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문화의 씨앗,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

“인류 숨결이 깃든 아름다운 문화의 시작”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6/18 [10:00]

찬란한 문화의 씨앗,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

“인류 숨결이 깃든 아름다운 문화의 시작”

이일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6/18 [10:00]

인류의 4대 문명은 BC 6000년경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부터 시작되어 BC 3000년경에 이루어진 이집트 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함께 BC 5000년경에 시작된 중국의 황허 문명을 말합니다. 인류 문명의 씨앗을 놓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문명은 서아시아 티그리스 강(Tigris R.)과 유프라테스 강(Euphrates R.) 사이의 지역에서부터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이란을 아우른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루어진 문명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서 시작된 문명의 씨앗 ‘메소포타미아’
동족 간의 분열이 가져온 내전…수많은 유적 파괴된 참사
나일 강 삼각주 지역에 거점잡으며 급격한 발전 ‘이집트’
백인·흑인이 최초 교류하며 이른 ‘음악·미술’ 위대한 교류

 

▲ 시리아 고대 유적 파괴의 현장 <사진출처=http://www.bbc.com PHOTO: JOSEPH EID>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어원은 한자를 쓰는 우리가 희랍어(希臘語)로 표기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중간을 의미하는 메소와, 강 또는 하천을 뜻하는 포타모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문명의 씨앗 메소포타미아


이러한 메소포타미아문명 지역을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로 표현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고고학자이며 역사가인 ‘제임스 헨리 브레스테드(James Henry Breasted, 1865~1935)’ 박사입니다, 그는 수차례의 현장 탐사를 통하여 동쪽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이란 고원과 자그로스 산맥을 거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지나 아르메니아로부터 타우루스 산맥을 통하여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지는 지역과, 서쪽 나일 강 영역의 평야를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정의한 것입니다.


이는 강(江)의 자연활동으로 이루어지는 비옥한 평야 지대에 농경문화가 정착하면서 문명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문명이 동행한 역사적 배경을 정리한 것입니다. 브레스테드박사는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한 이후 시카고 대학교수 재임 시에 이러한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록펠러 재단 지원으로 시카고대학에 오리엔트 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박사는 고대 이집트 연구 전문가로 탐사 중 감염된 질병으로 193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BC 6000년경부터 이와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지역 끝자리인 오늘날 이라크 남쪽에서 수메르(Sumer)인들이 선사시대부터 생활하면서 인류 최초의 문명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실증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속에 설형문자(楔形文字)를 사용한 수메르어의 분명한 기록을 전하면서 경이로운 문명의 조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우바이드 인에서 셈 어족 계에 이르는 여러 종족이 12개 이상의 도시 국가로 발전하면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수메르는 BC 2350년경 그동안 세력을 키워온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에 흡수되었습니다. 이후 아카드 제국은 BC 2200년경 메소포타미아 동쪽 자그로스산맥에 정주하던 세력 구티족(Gutians)의 침략으로 무너집니다. 이후 BC 1900년경 여러 제국의 위협 속에서도 메소포타미아 북쪽 티그리스 강 상류의 아수르(Assur)를 거점으로 자생하여 도시국가로 성장한 아시리아 국(Assyria)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조용하게 세력을 키워온 이 나라가 야망을 품을 즈음 시리아 지역의 셈 어족 유목민 세력이었던 아모리인(Amorite)이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점령하여 고대 바빌로니아 국(First Babylonian Dynasty)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고대 바빌로니아 국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에 문명의 바람을 전하였던 수메르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것입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나라가 아시리아 국(Assyria)과 히타이트 국(Hittite)입니다. 아시리아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탄생 이후에도 지배를 받는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동맹과 연합을 통하여 끈질기게 역사를 지켜온 나라입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국은 우리가 함무라비 법전으로 잘 알고 있는 초대 황제 ‘함무라비(Hammurabi)’가 이루어놓은 탄탄한 국력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는 BC 1530년경 지중해 히타이트(Hittite)인의 침략으로 1차 멸망의 아픔을 갖게 됩니다.


히타이트인은 BC 1600년경 오늘날 터키 고원 지역인 아나톨리아 북쪽 하투사(Hattusa)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BC 14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일부 지역을 장악할 정도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지중해를 굽어보는 아스라한 절벽의 고원에 도시 전체를 견고한 성으로 쌓은 요새와 같은 신비로운 거점을 두고 최초의 철기 무기에서 이륜 전차와 같은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전사세력으로 흑해에서 시리아와 이집트까지 해상과 육로를 장악한 세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이루어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나라들은 오늘날 극렬한 갈등과 반목의 현장이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얽힌 종교와 정치의 갈등으로 전쟁은 전쟁을 낳아 끝을 모르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동족 간의 분열이 가져온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을 양산하여 바다를 떠다니고 산야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에 인류평화의 가장 위험한 테러가 자행되고 있으며 마침내 영원한 유산으로 보존되어야 할 인류 최초의 문명을 증명하는 유적들이 파괴되어가는 참담한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세워진 문명이 이 시대에 파괴된다는 사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정신이 깃든 유적을 불태우고 파괴하는 오늘의 재난을 훗날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 할 것입니다. ‘문명의 바탕에서 첨단 과학 문명을 일구어낸 그들은 인류의 정신을 파괴한 가장 야만적인 시대의 인간들이었다.’라고 말입니다.


