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회
[인터뷰] ‘10년의 투쟁’ 방종운 콜트노조 지회장
“불확실한 미래의 경영악화를 위해 현재의 노동자 ‘해고’가 정답일까?”
성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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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04 [16: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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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가 경제적 살인이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관계는 한마디로 ‘甲과 乙’이다. 직위를 악용해 근로자들을 비윤리적으로 대하는 ‘갑질’은 이미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린 상태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하는데도 감당해야할 여러 사안 때문에 수많은 을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곳처럼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다. 무소불위 갑에 맞서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이다. 누구도 ‘감히’하지 못했던 일을 작은 목소리임에도 뱉어내서 결국 나비효과를 만든 대한민국의 ‘을’들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명품기타’ 콜트콜텍, 전 세계 기타시장 30% 점유 ‘흑자경영’

저임금·장시간 노동 ‘열악한 산업 환경’…노조파괴 여럿 시도

신용평가 AA+·현금창출능력 ‘우수’에도 폐업·정리해고 단행

고공농성·단식투쟁·1인 시위·해외원정까지…10년간 교섭 1회

▲ 지난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강성노조의 무리한 파업으로 건실한 회사가 폐업했다”는 주장에 대한 사과를 받기위해 방종운 콜트지회장은 4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지난 8월26일 김 전 대표의 공개사과와 관련해 방 지회장은 “지난해 김 대표의 발언이 틀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사건의내막

 

지난 8월26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오랜만에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 등장했다. 당 대표 시절 잘못된 발언으로 명예를 떨어트린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그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공식석상에서 잘못된 발언을 해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9월3일 김 전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 자리에서 콜트콜텍을 언급하며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노조가 제 밥그릇 불리기에 몰두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그의 한 문장으로 회사 횡포에 쫓겨나 수년간 길거리에서 투쟁해온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단숨에 ‘가해자’로 뒤바뀌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10년 가까운 농성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의 일터였던 콜트콜텍은 기타 제조 전문회사이다. 콜트악기는 인천에서 전자기타를 생산하고 콜텍악기는 대전에서 통기타를 생산했다. 모두 박영호 대표이사가 1973년과 1988년에 각각 설립했다.

 

그러다 2007년 회사는 돌연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대전 콜텍 공장을 폐업하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다.

 

그러나 폐업당시 회사는 전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흑자경영을 지속해왔고 박영호 사장의 확인된 재산만 1191억원에 달했다. 그 해 박 사장은 한국 부자 순위 12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회사의 폐업 이유는 ‘이윤 극대화’였다. 더욱 싼 노동력으로 기타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중국,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우고 한국공장을 하루아침에 폐업해 버린 것이다.

 

창문도 없는 골방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고 거리로 쫓겨났다.

 

사측은 애초부터 노동조합을 결성한 노동자들을 탐탁치 않아했다. 콜트악기는 1987년 민주화대투쟁 당시 노조를 처음 결성한 이후 박영호 사장의 끊임없는 노조파괴시도에 맞서왔다. 깨지고, 만들고를 반복하다 만든 것이 콜텍악기다. 노조 없는 콜텍을 박영호는 ‘꿈의 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콜텍에도 민주노조의 깃발이 올랐고 이듬해 공장이 폐쇄됐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박영호 사장은 콜트악기만은 계속 운영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에서 콜트 노동자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오자 석달 뒤 콜트 공장까지 폐업하면서 “돌아올 회사가 없다”고 노동자들을 다시 해고했다.

 

복직을 위해 10년 동안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길 위 농성을 이어갔지만 지금까지 회사로 돌아간 노동자는 단 한명도 없다. 생계의 어려움으로 농성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도 현재는 4명에 불과하다.

 

10년 동안 가만히 앉아있던 것도 아니다. 분신시도, 전기 15만KW가 흐르는 송전탑에서의 30일 고공농성, 6번의 해외원정투쟁, 밴드공연, 재정사업, 45일간의 단식, 1인 시위 등 안 해본 게 없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미래에 올지도 모르는 경영악화를 고려해 현재의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역사에 남을 판결을 내렸다.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겪어서 일까.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비닐농성장에서 만난 방종운 콜트콜텍 노조 지회장에게서 분노와 억울함과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방 지회장은 인터뷰 내내 담담하고 느릿한 어조로 자신들의 투쟁기를 들려주었다. 아래는 방 지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농성 1년 만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공개사과를 받아냈다. 하지만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기자회견 전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회장과 얘기를 나누는 김 전 대표의 태도에 ‘사과하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의 사과를 가장 절실했던 사람으로서 당시 그의 사과가 ‘진정성’있었다고 보는가. 기자회견 후 별다른 얘기는 없었나.

