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중 스님 대증언 법원 직원들이 존경한 김학균 국장

“김학균, 저 양반이 생불이지? 저런 양반이 부처지”

운영자 | 기사입력 2018/08/05 [15:43]

박삼중 스님 대증언 법원 직원들이 존경한 김학균 국장

“김학균, 저 양반이 생불이지? 저런 양반이 부처지”

운영자 | 입력 : 2018/08/05 [15:43]

 

▲     © (주)펜그리고자유



 

땅바닥에다가 90도로 공손히 인사하듯 한 인품 ‘하심’

20여년 동안 변함없이 심부름하는 김 국장의 보살행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는 지인이 베푼 은덕에 대한 고마움을 삼중 스님은 풀어놓았다. 교도소를 고향 집처럼 들락거릴 수 있도록 주변에서의 손길을 보태는 데 일조를 한 장본인이었다. 더군다나 가슴 뭉클하게 만든 인품에 반했다면서 삼중 스님은 두 손 합장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은 없을 거예요. ‘스님! 저 일 좀 시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래를 20여 년 동안 줄창 부르는 사람입니다. 법원 부처의 직원들 모두가 존경하는 김학균 사무국장은 살아있는 부처라고 말한다 해도 반대하는 직원들은 단 한 사람도 없을 줄 압니다. 늘 저만 보면 건네는 말은 건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진정성이 있는 마음이 그대로 들여다보입니다. 인사 한 자락만 봐도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지 않습니까? 땅바닥에다가 하심을 하듯 90도 각도로 공손히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은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인사하는 데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면 감동스럽습니다.”

 


삼중 스님은 교도소와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던지는 황당한 일감들로 고개를 흔들게 된다고 한다. 바깥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버린 사형수들이나 재소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도 챙겨야 하는 일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삼중 스님의 주변에서 무겁게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이 겪어내어야 할 상황과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도 이해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삼중 스님은 본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일감들일지라도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들로 골머리를 썩었다.

 

김학균 사무국장의 보살행

법원 사무직에서는 최고의 직급자인 김학균 사무국장은 불심이 강한 어머니의 영정을 모시고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경주 불국사로 향했다. 살아생전에 그리도 참배하고 싶다했던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한 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껴 안아 불룩해진 옷차림새 때문인지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눈빛에 민망해했다.

“이런 것 보시면 안 되는데요.”

대웅전 법당에 들어서는 김학균 사무국장에게 옷 속에다가 숨긴 물건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불국사 스님에게 괜한 불편함을 준 죄스러운 마음에서 엉뚱한 토를 달았다. 옷 속에서 공손히 꺼내놓는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쳐다보면서 김 국장은 자신의 불효를 다시 한 번 책망했다.

“어머님이 살아생전에 불국사 부처님을 그리도 참배하고 싶어 하셨는데 돌아가신 후에서야 영정 사진이나마 모시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효도를 행하는 자식의 갸륵한 마음을 높이 칭송하는 불경소리는 더욱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김학균 국장은 삼중 스님에게 효심 가득한 불국사의 대웅전에서의 기억을 꺼내놓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살아생전에 그리도 고대하던 어머니의 소원을 바쁘다는 핑계로 들어주지 못한 자신을 두고두고 한탄했다. 법원 내 사무직에서는 가장 힘이 있는 직책은 바로 사무국장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막강한 자리에 있는 김학균 국장은 삼중 스님에게 불교에서 지칭하는 보살행을 한 번이 아니라 무려 15번이나 넘도록 행했다. 더군다나 2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섬기는 모습은 한결같았다. 그러니 삼중 스님은 어려운 일만 생기기만 하면 김학균 국장에게 전화를 넣곤 했다.

“스님! 감사합니다. 이런 심부름을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만큼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말을 머뭇거리는 삼중 스님에게 변함없이 대하는 김학균 국장이야말로 가슴속에 숨어 있던 감격스런 마음을 울컥 쏟아나게 만들었다.

“저 양반이 사람인가, 생불인가? 바로 저런 양반이 살아있는 부처라고 하면 딱 맞지. 어찌 저럴 수 있노?”

