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스님 증언 '잊을 수 없는 교도관'

김구 선생 “교도관은 교수 수준으로 선발해야 한다”

글/김성애(브레이크뉴스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8/08/07 [11:09]

삼중스님 증언 '잊을 수 없는 교도관'

김구 선생 “교도관은 교수 수준으로 선발해야 한다”

글/김성애(브레이크뉴스 논설위원) | 입력 : 2018/08/07 [11:09]

 

▲ 삼중 스님.     © (주)펜그리고자유

서울대 농대 교수인 성천 유달영 박사가 살아생전에 선물로 건넨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는 액자에 담긴 글귀를 삼중 스님은 되새겼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본부장으로 국민재건운동에 족적을 남긴 유달영 박사는 삼중 스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살아생전에 크게 기쁨을 안겨준 유달영 박사와 마찬가지로 삼중 스님은 거리에서 부처들을 셀 수 없이 만날 수 있었다. 사찰에 모셔져 있는 부처 앞에서 간절하게 소원을 갈구하는 사람들과는 상반되게 인간 냄새가 폴폴 나는 정감들이 넘쳐흘렀다.

절간에 모셔진 부처만이 부처가 아니라 세상 밖에서 부처의 마음을 쓰는 사람들 모두가 바로 부처였다. 삼복더위에 길거리에서 냉차장사를 하는 할머니는 먼발치에서 삼중 스님을 알아보고는 달려왔다. 삼중 스님은 길바닥에서 삼배 큰절을 넙죽 하려는 할머니를 부리나케 두 손으로 붙잡았다.

 


거리에서 만난 부처들

“아니 길바닥에서 이러지 마세요. 난 장삼만 입었을 뿐 스님이 아니에요.”

이리 긴박한 소동 속에서도 자신을 스님이 아니라는 변명을 빼놓지 않는 삼중 스님을 향해 할머니는 손을 빼면서 맞받아쳤다.

“스님! 무슨 그리 이상한 말씀을 하시나요? 내 생전에 한 번만이라도 삼중 스님을 꼭 친전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내가 복이 터져서 이리 만나다니 정말로 춤이라도 출 판인데여. 왜 그러십니까?”

삼복더위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길바닥은 그야말로 지글거리는 열기에 어우러진 땀 냄새로 가득 차다 못해 흘러 넘쳤다. 이런 열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두 사람은 한사코 큰절을 먼저 하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굳이 삼배를 하신다면 제가 먼저 할머니께 한 다음에 하세요. 난 삼배 큰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스님이라서 그럽니다. 제발 좀 이젠 그만하시죠.”

“내 소원입니다. 그러니 스님이 아무리 말리셔도 삼배 큰절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데 그냥 내버려 두세요.”

두 사람이 서로 먼저 길바닥에서 절을 하겠다고 씨름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눈길들은 점점 보태졌다. 그런 와중에 삼중 스님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보였던지 할머니는 황급히 냉차 구루마 쪽으로 달려갔다. 얼음이 동동 떠있는 감주 한 사발을 삼중 스님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넸다.

“삼중 스님! 제가 집에서 직접 담근 감주라 아주 맛납니다. 더우시니 어서 쭉 한 사발 들이켜세요.”

감주 한 사발이라, 당뇨 중증환자인 삼중 스님은 잠시 생각이 겹쳤다. 감주를 들이켠 후 겪어내야 할 후유증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곧장 쳐들어올 육체적 고통은 나중에 당할 일이라 접어둔 채 우선 감주 한 사발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몸 안에서 당뇨병과 함께한 세월 동안 한 번도 단맛을 보지 못한 터라 너무나도 꿀맛이었다. 당이 들어간 음식들을 멀리한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더운 삼복더위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런 모습이 흐뭇했는지 할머니는 얼른 다시 뛰어가서는 감주 한 사발을 삼중 스님에게 건네주었다.

“내 배를 보시죠.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이젠 더 이상 마시지 못하겠습니다.”

삼중 스님은 자신이 당뇨 환자라서 감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서 감주로 공양하고픈 할머니의 마음자락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성스런 손길을 떨치지 못한 삼중 스님은 두 손 모아 합장하면서 겨우 병원신세를 모면할 길을 택해야만 했다. 만약에 두 사발이나 들이켰다면 당뇨병 환자에게는 독약을 마시는 듯한 즉각적인 육체적인 고통으로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고마운 정성에서 두 손 모은 삼중 스님의 손목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염주에 할머니는 눈을 떼지를 못했다.

