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대구 여대생 성폭행, ‘허무한 무죄’ 사연
아버지 집념도 넘을 수 없었던 ‘엉망진창 경찰’
김범준 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7/07/21 [10:06]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발생한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피의자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사건 15년 만에 외국인을 진범이라고 지목하며 법정에 세웠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선고를 내린 것이다. 결국 피해자는 있는데 처벌받는 사람은 없이 재판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대법원은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51)씨에 대한 검찰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결국 무죄 선고된 스리랑카인 진범 지목자…‘허무한 유족’

차여 치여 숨진 채 발견된 정은희양…사고사 처리한 경찰

속옷 벗겨진 사실 등 증거 인멸…이의제기에도 수사 종결

뒤늦게 DNA로 강간 스리랑카인 검거했지만…‘증거불충분’

 

▲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은 결국 피해자는 있는데, 범인은 없는 사건으로 결론나 버렸다. <사진=SBS 영상 캡쳐>     © 사건의내막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사건은 지난 1998년 10월 17일 일어났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정은희(당시 18세)양은 이날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에서 23t 트럭에 치여 숨졌다. 대학 축제를 마치고 집에 오던 정양은 집 반대 방향으로 7.7㎞나 떨어진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숨졌고, 입고 있던 속옷이 사고 현장 인근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수상한 점투성이였지만 경찰은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며 범죄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유족의 요청을 묵살하고 부검결과도 나오기 전 수사를 종결했다.

 

죽음의 실체는 15년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2013년 정현조씨의 고소로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정양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 DNA를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했다. 그러자 2011년 여고생 성매매 혐의로 입건돼 DNA를 채취당한 K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재수사 끝에 정양이 K씨 등 스리랑카인 3명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검찰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던 K씨를 붙잡아 공소시효 만료 직전 재판에 넘겼다. 공범 B씨와 D씨는 이미 스리랑카로 강제 추방된 뒤였다.

 

이처럼 16년이 지나 기적적으로 딸의 성폭행범 중 하나인 스리랑카 인이 붙잡혔지만, 2심 법원은 그의 공범에게 범행 사실을 들었다는 증인의 진술이 너무 구체적이라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최근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는 허무한 결과가 나왔다.

    

대학 축제의 끝

 

이 사건은 의하면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계명대학교의 축제기간 중 지난 1월16일 정은희 양은 경찰행정학부에서 주관한 ‘주막촌’이라는 행사에 참석한 후에 발생했다. 그 날은 금요일이라 다음 날에 별 일이 없었던 정양은 학부생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셨다. 그러나 만취 수준은 아니었다.

 

같은 경찰행정학부생으로 동아리 친구였던 1학년 박모군이 술에 만취해 그를 귀가시켜주기 위해 밤 10시 30분 경 함께 교문을 나섰다. 그러나 밤 10시 40분 이 후 정양은 행방불명됐다.

 

본인 진술에 의하면, 박 군은 20분 후인 밤 11시 경 학교 정문 건너 성서 병원 앞에서 정신을 차렸지만 정양이 보이지 않자 삐삐로 호출했으나 답이 없자 혼자 귀가했다. 추후 그는 경찰 조사 때 교문을 함께 나선 이 후 병원 앞에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20분 동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10월17일 새벽 5시 10분경 119로 교통사고 사망 신고가 들어왔다. 계명대학교에서 약 4km 떨어진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7.7km 지점에서 덤프트럭이 무단횡단을 하던 사람을 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는데 사망자가 바로 정양으로 밝혀졌다.

 

당시 가해 덤프트럭 운전자 최모(52)씨 본인이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하던 정양이 자신의 트럭에 치어 즉사했다고 신고한 것이었다. 경찰은 최초에 단순 교통사고로 정양의 가족들에게 보고 했고, 가족들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정양이 박 군과 함께 교문을 나선 전날 밤 10시 40분 이후부터 사고가 일어난 사고 당일 새벽 5시 10분까지 6시간 반 동안의 행적을 알 수 없었다. 또 신고자이자 교통사고 가해자인 덤프트럭 운전자 최씨는 당시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 데다 피해자 유족과 만나는 것을 극구 기피했다. 최씨는 전과가 수십 개였다.

 

아울러 정양의 부모들은 딸이 늦은 밤 집과 반대 방향으로 학교에서 4km나 떨어진 고속도로를 건넜다는 당시 상황도 의아해 교통사고 8시간 후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교통사고 현장 인근을 수색했다.

 

수색 중 동아리 친구는 정양의 하의 속옷을 발견했다. 사고현장에서 30m 떨어진 지점, 즉 사고 후 차를 세웠다고 최씨가 말한 곳 가드레일 아래 도로 가장자리에서였다.