20여 년 동안 변함없이 행하는 보살행에 삼중 스님은 넋이 나갈 정도였다. 불심이 강하니 삼중 스님에게만 이렇게 대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웃으며 겸손히 공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환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런 좋은 관계에서 시선을 바로 들지 못할 정도로 곤란한 청탁을 넣었던 사건을 떠올리면서 삼중 스님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 거짓말까지 하면서 부탁을 했던 일은 장삼을 입은 스님으로서는 도저히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쯤 삼중 스님은 김학균 사무국장에게 꽤나 거북한 부탁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이런 부탁을 넣은 밑바닥에는 아무리 깐깐한 부장판사들까지도 평판이 좋은 김 국장의 말이라면 그냥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판검사들 사이에서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는 사무직원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관례에서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김학균 국장만은 판검사들에게 동료 이상이면서 깊은 신뢰감으로 말발이 먹혀들어갔다. 바로 김 국장의 착하디착한 인품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비롯되었다.

경주 자비사를 지키고 있는 현도 상좌를 아끼는 마음에서 삼중 스님은 장삼을 입은 스님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도가 지나칠 정도로 청탁을 넣었다. 삼중 스님의 부탁이라면 언제 어느 때라도 기대했던 대로 ‘스님! 어느 날짜에 가시면 됩니다’는 말을 고대했건만, 이번만큼은 김 국장까지도 어려움을 내비쳤다.

“스님! 그 부장판사님은 굉장히 결백한 분이라서 사건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만나려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을지 난감합니다.”

“사건을 부탁하러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법문을 하고 싶으니 꼭 좀 약속을 잡아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외부사람이라면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면서 고개를 저어대는 부장판사를 김 국장은 설득했다.

“스님! 굉장히 결백한 판사님이라 사건은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런 조건으로 약속 시간을 잡아 놓았으니 스님께서도 그리 알고 가셔야 합니다.”

언제라도 삼중 스님의 부탁이라면 아무런 토를 달지 않은 채 공손하게만 대했던 김 국장이었지만 미리부터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삼중 스님은 그리 김 국장이 단단히 일러 준 당부는 귓등으로 흘러버린 채 부장판사실에 앉자마자 사건을 직선적으로 풀어 놓았다.

“오늘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제 상좌 놈을 아끼는 마음에서 염치 불구하고 판사님에게 부탁하러 왔습니다.”

“그게 아닌데요. 김 국장이 절대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스님께서 법문을 해주신다는 말을 믿고서 제가 시간을 냈는데요….”

아주 반듯한 부장판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삼중 스님에게 정색을 했지만 이왕 체면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삼중 스님은 막힘이 없었다. 어렵사리 마련한 자리인 만큼 수확을 일궈 낼 품목을 겨냥하는 삼중 스님은 앞뒤 가리지 않고서는 사건의 전말을 늘어놓았다. 이 방법만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생각에서 떠들어대는 삼중 스님의 말문을 가로막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부장판사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우선 제가 사건 기록을 봐야죠. 삼중 스님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제가 직접 사건 기록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사건기록을 천천히 살펴보던 부장판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이 크네요. 이리 삼중 스님이 직접 찾아오셨지만 몇 십억이나 사고를 쳤으니 법으로는 도저히 빼낼 수 없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좋은 일 할 게 많은 집달관 ‘제 적성’

빽 없는 사람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 가져

 

이미 벌어진 판이니만큼 삼중 스님은 열심히 현도 상좌를 대변한 자락들을 더욱 늘어놓았다. 부장판사는 그리 싫지 않은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면서 열심히 상좌를 대변하는 삼중 스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안 됩니다. 스님! 5년 이하는 안 됩니다. 제가 사표를 쓸 정도로 힘을 더한다 해도 힘듭니다. 오죽했으면 스님께서 저한테까지 오셔서 이런 부탁을 하시는 줄 잘 알겠으나. 제가 줄이는 데까지는 줄여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런 진통들을 겪어내면서 현도 상좌는 2년 6개월로 최소한의 형량을 구형받을 수 있었다.

