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진家 조양호 회장이 던진 이상한 승부수

‘오너 리스크’ 의문의 반전카드…전문경영인·준법위원회?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4/28 [14:46]

위기의 한진家 조양호 회장이 던진 이상한 승부수

‘오너 리스크’ 의문의 반전카드…전문경영인·준법위원회?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4/28 [14:46]

반백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최대의 운송·물류 기업이자 ‘대한항공’으로 상징되는 한진그룹이 위기에 빠졌다.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시작된 폭로가 어머니 이명희 이사장의 각종 갑질행위와 겹쳐 총수일가 전원에 대한 ‘도덕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경찰·국토교통부·관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연계 국가기관이 그룹 전반에 불법 행위를 조사하고 나서면서 ‘한진 그룹’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에 조양호 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태해결을 위한 묘한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전문경영인’과 ‘준법위원회’다.


조현민 물벼락 갑질로 촉발된 한진 ‘오너 리스크’
사면초가 조양호…장고 끝에 입장 발표하며 사과
전문경영인 세워 ‘2선 후퇴’…석태수 부회장 카드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준법위원회’로 경영 감시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출처=한진>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조양호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아 현민 두 자녀의 일탈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이들을 퇴진시키는 사과문을 뒤늦게 발표했지만, 여론은 오히려 더 나빠지면서 조회장 자신을 포함한 오너 일가 전체가 그룹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을 비롯한 국토교통부,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을 비롯해 한진그룹 전반에 대한 불법, 탈법을 조사해 압박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조 회장으로선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추가로 수습 카드를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각에선 경영 일선 퇴진을 거론하고 있지만 성급한 추측이란 반론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위기빠진 한진


재계에 따르면 조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은 최근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탈세, 밀수 의혹으로까지 확대됐다. 대한항공 직원들을 이용해 해외에서 개인 물품을 사들이고 세관을 속여 밀반입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여행자들이 출국 시 구매한 면세 물품과 외국 현지에서 구매한 물품 합산 가격이 600달러 이상을 초과할 경우 관세를 내야 하지만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이런 과정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비서실에서 해외 지점에 보낸 이메일 등 구체적인 증거가 인터넷 상에서 공개되고 있는 중이다. 해당 이메일에는 조양호 회장의 부인의 개인 물품을 구매하라는 지시가 담겼으며 물건을 해외지점장들이 직접 챙기고 보안에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는 주문이 담겼다.


이에 관세청은 대한항공의 조직적이고 상습적인 탈세와 밀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밀수와 관세포탈 혐의의 경우 유죄로 인정될 경우 관세법에 따라 관련된 이들은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직원을 머슴 취급하고 있다는 증언도 연이어 폭로됐다. 한 언론은 익명의 제보자가 등장해 2010년 이 이사장이 인천하얏트호텔에서 정원을 둘러볼 상황을 전했다. 제보자는 당시 비가와서 이 이사장은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직원은 우산을 쓰지도 못한 채 비를 맞고 있었는데 비를 맞았던 직원이 임산부였다고 밝혔다.


평소 운전기사, 가정부, 대한항공 직원 등에게 자주 욕설을 하면서 머슴 부리듯 행동하는 모습도 자주 있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는 중이다.


조 회장을 둘러싼 논란도 잠잠하지 않다. 인하대 교수들은 지난 4월25일 성명을 내고 대학 재단(정석인하학원)의 이사장인 조 회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총장의 민주적 선출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의혹으로 시작됐던 폭로들이 주를 이뤘지만 정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들이 속속 나오면서 의혹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같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은 현재 경찰, 국토교통부, 관세청, 공정위원회, 고용노동부의 전방위 조사로 확산된 상태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이 발생한 이후 폭로된 각종 의혹에 대해 주요 국가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경찰이다. 경찰은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으며 이후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행, 폭언 논란을 조사 중이다.


이후 국토교통부는 조현민 전 전무가 대한민국 국민만 가능한 항공사 등기임원 지위를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동안 지낸 부분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관세청이 조사에 나서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 모양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갑질 사례가 끊임없이 폭로되던 중 이들이 조직적으로 탈세를 해왔다는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되자 관세청이 조사에 나선 것이다. 기업에 대한 조사로 범위가 확대된 셈이다.


관세청은 현재 총수 일가가 연루된 대한항공의 조직적이고 상습적인 탈세와 밀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밀수와 관세포탈 혐의의 경우 유죄로 인정될 경우 관세법에 따라 관련된 이들은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갑질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한진 그룹의 일감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조사를 나선 것도 심상치 않다. 공정위는 기내에서 판매되는 면세품 수익이 부당하게 한진그룹 일가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전문경영인 부회장으로 지명된 석태수 사장 <사진출처=한진> 

 

심복 CEO 카드?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자 조양호 회장에 대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중이다. 조 회장은 앞서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갑질 논란을 일으킨 두 딸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조치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에 조양호 회장이 그룹 주력사인 대한항공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전문경영인 체제가 과연 제대로 작동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대한항공은 곧 추가 조직개편안을 마련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했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룹 총수인 조 회장과 장남 조원태 사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상황에서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경영에 집중할 환경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전문경영인으로 지목한 석태수 한진칼 사장은 조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어서 ‘눈속임’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 회장은 최근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서 이와 함께 사내 안팎의 요구에 부응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 석태수 사장을 보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총수 일가와 직원 간 거리감이 커 생겼던 소통 문제 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석 사장이 대한항공 부회장으로 올라와 직원 의견을 잘 수렴하며 경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석 사장이 대한항공 부회장이 되면 조원태 사장 윗선의 결재권자가 되는 것”이라며 “과거 영향력이 있던 조현아·조현민 두 사람도 경영에서 물러나, 석 사장 체제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 사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198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경영기획실 이사 및 실장, 미주지역본부장 등을 지낸 대표적 ‘기획통’이다. 


