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전두환 회고록, 반란범의 ‘역사 쿠데타’
‘광주 사태’ 규정…‘5·18광주민주화운동’ 비하 내막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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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6 [09:3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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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빼앗은 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던 전두환. <사진=e영상역사관>     © 사건의내막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했던 전직 독재자 전두환이 최근 ‘회고록’을 출간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5·18을 ‘사태’ 또는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하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희생양’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5·18단체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 달 부인 이순자도 비슷한 성격의 회고록을 출간하며 전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전두환이, 서적 출간을 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역사 반란’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편집자 주>

 


 

 

5·18 비하 나선 전두환…‘사태 규정’ 및 ‘피해자 코스프레’

분노하는 피해자와 유족들…내란 살인 범죄자의 거짓망발

‘5월 남침설’ 핑계댄 전두환…‘미국의 공식입장’과 상이해

명예훼손 혐의 법정소송 준비하는 5·18민주화운동 단체들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반란수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격하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전두환은 지난 4월3일 출판사 자작나무숲을 통해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서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온 모든 악담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자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80년 광주 비하

 

전두환은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을 격하하는 단어인 ‘광주사태’를 계속 사용하는 등 거듭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광주사태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와 희생이 컸던 만큼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며 “또 상처와 분노가 남아 있는 한, 그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겠다”고 자신이 그 제물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광주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나를 비난하고 모욕주고 저주함으로써 상처와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나로서도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나의 유죄를 전제로 만들어진 5·18특별법과 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에서조차도 광주사태 때 계엄군의 투입과 현지에서의 작전지휘에 내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추궁이 전개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 독립만세’를 외친 기미 독립선언을 3·1 ‘운동’이라고 부른다"며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 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 (중략) 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요 원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검거를 들었다.

 

전두환은 또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은 광주사태 당시의 희생자 수”라며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1980년 6월 광주지검이 민·관·군 합동으로 집계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165명”이라고 적었다.

 

이어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있는 장소에서 무차별 총기 공격을 했다면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165명 중에는 총기 오작동으로 인한 사망자, 음주운전·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포함돼 있고 계엄군이 사용하지 않은 카빈총 등에 의한 사망자도 적지 않다”고 서술했다.

 

또한 전두환은 5·18 탄압의 당위성을 ‘북한의 침략시도’와 엮기도 했다. 회고록에서 북한 침공설과 관련, 중국을 방문한 일본 고위관리가 북경 당국으로부터 들은 내용이라며 5월10일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으로부터 긴급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첩보 내용은 북한이 한국 내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1980년 5월15일부터 5월20일 사이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보고를 받고 김 차장을 돌려보내자 온몸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불안해지거나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려하던 위협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라며 “더구나 5월15일부터 20일 사이에 남침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구체적 날짜가 명기된 첩보여서 북한의 정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또 중앙정보부와 국방부가 해당 첩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이 선택한 남침 방법은 비정규전이 될 것이며 훈련된 무장 게릴라를 우리 후방에 투입해 사회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규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며칠 뒤 촉발된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침공설과 연계시키려는 듯한 의도로 풀이된다. 전 전 대통령은 또 심각한 안보위기에 직면해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도 첩보를 알려줬지만 김 전 대통령이 ‘북괴 남침 임박설’을 공개적으로 ‘조작’이라고 발표했다며 “국가안위나 민생 같은 개념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민주화’라는 가면을 쓴 ‘집권욕’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전두환은 무엇보다 “더욱이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혹 중 하나인 ‘발포명령’에 대해서는,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근자에 ‘민주화운동’이라는 광주사태의 성격과 관련해 고착화된 통념을 뒤흔드는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들이 제시되자 화살을 맞은 맹수처럼 나에 대한 공격은 더욱 거칠어지기도 했다”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13년 9월13일 이희성 당시 계엄군 사령관이 한 신문과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은 5·18에 관한 한 책임이 없다”는 말을 했다며 “광주사태에 나는 책임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몇 대목은 시내판 기사에서 삭제해버렸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정치자금에 관한 문제는 변명도 할 수 없는 자신의 허물임을 인정했다. 책에서는 “여당의 총재로서 당의 운영과 선거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할 책임이 대통령인 나에게 있었고, 국민의 세금을 사용할 수 없었던 재정 사정 때문에 기업인한테서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의 제도적 여건 때문에 불가피한 관행이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두환은 책 초반의 ‘글을 시작하며’에서 “지금 나에게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한 가닥의 명예와 앙상한 혜택조차 남아 있지 않다”며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른 이제,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 땅에 무엇을 남겨놓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고, 지금도 그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서”라며 “나는, 내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또한 나의 마지막 책무라는 깨달음에서 새삼 이 책의 결말을 서두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 논란 중심에 서있는 전두환 회고록.     © 사건의내막

