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에서 보는 저녁노을 “그야말로 영광!”
[김상문의 인간주의 여행]내 마음의 고향, 영광기행
김상문 기자 | 입력 : 2012/02/06 [17:58]
굴비가 아이콘인 전남 영광에는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다양한 여행지가 존재한다. 아침 연꽃에서 저녁 낙조까지 하나의 벨트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더군다나 영광에는 불교·원불교·기독교 등 종교 관련 성지가 두루 자리잡고 있어 남다른 의미도 있다.
또 왔다. 영광으로. 왜 그런지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출장 가다 한번, 궁금해서 또 한번.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다시 한번…. 그때마다 이유는 달라도 자꾸 오게 되는 곳이 영광이다. 벌써 4년째다. 자주 온다고 해서 영광군청에서 개근상 주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끌렸다' 고 해야 하나, ‘전생에 무슨 인연의 줄이 있었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영광이 마음의 고향 같은 이유는 대체 뭘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평온함이다!” 영광에만 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기운 속에서 나는 '유유자적'이라는 의미를 경험하게 된다.
보은강 연꽃방죽 해무가 잔잔한 이른 아침 백수읍 길용리에 위치한 보은강 연꽃방죽. 봉긋 봉긋 솟은 연꽃이 아침 안개 속에 수줍은 듯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연꽃은 도도하면서 고고한 자태다. 기자와 같이 동행한 둘째녀석은 연꽃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평소 활동적인 성격이 얌전하다. 너, 이곳 기운에 푹 젖었구나. 보은강 연꽃방죽은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대종사가 탄생과 성장 그리고 구도의 과정을 거쳐 대각한 곳으로 원불교 영산성지와 맥을 같이 한다. 대종사가 큰 깨달음은 얻은 후 노루목 등 아홉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논으로 개간한 곳이 이곳 ‘정관평’으로, 흔히 보은강 연꽃방죽으로 불린다. 다른 연꽃단지에 비해 한적함에 여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흙속의 진주같다고나 할까. 다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걷으니 오랜만에 평온함이 찾아온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사실 영광에 오면 제일 먼저 찾고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이다. 이유를 굳이 설명하라면 ‘평온함’ 그 하나뿐이다. 다른 불교 유적지처럼 역사가 깊은 곳이 아니지만 기운이 그렇게 느껴진다. 108계단을 통해 사면대불상이 있는 동산에 올라 시선이 와탄천에 이르자 탁 트인 전망에 마음도 시원하다. 이 뱃길은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고자 중국 동진을 통해 들어온 길. 그때 마라난타가 최초로 발을 내디딘 곳이 지금의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가 있는 법성면 진내리 좌우두로이다. 최초 도래지는 영광군이 이 사실을 상징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이때 사면대불상도 건립되었는데 마라난타존자상을 중심으로 아미타삼존불(관음보살+미타불+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높이 23.7m, 제작기간 4년6개월 사업비 42억이 들어갔다고 한다. 한때 예산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공사 진행이 지지부진하다가 마침내 올해 공사가 끝나 대불개안을 이루었다. 석공의 명장 이재순이 제작했다. 부용루로 내려가자 석벽 23면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전도(부처님의 탄생에서 열반까지)가 조각되어 있다. 때마침 태양의 각도가 낮은 아침인지라 조각들은 마치 불교의 진리가 살아나는 것처럼 오묘하다. 그 힘은 빛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하관경석가보살 쪽에서 밝고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린다. 원인을 제공한 조각을 살피니 유독 고추(!) 부분만 까맣다. "재미로 또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마음에 관광객들의 손때가 묻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부처님의 신체를 표현한 계단을 내려오면 바닷가 쪽으로 휴식공간인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른 아침이라 스멀스멀 피어난 물안개가 신비롭게 나를 감싸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은 따뜻한 기운으로 나를 감싼다. ‘평온하다!’ 이 느낌 하나만으로 영광 여행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안갯속을 지나는 어선, 그 뒤를 따르는 갈매기들…. 