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김명수 대법원’ 책임이다

한겨레 김이택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8/08/14 [16:56]

이제부터는 ‘김명수 대법원’ 책임이다

한겨레 김이택 논설위원 | 입력 : 2018/08/14 [16:56]

 

헌법재판소가 3대 과거사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심리를 끝내고 이달 말 선고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번 칼럼(‘정부 협조 판결’의 피해자들과 그 위헌성)에서도 언급은 했으나 예상보다 진전이 빠르다. 다행스럽다. 고문조작 사건의 피해자들과 유신 시절 긴급조치의 피해자들,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이 낸 배상 청구를 기각한 판결들이 대상이다. 모두 국가를 상대로 청구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헌재 주변에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것이란 기대 섞인 예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그래야 맞다. 고문조작으로 인생이 망가졌는데도 대법원이 3년의 소송 시효를 돌연 6개월로 앞당기는 바람에 배상금은커녕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현행법 아래서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건 헌재밖에 없다.

 

위헌인 긴급조치를 발령하고 이에 따라 수사·재판한 데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도 ‘양승태 대법원’이 면제해줬다. ‘당시엔 위법하다는 인식이 없었다’며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했으나 위헌 소지가 크다. ‘손해가 갈 것이란 정도의 인식만 있으면 되고 위법에 대한 인식까지는 필요 없다’는 기존 판례와 유력 학설(곽윤직 <민법주해>)도 뒤집었다.

 

민주화운동이 인정돼 최소한의 생활지원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판결도 마찬가지다. 보상과 배상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민주화운동보상법 해당 조항 자체에 대한 위헌 결정 가능성이 크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하면 깔끔하지만, 한정위헌이면 그 효력을 둘러싸고 대법원과 헌재 사이에 다시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라도 이 사건들을 ‘협조 사례’라며 박근혜 청와대에 헌납한 대법원에는 또 하나의 망신거리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법원은 여전히 ‘사법농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검찰 요구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더니 영장전담 판사들까지 사실상 막가는 논리로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을 무더기 기각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 소송 사건을 미룬 대가로 유엔에 판사 파견 자리를 따낸 정황이 뚜렷한데도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한민국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기각 사유는 법관의 언어가 아니다. 심의관들 영장은 “임 전 차장 지시를 따랐을 뿐”이고 “공무상 비밀”이어서, 아니면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다”며 기각했다. 사상 초유의 기각 사유들이다.

 

그러면서도 외교부 압수수색 영장만 콕 집어 발부했다. 국민들이 뭐라 하든 법원 내 ‘불멸의 신성가족’들만 신경쓰면 된다는 오만함이 묻어난다.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들은 앞으로 다른 압수수색영장도 같은 기준으로 심사해야 한다. 구속영장 이상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면 대상자들한테 ‘불공평하다’고 항의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래서 수사가 어려워지고 범죄가 늘면 수사기관의 원망과 국민 질책도 달게 받아야 한다.

 

법원이 왜 이럴까. 특조단 보고서에 단서가 있다. 마지막에 사법농단 사건의 ‘원인’으로 내세운 열쇳말은 ‘임종헌’이다. ‘임종헌 차장이 사법행정 우위의 사고’를 갖고 있었고 ‘그가 대법관으로 제청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인식한 심의관들’이 ‘임 차장이 선호하는 공격적이고 전략적인 문구와 극단적 방안’을 담은 문서를 작성한 게 문제라는 게 결론이다. 특조단 이래 법원이 보여온 일관된 노선 역시 임종헌 선에서 ‘꼬리 자르기’다. 압수영장 기각도 그런 맥락이다. 임종헌을 죽여서라도 양승태-박병대는 살려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동서 형량 줄이고 무죄 전략까지 짜주는 게, 외교부 민원 받아 대법원 재판까지 보류시키는 게 행정처 차장 선에서 가능한 일일까.

 

지난 1일까지도 대법관 13명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한 사람이 11명이었다. 대부분의 법원장·고법 부장판사들도 그가 승진·영전시킨 이들이다. 사법부에 양승태의 그림자는 짙고, 그는 여전히 ‘그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엄연히 ‘김명수 대법원’이다. 임종헌 죽이기로 사실상 양승태·박병대를 감싸고 있는 것도 김명수 대법원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뿌리째 도려내지 못하면 거꾸로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김 대법원장이 법원 울타리 너머 국민의 시선에 눈을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수사 협조’ 약속부터 온전히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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