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프로야구 개막, 인기비결과 탄생비화
압도적 경제효과 과시 KBO 리그, 대한민국 NO.1 프로 스포츠!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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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4 [14:1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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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중으로 가득찬 야구장 <사진=MBC 뉴스 갈무리>     © 사건의내막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무엇일까? 스포츠의 범위 자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등산 등 다양한 생활체육이 언급될 수 있으나, ‘프로 스포츠’로 한정해 본다면 ‘야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사상최초로 800만 관중을 동원하면서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보기 힘든 엄청난 티켓파워를 보여준 야구는 양질적 팽창이 계속되며, 라이벌 격인 프로 축구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한국 최고의 인기스포츠’ 입지를 굳건히 해오고 있다. 오는 3월31일 열릴 2017 KBO리그 개막전도 역시 대부분 좌석이 매진되는 등 ‘불경기’를 잊게 하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이에 '사건의 내막'에서는 프로야구의 인기비결과 탄생비화 등을 다뤄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최고의 관중동원력 자랑…아시아 전체 최상위권 자랑

지역명 없는 이유…굳이 넣을 필요 없는 인기도 때문

설립은 전두환 정권 3S 정책 일환…대기업 강제 참여

36년 간 ‘양·질적 팽창’…평균 연봉 1억2000만원 상승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대한민국 프로야구(KBO)는 지난 1982년에 창설되어 올해로 36년 차를 맞이했다. 리그명칭은 2014년까지 한국야구선수권대회였으나 2015년 부터 리그 브랜드 아이덴티티 통합을 위해 KBO 리그라는 브랜드로 재출범하게 되었다. 주관 단체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으로서 각종 행정을 총괄한다.

    

최고의 인기도

 

프로구단 창단 시 창설된 구단들은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MBC 청룡, 삼미 슈퍼스타즈,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이며, 역사적인 첫 경기는 1982년 3월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이날 시구는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했고, 경기 결과는 삼성 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MBC 청룡의 이종도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쳐내며 MBC 청룡이 승리를 가져갔다.

 

KBO 리그는 연혁과 관중 동원력에서 볼 때, 단연코 한국 최고인기 스포츠 리그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프로스포츠 관중 추이 관련 자료 관중 동원력은 아시아에서도 좋은 편인데, 2015년 기준 아시아에서 KBO 리그보다 평균 관중수가 많은 리그는 5개 정도밖에 없다.

 

그 5개는 일본프로야구(2만8248명·야구), 인도 프리미어 리그(2만7833명·크리켓), 인도 슈퍼 리그(2만7224명·축구), 중국 슈퍼 리그(2만2193명·축구), J리그(1만7803명·축구) 이상 5개 리그뿐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경제력과 인구 모두 월등한 일본과, 인구가 20배 이상 많은 중국·인도 프로리그 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관중 동원력이 뛰어난 것이다.

 

이같은 성장의 가장 큰 이유로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딴 2008년 이후로는 젊은 층의 대거 유입과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편승효과로서 유행을 쫒는 심리) 등이 얽히면서 폭풍 성장하게 되었고, 인기가 많다보니 프로야구 중계 플랫폼은 TV와 인터넷,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하게 존재해 시청하기도 쉬운 편이다.

 

중계 플랫폼이 이렇게 나뉘는데도 프로야구 케이블 tv시청률은 인기 팀에 경우 2%가 넘어가며 평균 시청률이 1% 이상이 되며, 인터넷 플랫폼 시청자수는 기본 4~5만이 넘어간다. 구단 자체 수익의 단위도 100억 단위를 기록하고, 보는 사람이 많기에 야구장 광고 판매나 TV 방송사 중계 판매율은 급증해서 초단위로 광고가 몰려들 정도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중계권료 500억 시대를 열어 제친 국내 최초의 스포츠이며, 스폰서 금액도 70억 이상으로 돈과 관련해서는 따라올 프로스포츠가 없다.

 

대기업이 운영하지 않는 넥센 히어로즈처럼 스폰서 만으로 꾸려나가는 구단이 나올 정도로 자체수입도 상당한 편이다. 대중적인 인기도도 월등해서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다는 답변을 한 국민은 40%가 넘을 정도였다.

 

이같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관중수 중에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과,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프로스포츠다. 이를 달리 말하면, 다양한 광고와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프로야구는 한국의 여가문화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이 스포츠 산업 중에서 압도적인 편이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2013년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2017년 올해의 KBO리그의 공식로고 <사진=KBO>     © 사건의내막

    

지역과 경제효과

 

이같은 국내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야구답게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팀 명칭에 지역명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중 야구를 제외한 축구, 농구, 배구의 경우에는 많던 적던 지역명이 들어간다.

