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현정은의 ‘현대家’, 대북사업 최전선 선 내막

정주영이 열어제낀 남북경협의 문…‘소떼의 꿈 잇는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6/18 [08:48]

정몽구·현정은의 ‘현대家’, 대북사업 최전선 선 내막

정주영이 열어제낀 남북경협의 문…‘소떼의 꿈 잇는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6/18 [08:48]

6·12 북·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남북경제협력 사업이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가운데 현대가의 대표 그룹인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 주요계열사가 초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제재가 풀릴 경우 남북 경협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대북사업을 담당했던 현대그룹 산하의 ‘현대아산’을 시작으로  남북 간 철도 연결과 현대화 사업, 인프라 구축을 담당할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현대로템·현대제철·현대건설’ 등 국내 기업은 대북 사업이 어느 정도 속도와 규모로 결정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상황 좋지 않았던 현대그룹…‘현대아산’ 기사회생?
‘SOC 사업권’까지 가지고 있어…대북산업 최선봉장 서
철도 인프라 산업을 사실상 독점 중인 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 ‘현대’ 상징성 원하는 정몽구…적극적으로 나서

 

▲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대북사업을 담당하는 ‘현대아산’등을 통해 남북사업 최전선에 서 있다. <사진제공=현대그룹>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6월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 정상의 ‘성공 평가’ 속에 마무리된 데 대해 ‘남북경협 선도기업’을 자처하는 현대家의 속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은 경협 본격화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1988년 7·7 선언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경협은 1990년 중반 남북 경협 활성화 조치로 여건이 조성된 이후 본격화됐다. 대표적인 남북 경협 사업은 1998년 금강산 관광 개시와 2003년 개성공단 가동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8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로 인한 관광 중단, 2013년 개성공단 중단·재개 등을 거치면서 경협 회의론이 제기된 데 이어 2016년 2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업계에선 비록 정치·군사적인 요인으로 지난 30년간 남북 경협 사업이 부침을 겪긴 했지만, 양질의 성장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실제 남북 간 교역 규모는 1989년 1900만달러 수준에서 개성공단 가동이 멈추기 전인 2015년 27억1400만달러 수준으로 140배가량 증가한 바 있다.

 

현대家의 사정


2년여 간의 공백을 깨고 남북 경협이 재개될 경우 핵심 남북 경협 사업권을 보유한 현대그룹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남북 간 철도 연결과 도로 확장 등 인프라 구축을 담당할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현대로템과 현대제철, 현대건설 등 계열사의 중요도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실제로 남북 경협이 구체화될 경우 현대아산뿐아니라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아산이 경협의 선봉인 것은 맞지만, 경협의 주된 내용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인데, 현대차그룹이 현대로템(철도 차량), 현대제철(철도 레일),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토목과 발전설비) 등 SOC 관련 계열사를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에 따르면 옛 현대그룹은 지난 2000년 북한의 SOC 사업권을 따냈다. 그러나 그 이후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주요 계열사를 팔면서 현재 SOC사업을 이끌 만한 계열사는 없는 상태다. 반면 정몽구 회장은 2011년 현정은 회장을 제치고 여러 논란 끝에 현대건설을 인수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주목 받았던 곳은 단연 현대아산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운영 등 남북 경협 사업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현대아산도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며 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아산이 사업을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1년간 사업이 중단됐던 탓이다. 실제 현대아산의 대북 사업과 관련한 조직 규모는 크게 축소된 상황이다. 업계와 정부 당국 등에 따르면 현대아산의 직원 수는 고(故)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됐던 2008년 1084명에서 현재 157명으로 무려 85.5%나 줄어들었다.


이에 조직도 대폭 축소돼 ‘3실(기획실, 계약지원실, 사업개발실)-4본부(경영지원본부, 관광사업본부, 경협사업본부, 건설본부)-2사업소(금강산사업소,개성사업소)’ 체제에서 지금은 관광경협본부와 건설사업본부, 경영지원본부 등 3개 본부로만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바뀐 북한 내부 사정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금강산 현지의 시설이나 인력 수급 여건 등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강산 현지 시설 점검이 이뤄진 것은 2015년 12월로 이후 상황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유효한 상황에서 현대 측이 단독으로 이를 진행할 수 없다. 또한 북한은 2011년 6월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현대아산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제정한 바 있어 이와 관련한 추후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아산이 기대하고 있는 7개 SOC 사업과 관련해서도 지난 10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무려 2000억 원에 달하고 있는 현대아산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아산 관계자는 “대북사업 노하우를 갖고 있는 필수인력은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광 재개를 준비하는 과정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회사의 다른 관계자는 “SOC 사업권은 분명 현대아산에 있다”며 “추후 SOC 사업이 진행되면 필요한 기업을 우리가 선택해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준비하는 현대그룹


이에 상황이 쉽지 않지만, 대북사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현대아산’을 계열사로 보유한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도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상황이다.


