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성공적’ 평가의 내막

불리한 상황에서 협상…“실익 지켜냈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3/31 [12:56]

한미FTA 재협상 ‘성공적’ 평가의 내막

불리한 상황에서 협상…“실익 지켜냈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3/31 [12:56]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이 타결됐다. 양국은 미국산 수입자동차에 대해 미국의 자체 안전기준을 충족한 경우 한국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자동차를 업체당 현행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려주고 한국 건강보험의 글로벌 신약 약값제도를 향후 개선하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수출 철강에 대해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에 최근 연평균 수출물량의 70%로 ‘쿼터’를 확보하고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개선과 무역구제의 절차적 투명성을 협정문에 반영했다. 전반적으로 양국간 결산 손익계산서를 따진다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우리가 선방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협상 최대 관심분야 자동차 ‘픽업트럭’ 내줘
철강 관세부과 조처서 국가 면제 하는데 합의 성과
경제단체들 긍정적 평가…한미 경제협력 공고화 돼
트럼프 행정부는 자화자찬 중…장기적 손해 지적도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중심으로한 한국 대표단이 한미 FTA협상을 타결했다. <사진출처=SBS 뉴스 캡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3월26일 외교부 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미 FTA 개정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FTA 재협상 실익


이번 협상에서 한미 양국은 미국의 최대 관심 분야인 자동차에서 화물자동차(픽업트럭) 관세철폐 기간 연장,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의 유연성 확대에 합의했다.


기존 협정에서 미국은 2021년까지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를 완전 철폐하기로 했지만, 이번 합의에서 철폐 기간을 오는 2041년까지 20년 연장했다.


지금은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한 경우 한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간주해 제작사별로 연간 2만5000대 수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5만대까지 가능해진다.


미국 기준에 따라 수입하는 차량에 장착되는 수리용 부품에 대해서도 미국 기준을 인정한다.


양국은 5년 단위로 설정하는 연비·온실가스 기준에 대해 현행(2016~2020년) 기준을 유지하되, 차기 기준(2021~2025년) 설정시 미국 기준 등 글로벌 추세를 고려하고 판매량이 연간 4500대 이하인 업체에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소규모 제작사’ 제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친환경 기술을 적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것으로 인정해주는 ‘에코이노베이션 크레딧’ 상한도 확대하기로 했다.
휘발유 차량에 대한 배출가스 시험 절차와 방식도 미국 규정과 더 조화를 이루도록 개정한다.


미국의 다른 관심사인 글로벌 혁신 신약 약가제도와 원산지 검증에 대해서는 한미FTA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보완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제약협회(PhRMA) 등은 한국의 약가 정책이 혁신 제약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한국 제약업계에 유리하다면서 “한국의 가격 결정은 여러 단계에서 한미FTA 의무를 어기고 미국 혁신가의 권리를 짓밟는다”고 주장해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약가제도 변경에 합의한 것은 아니며 한미FTA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원칙적 동의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미국의 관심 분야에서 일부 양보하면서 우리의 핵심 민감 분야는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우리 정부가 협상 전부터 ‘레드라인’이라고 설정한 농축산물 시장에서 미국의 추가 개방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고 우리 협상단은 이를 막기 위해 상당히 애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요구한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쪽이 관심사항으로 제기해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분야는 ‘철강’이다. 양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 관세부과 조처에서 한국을 ‘국가 면제’하는데 합의했다. 대신에 한국산 철강재의 대미 수출에 대해 2015~17년간 평균 수출량(383만톤)의 70%(268만톤)에 해당하는 쿼터(2017년 대비 74%)를 설정하는데 합의했다.


‘관세’는 면제 받은 대신에 미국시장 수입물량을 줄이도록 ‘쿼터’를 설정하는 쪽으로 타협에 이른 셈이다.


