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 위대한 만남의 시작

“그림으로 그려진 음악의 세계”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7/08 [11:08]

음악과 미술, 위대한 만남의 시작

“그림으로 그려진 음악의 세계”

이일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7/08 [11:08]

인류의 역사에서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암각화와 벽화에 그려진 춤과 악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음악이라는 소리의 울림과 미술이라는 빛깔의 조화를 우주의 질서로 파악한 고대 수학자의 헤아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조화(harmony)의 균형에서 출발하여 니코마코스(Nikomachos, 50~150)의 저서 ‘화성학(和聲學)’에 담긴 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과 요한 케플러(J,Kepler, 1571~1630)의 ‘『우주의 화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의 바탕은 결국 공유와 소통이라는 영원한 언어를 의미하는 것있니다,


인류역사에서 ‘음악 미술’의 만남 암각화와 벽화에서 시작돼
가장 대표되는 음악가 ‘아놀드 쇤베르크’와 ‘존 케이지’ 작품
음악과 미술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을 남긴 ‘펠릭스 멘델스존’
동굴이 주는 웅장한 풍광 묘사한 회화적 감성 ‘핑갈의 동굴’

 

▲ 이집트 벽화 연주장면(左). 고구려 무용총벽화 무용도(右) <사진츨처=Wikipedia>

 

본문이러한 공유와 소통이라는 맥락에서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들여다보면 가장 대표되는 음악가로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1874~1951)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를 만나게 됩니다. 쇤베르크는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한 유대인으로 정규수업을 받지 않은 독학으로 20세기음악사에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무조음악(Atonal Music)인 12음 기법 도데카포니(dodecaphony)를 창안한 작곡가입니다.

 

음악과 미술


무조음악 12음 기법이란 조성 음악에서 중시하는 으뜸음을 배제하고 1옥타브의 12음을 동등하게 배열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이의 논리적 바탕에는 온음과 반음을 빛깔로 구분한 의식을 분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를 통하여 동행한 음악과 미술의 동행 이후 마네, 그리고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와 드뷔시와 같은 인상파 음악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후 칸딘스키와 같은 화가들이 추구하였던 사실성의 조형이 아닌 정신의 가치를 중시한 추상표현주의는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과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동행한 사실을 여러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기하학적 추상주의를 출발시킨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K, Malevich,1878~1935)가 무채색의 빛깔을 품에 안은 절대주의 또한 쇤베르크가 포용한 불협화음과 그 맥락이 닿아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근원에는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와 함께 화가로 활동하며 개인전을 열었던 쇤베르크의 회화적 감각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리와 빛깔의 만남을 추구한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들의 노력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폐허의 어둠에서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와 같은 음악가에 의하여 더욱 빛을 발하였습니다.


미국의 음악가이며 미술가인 존 케이지는 1933년부터 2년여 동안 쇤베르크에게서 음악적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쇤베르크는 케이지에게 조화와 균형이 없는 케이지의 음악 세계를 지적하였으며 케이지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이후 케이지는 인도철학과 주역에 이르는 동양사상과 불교의 선종에 담긴 정신적 명상에 심취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를 통하여 낳은 음악작품이 침묵의 음악 ‘4분 33초’입니다.


‘케이지’는 제목과 같은 연주시간 4분 33초 동안 그 어떠한 연주나 행위 없이 주변의 소음만으로 채워지는 침묵의 음악을 통하여 소리라는 바탕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배경에는 팝아트의 대표 화가 중 한 사람인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가 1951년 발표하였던 ‘백악관’ 작품에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캔버스만을 제시한 사실이 가져다준 영향이 컸습니다.


이와 같은 그림이 부재한 그림과 소리가 부재한 음악이 역설하고 있는 보는 음악과 듣는 그림을 실현한 예술가가 바로 존 케이지의 제자로 비디오 아티스트를 창시한 우리나라 예술가 백남준(白南準, 1932~2006입니다.


