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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1월12일도 평화시위가 지켜지길
 
임대현 기자 기사입력  2016/11/11 [17:44] ⓒ 사건의내막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임대현 사건의내막 기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국민들은 거리에 나서서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29일, 11월5일을 거치며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연이은 대규모집회에도 큰 사건 없이 지나갔다는 것은 꽤나 놀랄만한 일이다. 우리가 그토록 소리쳤던 ‘평화시위’가 완성된 것으로 볼만하다. 실제로 과거의 시위풍경과 지금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맨 처음 시위취재를 나선 것은 대학생이었던 지난 2010년이다. 당시 서울에는 ‘G20 서울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각국의 정상이 모이는 자리는 조용했지만, 서울역 앞 광장은 각종 시민단체들이 모여 시끄러웠다.

 

당시를 회상하면 대부분의 노조들이 집회에 참여했던 것 같다. 여기에 해외에서 온 노조 혹은 인권단체 대표들이 자리를 더욱 거대하게 만들었다. 해외 취재진들을 구경하는 것도 진기한 풍경이었다.

 

시위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것은 예정된 거리행진을 경찰이 막으면서부터다. 당시 현장에서는 몰랐지만, 경찰 측에선 시위대가 밀고 가던 조형물을 문제 삼았다. 까만 쇠방패를 든 의경들이 순식간에 시위대 앞에 줄을 지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학보사 기자였던 시절 어리둥절하면서도, 경찰이 세우는 인간 방벽을 찍을 기회라 생각해 카메라를 들고 앞으로 갔다. 이후 경찰들의 인간 방벽에 감탄하며 사진기를 누르다가 순간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끼어버렸다.

 

당시 내 몸보다 카메라가 고장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품에 안고 시위대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지만,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다. 그렇지만 그 당시 마주한 무표정의 경찰들과 딱딱한 쇠방패는 아직도 두려움으로 남는다.

 

‘평화시위’에 대한 염원은 당시에도 거셌다. 시위대 안에서도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컸고, 한쪽에선 평화시위를 하자는 1인시위도 이어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평화시위’에 대한 몫은 집회를 주최하는 쪽에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엔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사망하는 등 ‘평화시위’에 대한 문제가 단순히 시위대에만 있지 않다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집회를 하는 시민들과 이를 통제하는 경찰 간의 ‘합’이 잘 맞아야 ‘평화시위’가 가능하다.

 

최근 시위현장을 가보면, 몇몇 과격한 단체에서 일부러 경찰에 시비를 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일부에서 얘기하는 ‘시위꾼’이라 할 수도 있다. 재밌는 건, 이들을 막는 것도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경찰들도 이 같은 상황을 모를리 없다. 일부의 잘못으로 집회가 해산될 것 같다가도, 경찰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름 바뀐 시위풍경으로도 보인다.

 

차갑고 무서워 보이던 쇠방패도 사라졌다. 경찰들은 이제 하얗고 투명한 방패를 들고 집회를 통제하고 있다. 기분탓 일지 모르지만, 무표정한 모습도 조금은 풀어진 것 같다.

 

오는 12일은 민중총궐기가 있는 날로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경찰은 청와대까지 거리 행진을 금지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법원이 허용해야 한다고 결론내면서 청와대까지 시민들이 행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날 역시 ‘평화시위’가 펼쳐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찰과 시위대의 ‘합’이다. 시위대는 일부 과격한 시민들을 막아야 한다. 경찰도 일부의 문제로 전체를 막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자들도 몸 성히 현장을 취재해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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