“맛있는 감주를 잘 대접받았으니 저는 이 염주를 보살님께 선물하고 싶군요.”

인도에 다녀온 친한 지인에게서 귀한 염주를 선물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삼중 스님은 손목에 차고 있던 염주를 빼서 할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염주를 받아 든 할머니는 생각지도 않는 선물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하도 좋던지 선물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두터운 허리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놓았다.

“아! 이러시면 안 되죠! 이 돈 저한테 주시면 크게 벌받을 거예요. 제발 고마운 마음에서 드리는 선물이니 그냥 받으시면 됩니다.”

삼중 스님은 중도 아닌 엉터리 껍데기한테 돈을 주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그래서 삼복더위에 냉차 장사를 하는 할머니께 찾아 올 복이나마 달아날까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그런데 여기에서 감주 사건은 끝낼 수가 없었다. 몇 달 뒤 어느 보살님이 새 옷을 하나 해가지고 법당에 놓고 갔다는 공양주 할머니의 말에 삼중 스님은 이상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난 전혀 모르는 보살인데 무슨 연유에서 새 옷을 두고 갔는지, 혹시 다른 말이라도 남겨 놓은 게 있는지요?”

“예전에 길거리에서 감주 한 사발을 대접했더니 귀한 염주를 스님이 선물로 주셨다는데요. 그래서….”

‘감주’라는 단어에 달라붙어있는 자락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따라 다녔다. 하루살이 거리행상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할머니가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옷 한 벌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허름한 옷 한 벌로 지내면서 어쩌다 만난 스님에게 은혜를 갚을 요량으로 지낸 정성은 내로라하는 재벌이 거창하게 지은 사찰을 기부하는 자락보다도 더욱 깊고 넓었다. 지금은 어디에서 그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세상물결에 웃고 울면서 살아가는지 할머니를 고마워하면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길거리 부처들을 만나면서 행복을 더해가던 삼중 스님은 결국에는 당뇨 후유증으로 병원신세는 비켜갈 수 없었다.

세상 끝에 매달려 있는 사형수들을 만나는 수만 가지 사연들로 둘러싸인 채 만남들은 문어 빨판처럼 진득거렸다. 웃통을 벗은 채 감옥이라는 호랑이 굴속으로 뛰어든 식이니 세상 풍파에 쓴 고비를 겪은 사람들이 개벌의 진흙 속에서 자글거렸다. 젊은 나이부터 시작한 교도소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에 덧붙여져서 등짝이 뻐근할 정도로 무거웠다. 더군다나 교화한다는 명목에 곁들어서 직업적인 사기꾼들이 버젓이 달려들었다. 사기를 쳐도 감옥 안 진풍경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경찰에다가 고소할 수 없는 실정까지도 사기꾼들은 빤히 읽어냈다. 대전 교도소를 다녀오는 골목길에서 빵빵거리는 차 소리에 놀라서 삼중 스님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삼중 스님! 접니다.”

봉고차 창문을 내리면서 인사를 건네는 사내를 쳐다보면서 삼중 스님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사람을 잘못 봤나는 듯이 다시 한 번 두 눈을 크게 뜬 채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저 말입니다. 스님! 일본에 있습니다요.”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거처를 밝히면서 사내는 유쾌하게 웃기까지 했다. 그런데 계속 껌벅거리는 삼중 스님의 모습이 겸연쩍었던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그대로 삼중 스님을 지나쳐 갔다. 그제야 꿈속에서 깨어난 삼중 스님은 아직까지 잠결에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저 놈은 나한테 사기 친 게 엊그제 일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인사를 먼저 할 수 있다니, 태어날 때부터 사기꾼 심장으로 태어난 게 분명해!’

몇 번씩에 걸쳐서 가짜 골동품을 진품이라며 사기 친 장본인이었다. 심지어 삼중 스님에게 죄를 지어서 병원에 누워있다면서 죽어가는 목소리를 울먹거리기까지 했던 사기범이었다. 눈물짓는 사내가 불쌍해서 그만 병문안 갔다가 사기를 다시 크게 당한 일이 엊그제였다. 죽어가면서도 사기를 쳤던 광경도 역시나 사기극이었다는 생각에 삼중 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감방 안에서 사기꾼들은 지들끼리도 서로 간을 의심하면서 거부하곤 했다. 그런 사연들이 모아 모아져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기꾼은 마치 처음으로 반가운 지인을 만난 듯이 정감 있는 인사는 빼놓지 않았다.

“삼중 스님! 아니 어디를 가십니까? 건강하시죠.”

