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링거 르네상스와 문화융성의 로마

“문맹자가 일깨운 아름다운 문화발전 역사”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4/17 [09:20]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문화융성의 로마

“문맹자가 일깨운 아름다운 문화발전 역사”

이일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4/17 [09:20]

르네상스 하면 누구나 중세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를 거점으로 일어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8 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10 세기 오토 르네상스 같은 소중한 흐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류사에서 최초의 르네상스 운동으로 평가받는 8세기 에 있었던 고전문화 부흥운동 카롤링거 르네상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서로마 황제로 등극…수많은 전투로 전설 쓴 롤랑의 노래
비잔틴의 성화상 파괴령…서로마 샤를마뉴는 오히려 보호
문맹자 처지에서 생각해 만든 카롤링체…문화발전에 도움
주요 지역에 많은 수도원·교회를 건립하여 도서관 만들어

 

▲ 대관식을 하는 카롤루스 대제. <사진출처=wikipedia> 

 

프랑크왕국 카롤링거 3대왕 샤를마뉴(Chalemagne,742~814)는 768년 부터 814년에 이르는 46년의 재위 기간 동안 셀 수 없는 전투로 일생을 마친 전설적인 왕입니다. 이러한 전설과 같은 서사시 ‘롤랑의 노래’ 그 주인공입니다.


이와 같은 강력한 세력을 증명하듯 샤를마뉴는 800년 12월 25일 교황 레오 3세(Leo Ⅲ750~816)의 집도 속에 성 베드로 성당에서 서로마 황제 대관식을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잠시 살펴봅니다.

 

르네상스와 로마


당시 동로마제국(비잔틴국)의 레오 3 세 아이사우리안(Leon III  Isaurian,686·741)황제가 726년 성화상 파괴령(iconoclasm)을 선포합니다. 수도원과 교회 내의 모든 성화와 성상을 파괴하라는 이 선포는 교회의 입장에서 당시 대부분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교화의 교과서와 같은 성화와 성상을 불태우고 파괴하라는 명령은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741년 동로마제국(비잔틴국)의 새로운 황제로 즉위한 콘스탄틴 5세(Constantine V,718~775)황제는 교회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더욱 강력하게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795년 레오 3세(Leo III,750~816)교황이 샤를마뉴 왕의 도움 속에 로마의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게 됩니다.


레오 3세 교황은 자신들의 수호세력인 동로마제국(비잔틴국)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며 확고한 세력을 가진 샤를마뉴 왕에게 이를 호소합니다. 이에 샤를마뉴 왕은 자신 스스로가 글을 모르는 입장에서 충분한 공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로마교회를 보호하였고 이러한 교감 속에서 서로마 황제 대관식이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샤를마뉴의 황제 대관이 가지는 의미는 당시 유럽 역사에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첫째 동로마제국(비잔틴국)과 로마교회의 밀월의 관계가 카롤링거 왕조로 바뀌게 된 점으로 이는 세력의 변화를 증명하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대 상황이 끝없는 전쟁과 도발로 이어지며 국경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 일반 평민은 물론 귀족사회에 까지 신의 말씀에 대한 신봉의 정도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서로마 황제 즉위를 기점으로 대규모의 문예활동에 대한 지원과 후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로마제국의 부활이라는 상징성을 증명하고 싶은 샤를마뉴 황제의 야심이었으며 이상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운동을 전개할 경제적 바탕이 세력의 확장에서 소유한 영토와 전리품 등을 통하여 재정상태가 아주 좋았기 때문입니다.    


샤를마뉴 황제는 이와 같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자신의 세력권은 물론 이웃나라에 까지 각 분야의 유명한 학자와 건축가, 필경사,예술가에서 부터 수도자와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재들을 초빙하였습니다. 각 분야의 인재들을 초빙하여 로마제국의 문예를 부흥하려는 정책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로마의 레오3세 교황이 샤를마뉴 황제의 지원으로 로마 시내의 환경 정비 사업에 착수하여 훗날 역사는 ‘아름다운 로마의 재건’ 이라고 평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바로 인류사에 최초의 문예부흥 운동인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바탕입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샤를마뉴 황제가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유일한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하며 후원하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 Pepin 과 Louis의 교육을 맡겨 후세의 운명을 부탁할 만큼 샤를마뉴 황제가 역사 속에 존재하게 한 인물입니다. 나아가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실체도 바로 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알퀸(Alcuin,735~804)이라는 오늘날 영국 북부와 스코틀랜드 남부지역의 노섬 브리아 왕국(Northumbria)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요크대학교의 Alcuin College가 바로 엘퀸의 이름에서 유래한 대학입니다.

▲ 더햄 대성당에 있는 비드의 무덤. <사진출처=durhamworldheritagesite>

 

