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1월2일, ‘최순실 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은 갑작스레 ‘신임 국무총리 카드’를 꺼내든다. 바로 ‘김병준 교수’였다. 이는 당시 총리였던 황교안 총리마저도 모르는 인선일 정도로 ‘깜짝 카드’였던 것이다. 그도그럴것이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까지 지낼 정도로 핵심 인사였던 탓에 ‘박근혜 정부’와는 결이 틀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시 야당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왜곡하지 말라’며 격하게 반대했고, 결국 ‘김병준 총리’카드는 무산됐다. 그리고 사실상 끝난 것 같았던 김병준 교수의 정치 도전은 또다시 ‘보수 세력’에서 재개됐다. 바로 위기의 자유한국당을 구할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된 것이다.
강도 높은 인적쇄신 기대하는 시선…의원 발발에 고심
‘당협위원장’에 메스 대려 준비…‘시스템 정당’ 표방해
색깔놓고 동상이몽하는 친박·비박…‘서로 우리편’ 주장
‘노무현 정신’ 언급에 불편한 민주당…‘협치’ 쉽지않아
▲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를 한 김병준 교수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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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내놓은 인적혁신 로드맵을 두고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어떤 방향으로 인적청산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과거 지향적인 인적청산에는 반대한다”며 친박(친박근혜)과 비박 등 특정 계파를 겨냥한 인적청산은 지양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공천권 등과 관련해서는 비대위의 영향력이 2020년 총선까지 미치기에는 어렵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당 개혁의 방향
현재 한국당에 대해 당 쇄신 방안으로 당 자체를 해체하거나 현역의원 전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할 정도의 강도높은 인적혁신을 기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곧바로 칼을 들고 나선다면 계파갈등이나 공천 공포로 인한 의원들의 즉각적 반발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김 위원장이 감안하는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김병준 위원장은 지난 7월19일 취임 후 첫 인선으로 사무총장에 김용태 의원을, 비서실장에 홍철호 의원을 임명했다. 두 사람은 이른바 ‘복당파’로 분류된다. 김병준 위원장은 또 신임 여의도연구원장 자리에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선동 의원을 앉혔다. 마찬가지로 친박계로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윤영석 의원은 유임됐다. 결론적으로 친박과 복당파를 모두 배려한 것이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역할까지 종합해보면 미묘하다. 김병준 비대위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인적청산의 키를 쥐고 있는 사무총장 자리가 복당파로 넘어간 반면,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노선을 주도할 수 있는 여의도연구원장은 친박계가 맡았다. 혁신을 강행한다고 볼 수도 있고 화합을 모색한다고 볼 수도 있는 모호한 진용인 셈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의 처지와 당내 계파 구도 때문이다. 결국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인적청산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나 기치, 이념을 중심으로 ‘시스템화’한 기준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기준을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이 ‘당협위원장을 교체할 권한’을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김 위원장이 당협위원장 교체를 언급한 점을 두고 일각에선 홍준표 전 당대표가 당무감사를 실시하고 교체했던 당협위원장들에 대한 재정비에 들어가겠다는 뜻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7월19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얼마전에 당협위원장을 교체했다. 그때 당무감사를 정확히 잘 했더라”고 인정하면서 “거기에 일종의 소프트웨어적인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고, 기치를 세우고, 그 과정에 얼마나 동참하느냐(를 기준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협위원장은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직에서 교체된다는 것은 지역구 관리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단 뜻으로 차기 총선 등의 공천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김병준 비대위’가 공천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도 해당 인터뷰를 통해 “당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지표를 만들고 지표에 따라 행사할 권한은 행사하겠다”며 “당협위원장을 교체할 권한은 여전히 갖고 있고, 당협위원장을 박탈한 사람은 공천하기 힘들 것이다”고 밝혔다.
때문에 당협위원장을 단순히 특정 인물로 교체하는 수준의 당무감사가 아닌 새 기준을 통해 척도를 ‘시스템화’ 하겠다는 것은 당을 가치중심의 정당으로 쇄신하기 위한 초석을 새로 놓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7월19일 초선의원들의 모임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 줄 방법의 하나로 당협위원장 직을 내려놓고 이를 김 위원장에게 맡기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온 상태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의 활동 기간을 내년 초까지로 설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상당한 시간을 김 위원장은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당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데에 할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스템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 새로 마련된 기준을 두고 당내 양 계파간의 반발 등이 또다시 거세진다면 차기 지도부 선출 등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대적인 물갈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나눠진 ‘친박·비박’의 계파 분류법은 자유한국당을 좀먹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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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들의 동상이몽?