    

안이한 경찰수사

 

속옷이 벗겨진 점을 의아하게 여긴 유족은 영안실에 있던 정양 시신의 속옷을 확인하려 했다. 시신을 확인해보니 상의 속옷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함께 영안실로 간 병원 영안실 직원은 청바지 주머니의 안감을 내보이며 그것이 속옷이라면서 가족들을 속이려 했다. 이 사실을 즉시 들키자 직원은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유족들은 증거들을 채취하고, 현장 사진들을 찍어뒀다. 유족들은 이에 속옷이 없는 것을 있다고 해도 되냐며 강하게 항의했고, 속옷을 경찰에 건네며 부검을 요청했다.

 

이후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당시 없었던 상의 속옷이 병원에서 누군가가 새것으로 입혀 놓은 상태임을 유족이 발견하고 이를 수사 요청했지만 경찰은 하지 않기도 했다.

 

한편 정양과 함께 교문을 나섰던 박 군의 진술에 대해 유족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경찰은 박 군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박 군은 정양이 시신으로 발견된 당일 영안실에 술이 취한 상태로 조문 차 잠시 들렀다. 그리고 이틀 후 유족은 자세한 사고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박 군은 끝까지 만남을 피하려 했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몹시 화를 내자 마지못해 응했다.

 

겨우 만남을 가졌을때도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은 그저 ‘아무 기억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는 말만 하고 도망가듯 떠났다는 것. 그 후에도 유족들이 아무리 연락해도 ‘아무 할 말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다’며 계속 만남을 피했다는 것이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며 서명운동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유족들은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서명운동을 했지만 ‘주막촌’ 을 열었던 해당 학부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사고운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목격자가 있는데도 이를 숨겨왔고 경찰 역시 이 목격자에 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가해자이자 덤프트럭 운전수 최씨는 항상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동료 트럭 운전수이자 목격자 최모씨가 있었다.

 

헌데 트럭운전사 최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목격자가 없었다고 진술 했으며 유족들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운전사의 지인인 목격자는 사고현장에서 최씨가 차를 세우지도 않고 2차선으로 바꿔서 지나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1998년 12월21일 사건 두 달만에 이 사건을 단순교통사고로 단정 짓고 수사를 종결해 버렸다.

 

유족들에 의하면 이런 사건에서 경찰이 피해자 유족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지만, 유족이 협조를 원하는데도 수사과정 내내 이를 극구 거절했다. 또 교통사고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는 유족에게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 봐라’는 식으로 대응했으며 지문감식 같은 기초수사마저 기피했다는 것.

    

▲ 이 사건은 경찰의 무성의한 부실조사를 의심한 유족들의 집념으로 진범을 찾아낸 사건이다. <사진=SBS 영상 캡쳐>     © 사건의내막

 

교통사고로 사망?

 

경찰이 수사를 이미 종료한 한 달 후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부검 담당이었던 K 대학교 교수는 부검 결과를 유족에게 공개하기를 꺼리는 듯했다. 유족에 따르면 곁가지 성 부검 결과만을 보고했고 부검 진행사항과 부검내용 등에 대해선 유족에게 알려주는 것을 기피했다.

 

어렵게 알아낸 부검결과는 정양이 차량으로 인해 깔아뭉개진 것은 사실이나 이로 인한 출혈이 없기에 교통사고 당시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피해자(정양)이 고속도로를 횡단했다는 점, 집의 반대방향으로 가려 했다는 점, 혈중 알콜 농도가 0.13%로서 운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라는 점 등은 흔히 보는 보행자의 교통사고와는 달라 피해자가 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받아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해준다는 것.

 

이에 유족은 모든 의문사항을 종합해 누군가가 정은희 양을 성폭행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한 후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교통사고 해결사조직을 동원해 고속도로 무단횡단 교통사고로 위장하는 완전범죄를 기도했다고 봤다.

 

또한 이 과정에서 범인들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 부검 교수의 묵인, 시체가 안장됐던 병원 영안실 직원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로비나 외압이 있었고 그 영향이 언론이나 학교까지 미쳤을 것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유족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경찰청, 대검찰청 등 수사관계기관과 청와대에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관할 경찰서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등의 답변뿐이었으며, 이에 담당형사는 ‘결국 나한테 되돌아올 걸 왜 쓸데없이 엉뚱한 데 진정을 하느냐?’고 비아냥댔다.

 

결국 이듬해인 2000년 9월 유족들은 사건 수사를 맡은 담당 경찰관등을 직무유기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는 각하됐고 불기소 처분에 유족들은 헌법소원을 냈지만 기각 결정 됐다.