백남준은 일본 동경대학에서 미술사와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졸업논문은 쇤베르크 음악론이었습니다. 1956년 독일로 유학하여 음악을 전공하면서 1958년 스승 존 케이지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플럭서스 운동에 주요 멤버로 활동하며 바이올린을 부수는 등의 행위예술을 선보이면서 소리의 근원을 해체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후 스승 케이지의 동양의 음악과 종교에 깃든 명상에 대한 조언을 바탕으로 소리와 영상이 함께 전해지는 텔레비전을 통한 영원한 언어의 소통을 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텔레비전을 첼로로 형상화시킨 일련의 작품에서 문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통한 음악과 미술의 만남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불협화음을 포용하여 12음 무조음악을 탄생시킨 쇤베르크 이거나 소음을 소리로 추스른 존 케이지의 침묵의 음악을 거쳐 소리와 영상을 문명의 흔적으로 남긴 백남준 아티스트의 깊은 속내는 어쩌면 언제인가 영상이 멈추어 있을 자신의 작품에서 영원한 음악과 미술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 초상과 친구 예술평론가 레싱(G.E.Lessing) <사진출처=httpsen.wikipedia.org>

 

그려진 음악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을 1826년 17세의 나이로 작곡한 독일의 유대인 음악가 펠릭스 멘델스존(J.L.F.Mendelssohn-B, 1809~1847)은 선천적인 음악의 천재성을 남긴 채 38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829년 헤브리디즈 군도의 스태퍼 섬에 있는 핑갈의 동굴을 여행하고 작곡한 서곡 ‘핑갈의 동굴-Fingal’s Cave, Op. 26‘이거나 1930년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괴테의 시에서 착상하여 작곡한 서곡 ‘바다의 고요함과 즐거운 항해 Op. 27’과 같은 일련의 음악에서 음악과 미술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을 남긴 음악가입니다.  


이러한 멘델스존에 대하여 대체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급스러운 음악을 매만진 음악가로 평가되는 내용은 멘델스존이 추구한 진정한 정신세계를 관통하지 못한 평가라는 점에서 이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멘델스존의 예술성은 단순한 천재적 감성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 많은 독서와 여행을 통한 사유적인 감성과 자연의 신성한 숨결이 흥건하게 녹아있는 음악가입니다. 덧붙여 그는 뛰어난 회화적 재능을 가진 음악가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에서 섬세하게 느껴지는 그림과 같은 풍경들은 그려가는 음악에 대한 의식을 분명하게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멘델스존의 예술적 근원을 살펴보면 독일 계몽주의 철학가 중 한 사람인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1729~1786)의 영향에서부터 살펴야 합니다.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라틴어와 고대어들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재능을 아낀 스승들을 만나 수학과 철학 그리고 문학 등을 공부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1754년 평생 각별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 독일의 시인이며 예술평론가인 레싱(G.E.Lessing, 1729~1851)을 만나게 됩니다. ‘레싱’은 독일 문화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다준 작가로 초대 함부르크 국립극장을 이끌었던 주역입니다, 또한, 레싱은 독일 북부에 있는 작센의 볼펜뷔텔(Wolfenbuttel)도서관장을 맡았던 시절에 그의 유명한 작품인 희곡 ‘현자 나탄(Nathan the Wise)’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이 친구 모세 멘델스존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도에게 자식을 앗긴 유대인 ‘나탄(Nathan)’이 기독교인의 딸을 양녀로 삼은 내용으로 종교에 앞서 인간애를 추구한 작품입니다.


‘모세 멘델스존’은 친구 ‘레싱’이 세상을 떠난 후 ‘칸트’의 비판으로 잘 알려진 ‘괴테’의 친구 수학자 ‘야코비(F,H,Jacobi, 1743~1819)’가 ‘레싱’을 스피노자주의라고 평가한 사실에 ‘모세 멘델스존’이 ‘레싱’은 비 스피노자주의자라고 반박하면서 벌어진 독일의 유명한 ‘스피노자 논쟁’의 주인공이 바로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입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칸트’가 ‘모세 멘델스존을 향하여 독일 천재의 문장가로 평가한 사실은 멘델스존 가문의 천재성을 말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 멘델스존’의 두 아들 ‘요셉 멘델스존(Joseph Mendelssohn, 1770~1848)’과 ‘아브라함 멘델스존(Abraham Mendelssohn, 1776~1835)‘ 형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화적 소양이 풍부 하였지만 가난한 가문의 중흥을 위하여 금융업에 진출하였습니다. 두 형제가 1850년 베를린에 설립한 은행이 멘델스존 가문에 부를 일으킨 바탕입니다. 바로 ‘아브라함 멘델스존’이 음악가 ‘멘델스존’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렇듯 멘델스존 가문이 은행을 설립하여 부를 일으킨 배경에는 1792년 발족한 독일 유대인 사회단체(Gesellschaft der Freunde)의 공동창립자로 두 형제가 참여하면서 연관 유대인들의 자금이 바탕이 되어 ‘베를린 은행’을 설립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멘델스존’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1794년 프랑스로 건너가 전문적인 은행 업무를 공부하고 돌아와 1804년 형과 아우의 이니셜로 ‘J & A Mendelssohn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어 함부르크에 지점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1810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아 도시가 점령된 후에 ‘나폴레옹’의 자금 조달을 거부한 죄로 파산 직전에 처하게 됩니다. 1815년 나폴레옹 군대가 패배하여 물러난 후 전쟁 배상금을 받아 파리 지점을 개설하면서 'Bank Mendelssohn & Co’로 은행이름이 변경되었으며 1822년부터 멘델스존 아버지는 자선사업에 주력하였습니다, 멘델스존 가문의 은행은 1938년 독일이 나치 세력의 통치에 들어가면서 140년 역사의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러시아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통하여 러시아 국채의 유럽발행을 담당하게 되었던 사실 등 멘델스존 가문에 담긴 많은 비화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유대인 자금을 바탕으로 부를 이룬 멘델스존 가문이 모두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 또한 역사에 담긴 이야기라 할 것입니다.      


