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8. 이덕위본(以德爲本)

"모름지기 통치자는 덕으로써 근본을 삼으라"

글/이정랑(중국 고전 연구가) | 기사입력 2018/10/31 [11:05]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8. 이덕위본(以德爲本)

"모름지기 통치자는 덕으로써 근본을 삼으라"

글/이정랑(중국 고전 연구가) | 입력 : 2018/10/31 [11:05]

정치를 덕으로 한다는 것은 뭇별이 북극성 향하는 셈
현명한 정략가 치고 덕을 중시하지 않은 사람 있던가?

 

가짜뉴스는 황당지언 늘어놓느라 뱀처럼 혓바닥 놀려대
영리한 통치자는 뒤바뀐 일 제자리로 돌리는 법을 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작심하고 통치의 본령인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정도에 발 벗고 솔선수범에 나섰으니 그 결과에 당연히 서광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덕을 근본 삼는 ‘이덕위본’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을 보면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이 나온다.
“정치를 덕으로 한다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를 잡고 있으면 뭇별이 모두 북극성을 향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도덕적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자기가 북극성처럼 제자리에 있을 때 다른 별들이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는 것과 같다. 정치적으로 패하지 않는 자리에 설 수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덕을 근본으로 굳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 '덕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이덕위본'은 언뜻 보면 계략 같지 않지만 사실은 내부의 직능에 대한 정략으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모습.

 

가난하지만 덕 있는 인물


춘추시대 한기(韓起)는 진(晉)나라의 정경(正卿)이었고 숙향(叔向)은 대부였다. 어느 날 한기는 숙향에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도대체 정경이란 자리는 이름뿐이오. 걸맞은 수입도 없을뿐더러 다른 경대부들과 교제할 비용조차 없으니 말이오.”


한기는 이런 말로 숙향의 동정을 얻어 볼 심산이었는데, 뜻밖에 숙향은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축하를 올리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해진 한기는 숙향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궁색하기 짝이 없어 지금까지 늘 고민해 왔는데 동정은 못할망정 축하를 하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오?”


숙향은 직접적인 대답은 피한 채 먼저 진나라 역사상의 두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난하지만 덕이 있는 난서(欒書)라는 인물과 부유하지만 부도덕한 극지(?至)라는 인물이 있었다. 난서는 상경으로 규정에 따라 500경(頃)의 땅을 녹봉으로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0경도 받지 못해 종묘의 제기도 제대로 못 갖추고 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것 때문에 불만을 품기는커녕 자신의 품성을 갈고 닦는데 더욱 노력했다. 그는 덕행으로 전국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국사를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리해서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극지라는 인물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도 정경을 지냈는데 집안의 재산이 국가 재산의 절반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진나라 삼군 중 장군 자리는 극씨 집안사람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교만 방자하고 절제가 없으며 탐욕스럽기 그지없었다. 늘 자기 재산이 적고 권력이 보잘 것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부와 지위를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고 백성들을 못살게 괴롭혔다. 그 결과 죽어 몸뚱이 하나 묻을 땅조차 없는 처지가 되었고, 집안도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마친 숙향은 한기에게 말했다.
“지금 당신이 난서처럼 가난하다는 것은 그와 같은 덕을 지녔기 때문이고, 그래서 제가 축하를 드린 것이오. 만약 당신이 자신의 덕을 닦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재산이 부족한 것에만 신경을 쓴다면 내 어찌 축하를 드릴 마음이 나겠소? 차라리 통곡을 했으면 했지요.”


숙향의 말을 들은 한기는 크게 깨달았다. 덕행이 재물보다 중요하며, 가난하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난서처럼 가난할 때 좋은 덕을 쌓는 것이야말로 극지와 같은 비참한 최후를 피할 수 있는 차원 높은 처신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숙향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감격스럽게 말했다.


“나는 재산이 적다는 것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몸을 망치고 집안을 망하게 하는 길이었소 그대가 나를 살렸으니 나는 물론 내 조상과 자손들까지도 당신에게 감사드려야 할 것이오!”

 

치욕무비 신세가 된 인물


‘덕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이덕위본’은 언뜻 보면 계략 같지 않지만, 사실은 내부의 직능에 대한 정략으로써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현명한 정략가 치고 이를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이정치국(以正治國)’이니 ‘이기용법(以奇用法)’이니 하는 것은 천고에 변치 않는 격언들이다. 이른바 ‘이정치국’은 정확한 도덕관에 따라 백성을 교육시키고 사회를 규범화하여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정확한 도덕관으로 사회와 국가를 주도하지 못하면 반드시 혼란이 초래되고 선악의 구분이 없어진다. ‘덕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는 과거 국가 통치의 큰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적 의의를 가진다.