물류 및 택배업체 ㈜한진 대표(2008년 3월~2013년 12월), 한진해운 사장(2013년 12월~ 2017년 2월)을 역임했다. ‘육해공’ 물류를 다 거친, 한진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커리어다. 업계에서는 ‘조용한 승부사’란 별칭이 붙어있다. 대외 행사에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아 재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다. 이따금 ‘정중동 경영자’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석 사장을 “사원에서 시작해 그룹 전문경영인에 올라 직원에게 신뢰가 높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은 회사 안팎에서 모두 지켜보는 사안이어서 내실 있게 이행되도록 추진할 것”이라며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석 과장이 그룹 요직을 꿰차며 승승장구한 것은 그가 ‘한진가 사람’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조 회장과 조원태 사장이 회사에 남아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과연 석 사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신의 경영 입지를 다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조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주는 예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에 대해 한진이 본격적으로 지원에 나섰을 때다. 2014년 1월 조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진해운에) 형편없는 사람을 내보내고 능력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앉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한진해운 신임 사장에 오른 이가 바로 석 사장이다.  


앞서 2013년 8월 대한항공의 기업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한진칼이 출범했을 때에는 초대 대표를 맡았다. 한진이 2007년 3월 에쓰오일(S-Oil) 자사주 28.4%를 인수, 2대주주로 있을 당시에는 조 회장과 함께 전문경영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에쓰오일의 이사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조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석 사장은 한진의 후계자 조원태 사장과도 지근거리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2008년 3월 조 사장이 ㈜한진의 등기이사에 선임되며 핵심 계열사 이사진에 처음으로 합류했을 때 석 사장 역시 대표로 신규 선임됐다.


한진이 2008년 10월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를 인수해 사명을 바꾼 한진드림익스프레스 신임 대표가 됐을 때는 조원태 사장도 사내이사를 맡았다. 2013년 12월 석 사장이 한진해운으로 자리를 옮기며 공석이었던 한진칼 대표 자리를 조 사장이 물려받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전문경영인 도입 과정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등 많은 기업이 전문경영인을 뽑을 때 직위를 완전히 개방하고 명망 있는 인사를 추천받아 경영능력을 검증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조 회장이 ‘낙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석 사장이 한진에서 계속 성장한 인물이라는 걸 다 아는데 과연 한진 일가의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느냐”며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라는 말을 쓰려면 경영과 관련해 철저히 권한을 보장하는 가시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전문경영인 도입 취지에 맞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운영을 하고, 경영인에 대한 평가가 오너 일가에 대한 ‘충성도’가 아니라 실적 등 객관적인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이뤄지는지 추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 회장 일가가 대한항공의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인사권을 가진 상황에서 결국 전문경영인에게 얼마나 경영권을 보장할지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재벌 일가의 의지에 회사 경영을 맡기는 취약한 구조를 법제 정비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금융권의 경우 현재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조세포탈 등으로 처벌받은 경우 대주주 자격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오너 일가라도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람이라면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관련 법제를 개정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신설 사내감사기구인 준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애매한 준법위원회


이같은 전문경영인 체제와 함께 조양호 회장은 자율성을 보장받는 준법 총괄 기구로 지난 4월23일 준법위원회를 신설했다.


한진그룹은 이날 자료를 내고 준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외부인사인 목영준 전 헌재재판관을 위촉해 조속하게 준법위원회를 구성해 내부 감시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양호 회장은 전날인 4월22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자율성을 보장받는 준법위원회를 구성한다는 해법을 내놓은 바 있다.


목영준 초대 위원장은 1983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언론중재위원회 위원도 역임했고, 2013년부터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공익활동을 위한 독립위원회인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진그룹 준법위원회는 향후 각 계열사별 준법지원 조직의 구축을 돕게 된다. 또한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법 등 주요 사항에 대한 그룹 차원의 감사 업무를 비롯해 각종 위법사항 사전점검, 개선 방안 마련 및 조언, 감사 요청 기능 강화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목영준 위원장은 법조인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치우침 없는 판단을 내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면서 이번 위원장 위촉을 시작으로 독립적인 외부인사를 포함한 준법위원회 구성이 곧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준법위원회의 구성원과 구체적인 역할은 미정이지만 과거 위기경영 사례와 한진그룹의 상황을 감안하면 목영준 위원장을 중심으로 외부 인사로 구성될 준법위원회가 최고 협의체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 계열사 간 의견 조율과 투자의사 결정은 석태수 사장 겸 부회장이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은 조양회 회장 일가 중심의 경영 체제가 이어져 왔던 곳이라서 내부 인사로 비상경영위원회를 꾸리기가 어려운 곳”이라면서 “외부 인사로 구성될 준법위원회가 비상경영 기구 역할을 하고, 조 회장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부회장이된 석태수 사장이 계열사 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실무 총괄을 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조양호의 선택은?


이처럼 제도적 장치의 정비를 약속했지만 사주의 입김을 배제하고 전문경영인이 제 기능을 찾도록 하겠다는 것인지, 준법경영위원회는 왜 설치하는 지에 대한 각론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지점에서 대책 자체가 현 위기상황을 넘기기 위한 타개책의 일환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계속되는 자녀들의 일탈과 아내의 갑질 행태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조회장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며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퇴진을 포함한 수습책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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