 

야구가 지역명을 넣지 않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상업적 측면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즉, ‘필요가 없어서’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프로스포츠 후발주자들이 팀명 제일 앞에 지역명을 붙인 건 프로야구의 높은 인기를 꺾어보기 위해서 였기 때문에 삽입한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프로축구리그(K-리그)의 경우에도 1995년까지는 지역명이 들어간 구단은 포스코가 모기업명이기도 한 ‘포항제철 아톰스’ 뿐이었다. 이는 프로축구가 지난 2002년 월드컵 유치에서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 내기 위함과 동시에, 프로야구의 지역 연고를 뛰어 넘기위해 지역명+구단명 정책을 시행한 것으로서, 2002년 월드컵 열풍을 타고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올 뻔 했으나 각종 파문으로 인해 2000년대 중후반부터 가라앉아버렸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명 붙이는 다른 종목들 인기가 야구를 넘지 못하다 보니 지역명이 큰 이슈가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지역명을 붙이지 않는 것이 야구가 타 스포츠에 비해 연고지 정착이 상당히 잘 되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프로 출범은 한국보다 수십년은 앞서있고, 프로야구 규모면에서도 압도적인 일본이 한국이 프로 출범한 뒤에도 여러번 연고지 이전을 하는 등 연고지 문제로 골머리를 싼 사례를 보면 한국 프로 야구가 연고지 정착이 매우 빠르고 굳건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실제로 프로야구리그의 경우 전국 순회 리그로 시작한 프로축구리그와 프로배구리그와는 달리 처음부터 확고한 지역연고로 시작해 지역명 안 넣어도 연고지를 모를 가능성이 적다.

 

이는 타 프로스포츠들이 지역명을 꼬박꼬박 붙여 말함에도 리그가 생긴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까지 연고지 문제로 몸살을 앓거나, 안정적이고 충성도 높은 관중 숫자를 확보하지 못해 무료 티켓을 돌리거나 서포터즈 문제로 골머리를 싸는 다른 종목들의 현실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프로야구팀처럼 기업명을 쓰는게 장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 기업명은 전국 어디서나 일반적이라서 장점을 가지기도 하는데 꼭 연고주민이 아니더라도 응원하기 쉽고, 팀에 대한 거부반응이 적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기 야구팀인 ‘롯데 자이언츠’라고 하면 부산 뿐 아니라 울산, 경남 지역주민들이 응원하는데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반면, 부산 자이언츠라고 하면 광역 연고의 지역민들이 받아들이는 인식이 지금보다 좋지 않다는 것. 해태가 호남 타이거즈라고 이름을 지어서 광주(당시에는 전남 소속) 전남 전북을 아우른다 해도 비호남 지역민들은 아무래도 심리적 거리감이 더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연고제가 적용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유니폼등에 지역명 등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광역연고+타지역팬의 반발로 빠졌다.

 

단적인 예로 한화 이글스의 경우 2000년대 중반까지도 유니폼에 '대전'이 있었는데 충북팬과 충남팬들, 특히 홈경기가 열리는 청주팬의 반발로 결국 유니폼에서 빠졌다고 관계자가 밝힌바 있다. 역으로 나머지 대전 연고 프로팀인 대전 시티즌(축구)과 대전 삼성 블루팡스(배구) 유니폼에서는 연고지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 팀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나마 롯데 자이언츠가 2000년대 중반 자매구단인 치바 롯데 마린즈와 엠블럼을 통일하면서 로고에 지역명이 들어간 최초의 구단이 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로 생긴 팀들은 로고에 잘 붙인다. 1980년대 창단한 구단들은 안 붙이는 편이다.

 

유일하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구단이 아닌 넥센 히어로즈는 장기적으로 기업명 스폰 없는 서울 히어로즈가 목표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현재는 넥센 타이어에서 스폰서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지역명은 부각되지 않는다.

    

전두환과 야구

 

지역명이 빠져있는 다른 요인으로는 KBO 리그 출범 당시 윗선에서 지역감정을 유발할수 있다는 이유로 지역명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전해진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5공화국에서는 의외로 지역감정 유발을 반기지 않았고, 프로야구 창단부터 지역감정을 일으킬 대목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는 5공화국 자체가 광주항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민중 무장봉기와 그에 대응한 잔혹한 학살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의 민심을 강온 양면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80년대 내내 5월18일 전후로는 절대 해태가 광주 홈경기를 치르지 못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5공화국은 광주 주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 자체를 두려워했고 지역감정의 충돌은 그런 집단의식을 표출하기에 매우 좋은 발단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색을 강화하는 것을 꺼려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허구연 씨 및 故하일성 씨 등 원로 야구해설가들 증언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지역명으로 중계를 하거나 뒤에 붙은 베어스, 라이온즈 등을 사용하였는데 프로스포츠로서 자립이 힘든 한국의 실정상 기업명을 불러줘야 모기업이 구단에 더 관심을 가지고 좋은 시선을 줄 것이라며 기업명을 쓰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서울을 연고로한 방송사 MBC의 입김이 쎄게 들어갔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를 근거로 지역명 금지가 해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KBO 프로야구 정관이나 규약에 지역명을 쓰지 말라고 명시된 적이 없다. 정확히는 팀명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다. 구단이 쓰고 싶으면 쓰고 안쓰고 싶으면 안 쓰는 것. 다만 1980년대 당시에는 금기시했었고 시간이 지나며 금기가 사라지는 분위기 변화는 있었다.

