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박근혜 청와대 ‘재판 거래’ 충격 진상

‘정권 눈치보기 판결’의 이유…박근혜와 ‘기브 앤 테이크’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6/01 [13:31]

양승태 대법원-박근혜 청와대 ‘재판 거래’ 충격 진상

‘정권 눈치보기 판결’의 이유…박근혜와 ‘기브 앤 테이크’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6/01 [13:31]

박근혜 정부시절 대법원에서는 기존의 판결 양상과 다른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노조, 인권 관련한 각종 상고심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에 당시 언론에서는 ‘정권 눈치보기’ 정도의 의심만 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박근혜 파면이후 ‘적폐청산’ 분위기가 커지면서, 그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 판결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대법원의 수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법 흥정’을 시도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끊임없이 ‘재판 독립’을 강조하던 ‘법의 심판자, 사법부’도 결국 정치행위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적폐청산 소용돌이가 사법부를 감싸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 위해 ‘판사사찰·재판개입’ 불사한 양승태
동요하는 판사들…검찰수사 움직임에 엇갈린 반응도 커
법률상 검찰이 수사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장담 어려워
재판거래 파문에 흔들리는 법원…사법불신 기류 확산돼

 

▲ 양승태 대법원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을 사찰하고 재판까지 개입하려 한 것은 당시 사법부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대법원의 사법흥정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3차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지난 5월25일 조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사찰이나 재판개입 등을 시도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특별조사단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양 대법원장 임기 내에 달성할 최고 핵심과제로 201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에서 목표 달성에만 몰두해 수단·방법의 적절성에는 눈감아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국회 등으로부터 지원 받을 필요가 있었던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에 비판적인 판사를 감시하는 등 ‘집안 단속’을 하는 한편 청와대 등과 특정 재판을 놓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흥정’을 벌였다는 취지다.


특별조사단은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는 문건을 제시했다. 2015년 3월 작성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청와대 협조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접촉·설득 방안이 적혀 있다.


문건에는 ‘대상자별로 성향과 관심사를 파악해 개인별 맞춤형 설득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당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접촉·설득하기 위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검토 내용도 문건에서 확인된다.


2015년 7월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 문건에는 더욱 노골적인 구상이 담겨 있다. 이 문건에는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과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등 여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청와대에 대한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향후 예정된 주요 정치인 재판도 청와대가 관심을 가질 것이므로 이를 상고법원 도입 설득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상고법원에 대한 집착은 법관 사찰로 이어졌다고 특별조사단은 분석했다. 실제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한 문건이 2015년 7월부터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인사모 회원들이 학회활동과는 무관한 사법행정 주제를 논의하고 대법관 인선에 개입하려 한다고 보고, 자발적 해산을 유도하거나 법원 운영위원회 결의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또 인사모 핵심회원에게 각종 선발성 인사나 해외연수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도 검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방안이 실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상고법원에 반대한 판사 개인의 동향도 감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8월 차성안 당시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41·사법연수원 35기)가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상고법원 도입을 비판하는 글을 계속해 올리자 법원행정처가 본격적인 동향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문건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차 판사의 동향을 살핀 문건에는 차 판사의 성격과 재판 준비 태도, 가정사 등이 파악됐을 뿐만 아니라 차 판사가 다수의 판사와 주고받은 이메일까지 기재돼 있다. 차 판사와 친한 선후배 판사들까지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기재됐다.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가 2009년 4월 법관으로 임관한 이후 재산변동 내용까지도 파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별조사단은 상고법원 도입과 관련한 법원행정처의 판사사찰과 재판개입 정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4월24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관련 질문을 했지만, 양 대법원장이 거부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후 이달 5월24일에도 재차 질문했지만, 양 대법원장이 해외로 출국한 관계로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양 대법원장을 상대로 다시 조사하거나, 검찰 고발을 통해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충격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거래’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김상문 기자>

 

동요하는 판사들


양승태 대법원 하에서 ‘재판 독립’이 가장 중요한 사법부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를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자 일선 판사들의 동요가 커지고 있다. 사법계 대다수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규탄하고 있으나, 일선 판사들은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두고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상당수 판사는 이번 조사결과에 공감을 표하면서 부적절한 재판거래 의혹에 가담한 관련자들에게 강도 높은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파문이 엄중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법원 내부의 자정작용을 통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도 했다.


반면 검찰 수사나 특검, 국정조사 등을 통해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법관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미 3차례나 실시된 조사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등 ‘셀프 조사’의 한계를 드러낸 만큼 법원 외부에서 사태 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반대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무리하게 과거 청산에 나선 것이 오히려 사법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문건 내용이 확대해석돼 불신을 부추겨서는 안된다며 신중론을 펴는 판사들도 있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법치행위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주문하는 글을 올렸다.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법원행정처 요원이 남의 재판과 판결을 갖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재판과 판결의 의미가 저하되거나 쉽사리 무시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법원 내에서도 법관들의 의견이 갈라지자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스스로 사법행정을 수행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며 사법행정 권한을 법원 외부에 맡기는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법원 외부에 사법행정을 맡기는 방안으로는 국회 개헌특위가 논의 중인 사법평의회 도입방안이 거론된다.