“아니 스님! 왜 그러셨어요? 사건은 이야기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길래 어렵게 주선한 자리였는데… 저야 법문만 하시는 줄 알았지요. 하도 기가 막히셨는지 판사님이 저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시더군요.”

삼중 스님의 말이라면 한결같이 믿어 주었던 김학균 국장이었지만 민망한 뒷이야기를 하면서 얼버무렸다. 이렇듯 어려운 사건으로 골머리를 썩는 막판에서는 어느 선을 대더라도 김학균 국장은 삼중 스님 편이었다. 고향인 제주대학교에서 교수직을 꿈꾸면서 박사학위에 열중하던 김학균 국장에게 공무원 연수원장 자리로 추천되었다. 공무원 연수원장이라 하면 1급직으로 사무행정직에서는 가장 최정점인 직급으로서 누구나가 탐내는 자리였다. 그러나 김학균 국장은 현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제주대 교수로 가겠다는 희망으로 공무원 연수원장 자리를 거절해 버렸다. 그런데 이리 능력이 있는 인재였지만 정년퇴직이 한참 남은 나이에 인사이동에서 그만 밀려나고야 말았다.

“스님! 불의를 보다 못한 제 고집스러움으로 퇴직한 후 제 자신을 되돌아보니 정말 처량해 지더군요.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가는 큰아들 학자금을 마련하는 데 걱정이 앞섭니다. 그때 공무원 연수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더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지금에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잠이 오지 않습니다.”

가장 힘있는 사무국장 자리에서 떠난 김 국장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그동안 친하게 지낸 삼중 스님에게 털어놓았다.

“남들 같았으면 그 좋은 자리에서 상당한 돈이라도 챙겨 놓았을 텐데 이 착한 양반은 그러지를 못했어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직분을 남용하지 않았으니 그 직책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그런데도 그리 좋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지켰던 양반이 딱하게도 아이들 학비 걱정까지 하더군요. 우리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이끄는 청렴한 공무원의 표상이 바로 이 사람일 겁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김 국장에게서 받은 은혜에 힘 닿는 데까지 도와야 하겠지만 내 처지도 딱한지라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절대 못하겠다던 집달관 노릇

삼중 스님은 최근에 김학균 사무국장이 아니라 김학균 집달관에게 사건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건넸다. 오래전에 안중근 의사의 무덤을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삼중 스님을 여순감옥까지 안내해주었던 조선족 젊은 여인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언제인가 삼중 스님이 법문을 하는 강연장까지 찾아와서는 반갑게 인사를 올리면서 한국에서의 정착생활을 밝혔다. 낯선 땅에서 중국 고향이 그리워서인지 삼중 스님을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삼중 스님도 흐뭇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조선족 여인은 사기 결혼을 당한 자신을 상대로 오히려 남편이 고소를 했다면서 삼중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법적인 도움으로 해결해야 했으니 김학균 사무국장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그 양반이 지금은 집달관 노릇을 하고 있더라고요. 사무국장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얼마나 선망이 깊게 뿌리내려있던지 그 양반 말이라면 지금도 먹혀들어갔어요.”

여러 경험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태 준 김학균 집달관 덕분에 조선족 여인은 법정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법정 관련한 사건에서는 이미 법원을 퇴직한 김학균 집달관일지언정 주선하는 데 하등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공신력은 살아있었다. 그는 사무국장직을 퇴직한 직후에는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선택하기 싫은 새 일감을 두고서는 삼중 스님에게 답답한 가슴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고등법원에서의 사무국장 자리에서 퇴직한 후로 당장 먹고살아가야 할 가정형편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다.

“스님! 아무리 먹고살아가야 할 직업일지라도 그 불쌍한 사람들을 못살게 굴면서까지 딱지를 붙이는 집달관 노릇은 제 적성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삼중 스님 역시나 잘난 돈으로 인해서 어렵게 살아가는 집에다가 빨간 딱지를 붙여대야만 하는 집달관은 저 착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동일했다. 살아있는 부처 같은 사람이 눈물을 짓는 사람들을 몰아붙이면서 과연 빨간 딱지를 붙일 수 있을지가 의문투성이라 여겨져서 아무래도 집달관은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어림짐작을 해보았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하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게 세상사이지 않겠는가?