 

▲사과 제대로 안했다. 김 전 대표는 단식투쟁, 야외농성 때에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이번 사과도 서울남부지법이 노조에 공개 사과하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원래 김무성 전 대표와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퍼붓는 덕에 김 전 대표가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가서 간담회는 흐지부지됐다.

 

기자회견 전에 그 얘기는 했다. “천막 철거 할 거냐”고 그래서 “안 한다”고 했다. “왜 안 하냐”고 물어볼지 알았는데 더 물어보지 않더라.

 

대부분 김 전 대표가 대선후보라서 어쩔 수없이 사과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 전 대표의 사과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 전 대표가 ‘사실’이라고 생각한 정보를 법원이 ‘틀렸다’고 판결 내려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콜트콜텍의 박영효 사장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만족한다.

 

당시 김무성 전 대표 발언에 방 지회장은 ‘냉수를 벌컥벌컥 마셔도 해소되지 않을 정도의 답답함’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가장의 책임도 뒤로한 채 야외농성을 선택한 이유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쫓아낸 회사의 악행을 사회에 고발하고 싶었던 것인데 김 전 대표 발언으로 하루아침에 회사는 ‘불쌍한 피해자’, 근로자는 ‘악질, 귀족노조’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김 전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전날 “공권력을 투입하면 귀족노조가 쇠파이프로 두들겨 팼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으면 우리의 국민소득은 이미 3만불을 넘었다”며 노조혐오를 부추기는 발언도 내놓은 바 있다.

 

그렇잖아도 억울해 죽겠던 콜트콜텍의 노조 조합원들은 김 전 대표의 사과를 받기 위해 그날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비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노도자 등에 칼을 꽂은 것은 김무성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국내 보수언론 또한 이들에게 ‘악질노조’ 이미지를 덧씌웠다. <동아일보>, <한국경제>, <문화일보>등 3사는 사측 얘기만 듣고 “노조의 장기파업에 따른 경영압박과 적자 누적으로 공장이 폐업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허위 보도’라고 판결하면서 3사는 “콜트악기가 한국 공장을 폐쇄한 이유는 사측이 지속적인 흑자경영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투자를 하지 않은 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한국 내 공장 생산물량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정정 보도 했다.

 

▲ 콜트콜텍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위치한 농성     ©사건의내막

 

 

공장을 폐쇄한 2007년부터 농성을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국내 농성 역사 가운데 최장기간이다. 밴드도 하고, 해외 원정투쟁도 가고, 고공농성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콜트콜텍 문제는 아직 사회적으로 큰 조명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사회의 무관심에 지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태도에 상처받은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분노도 있고 한(恨)이라고 할까. 그런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무감각하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워낙 크고 다양한 일이 많아서 우리의 투쟁이 자연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10년이나 투쟁하면서 빚 말고 얻은 것이 뭐냐면서 그만하라고 한다. 빚은 뭐 예전에 파산 신청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과는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재판을 120건 정도 했다. 제일 싸게 한다고 하지만 하나, 둘 모이면 매우 큰 비용이다. 법률비 모으려고 평소에는 꿀, 고추장, 김 등 팔고 있다. 명절 같은 날에는 후원금도 받는다. 물품, 음식은 대부분 시민단체나 예전 동지들이 알뜰살뜰 모아서 주고 있다. 이런 도움이 없었더라면 10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내 나이가 58세다. 정년퇴직해서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걸어온 삶의 행적을 되돌아볼 시기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삶을 계속 되돌아보게 된다. 몸 편하고 마음 편하면 좋지. 누가 안 좋을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편함이 사람 위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5년간 콜트콜텍에서 일하면서 박영효 사장은 우리에게 한번도 “당신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라왔다. 고맙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기순이익이 나면 “달러 환율 때문에 돈을 벌었다. 여러분들이 좀 더 열심히 해서 내가 돈을 더 벌 수 있게 해줘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통 기업인들은 이윤을 위해 강제로 구조조정을 하거나 그러면 언론에 비춰질 때만은 양심이 있어서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박 사장은 자기가 정의라며 떠들어댄다.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해서 무리한 임금인상과 복지를 요구하면서 불법시위와 파업을 했다.

 

결국 생산시설이 마비돼 물량을 구하지 못하고 바이어가 등을 돌림으로써 오더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박 사장 말이 사실이라면 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폐업한 사장은 ‘명예로운 기업인’이고 ‘불쌍한 피해자’다. 하지만 아무리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라도 공장은 자신의 생산현장이다. 그곳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고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그런데 어떤 노동자가 회사가 어려워서 문 닫을 정도라는데 허구헌날 파업만 하겠느냐.

