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국 도발史] 전쟁 일촉즉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美 작전에 겁먹은 北…‘김정일도 후회한 도발’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08/18 [10:43]

[북한의 미국 도발史] 전쟁 일촉즉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美 작전에 겁먹은 北…‘김정일도 후회한 도발’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7/08/18 [10:43]

북한이 도발수위가 높아지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전쟁’까지 거론하며 국민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연이은 핵 및 미사일 실험으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 강도가 높아지자, 북한은 미국을 향해 연일 거친 비난 성명을 내며, 미국령인 괌 등에 미사일 쏘겠다고 목소리를 올리는 상황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북한의 도발 강도가 높아지면서 전쟁 위협이 커져가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전쟁 위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위험했던 장면은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8월18일 판문점에서 벌어졌던 사건이다.

 


 

판문점 미루나무 제거 작업나선 UN군 잔혹하게 살해한 北

분노한 미국…뻔뻔한 북한 태도에 본격적 군사작전 준비해

해군 7함대·해병대 등도 대기…재도발시 전면전 까지 고려

잔뜩 겁먹어 유감 표명한 北…지시한 김정일도 후회하기도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북한이 미국에게 저지른 최악의 도발로 평가된다. <사진=유투브 영상 캡처>     © 사건의내막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지난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군 소속 UN군 장병이 북한군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불린다.

 

이 사건은 남북을 넘어서 북미 전쟁의 일촉즉발의 사건이자, 북한의 대남도발사 중 최악의 막장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은 북한 측의 잘못이 확실하고 한국군도 아닌 주한 UN군에 위해를 가한 탓에 중국과 소련도 북한 편을 들어주지 않아 대규모 전쟁으로까지 비화되진 않았다. 만일 전쟁으로 비화되었다면 매우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 뻔했다.

    

발단은 미루나무

 

1970년 대 당시 판문점은 별다른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단어 그대로의 공동경비구역이었는데, 한국군 측 3초소는 조선인민군 육군 초소 3개소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항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5초소 측에서 3초소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는데, 이 문제의 미루나무가 5초소의 시계를 방해하고 있었다. 당시 8월3일 주한UN군 경비대 작업반은 3초소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미루나무를 자를 것을 권고했다.

 

이에 8월6일 노무자 4명과 UN군 4명이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는데 이때 북한군이 이의제기를 하면서 작업을 중단시켰다. 그러자 경비대는 8월18일 절단이 아닌 가지치기만 하기로 결정하고 오전 10시 30분 노무자 3명, 장교 3명, 경비병 7명을 동원하여 가지치기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 북한군 군관 2명과 하전사 8명이 나타나서 다시 이의제기를 하였다. 이에 UN군은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중이라 설명했고 이때 현장에 있던 북한군도 수긍하여 가지치기를 하는 노무자들에게 가지를 잘 치는 법에 대해 조언을 하는 등 가지치기 작업은 매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10시 47분에서 50분 사이 갑자기 북한군의 박철 중위가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나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박철 중위는 느닷없이 경비중대장 고 아서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에게 큰일 나기 싫으면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속행하도록 지시했고, 11시 30분에는 북한군 경비병의 숫자가 30명으로 크게 증강되었다. 박철 중위는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재차 이를 무시했다.

 

그러자 박철 중위가 소매를 걷고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북한군 경비병들은 일제히 소매를 걷었고 박철 중위는 즉각 “죽여!”라고 소리 지르며 보니파스 대위를 걷어차 폭행을 가했다.