그런 선입견이 좋지 않은 집단관 일감은 아무 직원에게나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부수입을 챙길 수 있는 집달관을 못해서 안달했다. 단 김학균 국장처럼 1급 공무직에서 퇴직한 몇몇 사람들만이 3~4년 기간제로 혜택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보살처럼 남을 위한 선행만을 일삼던 김학균 국장은 도저히 택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선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김학균 국장을 잘 알고 있던 삼중 스님의 편파적인 시각에서 좋게 보이지 않았던 집달관 생활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삼중 스님이 좋아하는 김학균 집단관이 증명해 주었다.

“스님! 집달관 생활을 얼마쯤 하다 보니 겉보기와는 달리 좋은 일 할 게 많습니다. 사무국장을 수행하면서 얻은 법률 상식과 집달관의 권한을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조금이나마 그들 편에서 거들어주기만 해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이 일을 잘 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니깐요. 제 적성에 딱 맞는 직업입니다.”

집달관이나 법원의 사무국장이나 직무만 변했을 뿐 공통분모로 변함없는 것은 사람의 인품이었다. 그리도 자신의 적성에는 맞지 않는다면서 넋두리까지 했던 사람은 180도로 변해 있었다. 사건 배당을 할당받은 주변 직원들의 투정들을 뒤로 접은 채 김학균 집달관의 보살행은 여전하기만 했다. 밝게 변한 목소리를 통해서 삼중 스님도 덩달아 환하게 웃으면서 부탁을 넣었다.

“새로운 직업이 그리 좋으시다니 저도 기분이 참으로 좋습니다. 좋은 마음에서 이번에도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물론이죠. 스님이 심부름을 시키신다면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법원 고위직인 사무국장 자리에서 물러난 김학균 집달관의 목소리는 마냥 좋은 듯 힘이 넘쳤다.

“전에 한국인 남편한테서 고소당한 조선족 젊은 여자를 기억하시나요? 오늘 아침에 찾아와서는 한국으로 완전히 귀화신청을 하려고 영주권 신청을 했는데 예전에 남편한테 고소당한 기록 때문에 문제가 생겼데요. 몇 년 후에나 귀화신청을 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저한테 달려와서는 도와달라고 하는데, 이번에도 국장님께서 힘 좀 써주실 수 있나 해서요.”

김학균 집달관의 부탁으로 법원 동료들은 조선족 여인의 귀화신청을 손쉽게 풀어내 주었다. 며칠 뒤에 조선족 여인을 삼중 스님이 보증하는 서류를 제출함으로서 귀화신청은 완료될 수 있었다. 조선족 여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달려간 자신의 부탁을 두 번씩이나 해결해 준 장본인은 바로 김학균 집달관이었다. 고향을 떠나 온 낮선 땅을 고향으로 터를 잡는 여인에게 큰 은덕을 베풀었다.

“스님! 여기는 더 보람이 있네요. 가슴 아픈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부족한 제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찾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하얗게 투명한 보살이 내비친 거울 앞에서 삼중 스님은 자신이 그려낸 부끄러운 잔상에 낯을 붉혔다.

“수원지방법원에 소속 된 김학균 집달관은 언제나 덕을 쌓는 노래를 부릅니다. ‘스님! 제가 힘닿는 데까지 심부름을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하는 감동에 쌓여서 진심으로 김학균씨를 존경합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용기를 내서 제가 지금까지 교도소를 다니고 있는데 반하여 한편으로는 제 자신이 그어대는 테두리를 들여다보자면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막강한 자리에서 영원히 앉아 있을 수 없지만 사람들은 착각을 하면서 권력을 남용했다. 자리가 영원하리라는 망상에서 욕심을 한도 끝도 없이 부렸다. ‘내가 왕년에 어떤 사람인데 이리 대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남한테 타박을 해댔다. 그러나 법원 고위직을 떠난 김학균 집달관만큼은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고위직에서나 눈물바람을 빼내게 하는 자리에서나 주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둔 행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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