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 19. 익뇨지계(溺尿之計)

통치자가 줏대 잃으면 나라도 중심 잃는다!

글/이정랑(중국 고전 연구가) | 기사입력 2019/01/23 [11:25]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 19. 익뇨지계(溺尿之計)

통치자가 줏대 잃으면 나라도 중심 잃는다!

글/이정랑(중국 고전 연구가) | 입력 : 2019/01/23 [11:25]

음모인 줄 모른 채 오줌 자국만 보고 불경죄로 신하 처형
통치자가 할 일은 ‘쭉정이 신하’ 제대로 가려 불태우는 것


지혜와 용기 남달랐던 손빈, 미치광이 가장하여 굴욕 견뎌
그의 정치책략 ‘대지약우’는 냉정한 사고와 인내의 힘 웅변

 

▲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1월9일 기해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출처=청와대>    

 

제나라에 이사(夷射)라는 중대부(中大夫)가 살았다. 어느 날 제나라 왕의 연회에 참석한 그는 얼큰하게 취해서 문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때 일찍이 다리를 잘린 문지기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적선을 간청했다. 이사는 화를 내며 꾸짖었다.
“벌을 받아 다리를 잘린 주제에 감히 내게 적선을 바라다니!”


이사가 간 뒤, 그 문지기는 이사가 서 있던 곳에 둥글게 물을 뿌렸다. 꼭 누군가 소변을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 제왕이 나와 그것을 보고 누가 저지른 짓이냐며 따져 물었다. 문지기는 전날 중대부 이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고해 바쳤다.


제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사를 잡아 죽였다. 이사는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화를 자초했으며, 제왕도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고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통치자의 주관과 조종


위나라 왕이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미녀를 선물로 보냈다. 회왕은 대단히 기뻐했고 왕비인 정수(鄭袖)는 그보다 훨씬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수는 미녀에게 맘에 드는 옷과 노리개를 맘대로 골라 가지게 했다. 회왕은 그 광경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한번은 정수가 미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대왕은 너를 좋아하시지만 네 코는 별로 맘에 드시지 않나 봐. 앞으로 대왕을 뵐 때 코를 가리고 있으면 더 오랫동안 총애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미녀는 정수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얼마 후, 회왕이 궁금해하며 정수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왜 나를 보면 늘 코를 가리는 거요?”


정수는 처음에는 잘 모르는 척하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대왕의 몸 냄새가 싫은가 봅니다.”
회왕은 노기가 충천해서 그 미녀의 코를 베어버리게 했다.


군주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자칫 신중함을 잃으면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데 이건 절대로 사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군주 자신에게도 해를 끼친다. 그런 행위를 본 사람들이 그를 어리석고 잔인하다고 생각하여 점차 따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통치자는 주관을 갖고 신하들을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옳다고 할 때 덩달아 옳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할 때 역시 덩달아 틀리다고 하면 통치자는 결국 남의 조종을 받게 되며 나라도 중심을 잃을 것이다.

 

쭉정이 가차없이 가려내야


악한 것의 본성은 선한 것 사이에 숨어 지내길 좋아한다. 무능함은 유능함 사이에 숨고 갈등은 화목 사이에 숨어 병균처럼 기생한다. 세상에서 다툼을 일으키는 모든 씨앗은 평화의 밭에서 양분을 훔쳐 먹는다. 통치자가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무위도식하면서 그 조직이 가진 역량을 축내는 사람들이 있다. “열 명이 있으면 두 명은 놀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통치자가 시급히 할 일은 이들 쭉정이를 가려내 불태우는 것이다. 쭉정이가 자라온 농토를 폐허로 만든 뒤라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통치자를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손가락질 받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몇몇의 참모들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사람은 늘 있어왔다. 늘 있어 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통치자는 범인(凡人)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쭉정이를 없애야겠다고 나서는 통치자가 훌륭할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정에 속아, 귀찮아서, 그가 인기가 있으니까, 이권에 도움이 돼서 등등의 이유로 쭉정이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그 통치자는 쭉정이 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 통치자가 시급히 할 일은 쭉정이를 가려내 불태우는 것이다. 쭉정이가 자라온 농토를 폐허로 만든 뒤라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진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어리석은 듯한 큰 지혜


노자(老子)에 보면 “가장 떳떳한 사람은 마치 겸손한 것 같고,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은 마치 졸렬한 것 같고,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마치 말더듬이같다”는 구절이 나온다.


장자(莊子)에도 노자의 말을 끌어다 “위대한 기교는 졸렬하게 보인다”는 말을 하고 있다. 말인즉슨, 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 서툴고 어리석어 보인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소식(蘇軾, 소동파 蘇東坡)은 벼슬길에 오르는 사람을 위한 축하의 글에서 “위대한 용기는 겁을 먹은 것 같고, 위대한 지혜는 어리석은 것 같다. 지극한 존귀함은 면류관이 없어도 영광스럽고, 지극한 어짊은 장생(長生)의 묘책을 쓰지 않아도 오래간다”고 말한다.