 

다른 북한군들은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UN군 장병들을 상대로 마구잡이식 폭행을 가했으며 노동자들이 달아나면서 버려진 벌목 도끼로 아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 살해했다. 여러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보니파스 대위뿐만 아니라 소대장 고 마크 배럿(Mark T. Barret) 중위도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판문점 감시단에 있던 군인이 <월간조선>의 기사에서 회고한 바에 의하면 북한군이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지 북한군이 미군의 시체를 도끼로 수도 없이 찍어서 거의 토막시체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대 탈북한 박병엽 전 조선노동당 고위간부의 증언록에 의하면 당시 북한 국가주석인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었고, 김정일이 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김정일은 당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고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라”라고 지시했다. “단, 남조선 노무자들은 건드리거나 총을 쓰지 말고 미국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사과해도 큰 비판을 피하지 못할 북한 측은 유엔군 장교를 참혹하게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을 벌이고도 뻔뻔하기 그지 없었다. 무려 미군 측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고 경비병들이 제지하러 나섰는데, “갑자기 미군이 도끼를 던졌으며, 북한 측 하전사들이 날아오는 도끼를 손으로 잡아 되던져 죽였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무협영화에나 나올 주장을 늘어놓은 것이다.

 

당연히 사과는커녕, 경비장교 회의를 열자며 사건을 대충 경비장교 회의 급에서 사건을 덮으려 들었다. 나중에는 한국과 미국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까지 보이며 미국 측의 분노를 키웠다.

    

▲ 판문점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아서 보니파스 소령(Arthur George Bonifas 1943년 4월 22일생, 추서 계급), 마크 배럿 대위(Mark Thomas Barret 1951년 6월 9일생, 추서 계급)     © 사건의내막

 

미국의 분노

 

장교 2명을 참혹하게 잃은 미군은 크게 분노했다. 당시 UN군 사령관 미 육군대장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휴가차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사건 보고를 받자마자 여객기나 수송기도 아닌, 전투기 후방석에 탑승해 급히 복귀했다.

 

복귀한 스틸웰 대장은 즉시 회의를 소집한 뒤,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으며 “데프콘 3를 발동시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데프콘 3’는 영내에 있는 모든 물자를 방치품·적재품·파기품으로 분류하고, 출동을 대기하는 것을 말한다.

 

분노한 것은 군 뿐만이 아니었다. 사건을 보고받은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마침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 경선을 준비하고 있던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가뜩이나 공산주의자들에게 약하게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드 대통령은 즉각 북한 측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시간으로 8월18일 오후 3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주재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대리인 국방차관 윌리엄 클레멘츠, 합참의장인 미 해군대장 제임스 핼러웨이 제독, 대통령 안보 부보좌관 윌리엄 하이랜드 등이 참여한 워싱턴 특별대책단 회의가 소집됐다.

 

회의에서 키신저 장관은 현장 사진을 보고 극도로 분노했고 사진에서 북한군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북한군을 권총으로 쏴죽였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CIA에서는 이 도발이 계획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참석자들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만으로는 전면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고 특히 중국과 소련을 자극할 우려도 있어 스틸웰 장군의 우선 사건의 원인이 된 미루나무를 자르고, 이에 북한측이 추가도발을 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대안’이 승인되고 데프콘 등급이 상향되었다. 회의를 마친 키신저 장관은 중국을 통해 북한 측에 조용히 있지 않으면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란 경고를 보냈다.

 

8월19일에 들어 미국은 군사정전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북한 측은 여전히 경비장교 회의를 운운하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

 

결국 군사정전위원회와 경비장교회의가 동시에 열렸고 이 자리에서 UN군은 김일성에게 보내는 UN군사령관의 메시지를 통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 당장 나오라는 강경한 최후통보와 사과 및 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 측은 여전히 억지주장을 계속하며 되려 사건 가담 주모자들을 처벌하라는 뻔뻔하지 그지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당연히 협상은 결렬되었으며 스틸웰 장군은 그날 바로 워싱턴 국가안보회의에 데프콘 3를 발동하겠다고 보고했고 마침내 데프콘 3이 발령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주한UN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준전시체제에 돌입했으며 북한군도 이에 맞서 북풍 1호(준전시체제)를 발동해서 전군 완전무장을 지시했다.

