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침대 사태 키운 ‘음이온’의 함정

유사과학의 역습…“맹신이 ‘사이비’ 키운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5/26 [12:18]

라돈침대 사태 키운 ‘음이온’의 함정

유사과학의 역습…“맹신이 ‘사이비’ 키운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5/26 [12:18]

지난 몇 년간 TV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 등 각종 언론지상에 쏟아져 나온 광고가 바로 ‘음이온’ 제품이다. 몸에 좋다는 음이온 성분이 나온다는 팔지, 목걸이를 비롯해 침대 같은 가구류, 심지어는 벽지같은 인테리어 도구들까지도 음이온을 집어넣어 판매해 왔다. 그런데 음이온이 펑펑 나온다는 제품에서 1급 발암물질이 나오면서, 소비자들의 공포는 커지고 있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나도모르게 한두 제품씩 보유하고 있는 ‘음이온’제품이 ‘방사능 덩어리’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우리사회의 만연했던 불분명한 ‘유사과학’에 피해를 보게된 꼴이다.


1급 발암물질 ‘라돈’ 검출되며 ‘음이온’ 공포빠진 소비자
유사과학의 상품화 논란…‘몸에 좋다’는 허위광고 위험성
근거없는 효능…생활제품 곳곳 음이온 제품 18만개 달해
관리 손 놓은 ‘원자력안전위’ SNS 통한 안전홍보만 열중

 

▲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로 인해 ‘음이온’제품의 대한 소비자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사진출처=SBS 뉴스 캡처>

 

1급 발암물질 ‘라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대진침대 조사 결과가 나온 뒤 라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라돈이 검출된 원인인 모나자이트가 침대 외에 일부 건강 팔찌·목걸이와 벽지 등 ‘음이온’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생활용품에 쓰인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국제암연구센터 지정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은 우라늄(U-238)이 붕괴할 때 생성된다. 폐암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원안위는 지난 5월15일 대진침대 매트리스에 대해 라돈 등으로 인한 연간 피폭선량을 평가한 결과 기준치의 최고 9.3배에 이른다는 2차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음이온의 역습


이번에 문제가 된 ‘모나자이트’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희토류의 일종이다. 모나자이트 안에는 미량의 우라늄과 토륨이 들어 있는데, 함량이 높을 경우 라돈이 대량 발생한다. 모나자이트를 가루 형태로 만든 것을 흔히 시장에서 ‘음이온 파우더’라 부른다. 음이온 파우더를 도포한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된 것.


문제는 모나자이트로 만든 음이온 파우더가 그동안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대진침대에 대한 추가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대진침대 매트리스 제조사가 2013년부터 한 업체에서 구입한 모나자이트가 2960㎏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업체 한군데에서만 66개 사업체에 모나자이트를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음이온 파우더는 최근 인기가 높은 일부 건강 팔찌와 목걸이는 물론이고 벽지에도 사용된다. 이미 2007년에 일부 돌침대에서, 2011년엔 벽지에서 방사능이 검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제품의 공통점은 ‘음이온 방출’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특허청에서 음이온 배출 기능으로 특허를 내준 제품이 18만여개에 이른다. 지금도 각 온라인 쇼핑몰에서 ‘음이온’이나 ‘희토류’를 검색하면 다양한 건강 기능 제품들이 쏟아진다. 이들 가운데 모나자이트를 쓴 제품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대해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팬티 생리대 소금 화장품 마스크 모자 팔찌 입욕제 등 다양한 음이온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7년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 실태조사’에서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이 방사능 농도 등을 측정한 생활밀착형 음이온 제품만 102개에 달할 정도다. 품목은 눈에 바르는 아이크림부터 시작해 안대 목걸이 깔창 마스크 조끼 비누 침대 레깅스 방석 방향제 페인트 벽지 장판재 등 매우 다양하다. 이들은 모두 음이온 발생을 위해 모나자이트와 같은 천연방사성핵종(자연상태에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을 사용했다.


원자력안전재단은 해당 보고서에서 “102개 음이온 제품의 연간 피폭량 모두 기준치(연간 1mSvㆍ밀리시버트)에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은 몸 안에 한 번 유입되면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계속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연간 피폭선량이 기준치 이하라고 반드시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이들 제품에 함유된 천연방사성핵종인 토륨은 내뿜는 방사선량이 절반이 되는 반감기가 140억년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음이온이 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없으며,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음이온 제품을 수년간 착용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천연방사성핵종 등을 쓴 음이온 제품은 폐기하라”고 권고할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선 혈액순환 개선, 노화 방지 등의 효과가 있다며 널리 판매되고 있다. 음이온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전기로 공기를 분해하거나 천연방사성핵종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뉘는데, 생활제품에 쓰이는 천연방사성핵종 이용 방식이 전체 음이온 제품의 90%를 차지한다.

 

▲ ‘음이온 파우더’는 방사능을 내뿜는 희토류, ‘모나자이트’였다. <사진출처=SBS 뉴스 캡처>

 

근거 없는 효능들


이처럼 그간 국내외 과학기술계를 비롯해 의료계에서는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주장은 유사과학, 즉 사이비과학이라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하지만 일부 업체들의 과대광고가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사실처럼 둔갑해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유사과학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는 실정이다.