 

다만 유족의 끈질긴 노력과 탄원으로 지난 2005년 팬티와 거들을 국과수에서 감정했으며 감정 결과, 팬티와 거들은 정양의 것이 맞으며 남자의 정액 성분도 검출됐다.

 

그러나 정액과 DNA 대조 결과 트럭운전사 최씨와 박 군의 것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6년가량 지나버려 누구 것인지 불명확했다.

 

유족들은 2007년 인터넷에 정은희 양을 추모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이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해 유족들은 강간 살인 혐의로 트럭 운전사 최씨를 고소하기도 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났다.

 

이후 2010년 경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DNA법)이 시행되면서 추후 범죄자들의 DNA가 수사당국에 의해 수집됐다. 다음해인 2011년 10월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스리랑카인 K(47)씨가 붙잡혔고 그의 DNA도 채취 됐다.

 

2013년 4월에도 유족들은 대통령 비서실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발언을 했다. 이에 유족들은 대구지검에 성명불상의 정양 강간살인범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밝혀진 진범

 

그리고 국과수 조회 결과 정양의 속옷 등에서 검출된 남성의 DNA와 스리랑카인 K씨의 DNA가 약 99.999%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란성쌍둥이나 그 인물이 아니라면 성립할 수 없는 일치도였다.

 

이에 검찰은 다시 수사에 착수해 2013년 8월 스리랑카인 K씨를 공소시효가 15년 인 특수강도강간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단순 강간이나 특수 강간은 공소시효가 각각 7년, 10년이라 이미 효력을 상실해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수사결과 K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국내에서 스리랑카 식료품 수입 사업을 한 것으로 확인 됐다.

 

또한 K씨 단독 범행이 아니라 2명의 유력 공범이 있었다. 성폭행 공범 2명은 모두 불법체류중인 스리랑카인이었으며 2003년과 2005년 각각 불법 체류자로 적발돼 강제 출국을 당한 상태였다.

 

가해자들이 학교 인근에서 정양을 발견해 자전거에 태우고 인적이 드문 터널로 데려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정양의 신분증이나 소지품도 뺏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들이 정양을 살해 한 것인지 여부는 증거가 없어 확실치 않다.

 

성폭행에 대해선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있었다. 지난 2015년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용의자들이 일하던 사고 현장 인근 공단에서 외국인들 사이에는 이 3명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지난 2014년5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스리랑카인 K씨는 특수강도강간죄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강도 혐의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검찰은 곧 항소 했지만 1심을 뒤집을만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17년 전 이들의 범행을 전해 들었다는 또 다른 스리랑카 인을 만났다. 그는 범행 직후 술자리에서 이미 강제출국 된 공범으로부터 자세한 범행과정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스리랑카인은 범인들의 보복이 두려웠지만, 가족과 교회 목사님과 상의 끝에 증언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2심 재판에서 증언을 해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16년이 지난 사건인데 증인 진술이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믿을 수 없다”면서도 “한편으론 증인의 기억이 객관적인 사실과 일부 맞지 않아 신빙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7월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임내현 당시 국회의원은 항소심을 맡았던 대구고법이 이중적인 잣대로 판단했다며 대법원이 상고심을 파기 환송해 피고인 K씨와 공범이 죄에 대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임 의원은 “재판부는 지난 기억의 세부적인 부분이 맞지 않음을 지적했는데 이런 부분이 이중적이다. 증인진술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한편으론 세부적인 부분이 사실관계와 맞지 않다고 지적하면 미제사건의 경우 해결할 방법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고 정은희양의 아버지는 딸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은 서울로 대학을 가지 말라고 말린 자신의 책임이 있다며 생업인 채소 장사를 접은 채 사건 당시부터 17년 동안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진범으로 지목됐던 스리랑카인 K씨. <사진=MBC 뉴스 갈무리>     © 사건의내막

 

어이없는 공권력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년여 동안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K씨는 무면허 운전과 성추행 등 별건으로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돼 곧 강제 추방될 예정이다.

 

결국 19년 전 부실하게 초동 수사를 했던 경찰, 이후 유족의 숱한 진정을 무시했던 검찰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 앞에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의 유일한 단서였던 정양의 속옷을 찾아낸 것도 정양의 가족이었다. 이 사건을 15년 뒤 다시 수사하게 만든 것도 정양의 아버지가 검찰과 경찰, 청와대에 문전박대당하면서 100회 넘게 진정과 탄원을 한 결과였다. 정양 아버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었다”고 했다.

    

penfree1@hanmail.net

ⓒ 사건의내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