    

전쟁 준비 임박

 

이런 결정에 따라 양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 계획이 세워졌다. 요약하자면 “지원병력 감시 하에 미루나무를 자른다”로 축약할 수 있는 작전이다. 8월21일, 마침내 미국 본토와 대한민국의 주변국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서 병력을 편성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 규모는 다음과 같다.

 

▲공대지 핵미사일 AGM-69 SRAM 탑재가 가능한 F-111 20대가 아이다호 주 마운틴 홈 기지에서 대구비행장으로 전진배치. ▲B-52 전략폭격기 3대가 괌에서 발진. 군산비행장 주둔 미 공군의 F-4와 대한민국 공군의 F-5 전투기 및 F-4 전투기가 엄호.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에서 F-4 24대가 발진.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해군 제7함대, 미드웨이급 항공모함과 순양함 5척이 서해안에 대기. ▲1만2000명 증파요청. 그 중에는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 1800명도 포함. ▲미 육군 정예병력으로 20여대의 차량과 813명 규모의 태스크포스 비에라(Task Force Viera)를 편성. ▲165mm M135 파괴포를 갖춘 미군 M728 공병전차가 자유의 다리 조준, 그리고 미 육군 공병부대가 임진강에 도하준비를 위해 다리 설치. ▲DMZ 근처에 미 육군 방공포병 부대의 호크 지대공 미사일 전진배치, 한미연합군 보병부대와 자주포들이 대기.

 

다만 북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한다는 것보다 휴전선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서해안 부분을 정리, 개성 및 연백평야로의 진격, 옛 38선 이남 대한민국 영토의 수복 등을 고려했으며, 공산권 측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북한이 추가 도발 없이 침묵한다면 무력시위로 끝낼 계획이었다.

 

물론 유사시에 북한이 도발을 한다는 조건하 에 바로 반격해서 대규모 전면전으로 키울 계획까지 미국은 하고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일단 미군의 계획은 ‘작전시 교전사태가 발생하면 포병 부대는 개성의 인민군 육군 막사에 포격을 개시, 개성 위쪽 시변까지 포격해서 인민군 육군 포병 전력을 전멸’이였으며 북한 육군 전차 부대의 남하와 같은 구체적인 전시상황 계획까지 완벽하게 수립했다.

 

그리고 작전을 시행하기 전 군사분계선 부근에 상향된 ‘데프콘 2’를 발령했다. ‘데프콘 2’에서는 부대편제인원이 100% 충원되며 실탄이 지급된다. ‘데프콘 2’가 발령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고, 1994년에 김일성 사망으로 1회 추가 발령된 이후 아직까지 발령 난 적은 없다.

 

육군 항공대의 AH-1 공격헬기 7대와 다목적 헬리콥터 20대의 직접 엄호 및 도끼와 권총으로 무장한채 30여명으로 이루어진 미군 공동경비부대들이 돌아오지 않은 다리 같은 판문점 주변의 주요 시설들을 안전하게 확보했고 미 육군 공병 8명으로 이루어진 2개 팀이 전기톱으로 미루나무를 자르는 데 성공했다. 북한이 침묵했기 때문에 보복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작전은 그대로 종결되었다.

 

다만 함께 참가한 우리 측 특전사 결사대원들은 카투사로 위장, M16 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M79 유탄발사기등을 삽, 곡괭이 등 작업도구 밑에 감추는 식으로 트럭에 탑승하여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 도끼와 몽둥이를 가지고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했다.

 

대원들이 초소에 접근해 손에 도끼와 소총을 들고 활보하며 북 측 초소를 난장판으로 만들자 북한군은 모조리 도망가버렸다. 간간히 나타난 북한군은 독이 오른 특전사 대원들이 위협을 하며 욕을 퍼붓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당시 매복작전을 수행 중이던 1사단 수색대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러다 정말 일이 나는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 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를 자르는 미군. <사진=e영상역사관>     © 사건의내막

 

겁먹은 북한

 

북한 입장에서는 이런 일로 미국이 이렇게까지 나설 줄 몰랐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이 나무를 자르는 동안, 심지어 한국 특전사 대원들이 초소에 침입해 난장판을 만들고 있을때도 대응은 커녕 초소를 비우고 도망가버린 것이 이를 반증한다.