    

분노하는 피해자

 

이처럼 전두환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본인에 대해 ‘5·18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 됐다’라며 표현하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자신이 5·18 직후 대통령이 됨으로써 5·18 의 상처를 치유하는 희생양이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두환의 주장은 검찰 조사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5·18 광주학살과 12·12 군사반란에 대한 확정판결 당시 전두환에 대한 내란 목적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당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잡은 뒤 계엄군을 동원해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실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전두환이 책에서 ‘양민에 대한 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 부분에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80년 이후 진상조사 결과 5·18 당시 민간인 165명이 사망하고 82명이 행방불명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신군부 측이 시위 진압을 위해 공수부대를 파견함으로써 민간인들의 살상 피해를 키웠다는 것 또한 각종 자료와 증언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기록돼 있다.

 

부인 이순자가 지난 3월24일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란 책도 5월 광주 피해자들에게 생채기를 남겼다.

 

이순자는 책에서 “우리 내외도 사실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5·18의 책임과 당시 발포 명령자가 전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도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는 전두환이 80년에 내린 광주 재진입 작전의 범위 내에 발포명령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에서 벗어난다.

 

이순자는 또 80년 당시 신군부의 강압에 의해 하야한 최규하 대통령의 퇴진에 대해서도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줄 것을 권유했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5월 단체들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80년 8월 16일 하야한 것은 신군부의 강압에 따른 것임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5·18에 대한 반성은커녕 책임을 회피하는 책을 출간한 데 대해 “5·18 가해자들이 5월 영령들에게 또 한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다.

 

전두환 부부가 책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수차례 표현한 것도 5월 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들이 무책임한 변명록을 써 놓았다”는 지적이다.

 

5월 단체들은 전두환 부부가 잇따라 책을 출판한 시기와 배경을 놓고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구속으로 우익세력이 결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5·18 단체들은 자신을 5·18의 희생자라고 표현한 전두환의 주장과 관련해 "역사에 대한 패악질"이라고 비판했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5·18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4일 오후 논평을 내고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이자 5·18 내란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이 치졸한 변명과 망발을 늘어놓았다”고 밝혔다.

 

단체는 “평생 용서와 잘못을 구해야 하는데도 회고록을 통해 역사에 대한 패악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다. 회고록이 아닌 참회록을 통해 희생자와 광주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이 마지막 기회마저 스스로 차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죄가 차고도 넘치는데도 전두환이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지 않고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5월 단체는 전두환 일당이 비겁한 언어로 혹세무민하지 못하도록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체는 “전두환의 역사 인식은 5·18 진상규명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며 “우리는 새 정부와 협력해 정부 차원의 5·18 진상규명 작업을 진행하겠다. 5·18 학살자들에 대한 역사와 국민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회고록은 내란 살인 범죄자의 거짓망발”이라며 “5·18 당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이제 범죄 회피까지 하는 후안무치한 행위로 5·18 영령들을 또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입장

 

이같은 전두환의 ‘광주사태’ 및 ‘광주폭동’ 규정에 5.18 단체들과 함께, 이를 취재한 미국 측 기자가 반박하고 나서면서 전두환에 대한 비난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국 정부 문서로 기밀 해제된 ‘체로키 파일’을 광주시에 기증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66)은 전두환 회고록에서 ‘자신도 5·18의 피해자’라고 밝힌 대목을 두고 “본인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어불성설로, 당시 모든 군인들은 그의 통제 아래 있었다”고 비판적으로 해석했다. 셔록은 지난 4월3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발포 명령권자에 대해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발포 명령은 당시 한국 군부 내에서 결정된 것으로 생각한다”며 “발포 명령은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군부 내부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셔록이 지난 1월 광주시에 기증한 ‘체로키 문서’ 등 59개 기밀문서(3530쪽 분량)를 중심으로 한 연구계획도 밝혔다.