통상교섭본부는 “철강 관세 국가 면제를 조기에 확정해 25% 추가 관세 없이 작년 대미 철강수출(362만톤)의 74% 상당하는 규모의 수출 물량을 확보해 우리 철강기업의 대미 수출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 평가했다. 부여받은 쿼터를 철강 품목별로 보면, 주력 수출품목중 하나인 판재류(열연·냉연·압연 강판)의 경우 2017년 대비 111% 쿼터를 확보했다.


그러나 유정용·송유관 강관 등 강관류 쿼터는 2017년 수출량 대비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강관의 대미 수출액은 2017년 203만톤인데 이번에 받은 쿼터물량은 연간 104만톤이다. 정부는 “우리의 대미 철강 수출은 전체 철강수출(3170만톤)의 11% 수준으로, 미국의 쿼터로 인한 대세계 수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우리 쪽이 얻어낸 또 다른 분야로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제도 개선이 꼽힌다. 한국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자본이 이 제도를 남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차단하고 이 제도로 인해 한국 정부의 정당한 정책·주권 권한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협정문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각종 파상적 수입규제 공세와 관련해 미국이 무역구제(수입규제) 조처를 발동할 경우 현지실사 자료 공개 등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협정문에 담기로 했다.


또 대미 수출 섬유분야에서는 일부 원료품목에 대한 원산지 기준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섬유분야는 2012년 3월 한미 FTA 발효 당시 미국이 민감품목으로 분류해 관세철폐 기간을 장기로 둬 한국산 수입을 최대한 막고 있는데 이번 협정개정으로 대미 섬유 수출애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농축산물 시장 추가개방을 막아내고, 미국산 자동차부품의 의무사용 등 우리가 핵심 민감분야로 설정한 분야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켰다”며 “기존 한-미 FTA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협상범위를 최소화하고 신속히 협상을 타결해 개정협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지만, 국내 안전·환경 기준의 기본 체계를 유지하면서 일부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요구한 ISDS 개선에 대해서는 투자자 소송 남발 방지와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 행사에 필요한 요소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 우리나라는 미국에게 화물자동차(픽업트럭) 관세철폐 기간 연장을 해줬다. <사진출처=포드>  

 

긍정적 평가


이처럼 정부가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 협상에서 ‘한국산 면제’라는 결과를 얻어낸 가운데 청와대는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며 협상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3월26일 기자들을 만나 “‘지독하게 협상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이번 협상의 뒷얘기들을 전했다.


윤 수석에 따르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애초 1주일간 미국에 머무르며 협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출국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에서 협상이 순탄치 않게 진행되면서 미국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졌고 협상팀은 4주 동안 호텔 방을 전전하면서 햄버거와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운 것으로 알려졌다.


윤 수석은 “다른 나라 대표단이 어떻게 협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김현종 본부장은 자주 통화하고 얼굴을 맞대면서 협상을 타결하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이 워싱턴에 머무르는 기간 내린 폭설도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현지 날짜로 한미 간 대표단 회담이 예정됐던 지난 3월21일에 워싱턴에 눈이 많이 내려 연방기관 사무실이 일제히 문을 닫기로 한 탓에 회동이 실제로 열릴지 불투명한 상황이 연출됐던 것이다.


윤 수석은 “(협상팀이) USTR에 문의했더니 미국 측이 한국과 협상은 해야 한다고 해서 3월21일에 예정대로 통상장관 회담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우리 협상팀이 이날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USTR에 들렀을 때 근무를 서던 보안검색 담당 직원은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 협상단이 오는 바람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양측 대표단은 계속되는 협상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협상이 잘 끝나면 축하주라도 해야 하는데 맥주 갖고는 안 되겠다. 좀 더 센 술로 마시자’고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윤 수석은 “혹시 (송별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한국 대표단이 돌아가면 ‘화상으로라도 술을 마시자’고까지 했다고 한다”며 “양측 대표단이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번 협상을 두고 ‘자동차 분야에서 우리가 양보만 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지적에 윤 수석은 “(우리나라 안전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미국 기준만 충족하면 수입을 허용하는) 쿼터가 늘었지만 현행 쿼터도 소화가 안 되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현재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차 수요 자체가 많지 않아 쿼터를 채우지 못하는 만큼 쿼터가 늘어난다 해도 우리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미로, 그만큼 이번 대표단이 협상을 잘했다는 뜻이다.