 

김정일 주도설을 제기했던 신경완의 증언에 의하면, 미군 장교를 죽일 정도로 막나갈 것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군 장교를 둘이나 살해했다는 보고가 상부에 올라가자 김정일을 포함한 수뇌부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김정일은 즉각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군 장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절초풍한 김일성이 노발대발하면서 “이런 짓을 왜 했느냐?”라고 질책하자 김정일은 “미군의 의식적인 도발이다. 저들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도발했다”라는 뻔뻔한 거짓 보고를 올렸다. 당 비서들은 차마 김정일이 시켰다는 말은 못하고, 인민무력부 놈들이 미쳐서 그랬다고 보고했다.

 

김일성은 노발대발하여 인민무력부장 최현을 불러서 강하게 질책했고, 김정일의 죄를 뒤집어 쓴 최현은 역시나 열받아서 작전국장을 불러서 책벌했다고 한다.

 

미국의 보복작전이 본격화되자, 김일성은 “사람이 죽었으니 유감을 표명하라. 푸에블로 호 사건 때도 미국이 사과를 했지 않았는가?” 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은 이 사건을 좀 더 정치적으로 써먹고는 싶었는지 몇 시간 뒤에 스리랑카에서 진행 중이었던 비동맹회의에서 “이 사건은 미국 탓이다”라며 한미연합군을 질타하는 결의안을 제안했고 결국 승인됐다.

 

물론 이 사건의 주동자가 누군지 확실하게 밝혀지자마자 정세는 확실히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섰다. 위에 적혀 있는 대로 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이 신문에 실리자마자 ‘주동자는 북한, 피해자는 미국’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북한은 긴급하게 수석대표회의를 요청했고 결국 김일성이 직접 유감성명을 표했다. 처음 미국은 “유감성명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거부했다가 하루 지나서 결국 수락했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이 또 진격할 것을 대비해 1년 동안이나 준전시체제를 유지했고, 미군은 일단 폴 버니언 작전 병력들을 철수시켰지만 이후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 대결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도발의 주역인 북한은 ‘자업자득’ 적인 피해가 막심했다. 8~11월까지 석 달 동안은 모든 군인들이 군장을 싸놓고 잠을 잤다고 하며, 노동자들도 직장에서 나와 전투위치로 배치되었고 대학생들도 건장한 사람들은 죄다 인민군에 끌려가서 사실상 휴학 상태에 들어갔다. 너무도 급한 소개 작업 때문에 식량 문제가 심각했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훗날 김정일은 이에대해 “군중 사업에서 10년 후퇴했다”, “사람과의 사업에서 10년 손해봤다”고 밝히며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도발의 결과

 

결론적으로 미국은 나무가 철거되는 동안 북한이 도발을 가하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기에, 북한이 침묵하자 결국 미루나무를 자르는 선에서 작전을 종결짓고 사태는 마무리 된다.

 

그리고 판문점 경비초소에는 사건 이전과 같은 애매한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확실한 경계가 세워졌다.

 

경계 밖에 있던 양측 초소는 모두 철거되고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벌목된 미루나무의 일부는 JSA 안보견학관에 전시하여 방문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미루나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미루나무 둥치 둘레 만큼의 둥근 시멘트 위에 도끼 만행사건에 희생된 자들을 위한 추모비가 세워졌다.

 

판문점 관람 코스에 버스를 타고 추모비 앞을 지나는 것이 포함되어있으며 버스 내에서 추모비를 볼 수 있다.

    

penfree1@hanmail.net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스타화보
배우 서인국, 화보 공개! 섹시+시크+몽환美 장착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