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구조 완벽하게 실패한 이유

대한민국 적폐의 집합체…“누구의 잘못인가?”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4/16 [12:10]

세월호 참사, 구조 완벽하게 실패한 이유

대한민국 적폐의 집합체…“누구의 잘못인가?”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4/16 [12:10]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대참사’가 벌어졌다. 특히 가장 피해가 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325명 중 246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사상자가 많이 늘어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이 ‘인재’라는 것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한다. 대체로 최초 침몰 징후 후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초기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승객들 몰래 탈출한 선장 이준석과 승무원들의 책임이 대두되고 있으며, 배를 무리하게 운행한 청해진 해운 역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해수부 마피아로 불리는, 해운계의 정경유착 역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경의 뒤늦은 대처와 사실상 초기 구조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던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도 책임론 한 가운데의 존재한다.


승객 세월호 속에 가둬두고 탈출해버린 선박승무원들
수많은 해운법안 어기면서 사고 키워버린 청해진해운
민간 인양업체 언딘과 유착의혹 지적됐던 해양경찰청
해수부 마피아들과 박근혜 7시간 의혹 제기되는 정부

 

▲ 세월호 구조를 하고 있는 해경. 하지만 손쓸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배는 뒤집히고 있었다. <사진출처=해양경찰청 제공 동영상 캡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한 두명의 사람들에게만 뒤집어씌울 수 있는 사고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잠재되어 있던 모든 병폐들, 나아가 한국의 현재 모습이 만천하에 가감 없이 드러난 사건인 것이다. 정경유착, 카르텔 등 대한민국의 나쁜 관행들로 인하여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천만 명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역대 최악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1차적으로는 선장인 이준석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들을 지목할 수 있다. 이들은 ‘탈출하지 말라’고 승객을 묶어놓고 자기 먼저 탈출한 ‘선원들이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대표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이러한 비판은 세월호 사고의 공학적·물리적 분석에 따른 직접원인 보다 근본원인을 지적한다. 선박이라는 한 집단의 범위 내에서는,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항해와 승객 구조임무 책임을 지닌 리더인데, 그들의 리더십 부재가 세월호라는 한 집단의 침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로, 탈출하기 힘들 정도로 배가 뒤집어지기까지 2시간이라는 충분한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음에도 승객들에게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과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기적절한 유효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방송 지시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탈출을 시도했던 승객들이 생존율이 높았다. 무엇보다 이들 선박직 승무원들은 갖혀있는 승객들을 뒤로하고 1차 탈출했다는 것으로 보아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문제가 선박 승무원들의 판단착오와 책임감 부재로 인재가 되었음을 지적되는 것이다.


일단 이준석 선장 등 구조된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이 남겨진 상황에서 1차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커졌다. 특히 선장의 경우, 선원법에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를 따르지 않았을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있다.


무엇보다, 세월호 선원들이 침몰사고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며, 승무원들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타 승객보다 먼저 구명정과 선박으로 기민하게 이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살인죄’까지 적용하며 책임을 강하게 묻는 중이다.


퇴선명령을 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선박이 완전히 침몰하기 전 2시간가량 시간이 있었는데, 생존자들은 당시 선내에서는 “더 위험하니, 동요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오히려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구명조끼를 착용 후 탈출을 시도한 승객들의 생존율이 높았다. 반대로, 그 지시대로 따른 승객들이 더 위험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하지만 선장은 승객들에게도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그보다 앞서 승객들에게 선내에서 대기하라고 방송한 이유도 두 가지를 들었다. ‘구조선이 당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점’과 ‘조류가 빨라 구명조끼를 입었든 아니든 퇴선시 승객들이 멀리 떠내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세월호 구조자 및 승무원들의 증언과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 지시를 전달받아 안내방송을 담당했던 승무원 강모씨는 퇴선명령을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런 주장을 일축한 바 있다. 이 선장이 퇴선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긴 했지만, 옆 사람에게 말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퇴선하라는 방송이 없었던 만큼, 퇴선명령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셈이라는 입장이다. 이같은 퇴선 지시여부는 현재 승무원들의 재판에서 ‘살인죄’ 입증 여부의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다.


또한 세월호가 초기 사고 신고를 가까운 진도가 아닌, 제주 관제 센터에 보고를 한 것은 사고 이후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논란이 됐다.

 

▲ 세월호에서 제일 먼저 탈출하는 선원. <사진출처=해양경찰청 제공 동영상 캡처>

 

청해진해운


세월호의 소유업체 청해진해운의 책임도 크다. 일단 증축과 과적 문제, 그리고 승무원 교육 관련 문제가 있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 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세월호의 소속 선박사였던 청해진해운은 덕분에,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입금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심지어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은 과징금 30만원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내항선 선박직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세월호 이준석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원을 썼다.


대형 여객선에 비행기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항해기록장치(VDR) 설치 규정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현행 해상인명안전협약에 따르면 3000t 이상 화물선과 국제 항해 여객선에 이 장비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여객선은 예외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이뿐 만이 아니라 세월호는 일본에서 구매한 중고 선박을 상당히 한계치까지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세월호 내부에는 상당한 장비가 미비했다.


