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지옥극장(地獄劇場) 선감도(仙甘島) 부랑아 수용소의 비극 7

“거지들과 다니다 보면 에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게야”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4/06/30 [11:05]

김영권의 장편소설 지옥극장(地獄劇場) 선감도(仙甘島) 부랑아 수용소의 비극 7

“거지들과 다니다 보면 에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게야”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4/06/30 [11:05]

▲ 전국을 방랑하던 거북이가 다리 밑으로 돌아온다. 그의 장타령은 누구의 타령보다 구성지고 모든 각설이가 그의 뒤를 따른다. 사진은 영화 ‘각설이 품바 타령’ 한 장면.    

“에미가 빵 사온다 해놓구 그대로 함흥차사라니 알쪼 아니겄남?”
이러다 엄마 만나기 전에 죽는 게 아닐까? 용운은 이를 악물었다

 
거지 아이

고적한 밤이면 먼 바다 쪽에서 아스라이 해조음이 들려오고, 뒷산에서는 두견새가 애끊는 소리로 울곤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불현듯 가슴이 막막하고 구슬퍼졌다.
용운은 자리에 누웠으나 쉬 잠들지 못했다. 낮에 벌어졌던 이런저런 일들, 특히 잔칫집에서 음식을 얻어먹던 원생들의 모습이 용운을 과거로 이끌어 갔다. 살아온 인생은 짧지만 지난날의 여러 가지 체험이 주마등처럼 그의 작은 머릿속을 맴돌다가 스쳐갔다.
지금 이곳엔 왜 와 있는 것인가? 하루빨리 엄마를 찾아나서야 할 때 여기서 무엇 하는 것인가? 자꾸만 엄마가 마산포 어귀에 와서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을 듣다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죽여 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엄마…왜 저를 버리셨지요? 제가 그렇게도 미웠던가요?’
용운은 속으로 외치며 탄식했다. 눈물 한 방울이 돋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밀 듯이 덮쳐 오는 엄마 생각에 젖은 용운은 옛 추억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갈 곳 없는 어린 떠돌이에게 밤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행인들의 왕래도 뜸해져 갔다. 무작정 밤거리를 헤매던 끝에 용운이 우연히 찾아든 곳은 청계천 다리 밑이었다.
다리 아래로 거적으로 대충 엮은 오두막이 하나 보였다. 안에서 사람들의 두런거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용운은 망설임 없이 도둑고양이처럼 첫 번째 교각 아래로 내려갔다. 숨어서 밤을 보내기에도 적당했고 가까이에 사람이 있어 덜 무서우리란 생각에서였다. 둑의 경사가 심해 뒤돌아 앉아 교각 하나를 등받이로 삼아야 했다. 무척 추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앉았으니 다시금 고독과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음울하면서도 순정스러워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떨렸다. 엄마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앞으로 이런 괴로운 날들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대체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지경이 돼야 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희미하나마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없지 않았다. 어느 이름 모를 개천과 산 언덕배기를 해 떨어지는 줄 모르고 쏘다니며 뛰놀던 추억이었다. 강물은 시리도록 맑았고 금왕산엔 유독 진달래꽃이 화려했다. 하지만 그런 추억은 아스라한 느낌일 뿐 뚜렷하게 가닥이 잡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가 끈으로 자신을 목 졸라 죽이려 했던 것도 같은데, 그 또한 모호하고 희미해 긴가민가하긴 마찬가지였다. 기이하게도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그런 일들이 마치 수십 년 전의 일이라도 되는 듯 까마득하고 아슴아슴했다.
제풀에 코끝이 찡해진 용운은 훌쩍훌쩍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게 우는 게 누구여?”
용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번째 교각 저쪽에 웬 거지 하나가 누워서 고개를 빼들고 있었다. 교각에 가려져 머리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늙은이였다. 용운은 맥없이 대꾸했다.
“저는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엄마가 뭐여?”
“엄마요. 엄마가 빵 사온다고 해놓고 가더니 안 와요.”
“너 사는 디는 워딘데?”
“푸른 산이랑 강이 있는 데요.”
“산이랑 강은 어디에나 있지. 그래 그게 어디여?”   
용운은 도리질을 했다.
“몰러?”
또다시 도리질을 했다.
“고것밖에 아는 게 없단 말이여?”
“네.”
노인은 알 만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도로 머리를 뉘었다.
용운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았다. 이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안 이상 마음놓고 흐느낄 형편도 못 되었다. 뱃속에서 연방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온몸에 맥이 빠져 그냥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다리 밑을 스치는 찬바람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너 언제까장 그러고 있을겨, 이놈아.”
