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울려퍼지는 ‘학살 자장가’ 의미

대한민국의 과오..“진정한 반성은 성숙된 국민지성 보여주는 창”

이계홍 주필 | 기사입력 2018/04/19 [09:12]

베트남 울려퍼지는 ‘학살 자장가’ 의미

대한민국의 과오..“진정한 반성은 성숙된 국민지성 보여주는 창”

이계홍 주필 | 입력 : 2018/04/19 [09:12]

2016년 12월24일 베트남 국영 TV에서 주최한 방송대상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학살사건을 다룬 <마지막 자장가>라는 작품이 다큐멘터리 부문 입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베트남 파병 청룡부대가 남베트남 꽝응아이성 빈 호아에서 1966년 9개 마을에서 소탕전을 벌이며 민간인 430명을 학살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아가야, 너는 이 말을 기억하거라. 너는 자라서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들을 폭탄 구덩이에 넣고 다 쏘아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이 말을 기억하거라” 빈호아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한국군의 주민학살을 그린 자장가의 한 대목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이 망각되어서는 안된다는 피해자의 기억법이다.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당한 피해상과 비슷한 기억법이다.


용감했지만 무리했던 전쟁수행…각종 만행 저지르기도
가해입장에서 반성해야…일본에 요구하는 것과 동일해

 

▲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은 여러 가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경의를 표한다’는 발언에 베트남 정부가 즉각 반발했다. 현지 언론은 자국 외교부의 입장을 전하며 베트남전 때 한국군이 약 9000명의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지만, 한국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피해 주민들 역시 그들이 당한 것을 잊지 말자면서 ‘학살 자장가’를 떠올리고 있다.

 

베트남 학살극


서울로 유학온 한 베트남 대학생은 “한국인은 베트남 전쟁 학살에 관하여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나의 할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유학공부 하는데 한국인 친구들 그 사실을 모릅니다. 나는 베트남에서 퐁니, 퐁넛, 빈 호아, 하 미에 대하여 한국군에 의해 일어난 학살을 배웠습니다. 한국은 정말 모릅니까? 한국인이 베트남인을 죽인 것에 대하여 부정하거나 모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하고 항변했다.


우리군의 베트남전 참전은 1964년 9월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73년 3월23일 철수할 때까지 8년6개월간 연인원 31만2853명(최대 5만 명)의 병력이 파견되었다. 이중 5099명의 사망자와 1만1232명의 부상자를 내고, 15만9132명의 고엽제 피해자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10여만 명이 나오는 등 전쟁후유증을 우리 역시 겪었다. 귀국 후 병사자들이 다수 발생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에서 피흘린 대가로 외화획득이라는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병장 54달러, 상병 45달러, 일병 41.1달러를 받았다. 그것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군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북한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공포스럽게 여긴 것도 우리 군의 베트남전 참전 때문이라는 말도 나왔다. 우리의 용맹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전쟁수행도 있었을 것이다.


1964년 8월2일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에 의해 공격을 받는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군사개입을 시작해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작극이란 사실이 30년후 공개된 비밀문서에서 드러났다. 공산화 도미노의 위협 때문에 월남이 무너지면 동남아시아가 공산화된다는 논리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베트남이 공산화되었어도 이 시간 현재 공산화 도미노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베트남이 미국의 맹방이 되었다. 미-베트남 수교 이래 미국은 중국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초기지로 베트남이 사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당시 미국의 오판(?)을 말해준다.


우리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유는 자유수호라는 명분이지만, 미국 내에서 광범위하게 일고 있던 반전여론을 무마하고, 동시에 미군 봉급의 1/3 수준인 한국군을 전선에 투입함으로써 전비 절감을 꾀하고자 한 계산에서였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 전범재판소에서조차 미국의 용병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반전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미국이 패배한 가운데 베트남은 통일되고, 우리는 1975년 남베트남(월남)에서 대사관을 철수했다. 그리고 17년의 세월이 지난 1992년 노태우 정부가 양국 연락대표부 설치를 합의하고, 뒤이어 상주 대사관을 설치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사과했고, 2001년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호찌민 묘소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사과의 또 다른 표현이다.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국가유공자법 개정 과정에서 베트남 참전 유공자들을 한국전쟁 유공자와 동일하게 대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세계평화 유지에 공헌한 월남전쟁유공자’라는 문구에 〈민족해방운동〉으로 자부하고 있던 베트남 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해 ‘월남전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면서 갈등을 일단락지었다.
 

▲ 지난 3월23일, 한-베트남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렸다. 이날 쩐 다이 꽝 주석(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왼쪽)을 반갑게 맞이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사과와 국격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은 우리의 4대 교역국이고 베트남으로서는 우리가 2대교역국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다. 2020년부터 1000억달러 교역 규모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다. 대미 수출 규모를 뛰어넘는 수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서 한국군의 잘못에 대해 우리가 먼저 진상조사와 사과와 보상을 제안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진상조사와 배상보다는 베트남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오늘날 이렇게 큰 경제교역 규모를 자랑한 바탕이 되었다.


베트남은 명실공히 중국의 뒤를 잇는 우리의 거대 경제시장이다. 초기 중국에 진출했던 것처럼 베트남 역시 값싼 노동력 때문에 우리의 많은 공장들이 진출했다. 20수년 전부터는 베트남의 신부들이 우리나라 총각들과 결혼하고 있다. 국제결혼 규모도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베트남의 유연성 때문이다. 전쟁을 했지만 상호 이익을 위해 그것을 뛰어넘는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이는 북한이 참고해야 할 내용이고, 국내의 냉전주의자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그들은 잊지 않는다. 서울로 유학 온 베트남 대학생이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도 자기부정을 하는 우리에게 망각하지 말 것이며, 자신 또한 잊지 않겠다는 역사의식의 표현이다. 상호이익을 위해 화해하고 협력하지만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비극과 참상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는 경고이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잊지 말자는 행사가 국내에서 수차례 불발돼왔다. 한국평화박물관이 2015년 4월 조계사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떤런(64), 응우옌티탄(55)을 초청하여 베트남전을 다룬 ‘하나의 전쟁, 두개의 기억’ 이재갑 사진전 행사를 열기로 했지만 월남전참전자회와 고엽제전우회의 반발로 전시회가 취소되었다. 일들은 태극기집회나 여타 극우집회에서도 나왔다. 주로 가해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반성하지 않고 반대하니 문제가 심각해진다. 우리가 옹졸해서는 역사청산이 어렵고, 진정한 협력을 가져오기 어렵다. 이제는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베트남전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풀지 못한다. 베트남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전 군인들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를 하는 순간, 참전 군인들도 가해자가 아닌 국가동원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라고 본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올까. 한국은 오랫동안 군사독재 시대였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았다. 특히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군인 출신이었고 독재자들이었다. 따라서 베트남전에서 불행했던 일을 철저히 숨겼기 때문에 많은 한국사람들조차 잊어버렸다.

 

부끄러운 과거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른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진실고백을 해야 한다. 진실은 만인에게 친하다. 따지고 보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들 역시 피해자다.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정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중이라고 하지만 어린아이나, 노인, 비무장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죽였던 일은 죄악이다. 감출수록 위선이 되고, 진정한 교류를 막는 장애물이다. 과오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성숙된 국민지성을 보여주는 창이며,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경제협력의 부수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본에도 요구하는 똑같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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