 

이처럼 옛 전두환 정권의 영향이 아직까지 들어가 있는 프로야구는 전두환의 3S정책으로 시작됐다. 지난 1981년 5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3S정책(Screen·Sports·Sex, 영화·스포츠·성)의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 창설지시가 떨어졌고, 비서관은 야구협회와 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됐다.

 

프로화 움직임이 전혀 없는데 전두환이 강제로 만든 것은 아니고 의외로 방송사인 MBC의 역할과 의지도 충분히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프로리그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당시에 축구계에서도 프로화를 추진하였는데 축구협회에서는 운동장 야간조명 설치 등을 이유로 139억의 막대한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고 정부에게 보고를 올렸다. 반면, 야구협회 전무를 지낸 이용일과 운영부장 출신 이호헌이 가세하여 수립한 야구 프로화 계획서는 정부의 지원금 한푼 없이도 프로화가 가능하다는 골자의 내용이 있었고, 이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서 우선 프로야구 부터 출범시키기로 낙착을 지었다.

 

정부 보조가 없는 방법 이라는 것은 바로 대기업 들이 야구단을 하나씩 맡도록 한 것이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따르지 않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물론 정착을 위해 야구단을 만든 기업들에게 운영 및 세무 면에서 혜택을 주기는 했다.

 

전두환 정부는 처음의 연고지안부터 최종 안까지 공통점으로는 그룹 오너의 고향지역이거나 그룹이 위치한곳 혹은 처음 시작한곳 같은 각 그룹에 있어 중요한 지역을 맡긴다는 원칙을 내세워 계획을 했고, 이는 결국 삼성 라이온즈(대구), OB 베어스(충청), MBC 청룡(서울), 삼미 슈퍼스타즈(인천), 해태 타이거즈(광주), 롯데 자이언츠(부산)의 원년구단 탄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같은 야구는 1982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와 함께 시작되면서 3S정책의 최선봉장으로 활약하게 된다.

 

▲ 지난 1982년 3월27일 한국 프로야구 창단 개막경기에서 시구하는 전두환(가운데). <사진=e영상역사관>     © 사건의내막

    

36년의 세월

 

그리고 각종 풍파를 겪은 프로야구 리그는 2010년 대 들어서는 매해 전성기를 맞으며 국내최고의 인기리그로 성장하게 된다.

 

실제로 36년 전 원년과 현재를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단 총 경기수, 팀당 경기수, 평균연봉 및 선수들의 신체조건 등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KBO 사무국이 매시즌 전 집계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1982년 한 시즌 총 경기수는 240경기였다. 당시 참가팀은 6팀이었다. 올해 KBO리그는 10팀이 참가해 총 720경기가 열린다. 1982년과 비교하면 480경기를 더한다.

 

팀당으로 따져도 1982년엔 한팀이 80경기 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팀당 144경기를 한다. 1982년 보다 팀당 64경기가 늘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선수들의 연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 평균 연봉(외국인 및 신인 선수 제외)이 1042%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2년 평균 연봉은 1215만원이었다. 그리고 올해 평균 연봉은 1억3883만원으로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35년 동안 산술적으로 평균 1억2000만원 이상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억대 연봉 선수는 1982년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최초 억대 연봉선수는 1985년 재일동포 선수 장명부(삼미)로 당시 1억484만원을 받았다.

 

올해는 1억 이상 연봉 선수가 역대 최다인 158명(외국인 선수 제외)이다. 2016시즌 보다 10명 늘었다.

 

선수들의 신체조건도 좋아졌다. 평균 신장은 1m76.5(1982년)에서 1m83(2017년)으로 성장, 6.5㎝ 증가했다. 평균 체중도 73.9㎏(1982년)에서 87㎏(2017년)으로 약 13㎏ 늘었다. 평균 연령은 26세에서 27.5세로 거의 비슷하다.

 

한편, 지난 2015년까지 각 구단별로 경기 구를 지정했으나, 탱탱볼 논란등이 불거지자 2016년부터 리그 통일구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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