각 기관과의 유착도 문제가 크다. 세월호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선박검사기관인 한국선급으로부터 월호 정기 중간검사와 증축 당시 복원성 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또 2014년 2월,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배수와 통신, 조타장비, 안전시설 등 200여개 항목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려 논란이 됐다. 또한 내항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의 경우에도  정부의 압수수색 이전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파기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해양경찰청과 언딘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의 늦장 대처와 언딘과의 유착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구조 장비의 투입이 해경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연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청와대 등에 상황보고를 하면서 구조작업은 과장하고 실종자 상황은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등 엉터리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와 정부가 침몰사고 초기 상황의 심각성을 오판하고 신속 대응하지 못한 원인이 해경의 이 같은 부실 보고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사고 발생 약 40분 뒤인 오전 9시 30분 청와대와 총리실,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등에 처음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이때는 세월호 선체가 45도 이상 기울어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 위험이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고만 보고했다. 첫 보고서엔 승객과 선원이 각각 450명, 24명으로 잘못 기재돼 있다. 세월호가 완전 전복됐을 때인 오전 10시 23분 두 번째 보고서에서는 해경과 해군 함선 33척, 항공기 6대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엔 구조정 1척과 헬기 2대만 있었다. 오전 11시 25분에 보낸 세 번째 상황보고서엔 ‘현재 총 구조현황: 162명 구조 완료’라며 밑줄까지 그어놓았다. 하지만 300명 넘는 승객이 아직도 선체에 갇혀 있다는 ‘실종자’ 관련 내용은 없었다. 구조 성과만 강조하고 신속한 현장 대응이 필요한 상황은 누락한 것이다.


이에 검찰은 선장이 해경 구명보트에 오르던 시간의 배 기울기는 62도에 불과했다며, 해경의 선내 진입 구조가 충분히 가능했다고 결론지었다. 또, 해경이 도착 즉시 선내에 진입했다면 전원 구조도 가능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검찰은 해경의 초기 구조가 잘못됐다고 밝힌 것이다.


또한 세월호가 침몰한 당일 언딘이 구난업체로 신속하게 결정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언딘이 평소 해경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언딘의 김모 대표는 해양경찰청의 법정단체로 작년 1월 출범한 한국해양구조협회의 부총재다. 총 19명에 이르는 해양구조협회 부총재에는 해경청 경비안전국장, 해경 경무관 출신 김모씨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해경이 해양구조협회에서 부총재로 활동하는 김 대표의 언딘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청해진해운에 언딘을 구난업체로 선정토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해경은 그러나 청해진해운이 언딘을 세월호 구난업체로 선정하는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이었던 4월16일, 이틀에 걸쳐 해군의 선내 진입이 해경에 의해 통제되기도 했다. 해군은 사고 둘째날인 4월17일 밤이 되어서야 수색 작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28시간이 허비되었다. 이를 두고 해경이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계약한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우선권을 주려고 해군의 투입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해경은 해군의 투입을 제지한 적이 없다며 유착 가능성을 부인한 바 있다.


해경과 언딘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었다. 사고 직후, 청해진해운과 언딘이 세월호 구난 작업과 관련해 계약을 맺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간부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핵심은 해경 ‘대형 사고 매뉴얼’의 구난업체 목록에 없는 언딘이 수색 업체로 선정된 경위다. 일부 수중업체들은 청해진해운과 해수부로부터 언딘보다 먼저 연락을 받았지만, 언딘이 수색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투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청해진해운에 언딘을 추천한 곳이 해경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사고에 대해 기본적인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출처=청와대>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


대한민국 정부와 청와대의 책임도 크게 거론된다. 일단 주로 거론되는 것이 ‘해수부 마피아’다. 해양수산부 선박의 정식 항해를 위해 선사는 첫 출항 1주일 전 해경에 운항관리규정을 심사, 증명 받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공개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서 선원들의 역할을 명시한 비상 부서 배치표는 총 44쪽 중 2쪽에 불과하다. 또한, 비상부서 배치표에는 선원 직책별 임무와 비상신호 체계가 적힌 게 전부였다. 다른 선박의 운항관리규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함에도,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승인을 받았다.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해경과 운항관리실(해운조합), 항만청,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이 포함된 위원회에서 심사해 인천해양경찰서가 최종 승인했다. 결국 부실 승인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 15분까지 약 7시간 동안의 행적과 관련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보고 받은 시각이고, 오후 5시 15분은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시각이다. 청와대는 ‘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고 모두 18차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보고를 받았으며 오전 10시 15분과 오전 10시 30분 두 번에 걸쳐 구조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구명 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장면이 뉴스 동영상으로 공개된 바 있다.


이에 최근 검찰조사결과 당시 박 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저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최순실이 청와대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원론적인 구조지시를 한 것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오후 2시 15분쯤 최순실이 청와대에 들어오자 관련 회의를 연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은 문서로 들어온 보고에 대해서도 사실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정황까지 나왔다.


최순실이 청와대에 방문했을 때 방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은 미리 관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최순실의 이날 관저 방문은 박 전 대통령과과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일정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과 세월호 사고에 관련 회의를 갖고 중대본 방문을 결정했다. 이후 정호성 전 비서관, 윤전추 전 행정관 등은 화장과 머리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 정매주씨를 청와대로 부르는 등 준비에 임했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 당시 있었던 각종 적폐 덩어리가 구조과정에서 연쇄적으로 드러난 대참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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