굼벵이처럼 잔뜩 움츠리고 있으려니까 노인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용운은 말없이 그냥 있었다.
“어여 이리로 와.”
노인이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말했다. 용운이 쭈뼛거리며 그 교각 뒤로 돌아가 보니 뜻밖에 그곳엔 바람막이 거적까지 쳐져 있었다.
“얘, 이걸로 깔구 덮거라.”
노인은 둘둘 말아 베고 있던 푸대자루를 빼내 용운에게 주고는 대신 옆에 있던 군용 반합을 끌어다 목침으로 괴었다. 푸대자루는 껄끄러웠지만 두 겹이었던 탓에 추위를 견딜 만했다.
용운이 자리를 잡고 눕자 노인은 지혜로운 예언자나 도인처럼 굴면서 여러 가지를 에둘러 물었다. 용운은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의 모습과 헤어진 경위 등을 가능한 한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그 설명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것저것 주절거리다가 누가 자기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었다는 둥 쓸데없는 얘기만 내뱉었을 뿐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영감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크게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나 용운에겐 전후 내막을 제대로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그때 세 번째 교각의 오두막에서 한 사내가 거적문을 들치고 나왔다. 수염이 텁수룩한 그 중년 사내는 밤인데도 다 해져 너덜거리는 벙거지를 덮어쓰고 있었다.
“영감, 그 꼬맹이는 뭐요?”
용운을 발견한 그가 물었다.
“으응, 에미를 잃었다는구먼. 하기사 뭐 뻔한 짓이지만.”
“뭐가요?”
“아, 에미가 빵 사온다고 해놓구 그대로 함흥차사라니 알쪼가 아니겄남?”
“흐음…오늘 그랬대요?”
“며칠 안 됐나 보네. 그런디 들어 보니 뭔가 사연이 있는 앤가 보구먼 그려.”
“왜요?”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겄지만, 누가 끄나불로 저를 목 졸라 죽일라구 했었다나.”
“뭐요?”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인디 그것 말곤 다른 건 당췌 기억을 못하는구먼 그려.”
그러자 사내가 직접 용운에게 물었다.
“꼬마야, 그게 진짜냐?”
“네….”
“누가 그랬는데?”
“음…잘 몰라요.”
“아니, 널 죽이려 했는데도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용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집 주소는?”
“몰라요.”
“그럼 니가 아는 건 뭐냐?”
“없어요.”
그때 다시 노인이 나섰다.
“글쎄 이렇다니께.”
“보아하니 머리가 좀 돈 모양이네요. 누가 죽이려고 했다는 것도 어느 밤에 꿈꾼 걸 가지고 사실로 착각하는 모양이로군.”
“그럴까?”
“뻔하잖수. 그렇지 않구야 에미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다는 놈이 그거 하나만 달랑 기억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유?”
“흠, 듣고 보니 그렇구먼 그랴. 그나저나 워짠댜? 내일 경찰서에라도 데려다줘야 되는 거 아닐까?”
“그래 봐야 고아원 행이지 별거겠수? 놔둬요. 팔자대로 돌아다니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도 제풀에 끌려가게.”
사내는 시큰둥하게 말하곤 일어섰다.
아침이 되어 용운은 시끌벅적한 소란에 눈을 떴다. 오두막에서 한 떼의 거지들이 몰려 나오고 있었다. 구걸을 나가는 모양이었다.
“항시 얘기하지만 거지는 몰려다니는 게 아니다. 따로따로 다녀야 실속이 있다는 걸 명심해라. 알아들었냐?”
거지 왕초가 점잖게 한마디 던지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의 그 사나이였다.
노인이 용운에게 말했다.
“너 깡통 없냐? 안 굶어 죽을라문 동냥을 나가야 할 텐디.”
“나는 엄마 찾으러 갈 거예요.”
“뭐? 어디루?”
“멀리 남산으로요.”
막연한 대답이었다. 영감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랴? 뭐 너 좋을 대루 하거라. 안됐긴 하다만 니가 그라겄다는디 뭘 어쩌겄냐? 하지만 돌아댕기다가 잘 데 없걸랑 또 오거라.”
노인은 지팡이를 질질 끌며 둑 위로 사라져 버렸다. 어린 소년이 딱하게는 생각됐겠지만 그 역시 코가 석 자인 거지 입장으로 시시콜콜 감상에 빠질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용운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순간 눈앞이 핑 돌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겨 보려니 자꾸 헛디뎌졌다. 기다시피 간신히 둑 위까지 올라갔다. 더 이상 기운도 없는데다 다리가 몹시 후들거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진땀이 솟고 손까지 떨렸다. 하늘도 온통 노랗게 보였다. 혹시 이러다가 엄마도 만나기 전에 죽는 게 아닐까? 용운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느릿느릿 걸어도 숨이 찰 지경이었지만, 쓰러져도 사람 사는 동네로 들어가서 쓰러져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한 걸음 걷다 쉬고 두 걸음 걷다 쉬고 하면서 거의 반나절이나 걸려 어떤 동네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용운은 양지바른 어느 집 대문 앞에 퍼질러 앉아 버렸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풀어지면서 의식이 까무러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인기척과 함께 등 뒤의 대문이 열렸다.
“너 누군데 여기 있니?”
“배가…너무 고파서요.”
“쯧쯧, 하늘도 무심하지.”