봉고차 안에서 인사를 건넸던 사기꾼을 무슨 인연자락이 그리도 질긴지 한국 땅도 아닌 일본에서 다시금 만났다. 시모노새끼 기차간에서 마주친 사기꾼은 혼자가 아니라 젊은 여자 둘씩이나 끼고 있었다.

“그 유명한 삼중 스님이야. 다들 잘 알지! 자 어서 인사드려.”

삼중 스님은 이 번 만큼은 정신 나간 환자처럼 당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떴다. 지난 번 갑작스레 습격한 바람에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지만 여자 애들을 양 팔에 낀 사기꾼에게는 따끔한 벌침이라도 꺼내들고 싶었다.

“왜 이래? 누구한테 인사를 하라고 해! 내가 당신하고 친하다니 언제 날 봤소!”

차마 ‘이 사기꾼 놈아!’라는 욕지거리가 입안에 뱅뱅 맴돌았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그제야 기세가 꺾인 사내는 직감적으로 더 이상 말을 했다가는 망신만 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주춤거렸다. 몇 년 뒤에도 인사동 거리를 지나치는 사내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일본 땅에서 당한 기억 때문이었던지 더 이상은 삼중 스님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엄청난 사기꾼이라도 언젠가는 냉차 할머니처럼 길거리 부처로 거듭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교수수준에 적합한 김은현 계장


 

젊은 시절부터 사기를 당한 경험들은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삼중 스님 주변에서는 일어났다. 지금에서야 사기꾼이 달려들어도 그런대로 견딜 만한 정신력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으나 참으로 험난한 경험들이 많았다. 그 세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수만 가지 경험에서 짜낸 지혜들은 점차적으로 자라났다. 이런 지혜의 산통은 음지에서 교정교화를 담당하는 교정공무원들도 역시나 함께 동참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감당해야하는 위험한 업무에 목숨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들은 박봉에 생활고에 허덕였다. 일반직 공무원이면서도 여느 공무원들이 보장받는 승진제도에서는 아예 비켜난 한직이었다. 1만5000여 명이나 되는 교도관들은 절반가량이나 7급인 직급으로 머물러 있는 기형적인 조직에서 터져 나오는 볼멘 불평불만들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삼중 스님은 끼어들었다.

“백범 일지를 보면 교도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나 자신이 사형수인 처지에서 교도소에 오랫동안 잡혀 있다 보니 경험에서 터득한 견해라 여겨집니다. 자신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반드시 대학교수 수준으로 교도관들을 뽑아야 한다는 사견을 밝혔습니다. 사명감을 지닌 사람만이 재소자를 위한 교화인으로 직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저 역시나 동감합니다.”

 


감주 한 사발…당뇨 중증환자 삼중 스님 생각 겹쳐

감주로 담아낸 염주가 낳은 옷 한 벌에 만남 자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수 교화를 전담하는 김은현 교도관은 교정직을 수행하면서 다른 교도관하고는 남달랐다. 서울구치소의 교무과장까지 나서서는 삼중 스님에게 김은현 교도관을 도마 위로 올려놓고서는 자질 문제를 논했다.

“불교 담당하는 김 주사의 과거가 뭔지 아세요? 법대에서 아주 공부를 잘한 수재였어요. 사시에서 1차까지는 붙었는데 그만 2차에서 떨어졌다네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교도관 길을 택했지만 사명감 하나만은 어느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참 착실한 친구예요.”

교무과장의 말을 빌리자면 백범 김구 선생이 주장했던 대학교수 수준에 걸맞은 교도관은 바로 김은현 주사였다. 서울구치소에서 근무하는 수십 명이 넘는 교도관들 사이에서 교무과장이 앞장서서 자랑했다. 재소자를 교화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는 수준에 가장 적합한 인재였다.

언제나 면회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김 교도관의 모습이 겹쳐져 떠올랐다. 사형수를 만나는 삼중 스님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조용히 면회실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어 주었다.

“따뜻한 곡차를 내놓으면서 자신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모습은 평상시에는 그냥 묻혀 지나쳤지요. 나는 참 이상하게도 세상 밖에서 지낼 때는 기운이 없다가도 구치소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어디서 힘이 쏟아나는지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요. 사형수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들 편에서 이야기를 집중하느라 다른 곳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요. 그러니 옆 구석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는 김 주사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게 당연했어요. 그런데 그가 없는 빈자리는 참으로 크더군요.”

