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유통
건강식품의 명가 ‘천호식품’ 성공스토리①
‘Mr 오뚜기’ 김영식 회장 뚝심으로 ‘연매출 1200억 성공신화’
 
이동림 기자 기사입력  2016/06/13 [13:50] ⓒ 사건의내막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광고로 유명한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은 지난 1984년 회사를 설립, 200여 종의 건강식품을 제조해 마케팅부터 영업까지 직접 진행해왔다. 자체 유통망을 통해 170만 명이라는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고객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CRM(고객관계관리)이 기존 천호식품 마케팅의 핵심이다. 또한 정직한 원료, 정직한 가격, 정직한 제품이라는 기업슬로건을 내세우며 천호식품을 연매출 1000억대의 건강식품 대표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 회장은 위기 때마다 ‘본업을 바꾸지 않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것, 가격파괴, 못 팔면 죽는다는 결심으로 죽어라 뛴 것’을 성공비결로 꼽았다. <편집자 주>


  

연매출 1000억대의 건강식품 대표기업으로 고속성장

자체생산·판매 유통망 형성…170만 명 충성고객 확보

 

‘흙수저’의 성공비법 “부지런함과 즉시 실천하는 것뿐”

‘뚝심카페’로 성공멘토 자청…100억대 매출 기업 배출

 

▲ ‘한국의 워런 버핏’을 꿈꾸는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사진=천호식품>

 

[사건의내막=이동림 기자]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65)은 스스로를 ‘뚝심왕’이라고 부른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인터넷에 꾸린 모임의 이름도 ‘뚝심카페’다. 간장 탄 물로 허기를 때우던 유년 시절을 지나 ‘성공’이란 두 글자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아온 그를 지탱한 것이 바로 그 뚝심이다.

 

뚝심의 기업가정신

 

그는 ‘힘들어도 밀어붙여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 믿음으로 24세 때 비포장도로를 하루에 100㎞씩 자전거로 달려가며 학습지를 팔아 두 달 만에 전국 최고 부수를 찍었다. 대학등록금이 50만원이 채 안 되던 1980년에 ‘세계 금연의 해’를 맞아 금연파이프 장사를 시작했고 6개월 만에 6000만원의 이익을 남겼다.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장난감과 주방용품 사업을 한꺼번에 시작했다가 순식간에 무일푼이 되었다. 굴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물색했고 1984년에 저주파 치료기 생산을 시작으로 건강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2년 뒤 큰 사고로 왼쪽 팔이 부러져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달팽이를 달여 먹고 거짓말처럼 치유가 되자 달팽이 진액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판매가 되지 않아 파산 직전에 이르자 발이 닳도록 방송사를 드나들며 PD들에게 “달팽이 왔다 갑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기적적으로 한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전화기에 불이 났다. 1994년 1월 부산에서 현금 보유 기준 100명 안에 포함될 정도로 승승장구하자 서바이벌 게임 사업, 찜질방 체인 사업, 황토방 체인 사업 등을 한꺼번에 벌였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가맹자들의 파산이 이어지고 하청업체에 발행해 준 만기 어음이 무더기로 돌아왔다. 유명 식품회사로부터 납품 중단 통보까지 받게 되자 회사는 물론 집까지 날아가고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 시절 9층 사무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이겨냈다고 한다. 1998년 3월, 최종부도 처리될 위기에 처했을 때 아버지가 지원해 준 2000만원으로 다시 신발끈을 동여맸다. 18만 원짜리 강화사자발쑥진액을 5만원에 팔기로 결정, 아내가 산물해준 반지를 저당 잡혀 마련한 130만원으로 전단지를 제작한다.

