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가 경제적 살인이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관계는 한마디로 ‘甲과 乙’이다. 직위를 악용해 근로자들을 비윤리적으로 대하는 ‘갑질’은 이미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상태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하는데도 감당해야 할 여러 사안 때문에 수많은 을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곳처럼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다. 무소불위 갑에 맞서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이다. 누구도 ‘감히’하지 못했던 일을 작은 목소리임에도 뱉어내서 결국 나비효과를 만든 대한민국의 ‘을’들을 만나봤다.<편집자주>
오른쪽 바퀴 ‘정규직’·왼쪽 바퀴 ‘비정규직’…동일 노동·다른 처우
근로계약서·4대 보험 無, 10년 일해도 ‘퇴직금 0원’에 보장 없어
▲ 김선영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노조 위원장은 “입사부터 근무 과정, 퇴사까지 본사의 관여 하에 움직이는데 왜 자사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느냐고 원청인 현대기아자동차에 묻고싶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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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주 단체 ‘말 안 듣는 직원’ 명단 공유 이직 막아놔
‘입사→근무→퇴사’관여하지만 현대차 “직접 계약자 아냐”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과 처우가 완전히 다르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예를 들어 내 옆에서 오른쪽 바퀴를 수리하고 있는 동료는 정규직이라서 기본급, 성과급, 각종 복리후생을 받는 반면 왼쪽 바퀴를 수리 중인 본인은 비정규직인 관계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면. 이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헌법 내 노동법을 근거로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관리자가 노조에게 침을 뱉고, 입술을 핥고, 협박을 하고, 목을 조르면서 ‘해고’를 통보한다면?
이직하려고 해도 당신의 이름이 사용자들끼리 공유돼 매번 거절당하고.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분류돼 법에 호소하지도 못한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그리고 이러한 불합리한 일이 국내외서 일류라고 칭송하는 기업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본지는 현대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김선영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위원장을 만나 대리점 소장의 갑질과 원청의 잔인한 효율적인 업무 행태에 대해 들어봤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는 IMF를 기점으로 판매부문에 대리점 제도를 도입했다. 직영 지점에서 근무하는 판매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인 반면 대리점 판매노동자는 비정규직이다. 고용형태도 다르지만 각종 복리후생, 소득 등 처우 역시 매우 차이가 크다.
가장 큰 차이점은 동일한 업무를 하지만 지점 판매노동자는 근로계약서를, 대리점 판매노동자는 용역계약서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정규직은 노동자지만, 비정규직은 개인사업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직영 판매노동자들은 급여 및 상여금, 각종 성과금, 지원금을 받는 반면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은 기본급이 없어 차를 한 대도 한 달동안 팔지 못할 경우 소득은 0원이다. 18년 동안 근무해도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아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현대기아차는 대리점 판매 노동자들에 대해 “자신들이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며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은 고객들에게 현대기아차의 로고가 선명한 명함을 주고 현대기아자동차 계약서로 차량계약을 하며 회사에서 지급해준 태블릿PC로 고객과 상담한다. 차량 재고 파악 및 계약은 물론 탑재된 고객관리 프로그램(CRM)으로 고객관리까지 일괄적으로 진행한다. 본사의 대리점 대표를 통해 각종 업무지시 및 관리감독도 한다.
설령 본사 주장대로 대리점 직원들이 정상적인 용역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출퇴근 등을 포함한 근태관리나 성과실적으로 인한 압박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사실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면이 ‘개인 사업자’로 되어있어 노동자의 기본 권리도 못 누린다. 일반적인 노동자와 같은 의무만 존재할 뿐 당연히 가져야할 권리(기본금, 퇴직금, 4대 보험 등)는 전혀 보장받지 못 하는 것이다.