이명박·박근혜가 이와 같은 소중한 이치를 행여 모를 리 없건만, 그들은 거대하고 막강한 최고의 권력을 악용, 사리사욕에 눈이 뒤집혀 망국지환(亡國之患)의 적폐를 계속하다가 오늘과 같은 치욕무비(恥辱無比)의 신세로 천락(賤落)했다. 이 모두가 그들이 쳐 놓은 멸망의 덫에 스스로 뛰어들었으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적폐통치(積弊統治)


통치자가 선혈(鮮血)을 뒤집어쓰고 온갖 고초를 다 겪는 장수에게 상을 주지 않고 오히려 교묘한 말재주로 아첨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장수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모래밭 위에서 숨을 거둬도 편히 몸을 뉘일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충신과 간신 사이에도 전도 현상이 있다. 충신들은 공무에 충실하고 법을 잘 지키며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통치자의 실책과 부당한 처사에 대해 직언을 올린다. 그런데 심기가 상한 통치자는 그들의 관직을 박탈하거나 지방으로 유배시켜 버린다.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반면에 간신들은 통치자를 하늘처럼 받들고 온갖 수단으로 아첨하여 통치자의 총애를 얻는다. 그래서 고관의 자리에 오르고 후한 녹봉을 타낸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고, 정당한 행위를 외면한 채 부당한 속임수를 일삼을 것이다.

 

충신과 간신 사이


세상에는 깊은 숲 속이나 바위동굴에 은거하면서 자신의 학문에 도취되어 있는 자들이 있다. 겉으로 보면 그들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눈은 사회에 못 박혀 있으며 자신의 관념으로 사회와 정치를 논한다. 크게는 세상을 질책하고, 작게는 백성들을 현혹시킨다.


그런데 통치자는 그들을 칭찬하고 명예를 부여하며 재물까지 선사해 그들의 생활을 돕는다. 그들은 아무런 공로도 없이 빛나는 명성과 부유한 생활을 만끽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영달에 만취한 자들이 이처럼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되면 한층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여 백성들의 정신을 혼란케 한다.


요즘 적폐본당의 심재철이란 자는 국회의원이란 신분을 악용, 국가기밀문서를 도둑질하여 마구잡이로 내용을 폭로하고, 국민의 알 권리라고 오도하고 있다. 얼마나 천박스런 변명인가.


또 이와 짝을 같이하는 수구반동의 사이비 언론과 가짜뉴스는 황당지언(荒唐之言)를 늘어놓느라 뱀처럼 혓바닥을 놀려대고 있다. 그러나 국민대중은 이에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그들의 중상모략이 추구하는 반국가 반 문재인 정권의 정서는 시작과 동시에 역풍을 맞고 파멸되고 말았다. 이 모두 하늘의 심오한 뜻이라 본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통치자가 명예를 부여하는 것은 현명한 선비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더러 실제 업무에 종사하는 관리를 멸시하는 자를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작위를 만든 것은 귀함과 천함의 등급을 구분하기 위해서인데 통치자는 자신에게 태만하고 자신을 알현하려 하지 않는 자를 현인이라 여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치자는 위엄과 녹봉으로 법을 집행하는 이들을 돕는다. 그런데도 녹봉과 위엄을 경시하는 자를 찬양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법령을 제정한 것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인데, 법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도덕의 완성만을 추구하는 자를 충신이라 여기는 예도 있다. 전도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 전도된 경우는 이처럼 허다하게 많다.
빈부의 뒤바뀜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나라에는 늘 식량이 필요하며, 그래서 농민들은 힘들게 농사를 지어 창고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통치자는 세금을 가중시켜 농민의 생활을 빈곤하게 만든다.


반면에 우스갯소리나 지껄이고 술과 음악에 빠져 전혀 생산에 보탬이 못되는 자들은 으리으리한 집에 고급차를 굴리며 비싼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통치자가 올바르다면 이런 현상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나라 엉망인 건 통치자 책임


나라가 잘 관리되지 않는 것은 통치자의 책임이다. 통치자가 스스로 법을 어겼거나 사심으로 법률을 대신했음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 처한 통치자는 마땅히 자기 자신을 반성해야 하고, 신하와 백성에게 준법을 요구해온 것처럼 자신도 법을 준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심을 품지 않고 오로지 만인을 위해 일한다면 개인적인 행동으로 자신이 제정한 법률, 제도를 동요시키거나 스스로를 모순되고 난처한 지경에 빠뜨릴 리 없다. 통치자가 사심을 품지 않으면 법은 자연히 지켜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나라의 통치자란 이명박·박근혜는 집권 초기부터 사리사욕에 혈안이 되어 재산 모으기에 광분한 나머지 돈이라면 인정사정없이 무소불식으로 포식하다가 결국 소화불량에 걸려 지금은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들은 그도 모자라 더 많은 사욕을 채우려고 양승태란 사이비 대법원장까지 끌어들여 국법을 농락하면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천년의 부귀영화를 꿈꾼 것이다.
어찌 하늘이 노하여 천벌이 없겠는가. 만고의 폭군 걸(桀)과 주(紂)의 추종자 이(李)와 박(朴), 그리고 천고의 간신적자 화신(和?)의 화신(化身)인 양(梁)의 최후를 국민대중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영리한 통치자는 뒤바뀐 일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방법을 안다. 그 시작은 반드시 통치자 자신이어야 한다. 사심을 없애고 세태에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과 법을 지키고 금기를 위반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하면 신하와 백성이 전도시켰던 일들이 본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께서 작심하고 통치의 본령인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정도에 발 벗고 솔선수범에 나섰으니 그 결과에 당연히 서광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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