음이온은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분자가 음의 전기를 띠고 있는 전자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에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나 분자가 특정한 상태에서 음이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음이온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전기를 흘려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분해해 음이온을 만드는 방식이다. 음이온이 나온다는 공기청정기는 대부분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물이 고체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음이온이 발생하기도 한다. 폭포수 인근 공기에서 음이온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다. 방사선을 내뿜는 광물을 이용해 음이온을 만들기도 한다. 대진침대가 침대 제작에 사용한 방식이다. 광물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공기 중에 있는 물 분자를 쪼개고, 이때 음이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처럼 자연적으로,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음이온은 1990년대 말 일본에서 갑자기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제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과학자들이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지만 도시바를 비롯해 히타치와 같은 일본 대기업까지 나서서 음이온 선풍기, 음이온 제습기 등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음이온 가전제품 인기는 상당했다. 2000년대 초반 음이온 제품은 동해를 건너 한국에 상륙했다.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폭포나 숲속, 나무로 만든 집 등 자연 친화적인 곳의 공기에서 음이온 개수가 더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들이다.


연구에 따르면 숲속이나 폭포에서는 1㎤ 공간 안에 수천~수만 개의 음이온이 존재한다. 도심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수치다. 이를 근거로 일부 업체들은 사람들이 숲속에 들어가면 시원한 기분을 느끼는 게 음이온이 많은 공기를 마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이온은 자연의 비타민’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1㎤ 공간에 들어 있는 공기 분자는 무려 3000경개에 달한다. 수천~수만 개의 음이온이 많아 보이지만 이 같은 공기 분자 숫자와 비교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극물인 VX도 극미량일 경우에는 전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천 개의 음이온 또한 눈에 띌 만한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게 과학계 분석이다.


음이온이 알레르기를 치료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는 주장 또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이온이 노화를 방지하고 긴장감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려면 체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음이온이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주장도 허구에 가깝다. 또 공기 중에 존재하는 음이온은 불안정한 만큼 곧바로 전기적 성격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음이온이 건강에 좋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준치 이상 오존에 노출되면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름철 대기 중 오존 농도가 높아질 때 ‘오존 주의보’를 발령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음이온이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적일 수는 있다. 정전기를 띠고 있는 만큼 대기 중 떠다니는 먼지에 달라붙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유해물질과 결합한 음이온이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오면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공포는 라돈측정기 품절 소동으로 이어졌다. 한 라돈측정기 생산 업체는 “주문량 증가로 배송이 밀리고 있다”고 공지를 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일단 안전성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 음이온 제품 구매를 삼가라고 조언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천연방사성핵종 70여 가지를 생활제품 제조에 쓸 수 없도록 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대진침대 사태를 계기로 범정부 대책기구를 마련, 음이온 제품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 ‘라돈 방사선 침대’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연대>     © 사건의내막

 

관계당국의 방관


충격적인 사실은 ‘음이온’이라는 이름하에 모나자이트를 사용한 제품이 건강 제품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방사능 방출량도 많다는 사실은 공공 감춰졌다는 점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계기관들은 이 같은 실태를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관리에는 손을 놓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2년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 시행에 따라 원안위는 ‘천연방사성 원료물질 취급 사업자와 제품 제조업자’를 관리하겠다고 했다. 2013년 천연방사성물질 취급자 등록제도를 실시하면서 ‘모나자이트 등 취급업체’를 관리 대상에 넣기도 했다. 그러나 원안위는 대진침대 라돈 사태에서 보듯 수입된 모나자이트가 유통업체와 침대 제조업체를 거쳐 소비자의 안방까지 들어갈 때까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모나자이트 관리 대신 정부가 선택한 것은 홍보였다. 2012년 제정된 안전관리법에 따라 원안위는 5년마다 ‘생활주변 방사선 방호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세부 계획을 연도별 ‘시행계획’으로 점검·보완한다. 2013년 1월 수립된 ‘2013~2017년 1차 종합계획’의 중점과제 1번은 ‘생활주변 방사선에 대한 국민 이해증진과 소통 확대’였다. “생활주변 방사선에 대한 대국민 이해증진과 소통 강화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확산된 막연한 불안감 해소”에 방점을 찍었다.


종합계획에서 ‘대국민 홍보’가 선두에 오면서 2013~2017년 연도별 세부계획에서도 늘 ‘추진전략 1번’은 SNS 관리였다. ‘홈페이지·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보도자료·인포그래픽·브로셔·만화·동영상 등 안전관리 정보 제공(2013)’ ‘홈페이지·SNS 등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 정보 제공(2016)’ 등이 해마다 시행계획에서 언급됐고 실행에 옮겨졌다.


반면 지난해 생활주변 방사선 시행계획에 담겼던 “취급자 등록 심사 프로세스 진행 및 수출입 신고, 유통현황 보고 등의 입체적 분석을 통해 국내 천연방사성물질 유통 현황 파악” 계획은 공염불이 됐다. 양순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장은 “방사성물질 유통·공급업체와 제품 제작업체의 무책임한 관리, 유통경로를 파악 못한 정부의 대응이 한데 섞여 생긴 사태”라고 평가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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