음악가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명석함으로 여러 나라의 어학에 능통하였으며 18세에 베를린대학 청강생으로 ‘헤겔’의 미학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그는 데생 공부를 통한 바탕에서 수채화로 풍경을 아주 잘 그렸으며 특히 그의 그림일기는 음악과 미술이 녹아든 교향곡으로 평가될 만큼 회화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이러한 미술적 재능과 감성은 그의 음악에서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현하였습니다.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은 관악기와 현악기들이 빚어내는 절묘한 빛깔의 대비가 꿈결로 펼쳐집니다. 관악기로 피아니시모의 화성이 울리면서 시작되는 음악은 고전적인 화풍에 담긴 빛깔 그 자체입니다. 상성부(上聲部) 현악기들은 밝은 빛깔로 찍어낸 스타카토로 나타나고 관악기들이 칠해 가는 빛깔들은 대기원근과 같은 마법에 걸린 숲이 되어 화면의 윤곽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멘델스존의 음악과 미술의 어울림은 그의 작품 ‘핑갈의 동굴(원제-Die Fingals-Hohle Op. 26’)에서 더욱 깊은 감성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천연적인 동굴이 주는 웅장한 풍광을 묘사한 회화적 감성이 단순하게 돋보이는 점이 아닌 동굴의 역사적 내용까지 관통한 의식이 멘델스존 음악에 담긴 깊은 예술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점입니다.

 

▲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 초상과 1825년 구입한 베를린 멘델스존 하우스. <사진출처=httpswww.findagrave.com>

 

핑갈의 동굴


‘멘델스존’은 1829년 20세에 런던 연주를 마치고 오는 길에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즈 군도 스태퍼 섬에 있는 핑갈의 동굴을 여행하였습니다. 당시 동굴을 여행한 감성을 가장 절친하였던 음악가인 누나 ‘패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 1805~1847)’에게 편지로 전하면서 21마디의 음악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부분이 ‘핑갈의 동굴’에 도입부이며 일렁이는 물결을 그려가며 고대의 전설이 걸어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은 1830년에 완성되었으며 1832년 런던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멘델스존’은 3세기경의 켈트족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고대 게일어의 시인 ‘오시안(Ossian)’의 낭만적 인 서사시 ‘핑갈(Fingal)’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시인 ‘제임스 맥퍼슨(James Macphe rson, 1736~1796)’이 번역하여 세상에 알린 ‘핑갈(Fingal)’은 훗날 번역과 창작의 많은 논란을 가져왔지만, 아일랜드 신화를 이루는 주요한 서사시로 낭만파 문학에 많은 영향을 가져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핑갈의 동굴’은 그 자연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섬의 동굴입니다. 특히 아치형으로 이루어진 동굴의 지붕구조로 파도의 울림이 연속적인 공명을 거치면서 드러나는 신성한 음향과 경관이 ‘멘델스존’의 음악과 미술의 깊은 감성을 통하여 승화된 예술로 탄생한 것입니다. ‘멘델스존’은 핑갈의 동굴에서 받은 느낌을 ‘편안함 속의 힘없는 고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음악 ‘핑갈의 동굴’을 듣다 보면 끝없는 파도를 그려가는 선율이 동굴에 닿아 오랜 전설을 삼키며 서늘한 바람과 같은 외로움과 고독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음악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바다의 빛깔과 소리의 울림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은 명곡 ‘핑갈의 동굴’은 그 실체도 음악도 영원히 우리의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그너는 멘델스존에 대하여 ‘뛰어난 풍경화를 그려낸 음악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음악가 멘델스존의 실제의 수채화 그림 풍경화를 이른 말이건 그의 음악을 가리킨 말이건 모두가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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