 흥미로운 이야기와 전관예우,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등의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범죄를 다룬다.
“1964년 3월, 뉴욕 주 퀸스 지역 도로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20대 여성이 정신이상자에게 35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노비스가 살해되는 35분 동안 뉴욕 도로 인근 집에는 38명이나 되는 목격자가 있었다. 제노비스는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38명의 목격자 중 누구도 제노비스를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표창원·지승호 두 사람의 대화는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유령에서 현 정국의 핵심 이슈인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등 정치적인 테마들까지 한국 사회 전반을 관통한다. 두 사람이 긴 시간 동안의 격론과 논쟁 끝에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이웃집에서 벌어진 단순 강도에서 거대한 국가 기관의 부정까지 ‘범죄라는 불편한 사건’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사회. “혹시,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
 
묻지 마 범죄, 그리고 거대 국가범죄
표창원·지승호 두 사람은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자식 살해 사건의 경우는 전형적인 한국적 특징을 드러낸다. 사회복지 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국은 ‘가족 복지’, ‘친척 복지’의 사회다.
사회의 한 구성원을 가족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살아갈 희망 없는 상태가 되면서 자식을 살해한다. 그 누구도 자식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자식을 부속물로 여기는 엽기적 가족 관계 때문이다.
묻지 마 범죄는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빈발하는 범죄다. 증가하는 학교 폭력과 가정폭력, 낮아지는 취업률,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 잦은 권력형 비리 속에서 사회 내 잠재적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 분노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유 없는 범죄’로 폭발한다.
개인 차원에서 방어 운전과 같은 ‘방어 생활’을 임시방편으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범죄 예방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묻지 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생활 자체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없다.
커져만 가는 사회적 분노는 ‘연쇄살인을 복제하는 어두운 고리’를 만들어낸다. 사회화 과정에서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이들은 연쇄 살인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려움이 마비된 이들은 살인의 쾌감에 중독되면서 범행을 거듭하고 이것은 사회적 난치병으로 굳어진다. 연쇄살인범은 아니지만 오원춘 사건 역시 이 경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오원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폐부를 드러냈다. 112 시스템과 수색의 허점, 텔레마케터로 전락해버린 경찰,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혐오 확산, 인육설 기정사실화 등 재판부의 결정적 과오, 그리고 오원춘이라는 악마 한 명만 사라지면 해결된다는 것으로 귀결된 사회적 인식. 범죄가 일어난 사회적 배경과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오원춘 개인만을 악마화하면서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어두운 범죄 이야기 곳곳에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들이 포진해 있다. 신창원이 보내온 친필 편지는 그가 예외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범죄자임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표창원 교수는 ‘신창원에게 선고된 무기징역+22년형이 과연 정당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살인할 의사가 없었고 직접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공범에게 선고된 무기징역. 2년 반의 도피 생활로 경찰의 무능함을 드러낸 데 대한 괘씸죄로 선고된 22년. 이것이 과연 사법 정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올바른 행위였느냐는 것이다.
CSI 신드롬과 CSI 이펙트에 대한 분석, 범죄자와의 관계 형성부터 시작하는 라포 프로파일링과 커뮤니케이션 수사론, 처음부터 살인을 단정하면서 함정에 빠진 김성재 변사 사건 등 미제 의혹 사건들의 헝클어진 맥락에 대한 분석도 이채롭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잔인해져가는 개인 범죄의 양상에서 범죄에 대한 국가의 철학 부재로 지평을 넓혀간다.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소시효의 문제다. 공소시효 자체가 식민지 시기 일본의 형법 제도를 그대로 베낀 어두운 뿌리를 가지고 있다.
표창원·지승호 두 사람 선진국에서는 살인 등 반인륜적 범죄의 공소시효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한 사람쯤 죽은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국가 철학의 부재가 문제라고 일갈한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유가족의 한과 망자의 원혼을 풀어주려 하지 않는 국가의 태도에서 비극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가 철학 부재는 국가가 합법적인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인생역전의 망상을 부추기는 행태(로또, 경마, 경륜 등), 재판부가 살인 사건에서 사건 축소를 시도하고 피해자 합의를 강요하는 부정과 월권행위(오원춘 사건의 경우), 그 같은 재판부의 명령을 무시하면서 수사기록조차 공개하지 않는 오만한 검찰(용산 참사의 경우)을 양산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서 포커스를 맞추는 부분은 경찰의 공범 문제다. 경찰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망연히 서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경찰대학 교수직까지 사직하게 되었다는 표창원 교수는 댓글이 삭제되는 동안 수수방관하며 권력의 눈치를 보았던 경찰들, 그리고 눈치 보기 끝에 무리한 중간수사 발표로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경찰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리고 불행으로 달리는 특급열차를 탄 경찰의 훼손된 중립성을 회복하고, 검사의 1인 독재 수사 구조를 넘어 검경의 공범을 막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법의학 수사 문제, 경찰관의 총기 사용에 대한 딜레마와 경찰대학 권력화, 우파 범죄학과 좌파 범죄학의 견제와 균형의 역사, 국가보안법을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가 갈라지는 현상에 대한 비판 등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그가 내린 답은 바로 ‘정의’다
한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3.8%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고,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 44%가 ‘10억원을 준다면 징역 1년 정도 살 짓을 저지를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모두가 퍽퍽하고 삭막한 불신과 의심, 경계, 피해 의식의 악순환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긴 인터뷰를 마치면서 표창원 교수는 인터뷰어 지승호씨에게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표창원 교수는 경찰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28년 동안 범죄와 경찰, 형사사법제도 분야에 모든 열정과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그가 결론적으로 얻은 한 가지의 단어는 바로 ‘정의’라고 한다. 정의가 제대로 바로 서게 될 때 다른 모든 것들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어느새 ‘공범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 더 늦기 전에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 표창원 교수와 지승호씨는 이 책이 그 여정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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