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예방의 날 특집] 학대의 늪 빠져버린 노인들

‘가족·시설·자가’…노년의 안식은 없나?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6/14 [09:53]

[노인학대예방의 날 특집] 학대의 늪 빠져버린 노인들

‘가족·시설·자가’…노년의 안식은 없나?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6/14 [09:53]

급격하게 ‘고령화’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갖가지 노인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그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노인 학대’ 문제다. 가족들이 저지르는 인면수심의 학대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노인요양시설 내에서의 학대, 심지어는 노인 스스로 보호받기를 포기하는 ‘자가 학대’까지 각종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오는 6월15일 ‘노인학대예방의 날’을 맞이해 각종 노인학대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했다.


정서적·신체적 학대 등 종류부터 다양한 노인학대
가장 많은 가족의 학대…신고 맘편히 못하는 부모
5000곳 넘은 노인요양시설…현대판 고려장 문제도
보호받기 거부하는 노인들 증가세…자가학대 심각

 

▲ 가족들이 노인학대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우리 사회의 현실은 늙은 부모 처지에서 녹록하지 않다. 낳아서 길러준 은혜에 보답받기는커녕 자식으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노인학대 추이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2005년부터 해마다 내놓는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의 ‘2016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해 전국 29개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에 들어온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2009건이었다.


이 가운데 사법기관 등에서 노인학대 사례로 판정받은 건수는 35.6%인 4280건이었다. 2015년과 비교해 12.1% 증가한 수치였다.


2016년 노인학대를 유형별로 분류하면 정서적 학대가 2730건(40.1%)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학대(31.3%), 방임(11.4%) 순이었다.


2016년 전체 학대 건수 중에서 응급사례는 159건(3.7%), 비응급 사례는 2472건(57.8%), 잠재적 사례는 1649건(38.5%)이었다.


응급사례의 경우 신체적 학대 비율이 높았고, 비응급 사례는 정서적 학대 유형이, 잠재적 사례는 자기방임 유형이 많았다.


재학대 건수는 249건(5.8%)으로 2010∼2011년 9%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해 점차 감소세를 보였다.


노인학대 피해자를 성별로 보면, 남성 1187명(27.7%), 여성 393명(72.3%)으로 여성노인이 남성노인보다 훨씬 많았다.


연령별로 학대피해노인 분포를 보면, 60대 802명(18.8%), 70대 1830명(42.8%), 80대 1380명(32.3%) 등이었다. 전체 학대피해노인 중에서 치매가 의심되거나 진단을 받은 경우는 1114명(26.0%)에 달했다.


특히 전체 학대행위자, 즉 가해자는 4천638명이다. 학대피해노인은 1명이지만 학대행위자는 2명 이상일 수 있기에 학대피해 노인 수와 학대행위자 수 간에 차이가 있다. 가해자 성별로는 남성 3113명(67.1%), 여성 1524명(32.9%)이었다.


특히 가해자 10명 중 4명은 아들이었다. 2016년 학대행위자 가운데 아들이 1729명(37.3%)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배우자 952명(20.5%), 딸 475명(10.2%), 노인복지시설 등 종사자 392명(8.5%) 순이었다.


아들, 딸, 배우자, 며느리, 사위, 손자녀, 친척 등 친족이 학대 행위자인 경우가 3502명(75.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학대 행위자가 본인인 경우는 522명(11.3%)으로 2012년 394명과 견줘서 약 32.5% 증가했다. 가해자가 배우자인 사례는 전년보다 46.0% 급증했다.


또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노(老)-노(老) 학대’도 급격히 늘었다. 2016년 전체 노인학대 중 60세 이상인 고령자가 고령자를 학대하는 노-노 학대 사례는 2026건(47.3%)으로 2015년 대비 16.9% 늘었고, 2012년에 비해서는 54.2% 증가했다.