주요 경제단체도 한미 양국이 FTA 개정 협상을 타결지은 것과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대한상의 김준동 상근 부회장은 지난 3월27일 논평을 내고 “대미 교역의 불확실성을 해소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향후 미중과의 무역분쟁 등 글로벌 현안에 민관이 협력해 대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전무도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원칙적 합의에 도달해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경제계는 수출, 투자, 고용 등 모든 면에서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전무는 “자동차 분야에서의 양보 등 일부 분야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면서도 “원칙 합의로 통상 마찰에 따른 손실을 방지하고 한미 간 경제협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무역협회는 논평에서 “개정 협상의 신속한 타결로 불확실성이 조기에 제거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이제 대미 무역·투자 전략을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 협상을 계기로 정부와 민간업계는 미국과 경제협력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감으로써 양국 간 불필요한 오해와 불만을 불식시키고 상호 이해를 증진해 나가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며 "양국 정부는 개정된 한미 FTA 발효를 위한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무역협회는 오는 4월15일부터 대미 주요 수출 및 투자 기업들로 구성된 대미 경제협력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사절단은 미국의 의회, 언론, 싱크탱크 등의 주요 인사를 만나 한미 FTA 및 양국 간 우호적 경제협력 관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하는 초석을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 이번 FTA협상에서 철강 관세부과 조처에서 한국을 ‘국가 면제’하는데 합의했다.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미국은 손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한미 FTA 개정에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자화자찬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미 언론에서는 정치적 압박을 통한 당장의 ‘무역 승리’가 미래에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한미FTA 개정 소식을 알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접근법이 옳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홍보했다.


한 고위 관료는 “혁신적이고 선견지명을 보여준 합의”라면서 “과거 정부가 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인 무역 협상에 실패한 것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한국 정부와 원칙적으로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며 들뜬 표정을 보였다.


다수의 정부 관료들은 한미FTA 개정 합의를 트럼프 대통령의 ‘커다란 정치적 승리’라고 묘사하면서 무역 분쟁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기존 접근법에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으로 자평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주장과 달리 관세를 이용해 다른 나라와의 무역 협상을 압박하는 수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WP는 진단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전에 미국이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주 써먹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수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미국외교협회(CFR)의 무역 전문가인 에드워드 올던은 “트럼프가 1980년대를 부활시키고 있다”면서 “(1980년대는) 미국의 우려를 처리하기 위해 대개 일본과 일련의 정치적 타협을 하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어 올던은 “이것은 레이건의 교과서”라면서 “오랫동안 그런 수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구속력 있는 분쟁 해결이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타협으로 무역적자를 해소한다는 현 정부 기조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전 행정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미 행정부는 1981년 일본산 자동차 수입 제한 합의를 시작으로 일본의 수출을 자발적으로 줄이는 수십 건의 합의를 이뤄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는 이러한 수입 제한 조치가 시작되기 전보다 오히려 더 대일 무역적자 폭이 커졌다고 WP는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필 레비는 한국과의 이번 합의가 전혀 인상적이지 않다고 평가한 뒤 “대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된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과거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확실히 개선된 점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최악의 거래’라고 불렀던 것을 ‘완전히 새로운 공정하고 호혜적인 거래’로 탈바꿈시켰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시민단체 ‘공공시민세계무역감시’(PCGTW)의 로리 월락 국장은 “한국과의 새로운 합의에서 거둔 ‘제한적인’ 성과는 대통령이 약속한 무역 정책에서의 혁명에는 못 미친다”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추가로 압박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안보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미국과의 동맹에 균열을 내기 어려운 한국과의 FTA 개정 협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 중국이나 NAFTA와 같은 더욱 큰 상대와의 협상에서도 통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penfree1@hanmail.net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스타화보
배우 서인국, 화보 공개! 섹시+시크+몽환美 장착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