 

거리에서 전단을 돌리고 전철 맨 앞칸부터 맨 뒤칸까지 선반마다 광고지를 올려놓았다. 항상 가방에 전단을 넣고 다니면서 식당, 골목길, 전봇대, 승용차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공간에 꽂아 넣었다. 심지어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제지하는 승무원에게 “이 전단 못 뿌리면 나 죽어요”라고 우겨대며 전단을 돌렸다. 그렇게 뛴 결과, 첫 달에 1100만원, 1999년 1월에 5억 원, 6월에 9억6000만원까지 매출이 올라갔다. 1999년 6월 ‘사슴한마리’라는 건강식품을 출시, 연간 매출 100억 원을 넘어서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부도위기에 몰린 지 1년11개월 만에 22억 원의 빚을 다 갚은 김 회장은 ‘본업을 바꾸지 않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것, 가격파괴, 못 팔면 죽는다는 결심으로 죽어라 뛴 것’을 성공비결로 꼽았다. 이런 뚝심으로 32년 전 맨손으로 설립한 천호식품을 200여 종류의 건강식품을 제조&#8228;판매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천호식품은 1984년을 창립원년으로 꼽지만 1991년 국내 최초 개발한 ‘달팽이엑기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강화사자발쑥’과 ‘산수유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업이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뒤를 이어 ‘석류액’과 ‘통마늘진액’ 등이 연속 히트하면서 회사가 탄탄해졌다. 특히 2005년 출시한 ‘통마늘진액’은 87.5% 재구매율을 보이는 천호식품의 대표제품이다. 자체 판매망을 통해 제품을 판매했던 천호식품은 2011년부터 유통 확대를 위해 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 입점을 했으며 미국, 중국, 일본, 뉴질랜드 등 9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특히 2012년에는 중국법인을 설립, 중국수출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매출 1100억 원으로 직원수는 380여 명에 달한다. 천호식품은 매월 새로운 제품을 2~3개 새롭게 출시하는 전략으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자체생산과 자체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0여종 이상의 제품 중 90% 이상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없이 자체생산하고 있으며, 총 판매량의 90%를 자체 판매하고 있다. 주요 판매 프로세스는 전 과정을 CTI(전화-컴퓨터 통합관리시스템) 및 본사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통합 관리한다. 자체생산과 자체판매는 품질과 가격과 서비스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어 든든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

 

현재 천호식품은 약 17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고객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CRM이 기존 천호식품 마케팅의 핵심이다. 기존의 전화통신판매, 인터넷 판매, 직영점 판매에다 수출사업과 백화점, 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확대를 위한 전략을 꾀한 결과 천호식품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제품에 문제가 생긴 적이 없어 매년 20%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 천호식품이 전통식품을 상업화했다는 점도 평가받아야 할 점이다. 집에서 달여 먹던 것, 한의원에서 달여 주던 것을 상품화하여 소비자가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최초이거나, 이미 생산되었으나 판매가 지지부지했던 품목을 새롭게 조명하여 판매고를 올렸다.

 

특허 목록을 보면 어떤 제품들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특허를 딴 종목들이다. 달팽이를 주제로 한 건강식품의 제조방법, 산수유를 주제로 한 건강식품의 제조방법, 마늘을 이용한 건강식품의 제조방법, 양파를 이용한 건강식품의 제조방법, 산수유를 주재로 한 보양식품의 제조방법, 수면장애 개선과 쾌면을 위한 건강식품 조성물, 간기능 개선과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건강식품의 제조방법, 흑마늘을 주재로 한 건강식품의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따냈다.

 

▲ 천호식품 ‘우먼솔루션’ <사진=천호식품>

 

천호식품은 사업초창기부터 기술개발을 한 뒤 그 성능을 외부로부터 인증받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1991년에 천호엑기스(달팽이)를 생산하여 이듬해 일본지역 수출하여 일본 후생성 성분검사 합격했다. 1999년에는 강화쑥엑기스골드와 사슴엑기스골드를 태릉선수촌에 공급했다. 2000년에 신기술 벤처기업 등록 이후 계속 기술을 개발해 신제품을 생산해냈다. 2001년 중소기업청 지정 수출유망중소기업 선정, 산업자원부 2002 품질경쟁력 50대 우수기업 선정, 2003년 산업자원부 국가품질경쟁력 50대 우수기업 선정,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으뜸기업 선정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천호식품은 5000평 규모의 최적화된 설비 및 공정,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취득, GMP(우수건강기능식품제조기준) 인증 취득, 모든 제품 330ml 천연 암반수 사용, RO시스템 통해 오염물질 완전 제거한 물 사용 등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나가고 있다. 김 회장은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른 뒤에도 김 회장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인터넷에 ‘뚝심카페’를 열고 중소기업인의 성공 멘토를 자청한 것.