 

그는 광주에 5월 말까지 체류하면서 해제된 기밀문서 전체에 대한 전반적 검토와 사건일자별, 시간대별 분류와 정리작업을 한다. 1주일에 1차례씩 5·18 연구자와 5·18 관련 단체·기관, 기자, 시민사회 관계자 등과 토론도 한다. 또 ‘국무부 관측통의 광주 상황 보고서’ 등 미국 정부 문서와 5·18 실제 사건에 대한 대조 분석, 주요 쟁점에 대해서도 소개할 예정이다.

 

셔록은 1980년 5·18 당시 미 국무부와 주한 미대사관이 주고받은 비밀전보를 1996년 폭로해 미국 정부의 역할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미 정부가 5·18 당시 전두환의 군 투입 계획을 승인했으며, 백악관 회의에서 사태가 통제 불능이 될 경우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하는 방안도 협의됐다는 내용을 특종 보도했다.

이같은 미국 기자 개인의 입장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미국 측 공식입장과 다른 주장을 해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두환이 주장한 ‘5월 북한 침공설’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 국회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요청한 질문에 대한 공식 답변에서 북한 침공설과 관련해 “존 위컴 장군은 미국은 언제나 그러하듯 한국을 방위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북한으로부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조는 없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전두환은 이에 대해 회고록에서 자신이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때이고, 광주 문제로 야기된 반미감정 등을 고려해 미 정부가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나고 보니 실제로 북한이 남침을 하지 않았으니 당시의 남침 첩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주장은 전형적인 결과론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이라며 “북한이 남침 의지를 꺾을만한 신속한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에 감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 정부가 기밀해제한 문서에서도 당시 북한의 침공설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이 올해 들어 해제한 미 국가안전보장회의가 1980년 5월9일 작성한 문건은 북한 동향에 대해 “아직까지 북한은 한국의 정치불안 상황을 빌미로 한 어떤 군사행동도 취하는 기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미 국가정보위원회가 같은 해 6월2일 작성한 문건도 “현재까지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김일성은 남한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어떤 행동도 전두환을 돕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 전두환(왼쪽)과 이순자(오른쪽)은 최근 연이어 회고록을 발매하면서 ‘5·18 비하’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88년 3월24일 전두환과 이순자가 미국 워싱턴 시내 일식집에서 생일축하잔치를 벌이는 모습.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사건의내막

    

전두환 법정행?

 

5·18기념재단이 회고록을 통해 5·18관련 망언을 쏟아낸 전두환을 다시 법정에 세우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5·18재단 측은 전 전 대통령 회고록 내용 가운데 ‘5·18당시 계엄군 헬기사격 증언자로 나선 피터슨 목사와 고 조비오 신부를 실명으로 가리켜 거짓말쟁이라는 투로 묘사한 부분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내지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부 검토를 마친 것을 알려졌다.

 

또 5·18재단은 최근 출간된 전두환·이순자 부부 회고록에 5·18왜곡 및 광주전남 지역민, 5·18관련 증언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 담겼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5·18재단은 재단 내 5·18연구소를 중심으로 이순자씨의 자서전과 전 전 대통령 회고록을 입수해 허위 사실이 담겼는지, 이로 인한 민·형사적 책임추궁이 가능한지 여부를 분석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5·18재단은 5·18역사왜곡대책위 자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강행옥·임태호 변호사와 만나 회고록을 통해 망언과 궤변을 쏟아낸 전두환·이순자 부부에 대한 책임 추궁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5·18재단 관계자는 “전두환 회고록 중 헬기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 피터슨 목사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거짓말쟁이라는 취지로 비난한 부분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돌아가신 조 신부를 대리해 조카 조대영 신부와도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전두환·이순자) 회고록이 거짓 사실을 통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민형사적 책임 추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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