특히 6월16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2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현대가’로서 경제협력 역할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날 회담에서 남북경협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됐을 가능성이 낮은 데다 향후 변동성에 대한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듯 공식적으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오늘 회담의 성과를 토대로 남북 간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정착되고, 향후 실질적인 남북 경제협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그룹 차원에서 설치한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금강산·개성 관광과 개성공단 등 기존 사업의 재개는 물론 향후 추진할 다양한 경협 사업을 위한 로드맵을 재점검하고 철저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사업이 구체화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과거 경험을 토대로 정부와의 조율을 통해 다양한 경협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천해성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남북연락사무소추진단이 개성공단을 방문해 현지 점검을 했을 때도 현대아산 직원이 참여하는 등 실무 능력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탁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경협 외에도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된다면 역시 실무 지원을 위해 인력을 파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기대감을 바탕으로 현대그룹은 추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 변화 등을 지켜보면서 지난달 현정은 회장을 위원장으로 출범한 남북경협사업 TFT 활동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현 회장은 이날 서울 연지동 그룹 본사 집무실로 출근한 뒤 북미정상회담 생중계를 계속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달부터 남북경협과 관련한 ‘기념일’이 이어지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6월16일은 정주영 명예회장인 민간인 신분으로는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해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오는 6월30일은 개성공단 착공식(2003년) 15주년이고, 다음달 16일은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개성·백두산 관광에 합의한 지 만 13년을 맞는다.


특히 오는 8월4일은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가 예정된 날로, 올해는 금강산에서 추모식이 열릴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3년 정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매년 금강산 추모식을 열었으나 2016년에는 북한 핵실험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으로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으며 지난해에는 북한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남북 SOC사업의 시발점이 될 철도인프라 산업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현대로템’ ‘현대제철’ 등을 보유하고 있어, 큰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SOC는 현대자동차


이처럼 현대그룹이 최전선에 나서 대북사업을 관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OC사업권이 현대그룹에 있는 상황에서, 철도 SOC 등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월27일 열린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북한 내 철도 기반 시설 개·보수의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철도 차량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로템과 철도 레일을 생산하는 현대제철이 반색하는 이유다. 현대로템은 현대차가 46.1%, 현대제철은 정 회장이 11.81%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건설·토목을 담당하는 현대건설과 발전 설비 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도 북한 SOC 사업의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이 2011년 인수한 현대건설은 소위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철도 개·보수 사업은 남북 관계가 진전될 때마다 꾸준히 검토돼 왔다. 북한의 철도 복선화 비율은 64.1%인 남한보다 현저히 낮은 3% 수준에 불과한 데다, 기반 시설 노후화로 철도를 이용한 물류에도 장기간이 소요된다고 지적받아 왔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2007년 북한의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도 개보수를 남·북·러 합작으로 추진하기로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추진이 전면 중단된 바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데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新) 북방정책과 맞닿아 있어 경협이 이뤄지면 가장 먼저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선 전자전기 설비 제조 부문 계열사인 현대일렉트릭이 대북 경협 사업의 수혜를 받을 것을 기대된다. SOC 사업을 위해 송전 및 배전 설비는 필수적인 요소로 꼽혀서다.


먼저 남북 간 철도 사업이 진행될 경우 최근 잇따른 수주로 탄력을 받은 현대로템의 실적 개선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실제 현대로템은 2015년 철도 부문에서 5700억원의 부진한 신규 수주를 기록한 이후 2016년 2조8000억원, 2017년 2조6000억원 규모를 수주하며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률은 다른 계열사에 비해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1062억원에 머물렀던 현대로템은 지난해 반토막 난 454억원으로 내려앉았고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역시 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2% 줄었다.


그러나 최근 대만에서 대규모 철도 사업 수주에 성공한 데 이어 정부가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정회원이 되면서 철도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상황은 반전됐다. 철도·방산·플랜트 부문의 사업을 담당하는 현대로템에 철도 부문은 지난해 매출의 48%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사업인데다 수주 금액 기준으로 국내 철도 시장 점유율 역시 90%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북·미정상회담으로 남북 경협 재개 기대감이 커지면서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철도 사업이 더욱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남북 경협이 진행될 경우 현대로템이 수십조원의 추가 수주를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토연구원에서 선정한 29개의 북한 핵심 철도 노선 사업이 시행되고 지하철이 고도화된다면 약 32조원의 철도 신호·통신 시스템과 차량 발주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도 레일을 생산·공급하는 현대제철 역시 북한의 철도 시설 확충에 따른 사업 확장이 예상된다. 연간 6만톤 수준인 국내 레일 수요가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이 착수되면 10만톤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남북한 철도 연결·현대화 사업으로 북한을 가로질러 러시아와 한반도에 가스관을 건설하는 사업이 추진될 경우 철도용뿐 아니라 가스관용 철강재 매출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건설은 현재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 TF팀을 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금강산 관광지구 조성과 개성공단 변전소 건설 등 대북사업의 주축이었던 만큼 남북 경협이 재개되면 핵심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이밖에도 지금은 범 현대가를 떠나 산업은행 산하로 들어갔지만 현대상선도 남북경협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대북제재가 풀릴 경우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사이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과거 대북 사업을 했던 해운사이기도 하다.

 

▲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말년에 대북사업에 집중하면서, 지난 1998년 6월16일 소떼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남북경협’의 상징이 됐다. <사진제공=현대그룹>

 

정주영의 유산


한편 범 현대가가 남북 경협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이끌었던 당시 북한과의 교류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이 1998년 2차례에 걸쳐 소떼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방문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앞서 정 회장은 1989년 남한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해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후 정몽구·정의선 및 현정은 등 2, 3세대를 거친 지금도 ‘현대’의 이름을 이어받은 기업들은 국내 경제 발전은 물론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89년 남측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해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또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소떼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들 세대를 넘어온 이후에도 ‘현대’의 이름을 이어받은 기업들은 남북통일 및 경협과 관련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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