대리점대표가 맘에 안 들어서 타 대리점으로 옮기려고 해도 제약이 따른다. 대리점대표들의 이익집단인 협의회를 통해 본인들 허락 없이는 6개월간 타 대리점으로 이직을 못하게 금지해놓았기 때문이다. 6개월이 지나도 마음에 안 드는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살생부 명단을 공유해 취업을 막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은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하면 급여가 0원이므로 무리해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들에게 썬팅 및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등을 더 얹혀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적에서도 대리점이 전체 수익의 60%이상을 기여한다. 물론, 인센티브는 따로 없다.
또한 분기별로 월평균 3대를 판매하지 못할 경우 대리점 직원은 ‘부진자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해당지역본부 주관 하에 집합교육을 받아야한다. 이곳에서 직원들은 각종 모욕을 받고, 퇴사를 종용당했다고 김 위원장은 설명했다. 물론 정규직들은 실적이 부진해도 부진자 교육을 받지 않는다.
하루 식대비도 없다. 직영 대리점의 정규직 직원은 하루에 교통비 및 식대로 21000원을 지급받지만 대리점 직원들은 사비로 충당한다. 휴일 당직근무를 해도 주말 수당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국내자동차 제조사 5개회사 현대, 기아, 르노삼성, 쉐보레, 쌍용자동차 판매노동자가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 8월22일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를 만들고, 출범 시켰다.
이 소식은 곧바로 본사와 대리점에게 전달됐고 이튿날 노조 명단이 압박이 가해졌다. 정식 노동조합도 아니고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의 협의체인 임의단체 였을 뿐이지만 회사는 노조 위원장은 물론이고 사무처장에 한 달만에 해고를 통보했다.
사측에 압박에 같은해 9월18일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정식 노동조합 설립인가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출근을 강행했지만 사측의 인권유린적인 탄압이 이어졌다.
대리점 소장은 김 위원장에게 폭언과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 주장에 따르면 대리점 대표는 얼굴에 침을 뱉고, 목을 조르고, 팔을 꺾고,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로 들이받았다. 이것도 모자라 얼굴에 바람을 불어넣고, 귓불을 빨고, 입술과 뺨을 핥는 등 강제추행까지 서슴치 않았다.
“집에 찾아가서 칼로 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 수차례 전달했음에도 변화는 없었다. 대리점 대표 또한 “국회에 가서 계속 떠들어라”고 비아냥 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무너지지 않자 현대자동차는 김 위원장이 근무하던 안산중앙대리점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고용승계도 받지못해 이들 대부분은 실업자 상태다.
현재 김 위원장은 현재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원청을 상대로 제출한 상태다.
그는 “소송을 통해 우리가 현대기아차 소속의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받아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고 쉽지 않은 길임을 알면서도 차별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아래는 김선영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대리점 판매노동자인 김선영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노조 위원장은 ‘개인사업자’로 직영 판매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이유로 직장에서 하는 업무는 동일하지만 대리점 노동자인 김 위원장은 차를 한 대도 못 팔 경우 소득은 0원인 반면 직영점 노동자는 기본금과 각종 복리후생을 받는다. © 사건의내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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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달라.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은 근로환경이 매우 열약해서다. 우리는 엄연히 노동자이지만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있어 노동자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근로계약서도 15년 근무하면서 단 한 차례도 쓴 적 없다. 원래 용역계약서도 전체 현대기아차 대리점 20% 정도 썼지만 최근 간접고용에 대한 법망을 피하기 위해 강제로 직원들에게 작성할 것을 압박한다.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와 사용자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다. 우리의 사용자는 현대기아차다. 회사는 우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담 우리를 고용한 사용자는 누구인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아르바이트도 가입하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기본급도 못 받는 이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누가 고용했는가, 주체가 누구인가다. 법원에 정몽주 회장이 우리의 사용자라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법원에 호소한 것이다.
고용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대리점 소장들의 갑질은 도를 넘고, 직원들은 사실상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한다. 10년을 다녔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보호조건이 아무 것도 없다.
개인사업자로 해놓았기 때문에 내일 당장 잘려도 이상할 것 없다.