이처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밝힌 인적쇄신을 포함한 당 혁신방안이 당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과거 지향적인 인적청산은 반대한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놓고 당내 계파들 사이에서는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비박계와 친박계는 김 위원장이 인적쇄신 대상으로 자신들보다 상대 계파를 겨냥할 것이라고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17일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 계파갈등 극복을 천명했던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적쇄신에 대해 “새롭게 세워진 가치나 정책적 노선에 대해 같이 할 수 있는지는 가치 정립 후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체계가 전혀 다르거나 정책 방향을 도저히 공유할 수 없는 분이라면 길을 달리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고질적인 계파갈등의 원인으로 꼽혔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탈당 및 복당 등 과거 행적을 따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김 위원장이 주도하는 비대위가 내놓을 새로운 ‘보수가치’에 대한 동의 여부가 청산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계파·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미래를 위한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이 우리 정치의 중심을 이루게 하는 꿈을 갖고 있다”는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 새로운 보수가치를 정립 후 통합을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각 계파들은 김 위원장이 인적쇄신을 감행할 경우에도 그 칼날이 자신들을 먼저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대신 상대 계파에 대한 인적쇄신을 기대하는 모습도 보였다.
친박계 내부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은 친박계 함승희 전 의원이 만든 싱크탱크인 ‘포럼 오늘과 내일’의 정책연구원을 맡았던 이력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계 당 관계자는 “친박 쪽도 결국 김 위원장이 자신들을 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김 위원장을 수용한 것 아니겠냐”며 “친박계 내에선 김 위원장이 칼을 빼들더라도 김무성 의원이나 비박계를 먼저 치지 자기들 쪽을 칠 사람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비대위 출범 과정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공헌을 한 만큼, 김 위원장의 구상과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박계 핵심 관계자는 “혁신의 방향은 좌표설정에서 시작한다”며 “좌표의 기준을 잡기 위해선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관련 책임론을 염두에 두고 친박계를 겨냥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과거 지향적인 청산에 부정적인 의사를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탄핵과 전 정권의 실정 등을 고리로 친박계 청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친박과 비박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색깔을 놓고 서로 동상이몽 하고 있는 것이다. 복당파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과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했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혁신을 이뤄줄 것을 기대한다.
반면 친박계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야권 ‘인맥’이 친박계에 걸쳐있고 박근혜 정권에서 거국내각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었다는 이력 등을 근거로 ‘친박 말살’의 수준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계파 간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비대위에 대한 반발 기류도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당초 40여명에 달하는 초선의원들 사이에서 최소 연말까지 비대위를 유지하는 ‘전권형 비대위’와 조기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관리형 비대위’를 놓고 의견이 양분됐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수락연설에서 보여준 ‘정치적 언어’ 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전권형 비대위’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당의 한 당직자는 “김 위원장이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이른바 ‘정치 언어’를 쓰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며 “품격을 중시하는 보수정당의 대표로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선의원들 사이에선 비대위원장이 공천권을 가질 수 없어서 차라리 조기전대로 가자는 의견도 꽤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자는 분위기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한 친박계 관계자도 “비대위를 시작한 마당에 일단 뭔가를 시도해 볼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냐”며 “비대위 활동 기한도 내년 초까지 뭔가를 정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 언급 불편
한편, 여권은 원조 친노인사였던 김 비대위원장이 한국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친박·비박으로 나눠 계파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한국당은 김 위원장의 행보를 관망하며 잔뜩 움츠린 모양새다.
친노인사인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7월19일 김 위원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어떤 의미로 국가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모르겠다”며 “현재 추진하는 정책에 국가주의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가주의적 경향이 사회 곳곳에 있다”며 “국가가 시민사회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된다”고 언급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초·중·고교에서 커피나 음료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입법된 것을 거론 “학교 사정에 맞게 하는 게 맞는데 그런 것까지 국가가 들어갈 이유가 없다”며 ‘국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현 정부를 비판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2006년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실장이 자신을 찾아와 금산분리법 본회의 상정을 연기하자고 했다고 언급한뒤 “나를 찾아와 금산분리법 상정 연기를 압박했던 김병준 실장은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혼란케 했던 몇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과 당시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청와대 제2부속실장 출신의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김 위원장과 각을 세우며 설전을 벌였다.
전 의원은 지난 7월17일 김 위원장이 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자 트위터를 통해 “출세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거나 언급하지 말라”고 직격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곧바로 “노무현 정신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격했고, 전 의원은 “누가 누구더러 노무현 정신 왜곡이라고 하느냐”고 재차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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