본래 지모가 뛰어난 사람은 일부러 멍청하게 보이려 한다. 이 계략은 마음속에 품은 원대한 포부를 감추고 특정한 정치적·군사적 의도를 실현시키려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지혜로우면서도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할 수 있으면서도 못하는 것처럼 꾸며 상대를 속이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방연의 음모와 손빈의 전략


239년, 위(魏)나라 명제(明帝) 조예(曺睿)가 병으로 죽자 겨우 여덟 살 난 조방(曺芳)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 사마의(司馬懿)는 태부(太傅)로 승진했고, 병권은 대장군 조상(曺爽)이 장악했다. 조상은 조정을 마음대로 주물렀고 이 때문에 사마의와 틈이 벌어졌다. 병권을 회수할 마음을 먹은 사마의는 일부러 늙고 병들었다는 핑계로 짐짓 본색을 감추었다. 조상은 그것을 진짜로 믿고 대비책을 소홀히 했다.


249년, 위 가평(嘉平) 원년 정월, 사마의는 조상이 황제를 모시고 고평릉(高平陵, 위 명제 조예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틈을 타 태후의 가짜 의지(意旨, 태후가 내리는 각종 명령문서)를 내려 성문을 걸어 잠그고 사도(司徒) 고유(高柔)를 보내 조상의 군영을 점거하게 했다. 그런 다음 황제에게 조상의 죄상을 고해바쳤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조상을 면직시켰다. 사마의는 이어서 군대를 보내 조상의 집을 포위한 다음 반역죄로 조상 및 그 일당을 모조리 죽였다. 이로써 조정의 실권은 사마의에게 돌아갔다.


전국시대의 전략가 손빈(孫?)은 동문인 방연(龐涓)보다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귀곡자(鬼谷子) 밑에서 공부했다. 귀곡자는 성품이 소박한 손빈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아 손빈의 선조인 손무(孫武, 손자 孫子)가 지은 병서 13편을 그에게 몰래 전수해주었다.


뒷날 방연은 위(魏)나라의 대장이 되었고, 손빈은 방연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방연은 손빈이 스승으로부터 자기 몰래 병서를 전수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손빈을 향한 방연의 질투심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방연은 위나라 혜왕(惠王)에게 손빈이 다른 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무고하고, 손빈에게 월형(다리를 자르는 옛날의 가혹한 형벌의 하나, 무릎을 뜻하는 ‘빈’자를 써서 ‘빈형’이라고도 하는데 양 무릎 뼈를 발라내는 지독한 형벌이다)을 내려 도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손빈은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혹한 형벌을 당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방연은 이런 손빈을 은밀한 곳에다 데려다 놓고 잘 먹이고 친절히 대하는 시늉을 했다. 손빈은 그것도 모르고 방연 앞에서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 방연은 기회를 엿보아 손빈이 전수받은 병법을 빼앗을 속셈이었다.


그러나 손빈은 그것을 기록해두지 않아 일부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방연은 목간(木簡, 종이가 발견되기 전에 글을 기록하던 나무판. 대나무로 된 것을 ‘죽간(竹簡)‘이라 한다)에다 기억을 더듬어 그 내용을 베끼도록 했다. 그 일이 끝나면 손빈을 굶겨 죽일 셈이었다.


그런데 손빈을 감시하라고 방연 자신이 심어놓은 시종이 방연의 음모를 손빈에게 알려주었다. 그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손빈은 탈출계획을 생각해냈다.

 

미치광이 시늉에 담긴 뜻


그는 본래 원대한 포부를 가진 군사 전략가가 아니던가! 그날 저녁으로 손빈은 실성한 사람으로 꾸몄다. 울다가 웃다가 통곡하다 폭소를 터뜨리고, 온갖 멍청한 표정을 다 지어 보이고, 침과 거품을 질질 흘리며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껴놓은 목간을 모조리 불에 태워버렸다.


방연은 그가 일부러 미친 척한다고 의심해서 손빈을 똥통 속에 처넣어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게 했다. 손빈은 똥통 속을 기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방연은 다시 사람을 시켜 술과 밥을 주며 은근히 떠보게 했다.
“드십시오, 방연 나리께서는 모르십니다.”


그러자 손빈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연신 욕을 퍼부었다.
“너희들이 나를 독살시킬 속셈이지?”


손빈은 음식물을 모조리 땅에 내팽개쳤다. 이번에는 흙과 오물을 갖다 주도록 했다. 손빈은 그것을 맛있는 음식이라며 마구 퍼먹었다. 방연은 그제야 손빈이 확실히 정신 이상이라고 믿고 의심을 풀었다.


이때 묵적(墨翟-묵자)의 제자 금활리(禽滑厘)가 위나라에 왔다가 손빈의 처지를 알고 제(齊)나라 상국(相國, 수상) 추기(鄒忌)에게 보고했다. 추기는 이를 다시 제나라 위왕에게 보고했다. 위왕은 변사 순우곤을 위나라로 보내 혜왕을 만나게 하는 한편, 몰래 손빈을 수소문해 비밀리에 제나라로 모셔오게 했다.


지혜와 용기가 남다른 손빈은 깊고도 깊은 함정에 빠졌을 때, 냉정한 판단력으로 미치광이로 가장하여 엄청난 수치와 굴욕을 견디며 끝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다. 정치책략으로서 ‘대지약우(大智若愚)’는 우리에게 냉정한 사고와 불굴의 인내가 갖는 위대한 힘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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