노-노 학대 가해자는 배우자(45.7%), 본인(25.8%), 아들(10.7%) 순이었다. 인구 고령화와 노인 부부 가구 증가에 따라 배우자 학대와 자기 방임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학대 발생장소를 보면, 88.8%는 가정에서 벌어졌고, 요양원 등 생활시설(5.6%), 공공장소(2.2%), 병원(0.6%)에서도 발생 사례가 나왔다.


전체 노인학대 건수는 2014년 3532건, 2015년 3818건, 2016년 4280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지만, 요양원 등 생활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 사례는 그 증가 폭이 비교적 작은 편이다.

 

▲ 고령화 사회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노인요양시설의 학대문제도 심각하다.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요양시설 문제


하지만 요양시설에서의 학대가 증가폭이 작다고 해서 심각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특히, 부양가족들이 사실상 노인들을 요양시설에 방치하면서 각종 문제들이 커지는 상황이다.


근본적 문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부양할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한국은 전 세계 국가들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725만7288명이며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었다.


UN(국제연합)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2008년 506만9273명으로 전체 인구의 10.2% 정도였으나 2014년 652만607명(12.7%), 지난해 699만5652명(13.5%)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2025년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면 지난해 출산율은 1.05명에 불과하며 기성세대의 노후준비 부족과 젊은 세대의 취업난 등으로 가정에서 노인들이 설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서 노인병원, 노인요양원 등 노인요양시설에 노인들이 몰리면서 노인요양시설이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요양병원은 전국에 1538곳, 입원 환자만 연간 33만여 명에 이른다. 2008년 690개였던 전국의 요양병원은 현재 1538개로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다. 그런데 요양병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각종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2008년 전국 1700곳이었던 노인요양원은 2017년 말 기준 5083곳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이들 요양시설이 치료나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 갈 곳 없는 노인이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하는 요양원이나 숙소의 개념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노인병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환자가 33%나 됐고 의료 처치가 불필요한 이른바 ‘사회적 입원’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요양병원에 노인을 입원시킨 뒤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두고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몇 달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자식도 있었다.


지난 5월8일 어버이날에도 황금연휴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당료와 합병증으로 9개월째 입원 중인 A(86) 노인은 “당료와 합병증으로 수차례 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며 “내가 자식들에게 ‘요양병원에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활동도 없이 요즘은 누워서 TV로 시간을 보낸다. 병원생활에 지친다”고 토로했다.


요양병원 생활이 5년째라는 B(89)노인도 “하루하루 누워서 무료하게 보낸다”며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눈물지었다. 처음에 자주 오겠다던 가족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단다. 버려진 노인들에게 요양시설은 ‘감옥’이었고 ‘강제 수용소’였다. 현실이 이렇기에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요양병원은 설립이나 운영 기준도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의사 1명만 있으면 개설할 수 있고 의사 1명당 환자 수는 보통 35∼60명,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도 4.5∼9명에 이른다. 결국,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우후죽순으로 생긴 요양원 중에는 함량 미달 시설을 갖춘 곳이 적지 않았으며 시설별로 이용자와 근무 인원 등에서 양극화가 심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균형은 노인 학대나 부실 관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한 요양원에선 요양보호사가 70대 치매 환자를 때려 요양원이 6개월간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요양원과 요양병원 788곳을 점검한 결과 19곳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보관하거나 청소용 세제를 식품과 함께 보관하는 등 식품위생법을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의료계 등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에 일당정액제의 수가 체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는 환자를 등급별로 구분해 하루 일정액의 치료비(약 4만9000∼8만2000원) 중 60∼95%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한다. 병원에선 세부적인 진료 명세를 청구할 필요가 없다.


한 요양병원 원장은 “이러한 수가 체계에서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는 게 병원 입장에선 가장 수익을 많이 남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08년 7월부터 시행한 ‘노인 장기 요양 보험’도 노인요양시설 급증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 효도 상품’으로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원’은 특수를 누렸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도 요양시설 난립을 부추겼다.