역사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훼손될 수 없으며 왜곡될 수 없는 인류사의 생명과 같은 신성한 가치입니다. 바른 역사의 배움과 계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오늘의 세계인들은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오랜 역사의 먼 길을 바라보게 되면 앞에 놓인 역사의 넓은 길이 보이게 되는 소중한 진리를 일깨워 역사의 야만인으로 남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 이집트 문명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사진출처=http://mirrorspectrum.com, http://mirrorspectrum.com>

 

찬란했던 이집트의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도시국가들이 탄생하는 시점에 나일강(Nile River) 영역을 거점으로 정주하던 부족이 이집트를 세워 또 하나의 찬란한 문명을 매만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이집트문명(Egyptian civilizatIon)입니다.


BC 6000년경 신석기 시대부터 거주한 이들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나뉘어 오랫동안 생활해오면서 독자적인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BC 3100년경 (상)이집트의 메네스 왕(Menes)이 양분되어 있던 고대 이집트 왕국을 통일하면서 상?하 이집트의 경계를 이루던 지역의 비옥한 땅을 거점으로 멤피스(Memphis)라는 왕도를 건설하였습니다.


이어 오랫동안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BC 2580년경 ‘쿠푸 왕’ 피라미드와 BC 2560년경 제4왕조 ‘카프라 왕’의 스핑크스와 같은 불가사의 한 인류의 유적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후 점차 쇠락하기 시작한 이집트 왕국은 내란으로 분열되어 BC 2061년경 11왕조 시대에 멘투호테프 2세(Mentuhotep II)가 다시 통일된 이집트를 세웠으나 BC 1991년 왕족의 계보가 아닌 일반 재상이었던 아멘엠헤트 1세(Amenemhat I)가 왕에 오릅니다.


이후 동부 나일 강 삼각주 지역에 거점을 가진 서아시아 출신의 혼합 세력이 강력한 무기 이륜 전차를 앞세워 이집트 왕국을 정복하고 15번째 왕조의 파라오가 되어 BC 1663년부터 BC 1555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이가 바로 외국의 통치자라는 뜻을 가진 힉소스(Hyksos)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랫동안 이집트 왕국의 지배를 받아온 누비아 왕국(Nubia kingdom)이 있었습니다. 누비아 국은 BC 3000년경 오늘날 수단 북부와 이집트 남부에 위치한 나일 강 유역에 거점을 두었던 고대 아프리카의 초기 문명국으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오랫동안 동행한 나라입니다.


누비아 왕국은 크고 작은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나라로 전체적인 규모가 상당하였으며 크게는 상?하 누비아 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BC 2300년경 고대 이집트 왕국의 기록에 의하면 금과 흑단과 구리와 상아에서부터 아프리카 동물들을 누비아와 교역한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비아인들은 이집트의 지배 아래 존재하였지만 상호 협력하며 매우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외부 세력 힉소스가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면서 힉소스 세력의 이집트 통치를 위하여 협력하였습니다. 그러나 BC 1520년경과 BC 1500년경 이집트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로 이어진 이집트 왕국이 힉소스 통치를 물리치고 북쪽 누비아를 정복하면서 다시 이집트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남부에 있던 누비아인들이 에티오피아 세력과 협력하여 쿠시 왕국이라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집트는 BC 1290년경 제19왕조 제2대 왕 세티 1세(Seti I) 시대에 아시아 지역의 민족 이동에 따른 격동 속에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래전 히타이트인에 의하여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이 침몰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던 아시리아인들이 세력을 키워 히타이트와 이집트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BC 1269년경 동맹을 맺어 이에 대항하였지만, 연속적인 패배로 지중해의 가장 큰 섬 ‘키프로스’가 아시리아에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이로부터 에게 해를 거쳐 가나안까지 아시리아가 진출한 것입니다. 나아가 시리아까지 침략하면서 고대 바빌로니아 후예들이 명맥을 유지하여 오던 네오 바빌로니아의 최후 거점까지 정복하여 버립니다. 이에 사방으로 차단되어 버린 히타이트 왕국이 BC 1180년경 사실상 역사의 막을 내리면서 세력의 일부가 시리아지역으로 도피하여 부흥을 노렸지만, BC 717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Sargon II)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동맹국 히타이트가 무너지면서 고대 이집트 왕국은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마지막 왕조 시기인 제25왕조가 아프리카 누비아 세력인 쿠시 왕국(Kushites dynasty)에 의하여 정복된 것입니다. 이러한 쿠시 왕이 이집트 파라오 제25 왕조시대의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BC 674년경 강력한 세력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짧은 기간 이집트 왕조 시대를 통치하던 쿠시 왕국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연속적인 침략을 맞게 되면서 쿠시 왕국은 아프리카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후 새로운 부흥을 위하여 부단하게 노력하였지만 서기 350년 악숨 왕국(Aksum kingdom)의 공격으로 누비아인의 오랜 역사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인류의 기원지로 실증되는 아프리카 사막의 젖줄 나일 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명입니다. 이러한 이집트는 열사의 사막을 뜻하는 붉은 땅과 나일강 평야 지대의 비옥한 토지를 검은 땅으로 표현하여 붉은 땅과 검은 땅의 문명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이집트문명은 인류의 숨결이 깃든 아프리카의 누비아 왕국에서 쿠시왕국으로 이어진 누비아인의 동행이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학자에 의하여 이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누비아인의 역사적 이야기를 관심 있게 살펴보면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가장 오랜 나라 이집트와 달리 지금은 전설 속으로 사라진 나라이지만 이집트 문명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은 역사적으로 백인과 흑인이 최초로 교류하며 이루어낸 문명입니다. 인류의 발생과 음악의 기원과 미술의 바탕이 이루어진 아프리카 오지에서 출발하여 지중해로 흐르는 나일 강이 낳은 문명은 곧 인류의 숨결이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아프리카의 문화적 특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내용도 바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이집트 문명이 오지의 사막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깊게 인식한 까닭일 것입니다.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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