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계홍의 노·변·정·담

“보수언론 언제까지 문재인·북한 탓만 할 건가?”

글/이계홍(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1/21 [10:48]

칼럼니스트 이계홍의 노·변·정·담

“보수언론 언제까지 문재인·북한 탓만 할 건가?”

글/이계홍(칼럼니스트) | 입력 : 2018/11/21 [10:48]

참 이상하다. 미국이 오만한 태도를 보여도 문재인 탓이고, 평화를 위해 담대한 길을 걸어도 잘못된 길이다. 물론 평화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문재인이 걷는 평화의 행로는 ‘북한 대변인 역할’같다고 몰아붙인다. 근래는 경제 문제까지 남북문제와 결부시켜 ‘퍼주기’를 경계한다. 문재인이 다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옳은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망하기를 바라는 식으로 공격한다. 어떤 음모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결과일까, 보수 야당의 지지율이 10%대에서 20%대로 뛰어오르고 있다. 그 원인은 문재인 개혁이 주춤하고, 개혁세력 또한 피로증에 빠져 이완되고, 민생경제, 취업문제가 잘 돌아가지 않은 데서 온 것일 테지만, 이런 것을 콕 찝어 공격하는 보수 언론의 역할도 한몫했다고 본다. 잔 주먹도 여기저기 자주 맞으면 골병드는 이치와 같다.

 


 

보수매체 미국의 내정간섭 두둔…대체 어느 나라 언론인가?
사사건건 ‘이게 다 문재인 때문’…올바른 지적도 설득력 잃어

 

▲ 참 이상하다. 미국이 오만한 태도를 보여도 문재인 탓이고, 평화를 위해 담대한 길을 걸어도 잘못된 길이다. 사진은 2018년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미국이 UN 제재를 이유로 남북 철도회담에 제동을 걸자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몰아붙였다. 프랑스를 방문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며 ‘찌질이 외교‘라는 식으로 공격했다. 관련 각료에 대한 비판 역시 준엄하다. 본인 발언을 잡아 뗀다는 강경화 외교장관, 북한에 알아서 긴다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다.


남북 협력사업의 계획이 발표되자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내정 간섭적 발언도 문재인 정부 탓이다. 북한의 리선권이 평양 방문 중인 우리 대기업 총수에게 “면발이 목구멍으로 들어갑니까”라고 핀잔(?)을 준 것도 문재인 정부 탓이다.


이렇게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의 흠집 내기는 끝이 없다. 비틀고 배배 꼬고 야유하고 조롱하는 것은 하나의 ‘습관병’이 되었다. 근래는 북미 2차 정상회담 일정 연기도 북한 핵, 문재인 정부와 결부시켜 흠집을 내려는 모습이 보인다.


경제문제도 크게 초점을 맞춘다. ‘또 엇박자···미국, 남북 철도 착공 합의 제동’, ‘정부, 대북 제재 풀어 (비핵화 촉진 바라는)미국과 마찰 반복’, ‘북한에 빌려준 돈 3조 못 받았는데 통일부는 남북 철도·도로 예산 3526억을 비공개로 끼워 넣었다’….


미국 대사관이 평양을 방문했던 대기업과 산림청에 전화해 남북 협력사업 추진현황을 물었다고 한다. 미 재무부가 국내 은행에 전화를 걸어 “대북 제재를 지키라”는 압박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현황 파악이라지만 내정 간섭적인 태도가 분명하다. 이런데도 트럼프 정부를 꾸짖긴커녕 ‘미국 말을 듣지 않는다’고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다.


도대체 우리가 주권국가인가. 나라의 자존심과 주권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국가관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내정 간섭적인 외국을 오히려 두둔하고, 자기 정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라지만 어느 나라 국민이고, 어느 나라 언론인지 헷갈리게 한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사사건건 이런 식이니 올바른 지적도 설득력을 잃는다. 상투적 비난으로 들린다. 미국이 외교적 결례를 했으면 한 것이고, 오만하면 오만한 것이다. 그런데 총을 안쪽에 대고 쏘아대고 시비를 건다.

 

북을 향해 사사건건 야유


북한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 험악하게 굴절된 프리즘을 들이댄다. 북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모두 꼼수의 대상이다. 북을 악마화하고, 남한과 미국을 속이려는 집단으로 몰아간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면 위장평화 공세라고 의심한다. 돈 뜯어먹는 ‘거지’처럼 몰아간다.