실제로 아침 회의시간에 소장에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들었다면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지마”란 말이 나온다. 이게 끝이다. 전국에 현재 현대기아차 대리점이 800여점이 있다. 소장에게 찍히면 이직도 할 수 없다. 소장끼리 담합을 해서 소위 찍힌(?) 직원들 명단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입사과정을 보면 순서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소장에게 입사원서를 접수를 하면 소장은 대리점협회모임의 장에게 전달한다. 협회장에게 도장을 받으면 이번에는 정규직노동조합장이 허가해야 한다. 그 뒤 본사에서 최종 허가가 떨어져야 대리점에 입사가 가능하다.
안산지점에서 소장과의 트러블로 나와서 부산지점에 입사원서를 내도 블랙리스트 직원 명단에 이름이 있으면 이직은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느 누가 노예를 자처하지 않겠는가.
▲정규직 노동조합에게 인사권한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비정규직 노조와 처우가 많이 차이나는가.
-매우 다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공장에서는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만든다. 같은 일을 하지만 기본급은 2-3배 차이가 난다. 여기에 비정규직인 우리는 기본급을 비롯해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사비로 충족하지만 정규직들은 모두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상대적 박탈감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노조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폭언과 폭행, 인권유린 심지어 강제추행까지 당했다. 노조 명단을 입수해 조합원들과 사무처장을 해고했다. 그래도 계속 출근하자 “퇴근길에 칼로 찔러서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침 뱉고, 전 직원들 보는 앞에서 때렸다.
그래도 나가지 않자 회사는 업무 감사를 나온 후 업무정지 21일이라는 조치를 내렸다. 영업정지는 말 그대로 일하지 못하는 거다. 계약도 출고도 아무것도 못한다. 결국 폐점했다.
한 사람을 자르기 위해 회사 자체를 날려버리는 셈이다. 대기업들이 노조를 파괴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자사 직원들이 철탑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몇 달간 해도 꿈적하지 않는 게 현대자동차다. 이렇게 노동3권을 무참히 짓밟음에도 최후의 승자는 결국 자본인 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입사방법이 달랐던 것은 아닌지.
-이러한 왜곡된 고용형태는 IMF때 부터다. 회사가 기존 직원들의 반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실행한 것이다. 그 이후로 현대자동차가 정규직을 채용한 것은 15년 간 2회, 약 200여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재 현대기아차 실적의 60% 이상은 대리점에서 낸다. 회사 입장에서는 여러 복리후생과 지원금, 정년까지 무조건적인 고용보장을 약속한 정규직을 늘리는 것보다 저비용·고효율의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하는 일도 똑같다. 현대차가 준 명함에, 뱃지를 달고, 태블릿을 사용해 고객에게 차를 소개하고 판다. 원청에 가서 4박5일 교육을 받아야하고 정기적으로 시험도 보고, 연차별로 교육도 다 받는다.
다른 점은 정규직에게는 양복, 구두, 기름값, 통신비 등을 지원하고 실적이 떨어져도 부진자 교육을 받지 않는 반면 비정규직은 모두 사비이며 부진자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점이다. 온갖 모욕을 주며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부진자 교육이 너무 싫어 대부분 비정규직 직원들은 실적을 더 내기 위해 사비를 들여 옵션을 더 얹혀준다. 월급 300만원 받으면 150만원이 블랙박스 값으로 나간다. 그러다보니 의효보험비가 연체된 사람, 신용불량자가 굉장히 많다.
한마디로 현대기아차 수익은 비정규직이 올리지만 성과는 정규직에게만 돌아가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장 많이 느낀다. 동일한 노동을 해도 우리 통장 잔고는 0이지만 정규직들에게는 성과급이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노동자에게 임금보다는 고용보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업했더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다. 회사는 미리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 우리를 개인사업자로 고용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의 보호막에 비정규직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곳에 재계 맏형격인 현대기아차가 포함된다면 도미노가 돼 국내 근로환경이 개선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갈 길은 멀다. 하지만 해결은 간단하다. 우리를 현대자동차 소속 노동자로 인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