“어차피 이리 된 거…고아원 가기 싫거든 왕초네 식구 되는 게 어떠냐?”
“먹고 사는 게 중요하냐? 살기 위해 먹느냐? 구걸할 때 항상 명심하거라”

 
잠시 후 여자가 밥그릇을 들고 나왔는데, 양푼 속에 밥과 김치가 아무렇게나 쏟아져 있었고 녹때가 퍼런 숟가락이 한 개 꽂혀 있었다. 용운은 살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허겁지겁 퍼먹었다. 목이 메고 손이 떨려 밥알이 자꾸만 땅 위로 떨어졌다.
허기를 채운 용운은 문설주에 기대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어둑해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운은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걸었다. 하루 종일 헤매다 지친 용운은 다시 노인에게로 향했다. 노인은 구걸해 온 저녁을 먹고 있었다.
“왔냐? 그래, 많이 댕겨 봤구?”
“조금요.”
“밥은 어떡했냐?”
“어떤 아줌마가 줘서 먹었어요.”
“그랴? 그럼 고단하걸랑 저것 깔고 눕거라.”
▲ 최부자댁 잔칫날, 흥겹게 장타령을 불러 음식을 많이 가져오고 송충이는 읍내에서 이쁜이라는 처녀를 데리고와 잔치가 벌어진다. 사진은 영화 ‘각설이 품바 타령’ 한 장면.    

