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내막 1078호(11월3주) 헤드라인뉴스

사건의내막 | 기사입력 2019/11/18 [12:59]

사건의내막 1078호(11월3주) 헤드라인뉴스

사건의내막 | 입력 : 2019/11/18 [12:59]

▲ 사건의내막 1078호     © 사건의내막



짐 로저스, 문재인 대통령에 “미군철수” 권유 내막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 반미인가? 친미인가?

 

-짐 로저스 공개권유 “미군도 철수시키고 원하는 대로 하라”
-문재인 대통령,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다면, 반미? 친미?

 

남한 민중-시민들의 시위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져 왔다. 이때마다 이들 시위대에게 씌워진 프레임(올가미)은 반미(反美) 였다.  반미주의자는 빨갱이 취급을 당했다.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를 하면, 한반도가 불바다가 된다는 전쟁논리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국제사회 분위기는 대한민국에 두둔해온 미군의 철수가 반미(反美)가 아닌 친미(親美)로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필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군철수를 주장하거나 그런 발언을 한다 해도 반미가 아닐 수 있는 시대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해도 반미로 몰리지 않는 첨단 전쟁무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겠다. 한미동맹이 어떤 형태로든 확고하게 유지된다면, 첨단무기 시대의 주한미군 주둔은 재고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관련기사 2-3면>

 

 

’자연치유’ ‘산야초’의 작가가 쓴 산 예찬

보약 먹는 것도 좋지만 청명한 가을날 등산하는 것도 좋아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국토는 산이 70%나 되는 금수강산
-산은 내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 내 몸 치유 기르는 곳

-산이 사람을 기른다는 것은 내몸 안에 있는 내마음 찾는 방법
-모든것은 자연이 주어진 대로 있다가 자연으로 가버리듯 천명


필자는 어려서부터 뒷산에 뛰놀며 진달래꽃을 벗 삼아 지낼 정도로 함께 했다.  지리산은 사계절 항상 구름이 산등선과 봉우리를 감싸고 돈다. 아침 일찍 노고단에서 노고단(1,507m) 정상 주변을 비롯하여 주봉인 반야봉(1,752m), 천황봉(1,915), 제석봉(1,806m), 촛대봉(1,704m), 명신봉(1,652), 칠선봉(1,576), 토끼봉(1,534)과 장장 45km에 이르는 산봉우리와 지리산 산전체에 운해(雲海)가 없는 것을 목격하여 기쁨에 탄성을 지른 적을 기억한다. 노고단에서 운무가 사라지면서 순간적으로 온 천지가 구름 한 점 없는 지리산 천황을 목격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관련기사 4-5면>

 

 

전문가 진단/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북의 시선

재인 정부,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으로 되돌아와야

 

-북한, 문재인 정부에게 화가 나도 엄청 화가 나 있어
-정부-집권여당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맞춤형 사고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했음에도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금강산관광 경우 대북제재 사항 아님으로 즉시이행 방안 마련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에서 확인받듯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발 이행하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김성 대사가 UN발언으로 확인되어진 ‘첫째, 둘째, 셋째’문제의식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 전제하에 이를 이번 금강산관광 지구에 대해 ‘남측시설물을 싹 들어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내용을 대입시켜보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으로 되돌아와야 하고, 정상간 합의된 남북선언에 대해서는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몸짓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하면 금강산관광의 경우 대북제재 사항이 아님으로 ‘조건 없이’ 즉시 이행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마련을 위한 남북이 함께 가칭TF(명칭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협상전략팀)을 꾸려 해법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관련기사 6-7면>



 

집중진단/‘김준태 시인 문학인생 50주년’

최초 5월시 ‘아아 광주(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시인 5월시 가짜언론에 비수 들이댄 광야 목소리
-‘아아, 光州여!’는 독자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주었다


고 3때인 1977년 3월 어느 날, 김준태 시인을 전남 함평 학다리고 교정에서 처음 만나뵐 수 있었다. 학다리고 영어교사로 부임해온 선생님은 그해 7월, 창비에서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를 출간했다. 이 시집을 읽고서 나는 점차 문학(시)에 뜻을 두게 되었고, 이후 문예반 활동을 통해 시인의 꿈을 키웠다. 김준태 선생님의 인솔로 함평 촌놈이 광주에서 열린 조선대 백일장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고교 은사인 김준태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지가 어언 42년이 흘렀다.
조선대 사대 독어과 2학년 때인 1969년 1월, 김준태 선생님은 광주의 <전남일보>(현, 광주일보)와 <전남매일신문> 그리고 <삼남교육신문> 신춘문예를 모두 석권하여 3관왕이 되었고, 이어 월간 <시인>지 11월호를 통해 중앙문단에 등장했다. <전남일보> <전남매일신문> 신춘문예와 <시인> 지의 심사를 본 사람은 다름 아닌 박목월, 김현승, 조태일 시인이었다.<관련기사 8면>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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