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앙심 품고 잔혹 살해극...왜 자꾸 벌어지나?

가정폭력, 스토킹 외면! 전처, 애인 살해시도 한 해 60건이나...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11/07 [12:42]

이별 앙심 품고 잔혹 살해극...왜 자꾸 벌어지나?

가정폭력, 스토킹 외면! 전처, 애인 살해시도 한 해 60건이나...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11/07 [12:42]

최근 헤어진 가족, 연인 등을 살해하는 ‘보복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 전처 살인 사건에 이어 부산 일가족 피살 사건이 남녀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들 사이에서의 공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보복’ 위험성을 수사기관에 알렸음에도 사실상 보호받지 못하는 제도상의 허점을 범죄자들이 악이용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 피해자들도 하루하루 불안감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이별 앙심 보복범죄에 참극 잇따라…지난해 85명 희생
치밀했던 전처 살해범…GPS 달고 추적, 범죄 땐 가발까지


신고해도 도움받은 적도 없고, 두 시간 만에 풀려난 범인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더라도 과태료 부과뿐 강제력 없어

 

헤어진 데 앙심을 품고 연인은 물론 가족까지 무참하게 보복하는 사건이 잇따라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발생한 옛 연인 상대 범죄 피의자들은 과거 흉악범죄자들과 달리 특별한 정신병력도 확인되지 않아 그 잔인함에 충격이 더 크다.

 

▲ 최근 헤어진 가족, 연인 등을 살해하는 ‘보복범죄’가 잇달아 발생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    

 

전처 살해 사건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벌어진 전처 살해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 이모(47)씨를 피의자 김모(49)씨가 살해한 사건이다. 김씨는 이씨의 차량에 몰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설치해 위치를 파악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 또한 김씨는 범행 당일 가발을 쓰고 이씨에게 접근하는 등 주도면밀한 준비를 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을 피해 다니던 이씨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올해 8월 중순 이씨의 차량 뒷범퍼 안쪽에 GPS를 장착했다.


전 남편 김씨를 피해 수차례 거주지를 옮긴 이씨는 올해 3월 등촌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으며, 8월부터는 부천의 한 회사에 출퇴근했다. 이씨의 행방을 쫓아다니던 김씨는 이씨 회사 주차장에서 몰래 GPS를 단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딸들은 “어머니가 이혼 후 4년여 동안 아빠의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며 “이혼 후 6번이나 이사를 했지만,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집요하게 쫓아다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는 범행 약 두 시간 전 이씨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새벽 운동을 나가는 이씨를 기다렸다.
그는 흉기를 미리 준비했으며 신원을 숨기려고 범행 당시 가발을 쓰고 이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딸은 범행 현장이 찍힌 CCTV 영상을 보고 “제가 (아빠로) 지목을 했다”며 가발 쓴 아빠를 알아보고 경찰에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CCTV 영상 속 피의자를 알아본 사람이 맞느냐는 질문에 “제가 (아빠로) 지목을 했다”며 “일단은 머릿속에 떠올랐던 사람도 아빠”였다고 밝혔다. 그는 “CCTV를 봤을 때도 좀 머리가 수북하더라.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의아해했었는데 그게 설마 가발까지 준비해서 범행을 저질렀을 줄이야”라며 “치가 떨리고”라고 분노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CCTV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김씨가 범행현장을 서성거리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이를 근거로 김씨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판단했다.
CCTV 영상에서 김씨가 비틀거리는 듯한 모습을 포착한 경찰은 거리에 쓰러진 김씨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병원에서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범행 이후 수면제 2~3정과 함께 술을 섭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을 저지른 김씨는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 등으로 전 아내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김씨의 폭력성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딸은 유치원 때부터 밧줄로 손을 묶인 채 아빠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고 폭로했다.


딸 김씨는 이날 자신들은 어릴 적부터 아빠의 가정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폭력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렸을 때부터 그냥 계속. 유치원 다닐 때도 좀 맞아왔던 것 같다”며 “정말 피멍들 정도로 맞은 부위가 좀 부어올라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라고 회상했다.


그는 “(아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든가 말대꾸를 했다든가. 저희에게 지속적으로 해 왔던 말이 있다. ‘개도 맞으면 말을 듣는다’ 또 ‘짐승도 맞으면 말을 듣는다’”며 “‘너희는 맞아도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짐승보다 못한 XX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해 왔었다”고 맞은 이유를 전했다. 심지어 김씨는 밥을 펐는데 콩이 좀 들어가 있어서 맞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아빠가 때릴 때 손으로 제가 막고 하니까 밧줄로 손을 묶고 때리기도 했었다. 뭐 그냥 말보다는 손이 먼저 나가던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피멍이 정말 한여름에도 그렇게 맞아서 더운 날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딸은 앞서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글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에서도 아빠 김씨의 가정폭행의 일단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끔찍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엄마는 아빠와 살 수 없었고 이혼 후 4년여 동안 살해협박과 주변가족들에 대한 위해시도 등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딸은 국회 국정감사 장에서도 아빠 김씨에 대한 공포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딸은 “아빠가 이모들에게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고 해서 집에 갔더니 엄마가 아빠로부터 폭행당한 상태로 들어왔다”며 “맞아서 주름조차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부어 있었다. 피멍투성이였다”고 말했다.