 

우리도 가정에 들어가면 가장이다.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해야하는 책임이 있다. 보수언론에게 정정 보도를 받아낸 것도 법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2012년 대법원은 콜트 노동자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회사는 공장을 완전 폐업하면서 또 다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또 2014년에는 ‘미래상 경영 위기’를 이유로 사측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유명한 판결을 내놨다. ‘강경노조’에 대한 김무성 전 대표의 공개사과도 받아냈다. 돌아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농성을 끝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돌아갈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돌아갈 곳을 없앤 것이다. 회사는 지금도 made in korea로 수출하기 위해서 한국에 본사를 두고 바이어들을 통해서 해외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복직된다면 해외에서 일하다가 한국 공장이 지어지면 돌아와서 일하면 된다.

 

2012년 대법원은 콜트와 콜텍에 대해 각각 다른 판결을 내렸다. 콜트 해고는 부당하지만 콜텍 해고는 정당하다고 봤다. 당시 안대희 법관은 그 유명한 미래상 경영 위기를 언급하며 해고가 위법이라는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기업들이 지금은 경영상태가 정리해고할 정도로 긴박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악화할 것 같은 경우 노동자를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측 회계법인에서 회사 경영평가를 바탕으로 반박자료를 내놨다. 정리해고 할 만큼 경영이 긴박하지 않았고 경영악화가 대전 콜텍으로 인해서 전이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2014년 6월12일 콜텍 최종 해고는 이런 자료가 모조리 무시당한 결과다. 법적으로 콜텍은 더 이상 싸울 거리가 없다. 그리고 콜트악기의 경우 우리가 “위장폐업”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위장폐업이라고 볼 정황이 없다”며 ‘구제실익’이라며 각하했다. ‘구제실익’이라는 것은 구제를 해줘도 돌아갈 회사가 없다는 뜻이고 ‘각하’는 재판할 거리가 안된다는 말이다. 문닫고 실체가 없는 회사라 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폐업이 아니라는 주장을 수도 없이 댔는데 도대체 인정해주지를 않는다. 상표권에서도 콜트는 2023년까지 악기 제조로 등록돼 있고, 한국지식경제부에서도 한국 세계 1등 상품 ‘콜트악기’라고 등록돼 있다. 공식홈페이지에서도 ‘50년간 외길을 묵묵하게 걸어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이걸 폐업이라고 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콜트콜텍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농성은 끝나지 않는다.

 

10년 가까이 농성하면서 형사 주선으로 박 사장을 딱 한 번 만난 적 있다. 공장 폐쇄하고 이듬해 즈음이었다. 박 사장이 항상 노래를 불렀던 것이 ‘무노조 경영’이었다. 자기가 무슨 이병철이냐고.

 

박 사장 부친이 수도피아노 대표였는데 삼익악기에 인수되면서 문 닫았다. 박 사장은 매일 “이게 다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수도피아노가 문 닫은 이유는 친인척들이 부도가 났을 때 돈을 빼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사장의 인식은 딱 1980년대에 멈춰있다. 그 당시 노동법, 연장수당, 산업재해 이런 것이 어디 존재했는가.

 

회사가 성장한 만큼 인식도 발전해야하지만 그 옛날 200만원으로 10~20명 데리고 부려먹던 그 시절에 멈춰있다. 얘기가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

 

박 사장이 하도 노동자들이 파업에다 불법시위해서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오더가 없다, 미치겠다고 얘기해서 한 때는 내가 혹시 정말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가방끈도 짧고 어설프게 배운 지식을 가진 내가 정말로 회사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라고. 그래서 세무서에 가서 물어봤다. 정말 우리 회사가 그렇게 어렵냐고. 그런데 회사 재정상황보고 직원이 놀래서 물었다. “단순히 기타 만드는 회사가 왜 이렇게 돈을 잘 버느냐”라면서 말이다.