삼중 스님이야 한 달에 한두 번 면회하는 동안 잠시나마 편안하게 대해준 김 주사를 떠올리곤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바로 사형수들이었다. 서울구치소 담장 안에서 김은현 교도관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장단으로 삼중 스님은 새삼 깨달은 바가 많았다. 특히나 김 주사를 따랐던 사형수가 예전에 삼중 스님에게 부탁까지 넣은 적이 있었다.

“스님이 손 좀 쓰셔서 주사님을 여기에 그냥 있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인사이동을 내가 어떻게 좌지우지 해?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

오랜 동안 갇혀있던 사형수 생각에 그 옛날부터 사형수들을 살려 낸 삼중 스님은 교도소 안에서나 밖에서나 무엇이든지 통하는 줄로 착각했다. 한켠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김 주사는 다른 때와는 달리 한마디 끼어들었다.

“스님! 이 사람이 철이 없어서 그러니 이해하십시오. 죄송합니다. 저는 청송이나 어느 곳이라도 하등 관계없습니다.”

당치도 않는 부탁을 꺼내 놓은 사형수를 대신하여 김은현 주사는 삼중 스님에게 고개 숙였다. 주사 직에서 계장 직으로 진급하는 인사원칙에 따라 김 주사는 일단 서울구치소를 떠나야 했다. 확률적으로 청송 교도소 아니면 광주 교도소로 이동해야 하는 현실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혼자서 내려가야 했다. 그런 김 주사의 사연이 딱해 보였던지 죽음에 한 발을 걸치면서 살아가는 사형수는 자신의 처지를 망각했다. 깜깜한 자신의 현실을 잊어버린 채 세상 밖 사람을 동정까지 했다. 그러니 세상에 깃든 정감은 어느 구석에서나 폴폴 풍겨났다.

“청송에 혼자 간다면 당분간은 꽤나 고생하시겠네요.”

“무슨 말씀을요. 거기 가면 힘든 재소자들이 많기 때문에 내 역할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보람 있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껴들 틈이 나지 않겠지요.”

자신의 본분을 다해 어려운 재소자들을 살피겠다는 소신을 밝히는 교도관을 삼중 스님은 다른 시각에서 달리 보였다. 지금까지 오로지 재소자들과 사형수에만 꽂혀 있던 삼중 스님은 서서히 교도관을 향한 열린 마음으로 변해갔다.

“직접적으로 사형수 교화를 몇 년간 했나요?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아 보입니다. 교도관의 직분으로 사형수들과 항상 부딪치며 살아가면서 그들을 어떤 생각으로 대하십니까?”

“제가 이들을 통해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좋은 불자로서 한 수 배우려 삼배부터 청하는 사이입니다. 저런 극박한 현실에서도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한 마음을 담습니다.”

일개 주사 직분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에 깜짝 놀란 삼중 스님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다는 대표적인 선례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교도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멋진 인생들로 가득 찰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멋진 김은현 주사가 광주교도소로 인사 이동했다는 소식을 삼중 스님은 사형수에게 전해 들었다. 그런데 채 2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함박웃음이 가득한 사형수는 삼중 스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스님이 손 쓰셨죠. 글쎄 광주에서 화성으로 발탁되어서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잖아요. 스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삼중 스님은 누가 광주에서 화성으로 옮겼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다짜고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는 사형수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삼중 스님에게 이 말 저 말 감옥 안 정보들을 들려주는 사형수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바로 김은현 계장을 두고 한 말이었다. 광주교도소 교무계에서 20일간 근무하던 중에 새로 지은 화성교도소로 발탁되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사이동에서 엉뚱한 삼중 스님이 도움의 손길로 이어졌다는 오해가 어떻게 뛰어나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난 모르는 일인데 왜 이래? 김 계장이 특수한 인재라서 화성 교도소로 등용이 된 거지 절대 오해하지 마라. 나하고는 상관없어.”

아무리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사형수는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무조건 삼중 스님은 감방 안 우상으로 세뇌당한 뇌세포는 어떤 진실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가장 피부로 직접적으로 당하는 사형수는 김은현 계장이 떠난 후에서야 그렇게 소중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하소연을 구구절절 털어놓았다. 정말로 힘든 하루하루를 지내는 현실에서 가장 좋은 교도관이 떠난 자리를 절절하게 그리워했다. 이제 믿을 데라고는 오로지 삼중 스님밖에 없다면서 눈물까지 짓곤 했다.

지난날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던 김은현 계장을 삼중 스님 역시나 그리웠다. 박봉으로 힘겨운 교도관 생활에 기부금으로 건네 준 오만원을 삼중 스님은 오늘날까지 잊지를 못했다. 어디에서나 묵묵히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여전히 자라났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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