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턴 잔혹사’① - 인턴의 고백

이동림 기자 | 기사입력 2015/10/14 [15:15]

‘청년인턴 잔혹사’① - 인턴의 고백

이동림 기자 | 입력 : 2015/10/14 [15:15]

  

‘무늬만 채용’식의 인턴 채용…“구직자들 두 번 울려”

“인턴은 티슈에요. 쓰다 버려지는 존재에 불과하죠”

 

일부 청년 인턴들 사이에서는 인신공격성 폭언은 물론 상사의 식사배달이나 운전을 해주는 이른바 ‘셔틀’업무까지 떠맡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암암리에 성행되고 있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인턴이 ‘금턴’이라고 불릴 만큼 인턴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을 웃돌고 있다는데 있다. 인턴 경험이 취업을 위한 ‘필수코스’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들은 인턴 합격 후 혹시나 될지도 모르는 ‘정규직 전환’을 위해, 또 경력증명서 한 장을 위해 부당한 대우를 참는다. 부당한 인턴제도 속에 놓인 청년들의 피해 사례와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린 인턴들의 실태와 정부의 청년일자리 대책을 집중조명해 본다.

 

[사건의내막=이동림 기자] #지난 9월, 외교부가 해외 공관으로 파견한 인턴을 대사 부인이 가사 도우미처럼 부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주파나마 한국대사관에서 현장 실습원으로 일을 한 인턴 강모씨(24)에게 현지 대사 부인이 업무와 관련 없는 꽃꽂이와 주방 업무를 시켰다는 게 이유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강 씨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참석 행사 일정에 맞춰 대사 부인의 지시 아래 약 4시간 동안 꽃 손질과 꽃꽂이, 15분 인분의 만찬 요리를 준비해야 했다.

 

시간이 늦어지자 대사 부인은 인턴인 강 씨에게 관저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이른 시간부터 업무를 시작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던 강 씨는 귀가를 희망했지만, 결국 요리사들이 지내던 허름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만찬이 끝난 후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면 되겠다”는 대사 부인의 말에 강 씨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그는 이 일로 큰 회의감을 느꼈다고 토로하며 인턴 직원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유제품 회사에서 11개월간 인턴 일을 했던 서모씨(23)는 인턴 기간 내내 길거리 고객을 상대로 하루에 2~3건씩 1년 치 우유 계약을 따내야 했다.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퇴근을 못하게 한 회사의 방침 때문이었다. 서씨는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일을하는 것도 모자라 지방까지 내려가 허름한 모텔에서 보름간 숙식하며 판촉활동을 했다. 가혹한 업무를 견디지 못한 서 씨는 결국 그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고 “동정을 얻는 방식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암암리에 성행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턴 경쟁률마저 수십 대 일을 웃돌고 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인턴이 ‘금턴’이라고 불릴 정도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악착같이 살아온 생활력보다는 검증된 인턴 경력이 훨씬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인턴은 취업을 위한 ‘필수코스’가 됐다.

 

공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4년제 대학 졸업생은 “실제 하는 일은 사무 잡무가 대부분으로 직무역량을 키우는 데는 실제로 도움이 안된다”면서도 “그래도 구직자 입장에선 지푸라기라고 잡는 심정으로 지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 입사와 민간기업 공채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청년인턴 출신 구직자 역시 “채용이 보장된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기업의 면접 날짜가 잡히면 위에서 양해를 해주는 편”이라면서도 “그래도 다른 구직자에 비해 서류·면접을 준비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청년들은 인턴 합격 후 혹시나 될지도 모르는 ‘정규직 전환’을 위해, 또 경력증명서 한 장을 위해 부당한 대우를 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턴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정규직 전환은 늘 여의치 않다. 지난해 청년 인턴을 채용해 단 한명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은 공공기관이 전체의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공공기관 청년인턴 정규직 전환 채용 실적’ 자료를 보면 지난해 316개 공공기관 중 71.2%에 해당하는 253개 기관에서 정규직 전환자가 0명이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청년인턴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이 될 수 없다. 지난해 601명의 인턴을 채용했지만 정규직 전환자는 0%였다. 건보공단은 2011년과 2012년에도 각각 711명, 581명의 청년인턴을 뽑았지만 모두에게 정규직 전환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외에도 국민연금공단, 한국농어촌공사, 토지주택공사(LH),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술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등도 인턴을 정규직으로 뽑지 않았다. 한국개발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노동연구원, 국토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국책연구원도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은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조차 인턴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의지가 없다”며 “정부가 눈에 보이는 청년고용 실적에만 집착해 질 낮은 청년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316개 공공기관에서 청년인턴 1만3979명을 채용했으나 정규직 전환은 4088명(29.2%)에 불과했다.

 

한편,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청년인턴의 정규직 전환율은 50%였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청년인턴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싶어도 정부가 인력감축을 요구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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