분명 종류가 다른 둘이건만 하나의 풍경으로 어울린다. 도래지에 설치된 스피커에는 마음·정신 관련 불교의 설법이 흘러나온다. "노여움은 정으로 풀고, 어리석음은 지혜로 풀어라" "사람이 인자해지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넉넉하지만 마음이 옹색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그동안 잊고 지낸 마음이라 나는 설법 듣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햇살이 따가운 아침시간, 10명의 아낙들이 갯벌로 들어선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움직일 때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참! 어렵게 나아간다. 보는 나 역시 힘들다. 아낙들의 허리에는 플라스틱 함지박이 밧줄로 묶여 있고…. 그러다 그들은 하루 종일 허리를 깊이 구부린 채 조개를 잡는다. 갈매기들도 배회를 시작한다. 해질녘, 저녁노을이 짙은 하늘 아래에는 하루 일을 마친 조개잡이 아낙들이 뭍으로 나아간다. 차라리 기어간다는 말이 편하겠다. 힘들게 일한 탓에 걸음걸이가 사투에 가깝다. 뒤따르는 갈매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 묘하다. 한편으로는 삶에 억척스런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잠시 후, 조기떼가 몰려오면 4일 그물질에 1년 먹고살았다는 칠산어장 쪽으로 저녁노을이 번진다. 태양이 크고 웅장한 기운을 뿌린 후 섬 뒤로 사라지면 이어서 노을은 더 붉고 섬뜩한 색으로 하늘을 수놓는다. 누가 나에게 영광군의 대표 아이콘으로 굴비와 소금 말고 다른 것을 추천해보라고 하면 해넘이를 추천할 것이다. 영광만큼 시각적으로 막힘 없이 낙조를 볼 수 있고 다양한 느낌을 주는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마치 동서양화가 한 곳에 존재하는 하는 것처럼. 그 중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서 맞이하는 낙조는 은은한 기풍의 동양화같다. 사면대불상과 부용루, 팔각정이 대표적 낙조 관찰지. 작년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추석날 도래지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그때 마음을 추tm리게 한 힘도 '평온함' 그 하나였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벗어나 작은 산길을 오르면 숲쟁이공원이다. 도래지와 같은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다. 빨강·노랑·파랑 등 계절의 고운 색깔 옷을 입은 꽃과 나무들이 온통 동산을 뒤덮고 있다. 화려함 뒤에는 한적한 여유마저 있다. 산 정상 팔각정에 오르면 법성포 전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또한 낙조의 묘미가 예사롭지 않다. 그야말로 한국의 명승이다.
모래미와 백수해안도로 영광에서 낙조 관련 또 다른 명소를 소개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모래미 해수욕장’을 택할 것이다. 나는 광명을 보았다. 태양이 기운을 잃고 어둑어둑해지자 해넘이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자신의 몸만 산 속으로 숨겼을 뿐 섬과 섬 사이로 강하고 굵은 빛줄기를 뿌린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펼쳐지는데 그 장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 아~ 이것이 광명. 그 사이로 모래사장을 뛰노는 아이들.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가족. 하나의 풍경으로 오래 기억되었다. 영광에 오면 너도나도 꼭 가는 곳이 있다. 백수해안도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이름난 해안도로로, 백수읍 백암리에서 구수리까지 16.5㎞ 구간이다. 길을 가면 빼어난 풍광이 선뜻선뜻 나타나 놀란 경험도 있다. 구불구불한 길 옆으로 바닷물이 넘실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풍경이 180도 변해 헐벗은 갯벌이 나타나는가 하면, 어머니가 아들을 안은 형상같아다는 ‘모자바위’가 나타나고 거북이가 육지로 기어올라가는 모습 같다는 ‘거북바위’ 등이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기도 한다. 특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칠산정과 노을정이 나온다. 이곳은 낙조가 가장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태양이 온 곳을 선분홍 빛으로 물들이며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영광스럽기까지 한 경험이 있었다. 매일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아 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곳의 낙조에는 동서양화의 멋이 숨어 있다. 특히 해안절벽 아래 백암리 동백마을이 있는 영화 '마파도' 세트장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또 다른 멋과 분위기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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