김정은이 금년 신년사 이후 자신의 정책 오류에 대해 시인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김일성·김정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수령제 체제 하에서 과오를 인정한다는 것은 북한의 국가 정체성을 허무는 자기 부정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북이 변하지 않았다며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사사건건 야유를 보냈다. 지면을 할애해 그들의 서투른 행동, 실수를 부각하고, 독재자를 추앙하는 세뇌된 꼭두각시, 한심스런 충성 레토릭 따위를 희화화했다. 최근에는 집단체조까지도 학생과 주민을 혹사시킨 인권유린이라고 비난했다.


우리의 K팝 그룹은 어떤가. 전국 수백 개의 그룹들이 활동하는데 그들은 매일 10여 시간 이상 맹훈련을 하며 꿈을 키운다고 한다. 그런 피나는 노력이 세계 무대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강제에 의해 마지못해 연습하는 청소년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인권유린을 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집단체조는 20여 년 전 우리도 전국체전이나 각종 행사장에서 보았던 낯익은 풍경들이다. 그때 우리는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강제력을 발동하진 않았나. 주민의 덜떨어진 모습 역시 그제나 이제나 없을까.


북한의 수령제라고 하는 전체주의는 우리와 다른 정치 체제다. 우리와 다르면 나쁘고 틀린 것인가.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은 상당수가 왕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 나라에선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제한하고, 운전면허도 못 따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나라가 미개했다고 우리 보수 매체들이 우습게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사우디의 석유 자본을 부러워하지 않았나.


어떤 나라는 부모가 죽었을 때 도끼로 부모의 육신을 토막 내서 산꼭대기 바위에 널어놓고 독수리가 잘 쪼아먹고 가도록 한다. 그래야 부모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간다고 믿는다. 우리 식으로 보면 그런 불상놈들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불효자고 불상놈들이라고 그들을 욕하지 않는다. 그들 장례 풍속이니 그러려니 여기고 지나왔다.


북의 체제가 우리 체제보다 못한 것은 분명하다. 내 개인적으로도 저런 ‘왕정독재 국가’가 멸망하기를 바랐던 적도 있다. 김일성·김정일을 하루에도 수십 번 때려죽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세뇌되었다.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고, 저항이라는 것을 모르는 불쌍한 주민들을 동정했다.


그러나 비난과 대결적 태도가 북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대화단절과 끝없는 대결이 오히려 평화를 위협했던 것을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톡톡히 학습해오지 않았는가. 비핵화로 가고, 그 프로세스가 작동 중이니 추동력을 살려주면 될 것이다. 대결로 그것이 가능할 수는 없다.

 

진정성 없는 논지 위선일 뿐


보수 매체는 대체로 남한 우월주의와 냉전 대결주의 기조 아래 북을 보는 태도를 갖고 있다. 70년 체제 동안 관성이 붙은 결과일 것이다. 대결과 호전성, 비아냥과 조롱이 북을 그리는 기본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불과 30여 년 전까지 북한 못지 않은 독재정권 밑에서 숨죽이며 살았다. 자랑스럽게도 시민저항정신이 오늘의 민주화를 일구었다.


그때 보수 매체들은 어디에 있었나. 독재체제, 인권유린을 묵인한 가운데 사세를 확장한 것이 아닌가. 냉전반복 대결주의, 지역 분열주의 프레임을 증폭시키며 수구·보수 정권을 뒷받침해온 동맹군으로서 한 세상 군림하지 않았나. 남북대결과 남남갈등을 부추기며 이익을 나누며 수구보수의 성을 견고히 받쳐준 기둥이 되지 않았나. 그런 기득권이 상실되니 지금 패닉 상태인가. 그때가 잘못된 철학이었다고 자성의 시간을 가질 수는 없는가.


그러나 그런 DNA 탓일까, 여전히 대결을 조장하고 평화를 냉소한다. 증오와 저주의 시선으로 북의 집단을 보고, 지역을 쪼개려 한다. 겉으로는 평화와 단결을 말하지만 본질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진정성이 없는 논지는 위선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제작 의도대로 세상이 굴러갈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졌다. 국민 지성이 그런 낡은 대결 프레임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최선영 연합뉴스 통일외교 담당 기자가 <신문과 방송> 2018년 7월호에 기고한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과 언론 교류, 직접 취재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다. 북한도 하나의 국가이고, 그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가난하든 고되든 그들의 삶의 패턴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위장 쇼든 아니든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보수 매체들도 닫혀 있지 말고 변화하기 바란다. 평화가 일상이 되고 상수가 되는 곳에 더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신문지면은 사적·정파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국민에게 올바른 가치와 희망을 심어주는 그릇이다.

 

khlee0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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