사법평의회는 대법원장 대신 법관 인사와 법원 예산, 사법행정 사무 전반을 결정하는 기구다. 일부 유럽국가들이 시행하는 제도로 사법부는 오로지 재판업무에만 집중하고, 사법행정 권한은 정부와 국회, 사법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사법평의회에 맡겨 재판업무와 사법행정을 구분하는 제도다.


그동안 법원은 사법평의회 방안에 대해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제도로 재판에 외부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빌미만 제공한다’며 반대해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입장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검찰수사 초읽기


이처럼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 재판 거래 의혹을 두고 강제 수사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대법원장이 직접 형사고발에 나서긴 어렵다는 목소리가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이미 관련 고발이 잇따른 상황인 만큼, 대법원장이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직접 밝히는 수준에서 검찰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정부와 협상전략을 모색한 문건이 공개된 이후 일선 법원에서는 “덮고 넘어갈 수준은 지났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운을 뗀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분위기가 강하다면서 “일단 판사들의 사기가 떨어졌고, 수사 필요성을 생각하는 판사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법원행정처의 사찰 피해자이기도 한 차성안 판사는 대법원이 나서지 않겠다면 개인 자격으로 형사고발을 하겠다며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대법원 차원에서 양 전 원장을 형사고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기류 역시 강하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침해받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비롯해, 판사 자신이 선고할 사건을 직접 수사의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앞서 조사단은 “수사기관에 유죄심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직접 수사의뢰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비친 바 있다.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가 누굴 고발하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으로선 검찰에서 수사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관련 문건 등 자료를 넘겨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일종의 '차선책'으로 제기된다. 조사단에선 이미 전국법관대표회의 참석 판사들에게 문건을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수사를 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수사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검찰은 일단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제 수사 착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실제 수사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 전 원장 등이 받는 직권남용 혐의가 형사처벌 구성요건이 될 수 있는지가 문제다.


직권남용의 경우 미수범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실제 어떤 불이익이 있었는지를 밝혀내야 하는데,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앞서 조사단은 자체 조사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판사들이 인사상 불이익은 받지 않았다고 결론 내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검찰 최고위 관계자는 “법원 직무와 관련된 것이므로 일단 법원 내부 해결이 우선이다. 만약 대법원장이 고발을 하게 되면 1심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일단 공을 법원으로 돌렸다.


이번 ‘사법거래’ 의혹 등과 관련해 현재까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10여 곳에서 양 전 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최기상 의장(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역시 전날 반헌법적 행위에 해당한다며 엄정한 조처를 촉구했다.


검찰은 이미 일부 고발인 조사를 마쳤으며, 조사단의 3차 조사 결과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혐의입증까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고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법부를 상대하는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양승태 대법원 하에서 행해진 재판거래에 피해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KTX 승무원들이 지난 5월29일 대법원 대법정을 기습 점거해 항의시위를 벌인 모습.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사법 불신기류


이처럼 양승태 사법부가 특정 재판을 협상 수단으로 삼아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파문을 불러오면서 법원 안팎에서 사법불신 기류가 퍼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던 ‘재판거래’ 의혹 문건에 등장하는 사건 당사자들은 물론 변호사 단체와 법원 내부구성원들이 잇따라 재판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반발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양승태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특정 재판을 활용해 박근혜 정부를 설득하려 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당 재판의 당사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상고법원이라는 숙원사업을 관철하려고 사법부가 재판을 협상 카드로 삼아 청와대와 흥정을 시도한 문건이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로 드러난 이상, 재판 결과를 누가 승복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다.


법원행정처 문건에 등장하는 ‘KTX 승무원 재판’과 관련해 KTX 해고 승무원 10여명은 지난 5월29일 대법원 대법정을 기습 점거해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그리고 청와대와 거래한 자들은 사법정의를 쓰레기통에 내던졌다”며 재판 결과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대법원이 지난 5월30일 오후 2시 해고 승무원 대표들과 면담을 하기로 하면서 시위는 정리됐지만, 다른 재판 관련자들도 언제든지 대법원을 상대로 판결 불복에 나설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에 언급된 ‘통합진보당 재판’과 ‘전교조 시국선언 재판’ 등 당사자들도 반발하고 있다.


옛 통합진보당 관계자들과 전교조 회원 등 10개 단체는 지난 5월30일 오후 1시 대법원 동문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이번 사태 연루자들에 대한 공동고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사법농단 세력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정의와 상식에 기초한 사법부를 세워야 한다”며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농단 세력을 모두 고발 또는 수사 의뢰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도 오전 10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penfree1@hanmail.net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