‘친정 식구가 있는데도 말리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딸은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해 말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지만 무시당했으며, 김씨가 2시간 만에 풀려났다고도 했다. ‘지속적인 협박 이후 경찰의 보호나 격리조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도 “실질적으로 경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딸은 “그동안 (아빠의) 지속적인 협박과 가해가 있었다”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6번이나 장소를 옮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보복이 두려워서 경찰에 신고 못 한 적도 많았고, 경찰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해도 아빠가 두 시간 만에 풀려나 집에 돌아와 집기를 던지며 가족을 밤새 괴롭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딸은 청원글을 올리게 된 이유에 대해 “(아빠가) 심신미약으로 출소해 가족들에게 보복할까 너무 두려웠다”며 “평소에도 심신미약으로 6개월만 (감옥에) 살다 오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금도 그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쏟아지는 사례들


이 같은 보복범죄는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 들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월25일 밤 부산에서 발생한 ‘일가족 4명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주목된 신모(32·남)씨는 전날 오후 헤어진 연인 조모(33·여)씨 아파트에 들어가 조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조씨를 차례로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 지난 10월24일 일가족 살인사건 용의자로 신모(32)씨가 범행장소인 맨션으로 들어오는 모습. <사진제공=부산경찰청>    


신씨는 56가지 범행도구가 담긴 가방을 들고 들어가 참극을 벌였고, 지난 10월25일 밤 범행 장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신씨와 조씨는 지난해 8월부터 약 1년간 교제하다가 헤어졌다. 주변 인물들은 신씨가 조씨와 헤어지고 나서 상당히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신씨는 정신병력이 전혀 없었으며, 강력범죄 관련 전과도 없다. 피살된 조씨의 부모와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씨를 ‘사위처럼 생각한다’고 소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24일 밤 강원도 춘천에서는 심모(27)씨가 예비신부(23)와 신혼집 마련 문제로 다투다가 살해하고 시신 일부를 훼손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6월18일 부산에서는 20대 남성이 헤어진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옛 여자친구 아버지가 숨지고 여자친구와 어머니, 남동생이 다쳤다.


지난해 11월 충북 충주에서는 10대 남성이 교제를 반대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부산에서는 50대 남성이 헤어진 동거녀와 돈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동거녀가 운영하는 주점 앞 길거리에서 동거녀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혼인이나 데이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5명, 살인미수 피해 여성은 최소 103명이었다.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사례도 최소 55명에 달했다.


범행동기로는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가 가장 많았고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만남을 거부해서’가 그다음이었다. 지난해 데이트 폭력사건으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만 1만 명이 넘는다.

 

허술한 피해자 보호


이 같은 이별 보복범죄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토킹 처벌법을 조속히 시행하고 범죄 수법이 쉽게 공유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제대로 격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은 보복범죄를 두려워하며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사진출처=JTBC 뉴스 캡처>    


이번 사건의 피해자 이씨는 김씨의 폭력에 시달리다 두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권력은 무력했고 이씨는 결국 전 남편에 의해 살해됐다.


유족과 경찰에 따르면 첫 가정폭력 신고가 이뤄진 것은 지난 2015년 2월 15일이다. 이날 김씨는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이씨의 외도를 의심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이씨는 이날 오후 9시2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천 원미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상해 혐의로 김씨를 현행범 체포한 뒤 긴급임시조치 1·2·3호를 모두 내렸다.


긴급임시조치는 피해자 거주지로부터 가해자를 퇴거 및 격리하는 1호, 피해자 거주지 또는 직장 등에서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2호,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한 접근을 금지하는 3호로 나뉜다.
이어 법원은 김씨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가 끊임없이 이씨 집 주변을 배회하며 협박한 것이다.


두 번째 신고는 이로부터 약 1년 뒤인 2016년 1월 1일에 있었다. 남편을 피해 거주지를 옮긴 이씨는 이날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 인근 거리에서 남편과 마주쳤다. 그는 공포에 떨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씨가 김씨를 피해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김씨에 대해 특별한 조처를 하지는 못했다. 현행법상 가정폭력 사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즉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그만일 뿐이다.


한 법조인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가해자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며 “법원의 명령을 위반했을 때는 과태료가 아니라 형사처분을 받게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로부터 행위자를 격리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감호위탁’ 제도의 맹점을 지적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가정폭력 가해자를 별도의 시설에 격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감호위탁 시설이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고 피해자 보호시설이 감호위탁시설로 지정돼있는 경우가 많아 감호위탁 처분이 내려져도 집행이 안 되는 실정”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감호위탁 처분만 제대로 해도 가정폭력의 재발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 중심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보호시설에 들어갈 경우 학교나 직장과 너무 멀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심리 전문가는 “부산 일가족 살해사건처럼 이별 후 보복 범죄는 헤어진 여성에게 큰 상처를 주기 위해 지극히 비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가족까지 참혹하게 살해하거나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 상대 범죄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기 때문에 ‘스토킹 처벌법’이 조속히 시행돼야 보복 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 대책 시급


이처럼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기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보단 국민들의 불안을 낮출 수 있는 장기적인 치안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조속한 대책 수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진 장관은 “지난 10월29일 세 자매와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불안감을 느꼈다”면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내가 될 수 있다고 불안감에 떠는 가족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진 장관은 “법조인으로 가정폭력을 일반화시켜 법으로 담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며 “가정폭력이 일반화하기 어려운 개별성이 있지만 모든 위협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국회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 사범은 총 16만4020명이었다. 이 가운데 구속자는 1632명에 불과해 0.995%의 구속률을 보였다.

penfree@hanmail.net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