노인은 더러운 옷자락으로 숟가락을 닦아내며 말했다. 식사를 마친 노인은 찌그러진 반합을 치우고 접힌 푸대자루 틈에서 작은 종이상자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꽤 많은 담뱃가루가 들어 있었다. 영감은 그것을 조금 꺼내 찢은 신문지 위에 놓고 침을 발라 말며 중얼거렸다.
“토끼나 개가 제 새끼를 잡아먹는 것도 서로가 한 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다는데…쯧쯧, 애당초 까지르지나 말 일이지….”
그것이 누구를 두고 하는 소린지는 알 수 있었으나, 아무튼 노인은 혼자 구시렁대는 것이 버릇인 모양이었다. 담배 한 대를 구수하게 피우고 난 영감이 꽁초를 개천으로 던지며 가래침을 뱉었다.
“이제 그만 자자. 얻어먹는 사람한테는 잠 많이 자두는 것도 한 밑천이니.”
그때 건너편에서 텁석부리 사내가 또 모습을 나타냈다.
“영감, 출출한데 술이나 한잔 합시다.”
푸대자루를 깔려던 영감의 눈에서 빛이 났다.
“잉? 아니 어쩐 술이랴?”
“저 건너 가고실에 오늘 누구 혼례 날인가 봅디다. 우리 촉새 놈이 가서 얻어왔는데 부잣집인지 제법 걸지게 달렸수.”
텁석부리 사내 뒤에는 열댓 살쯤 되는 아이가 따르고 있었는데, 한 손엔 막걸리 또 한 손엔 음식 담긴 깡통이 들려 있었다.
“가고실 쪽은 왈패들 구역인데 용케 얻어왔구만.”
“우리 촉새 놈이 어떤 놈이오? 이놈 눈치라면 아마 지옥에서 잔치를 벌인대두 기어 들어가 얻어올 거요.”
거지 아이가 신문지를 깔고 깡통을 엎었다. 부침개와 밥을 비롯한 갖가지 나물이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허연 돼지비계가 때마침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아이구, 맨날 시어빠진 김치 부스러기더니만 오늘은 덕분에 포식하겄구먼.”
노인이 입맛을 다시며 헤벌쭉 웃었다. 이빨이 빠져나간 불그죽죽한 잇몸이 다 드러났다. 노인의 반합뚜껑에 막걸리를 따르던 텁석부리 사내가 곁눈질로 용운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꼬맹이 또 왔구만.”
“아침에 에미 찾겄다구 나가더니 이슬 피할 데가 없으니 또 왔구먼 그려. 그나저나 당췌 맘이 편치 않구먼. 저것도 산 목숨인데 말여.”
“그럴 거요. 어린 거지 애들이 때로 사람 마음을 여간 심란하게 만드는 게 아닙디다. 대부분 전쟁고아들이라 그런지 눈만 한번 부릅떠도 먼 산 보고 질질 짜질 않나, 꿈속에서 지 어매를 찾으며 헛소리를 하지 않나….”
그는 문득 빈 깡통을 챙기는 아이에게 명령을 했다.
“야, 떡 남은 거 좀 있냐? 저놈 조금 갖다줘라.”
“깡수 형 줄라고 냉긴 백설기 한 개밖에 없는디요.”
“아, 잔칫집서 실컷 먹었을 거 아니냐? 잔소리 말고 얼른 갖다줘.”
“야, 알았어유.”
재빨리 개천을 건너간 아이가 잠시 후 식은 떡 한 덩이를 가져와 건네었다. 천덕스런 거지들에게도 인정은 있는 모양이었다. 텁석부리 사내가 큼직한 비계 한 점을 김치에 싸서 입속으로 우겨넣었다. 그러고는 입가를 쓱 문지르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구 저 꼬맹이는 어떻게 할 거요? 저렇게 또 찾아오는 걸 보니 앞으로도 계속 올 것 같은데 말요.”
“그러게 말여. 잠이야 재워 준다고 했으니께 오는 거야 상관없지만….”
“꼬마야, 너 어디 살았는지 정말 기억이 안 나냐?”
“예….”
“그럼 말이다, 네 발로 가까운 경찰서엘 한번 찾아가 봐라. 그래서 어디 보육원이라도 들어가야지, 무작정 이러면 어떡할 거야, 응?”
용운이 묵묵히 듣기만 하자 한참을 더 타이르던 텁석부리 사내는 피곤한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텁석부리 사내가 돌아간 뒤 자리를 깔고 눕기 무섭게 노인이 주절주절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니가 어쩌다 이렇키 됐는지 자세히 모르겄다. 밑도 끝도 없는 니 말을 어디까지 믿어얄지도 모르겄구 말이야.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고아원에 가기 싫거들랑 털보 왕초네 식구라도 되는 게 어떠냐? 험한 시상 죽지 않고 버틸라문 그렇키래두 해야지. 무작정 에미만 찾을라는 니가 안되어서 하는 소리여.”
“괜…찮아요.”
“괜찮다니? 배를 곯는데도 괜찮어?”
“예….”
“거지들은 안 가는 데가 없단다. 그러니 그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에미를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정말인가요? 그럼 할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어요.”
용운은 재빨리 말했다.
노인은 한숨을 쉬며 언제까지고 용운을 멀뚱멀뚱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멀리서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똑바로 누워 있던 용운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자 노인은 한숨을 푹 쉬더니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지들에게도 엄한 법이 있어서 남의 구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고 도둑질은 더욱 금물이니라. 동냥을 할 때는 끼니때가 조금 지난 뒤에 가는 게 예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이 도리니라. 알겠느냐?”
“예.”
“먹고 사는 게 중요하냐? 살기 위해 먹느냐? 구걸할 때마다 이 문제를 항상 명심하거라. 비천한 신세이지만 거지에게도 좋은 점은 있단다. 모든 걸 다 놓아 버리고 아무 욕심도 없이 자유롭게 한 세상 떠돌다 가는 것도 한 가락 낭만은 있지 않겠나. 부귀영화도 좋지만 욕망과 소유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곧 천당이니라.”
“예.”
노인은 도사처럼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네 이름이 용운이라 했겄다? 음,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용의 운수로구나. 그걸 네 운명이라 생각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그시 참으며 헤쳐 나가야만 운이 펴인단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출이 아니라, 큰 도를 찾는 출가라 생각하고 나아가면 그 또한 사나이의 한 멋이 아니겠냐? 모든 것엔 좋고 나쁜 양면이 함께 섞여 있다고 생각하면 한 단계씩 먹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데 도움이 되리로다.”
“예.”
노인의 근엄해진 표정이 좀 우습기도 했지만 용운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
미리내가 은은히 흐르는 밤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끌며 어둠 속으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별이 서울역 인파 속으로 사라지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같다고 용운은 생각했다. 용운은 다시 솟구치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 눌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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