 

경영이 어렵다던 2006년 100억을 유상감자해서 챙겨가서 부채비율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한국신용평가기관에서 AA+우수, CF1 현금창출능력 우수 평가를 받았다. 매입매출표도 살펴보니까 2003년부터 한국공장의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해외공장에 수익을 올렸다. 사장 스스로가 경영이 어려운 회사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농성하고 있으면 다가와서 말한다. “합의보고 얼른 끝내”라고. 처음에 회사도 위로금 챙겨주려고 했는데 거절했다.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10억엔 필요 없다, 진정성있는 사과를 먼저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장이 우리를 불명예스럽게 만들었던 ‘무리한 요구와 잦은 파업으로 경영을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모두 거짓말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10년 동안 싸워온 이유가 이것이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

 

김무성 전 대표에게 사과하라고 45일을 굶은 것도 보수언론에게 정정 보도를 요구한 것도 기타를 만지던 손으로 연주를 시작하게 된 것도 모두 ‘명예’를 찾기 위해서다. 자식들 한창 클 때 뒷바라지 못해준 아비의 미안함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게 싸워온 투쟁을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방 지회장은 “노동자가 억울하지 않고, 쫓겨나지 않고, 인간답게 권리를 지키면서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특유의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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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묵 16/09/14 [13:09] 수정 삭제
  콜,트, 방,종,운,네가 빼앗은 조합원들의 일터를 돌려다오, 방,종,운 사측에게 순환휴직과 정리해고를 하도록 길을 열어주고너의 과한 개인적 욕심때문에 1백수십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런 너는 지난10년 혼자서 노동계 영웅처럼 전사처럼 행세하며 민노총 게시판에 언론에 너의 이름석자 남기고 싶어서 글과시로 도배를 하다 시피해왔다, 그래서 1백수십명 일터를 빼앗고 네가얻은것이 무엇이더냐, 너로인해 일자리를 잃은 조합원들은 지금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네가 장담하며 큰소리치던 공돌을(공장으로 돌아가간다던) 기약도 없구나,방,종,운,
저승사자 16/09/14 [14:16] 수정 삭제
  인천지부자유게시판 (저승사자글펌) 2008/02/26 05:41 방종운 네가 말했지 않았는가 말이다 회사가 정리해고수순을 밟기 위해 순환휴직 하려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너는 대의원들을 시켜 각 반별로 조합원들에게 투표를 강행하였다 조합원이 간부들이 반대하는데도 투표결과도 반대가 많았는데도 간부들의 만류에도 너는 자신의 업적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회사가 조합원들을 정리해고 하는데 앞장섰다, 그렇게도 역사에 주인이 되고 싶어 했던 네가 방 씨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하던 네가 되고 싶은 대로 되어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려 존경하옵는 전 방종운 지회장님, 그러게 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콜트노동자들을 사측의 정리해고에 빌미를 제공해 죄없는 조합원들의 밥줄을 끊고 그가족에게 생계의 고통을 주시었소
김진솔 16/09/14 [14:22] 수정 삭제
  10년세월 방종운만 남고 콜트 1백수십명 조합원들의 일자리 일터는 사라지고 없다, 노동계 솔로영웅 방종운, 노동계 전사 방종운, 노동계 신기루 역사 방종운, 1백수십명 일자리 일터를 빼앗고 얻은 실로 엄청난 성과,
김진솔 16/10/03 [12:59] 수정 삭제
  가지가지들 한다. 농성3532,새누리당 노숙농성364(방,종,운) 민노총 공유게시판(펌) (중략) 아마도 박영호 대표가 돈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갈지 명예를 가지고 갈지 판가름 날 때 까지 해야겠다. 어느 노스님에 한말이 떠오른다.(중략) 인천지부자유게시판 (저승사자글펌) 2008/02/26 05:41 방,종,운 네가 말했지 않았는가 말이다 회사가 정리해고수순을 밟기 위해 순환휴직 하려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너는 대의원들을 시켜 각 반별로 조합원들에게 투표를 강행하였다 조합원이 간부들이 반대하는데도 투표결과도 반대가 많았는데도 간부들의 만류에도 너는 자신의 업적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회사가 조합원들을 정리해고 하는데 앞장섰다, 그렇게도 역사에 주인이 되고 싶어 했던 네가 방 씨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하던 네가 되고 싶은 대로 되어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려 존경하옵는 방,종.운지 회장님, 방,종,운지회장님의 탁월하신 전술이 1 백 수십 명의 일터를 빼앗아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 채 흘러버린 10년 1년만 싸우면 돌아갈 수 있다던 공장은 사라져도 오매불망 자신의 안의만을 생각하고 조합원들의 삶은 피폐해져가도 들여다보기는커녕 노동계 전사가 되고 싶어 안달, 노동계 영웅이 되고 싶어 안달, 노동계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되고 싶어 안달이나 민노총게시판에 언론에 자화자찬 글로 시로 도배를 한지 어언10년 남은 것은 방,종,운 방,종,운 방,종,운 세글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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