 

김 회장은 지난 2003년 9월 다음(Daum)에 개인 커뮤니티를 열었다. 커뮤니티 이름은 ‘뚝심이 있어야 부자 된다(http://cafe.daum.net/kys1005 일명, ‘뚝심카페’)’다. ‘흙수저’로 태어나 건강식품 업계를 대표하는 성공 CEO가 되기까지 과정과 성공노하우를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다. 밝히고 싶지 않은 실패의 치부에서부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도 드러냈다. 지금까지 꾸준히 직접 올린 글만 13000여 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업 회장의 솔직한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샀다. 회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직접 쓴 글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천호식품에 따르면 김 회장의 ‘뚝심카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커뮤니티다. 김 회장이 직접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거침없이 글로 옮겼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는 게재 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회원 수는 9만 5000여 명으로 이르렀고, 글 일부는 2008년 ‘10미터만 더 뛰어봐’로 출간되기도 했다.

 

김 회장이 직접 올린 글과 책, 강연을 통해 김 회장을 벤치마킹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른바 ‘흙수저’로 태어나 취업이 불투명한 젊은 세대, 자영업자 등에게 성공하고 싶다면 ‘생각하면 행동으로, 지금 당장 즉시!’만 잊지 말라고 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자랑할 건 부지런함과 즉시 실천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내외로 활동한 지 13년 만에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해 현재 100억 매출 기업으로 성장시킨 회원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2000만원으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해 1년 만에 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현재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낸 곳이 탄생했다. 이뿐만 아니다. 2010년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 원 옥탑방에서 시작해 현재 120억원의 매출을 올린 곳도 있다. 이 두 기업의 대표 모두 김영식 회장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의 열혈회원으로 김 회장이 올린 정보를 공유하고 성공노하우를 익혔다.

 

두 기업의 대표는 김 회장을 멘토로 생각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의 선물로 용돈 100만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감동적인 특별한 이야기를 회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 회장은 두 기업의 성공사례를 회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특별한 행사를 기획해 업계의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회장은 “멘토의 경험, 멘티의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합쳐지면 그 시너지는 상당하다”면서 “앞으로 두 대표와 같은 성공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소규모 기업 살리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서울 역삼동에 있는 천호식품 서울법인 6층에 자신의 이름을 딴 중소기업 전문 마케팅 컨설팅회사 ‘김영식마케팅랩’을 설립해 활동 중이다. 커뮤니티에서 나눈 성공노하우를 현장에서도 직접 나누기 위해서다. 그는 중소기업 현장에 직접 들어가 마케팅 자문 및 현물 투자를 진행하면서 중소기업 살리기에 힘쓸 예정이다.

 

김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중소 제조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브랜드와 유통 판로를 확보해야 하고, 대기업에 의지하고 않고 독자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멘토로 나서 동반 성장하겠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은 아이디어부터 제품 개발, 제조까지 훌륭한 제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판로를 못 찾거나 마케팅을 잘하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먼저 인생을 경함한 사람으로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불쏘시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영식마케팅랩은 올해 중소기업 5곳을 선발해 현장에서 마케팅 컨설팅과 현물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컨설팅을 원하는 기업 신청은 김 회장의 이메일(kys@chunho.net)로 받으며, 자문료를 비롯한 수익은 전액 출산장려 캠페인 기금 조성에 쓰일 예정이다. 2008년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출산장려 캠페인도 강화한다.

 

투자의 귀재를 꿈꾸다

 

김 회장은 “한국 인구가 2060년이 되면 부산 인구의 약 2배인 700만명이 감소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사람 없인 국가 경쟁력이 좋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 인생의 3장은 마케팅랩사업과 출산장려 캠페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 꿈꾸면 영원한 꿈이지만,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며 “앞으로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건의내막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