한편 건강보험관리공단 관계자는 “현재의 평가 기준은 요양원의 시설과 서비스를 1~5등급으로 나눠 평가한 뒤 1·2등급은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의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며 “병원의 치료 서비스와 안전시설의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도 “해마다 전국의 요양병원을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며 “2010년도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를 해보니 병원 전반에 걸쳐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시설에서 개선 효과가 가장 컸으나 기관 간의 수준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 노인들의 고독사는 각종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지만, ‘자가 학대’ 경우도 많다. <사진출처=KBS 영상 캡처>

 

심각한 자기학대


이처럼 가족·지인들을 통한 학대 문제나, 노인 요양시설에서의 ‘고려장’ 등의 수많은 노인학대 사례들이 있지만, ‘스스로를 학대’하는 노인들도 늘어난다는 게 현대 사회의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일단 나홀로 사는 노인들은 급격하게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24일 발표한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2명이 홀로사는 가구다.


문제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끼니와 질병 치료를 거르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자기 학대 노인이 증가하는 만큼 이에 맞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인학대로 분류되는 자기방임은 말 그대로 의식주나 의료 처치 등 최소한의 자기보호를 하지 않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홀몸노인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016년 학대 피해노인 단독 가구는 1140건을 기록했으며, 학대유형은 자기 방임(26.8%)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학대발생기간은 1년 이상 5년 미만(26.4%)에서 5년 이상(32.5%) 그룹이 가장 많았다.


상당수는 경제적, 환경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체 학대 피해노인 노인 단독 가구 1140명 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372명(32.6%)이었으며, 주거환경상태가 불량한 경우는 349건 (30.6%)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자기 방임 노인들이 고독사와 자살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친인척, 친구, 이웃과 왕래를 끊고 자신을 방치하다 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지난 4월 광주 동구 한 원룸에서 63세 A씨가 경찰에 발견됐다. 숨진 지 두 달 보름여 만이었다. 현장에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약봉지가 5개가량 뜯겨 있었고, 소주병과 함께 불이 붙지 않은 번개탄도 있었다. A씨 방에서 발견된 일기장에는 '정말로 사랑했는데, 헤어지게 됐다'라는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삶이 피폐하고 황폐하다'는 삶의 고단함이 적혀있었다.


고독사는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013년 464명, 2014년 538명, 2015년 661명, 2016년 746명, 지난해 835명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4년간 증가율은 80%에 달했다.


자기방임의 극단적 결말은 자살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충북 옥천의 야산에서 청각장애인 노부부가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2년 전 아들이 세상을 뜨자 이웃과 왕래를 단절하고 은둔생활을 해왔다. 경찰은 아들을 여읜 부부가 사무치는 그리움에 괴로워하던 중 자신들의 건강까지 악화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미국사회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자기방임 행위를 한 노인은 그렇지 않았던 노인에 비해 연간 사망률이 6배 높았고, 응급실을 더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문가는 설명했다.

 

도움 정책 필요


문제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노인들 대부분이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자기방임 노인이 사회복지사가 연계, 제공하려는 서비스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 개입이 어렵다”며 “여러 번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건강과 경제적 문제로 외출을 삼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노인전문기관 등과 지자체가 연계해 이런 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돌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기방임 노인을 돕기 위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는 위험에 방치된 노인이 건강진단을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제도적 방안이 없고, 건강진단비용에 대한 지원제도 역시 미흡하다.


한국노인복지학회에 지난 3월 게재된 ‘자기방임은 방임 및 타학대유형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논문에 따르면 자기방임노인의 약 45%는 정신장애나 질환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약 10%는 알코올 남용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취약한 정신건강상태가 자기방임의 원인일 가능성이 큰 만큼 건강진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국보건사회 연구원 관계자는 “호주는 자기방임노인이 집 외부에 쓰레기를 모으는 등의 행위를 하면 주거실태조사를 강제할 수 있고, 지역보건사업의 목적으로 건강검진을 의무화한다”며 “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해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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