끝없는 배움


서로마 샤를마뉴 황제는 로마제국의 부흥이라는 야심 속에 오늘날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이 맞닿는 지금의 독일 쾰른 70km 지점인 아헨(Aachen)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아헨지역은 오늘날도 사방을 숲으로 두른 아르덴 고원이라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곳으로 군사적 측면에서 천연요새의 요건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샤를마뉴 황제가 자리를 잡은지 1200여 년이 지난 1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5월 10일 이를 다시 상기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요즈음 쓰는 말인 마지노선(Maginot Line)이란 말이 유래하게 된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전투인 마지노전선으로 알려진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1877~1932)이름에서 유래된 이야기로 당시 마지노 국방장관은 천연 요새 지역 아르덴 고원에 성을 쌓아 독일을 압박하는 최강 전선을 구축하였습니다. 당시 천연 요새의 특성이 잘 알려진 까닭에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하였지만 독일의 프리츠 만슈타인 장군은 이러한 지형의 특성을 잘 알았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방법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당시 모든 언론은 이를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보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천연의 지형적 특성을 가진 아헨에 터전을 잡은 샤를마뉴 황제는 각지에서 초빙한 인재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최상의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조성은 물론 진정성이 가득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재 중에 멀리 노섬브리아 왕국에서 모셔온 초빙교수 앨퀸(Alcuin)은 샤를마뉴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고 샤를마뉴궁정학교를 세워 교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샤를마뉴의 스승 앨퀸에 대하여 잠시 정리해 봅니다. 앨퀸은 영국 요크 대주교 에그버트(Egberht)에게 공부하였습니다. 에그버트 대주교는 노섬브리아 왕국의 에드버트(Eadberht)왕과 형제였으며 그의 스승은 비드(bede672~735)입니다, 비드는 영국 역사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앵글로 색슨 연구분야에 최고 학자이며 그가 731년에 완성한 영국인의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 of English People)는 세계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러한 비드 대주교의 스승은 682년 영국 재로우(Jarrow)에 베네딕도 수도원을 창설한 베네딕투 비스콥(Benedict Biscop(628~690)이었습니다, 베네딕투 비스콥은 5번에 걸친 로마행을 통하여 로마 교황의 특별 지원금과 각종 도서와 미술품을 가져왔으며 5차례의 해외 항해를 통하여 수많은 도서를 사들였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수도원의 학교와 도서관에서 공부한 비드가 훗날 온 세계를 빛낸 심오한 저술의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앨퀸이 자신의 스승 에드버트의 스승이었던 비드가 공부하였던 도서관에서 공부한 학생입니다. 이에 앨퀸은 비드가 저술한 성서에 대한 깊은 해석의 보석 같은 주해서들을 샤를마뉴 황제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사본 제작하여 서유럽 모든 교회와 수도원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당시 사본 제작된 필사본들이 오늘날 각 나라의 보물이 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스승이 가지는 중요성을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 중세 필경사 작업 장면. <사진출처=wikipedia>     © 사건의내막

 

카롤링거와 문자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후세의 역사에 전한 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카롤링거 소문자라는 카롤링체의 개발이라 할 것입니다. 샤를마뉴 황제의 후원 속에서 로마문화의 원형을 복원하고 부흥하려는 노력은 황제의 스승 앨퀸의 몫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수도원과 교회를 건설하면서 소장되어야 하는 성경과 책자들을 필경사들이 직접 써서 책을 만들면서 겪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자(라틴)는 대소문자의 구분이 없었기에 빠른 필사를 위하여 로마자필기체 라는 흘림 서체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책과 문서는 서체가 모두 달라 통일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글을 모르는 샤를마뉴 황제와 같은 문맹자 처지에서 보면 같은 말이 모두 다르게 쓰여 있는 혼란이 지적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서체가 바로 카롤링 서체(Carolingian minuscule)입니다. 카롤링 서체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마 문자(라틴)가 쓰여진지 16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소문자가 개발된 것입니다. 이를 다시 헤아려보면 기원전 900년에 모음이 없던 페니키아 문자를 바탕으로 24자의 그리스 문자가 탄생한 후 기원전 700년경 오늘날 26자의 알파벳 원형인 로마 문자(라틴)로 발전하여 7세기 후반에 대소문자의 구분이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된 사실입니다.


이는 그리스 문자 탄생부터 로마제국시대를 거쳐 카롤링거왕조에 이르는 오랜 역사에서 마가복음 6장 38절과 마태복음15장 32절에 전하는 몇 개의 빵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5 천명을 먹였다는 신의 기적에서부터 자연의 진리를 구하고 우주와의 거리를 명확하게 계산한 수많은 학자가 역사를 걸어 왔지만 정작 글을 모르는 문맹자의 정신과 지혜에서 알파벳 대소문자의 구분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바꾼 문맹자의 정신과 지혜를 통하여 카롤링거 르네상스 정신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와 같은 카롤링 서체가 정립된 이후 카를마뉴 황제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중에도 휴식시간이면 틈틈이 글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카롤링 서체의 개발은 유럽역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표준화된 문자를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는 성경에서부터 수많은 고전문학이 복원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필사본으로 서적을 만드는 일은 큰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였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보존력이 떨어지는 파피루스에서 발전한 다양한 가축의 모조 피지(Vellum)와 어린 양이나 송아지 가죽을 가공한 양피지(parchment)는 가공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고급종이로 귀한 서적과 문서에 종이로 사용되었습니다.


샤를마뉴 황제는 스승 앨퀸의 조언에 따라 세력권의 주요 지역에 많은 수도원과 교회를 건립하여 도서관을 만들고 각 수도원에 전문 필사실을 설립하였습니다. 당시 성서를 한 권 제작하는데 전문 핅경사 한 사람이 일 년이 걸리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주요 도서관과 박물관에 현존하는 고대의 각종 전문서적은 이 시기에 제작된 것들입니다. 이렇게 카롤링거왕조 시대에 제작된 서적 문헌은 약 1만여 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카롤링 서체를 바탕으로 12세기에 검은 편지(Black letter)라는 고딕서체가 개발됩니다. 촘촘하게 Tm인 편지라는 뜻을 가진 고딕체 Black letter는 12세기 각 나라에 대학들이 세워지고 여러 행정업무에 필요한 서적과 문서에 적합한 서체로 개발된 것입니다. 이러한 서체를 바탕으로 1455년 구텐베르크에 의하여 ‘구텐베르크 성경’으로 불리는 성경책이 180부 인쇄되어 서양의 인쇄문화가 처음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금속활자는 1377년 직지심경(직지심체요절)을 구텐부르크보다 78년 먼저 세계 최초로 출판한 나라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정신 직지심경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되어 있습니다.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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