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중고서점 확장의 빛과 그림자

“저렴한 책 좋다지만”…영세서점·출판계 ‘냉가슴’

송경 기자 | 기사입력 2019/02/22 [16:48]

기업형 중고서점 확장의 빛과 그림자

“저렴한 책 좋다지만”…영세서점·출판계 ‘냉가슴’

송경 기자 | 입력 : 2019/02/22 [16:48]

기업형 중고서점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기 시작하면서 출판계가 긴장하고 있다. 2011년 9월 서울 종로에 알라딘 중고서점 1호점이 등장한 이후 알라딘은 오프라인에서 43개의 중고서점을 냈다. 온라인서점 예스24도 지난해 서울 강남역 인근에 중고서점을 열고 200미터 거리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도전장을 던졌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시작한 중고책 매입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으며 매달 30%씩 매출이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본격적인 오프라인 중고서점들이 경쟁을 하듯 간판을 내걸었다. 예스24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지난해 4월 국내 최다 매장을 갖고 있는 영풍문고와 중고도서 매입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영풍문고 여의도 IFC몰과 코엑스점, 종로점에서 고객들이 중고책을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오프라인 중고도서 시장을 주도해온 알라딘도 잠실롯데월드타워점을 오픈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기업형 중고서점이 늘면서 신간시장의 10%가 증발하는 등 출판 생태계를 망가뜨린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알라딘·예스24·개똥이네 영역 확장해가자 출판계 초긴장
기업형 중고서점 늘면서 신간 10% 증발 등 출판시장 교란

 

▲ 기업형 중고서점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기 시작하면서 출판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    

 

2017년 11월부터 도서정가제 시행됐다. 이 제도는 동네 서점 활성화와 책값 거품 제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책값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구매 자체를 꺼리면서, 2017년 한 해 가구당 평균 도서 구입비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렇게 출판 시장이 얼어붙는 동안 중고책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르며, 또 다른 논란을 만들고 있다.


2003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책값 할인률을 최대 10%까지로 정했지만, 서점이 아닌 중고상품 업종으로 분류된 중고서점에서는 할인폭에 제한이 없다. 일종의 유사서점인 기업형 중고서점이 빈틈을 파고들면서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힘입어 중고책 시장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전체 중고책 매출의 80%는 알라딘, 예스24, 개똥이네 등 극소수 기업형 중고서점들이 독점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에는 절판된 책이나 중고 책을 저렴하게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찾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는 헌책방이 줄어들고, ‘중고서점’이 점차 늘고 있다. 헌책방과 중고서점. 의미는 같지만, 각각의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은 미묘하게 다르다. 우리에게 익숙한 헌책방은 외관부터 오래된 느낌이 드는 작은 가게에,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모습으로 곳곳에 쌓인 책들, 그리고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뒤섞인 공간이다. 반면,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고서점은 일반 대형 서점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매장과 편리한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기업형 중고서점의 대표주자인 알라딘은 오프라인 중고서점 43곳을 운영하고 있다. 알라딘의 당기 순익은 중고서점을 처음 낸 2011년 34억9963만 원에서 2017년 102억4767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중고서점 매장을 열기 전인 2010년 당기 순이익이 22억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중고서점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스24 6개, 개똥이네 38개 등 지명도 높은 곳을 합치면 기업형 중고서점만 86개에 이른다. 그만큼 찾는 이도 파는 이도 많다는 얘기다. 도서정가제 이후 할인 혜택이 줄어들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소비자들이 중고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신간을 중고책으로 내다 팔면 정가의 최고 50% 까지 받을 수 있다. 책을 판 수익으로 막 중고 시장으로 나온 따끈한 신간을 사면 책 한 권 값으로 거의 신간 두 권을 사는 셈이다.


중고책을 사고 파는 서비스가 점점 편리해지는 것도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앱이나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팔 책을 치면 바로 구입가가 뜨고 직접 서점이 책을 수거해가기 때문에 안방에 앉아서 중고책을 쉽게 팔 수 있다. 한편으론 실물을 보고 바로 사고 팔 수 있는 매장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점도 시장을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렇게 중고책 판매종수가 다양해지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어진 고객들의 관심도 늘 수밖에 없다.


온라인 중고책 시장은 독자들이 거래하는 오픈마켓 형태로 시작했다. 오프라인 중고서점은 알라딘이 2011년 9월 종로에 처음으로 문을 열면서 틈새시장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시장은 폭발적이었다. 알라딘의 2012년 중고서점 매출은 39%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보였다. 알라딘은 2013년 36%, 2014년 13%, 2015년 14%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온라인 서점의 전반적인 수익률 저하 속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예스24가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은 2014년 11월. 예스24로선 판이 커지는 중고책 시장을 경쟁사 홀로 독식하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중고책 매입 서비스인 ‘바이백 서비스’를 시작하자 4개월 만에 신청 종수 및 판매 부수가 20배 이상 증가했다. 신간을 사서 읽고 되팔면 반값을 돌려주는 바이백 서비스가 도서정가제 이전, ’할인의 추억‘을 지닌 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주효했다.

 

진화하는 중고서점 시장


오늘 들어온 책 ‘1800권’
중고서점 알라딘은 매장 밖 화면을 통해 매일 몇 권의 책이 들어오는지 실시간으로 공개한다.
2018년 기준으로 중고서점을 43곳으로 늘린 알라딘은 매일 중고서적을 팔고 사는 이들로 매장 안이 북적인다. 알라딘은 하루 동안 매입하는 책은 80만 권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중고서점 시장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알라딘의 성장에 질세라 온라인 서점 예스24도 2016년 개장한 서울 강남 매장을 비롯해 총 6곳에서 중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예스24는 오프라인 서점인 영풍문고와 중고도서 매입 제휴를 맺어 고객들이 중고서적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책 판매를 원하는 고객은 영풍문고 여의도 IFC몰과 코엑스, 종로점에 방문해 중고책을 팔 수 있다. 이렇게 갈수록 중고책 서점 이용자가 늘며 서점 업체들이 경쟁을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7년 11월부터 도서정가제가 시행됐다. 도서정가제는 서점이 출판사가 정한 가격보다 책을 더 저렴하게 판매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날, 일부 서점에서는 책을 50% 대폭 할인해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서적 할인 혜택은 줄어들었고 소비자들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중고서점으로 몰린 것이다. 상태가 최상인 신간을 중고책으로 팔 경우 본래 가격의 최고 50%까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또한 만 원도 안되는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어 책을 자주 구입해서 보는 이들에겐 큰 이득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알라딘 중고매장의 경우, 정가가 14000원인 책을 약 8400원으로 구입할 수 있어 거의 절반가량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이에 일부 고객들은 책장 속 묵혀둔 책들을 캐리어에 싣고 와 한꺼번에 처분하는 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중고서점의 편리한 거래 서비스도 많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매장에 들어서서 번호표를 뽑은 뒤, 책 상태를 평가받고 판매 수익을 그 자리에서 바로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만약 온라인 거래를 원하는 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상 매입가가 얼마인지 확인하고 책을 수거하는 서비스를 택할 수 있다.


하지만 알라딘이 웃을수록 영세서점의 불황은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7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온오프라인 중고서점 실태조사’에서 지역 서점 96곳의 대표들에게 ‘기업형 중고서점이 출판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물은 결과 72.9%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서점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은 67.7%, ‘장기적으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76%였다. 출판사도 달갑지 않은 시선이다. 기업형 중고서점의 무분별한 확장은 신간 시장을 위축시키고 다양한 새 책이 출간돼 출판산업을 살릴 길을 막는다며 우려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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