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시대가 이해 못한 문학가, 마광수
“사람들이 나를 변태 색마로 기억할까 두렵다”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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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6 [17:3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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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등의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표현의 자유 논란을 일으킨 작가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지난 9월5일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66세. 이날 오후 1시 51분께 마 전 교수가 베란다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마 전 교수 자신의 유산과 시신 처리를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 끊은 마광수…말년에 우울증 심화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 받고, 시인으로 등단한 문학가

문학계의 이단아…‘즐거운 사라’로 사회적인 논란 일으켜

‘쾌락주의 사상’…허례허식·허세 넘치는 사회분위기 비판

 

▲ 각종 외설 논란으로 유명한 마광수 전 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KBS 뉴스 캡처>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1951년 서울에서 출생한 마광수 전 교수는 1·4 후퇴 중에 태어나 유복자로 자랐으며,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입학부터 수석 입학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학부과정을 올 A로 졸업했다고 한다.

    

문학계의 이단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세에 등단했으며,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당시 28세)를 거쳐 1983년부터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국어국문학과 교수(당시 32세)로 재직하다 2016년 8월 정년 퇴임했다.

 

마 전 교수는 원래는 1977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다. 1989년 장편소설 <권태>로 소설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즐거운 사라>, <자궁 속으로>, <귀족>, <불안>, <발랄한 라라>, <사랑의 학교> 등의 소설집과, <가자 장미여관으로>, <야하디 얄라숑>, 육필시집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등의 시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의 수필집을 집필했다.

 

1989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영화화하려고 했고, 감독으로도 결정되었으나, 제작사는 중간에 감독을 교체하고, 마 교수는 여기에 비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광수 전 교수의 연기지도가 너무 야해서 당시 검열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체했다.

 

이같은 작품들을 써낸 마 전 교수는 작가로서 상당히 성공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당시 제법 회자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문제작 <즐거운 사라>는 일본에서 10만 부가 넘게 판매되어 한국 소설 최초로 일본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일본내 유명작가도 5만 부 팔기 힘들었다고 하니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역시 일종의 문화원류로서 한국 시문학 역사에 획을 그은 시집이다.

 

무엇보다 마 전 교수는 문학 연구가로선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바로 윤동주의 재발견이다.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정서인 ‘부끄러움’도 마광수의 발견이며 이는 마 교수 본인의 가장 큰 프라이드 중 하나이다.

 

마 전 교수는 그간 문학계에 만연한 ‘지적허영’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진짜 좋은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게 마광수의 작문철학으로 그는 가독성을 매우 중시하여 복잡한 문장구조와 어려운 어휘들을 피해 글을 쓴다.

 

때문에 글이 쉽고 전달력이 매우 높다. 즉 그의 글에는 문학적 허세가 없고 글의 전달력이 높아, 읽는 데 피곤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쉽게 쓰는 게 어렵다”라고 말할 정도로 글의 전달력, 가독성에 힘을 쏟는 스타일이다. 작가로서 대단한 장점으로 평가 받는다.

    

즐거운 사라

 

이같은 마광수 전 교수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가 건전한 성의식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음란물이란 이유로 검찰에 구속되면서이다.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성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사회 전반에서,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온갖 섹스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음란함은 당시 PC통신에서 돌아다니던 평범한 야설 수준과 거의 비슷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강의 중에 경찰에게 연행되었다고 한다.

 

<즐거운 사라>는 지난 1991년 서울문화사에서 출간됐으나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간행물 윤리위원회 고발로 자진 수거됐다. 또 이듬해 8월 개정판이 청하 출판사에서 출간됐지만, 그 해 10월 마 전 교수와 장석주 청하출판사 대표가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됐고, 같은 이유로 소설은 문화부에 의해 판매 금지됐다.

 

당시 마광수 전 교수는 검찰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나 세간의 인식은 매우 좋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마광수를 옹호했으나, 결과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당시의 판결문에서, 판사는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명시했다.

 

사건 당시 유력 보수일간지 등의 지면을 통하여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의 손봉호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 씨로 불러야 한다” 등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태동 같은 사람들은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여대생과 그를 가르치는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 관계가 성실한 노력의 상징인 학점의 흥정대상이 된다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마광수와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성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즐거운 사라>는 그다지 야한 소설도 아니며, 당시 출판계를 봐도 그보다 훨씬 야한 일본 에로소설 “여인 추억” 같은 소설도 아무 문제없이 버젓이 출판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마광수 교수 자신은 <즐거운 사라>만 그리 혹독한 처분을 받은 것이 일단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고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쾌락 끝에 불행지거나 정신차리는 교훈적,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잡지에 연재될 때는 누구도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설의 ‘음란성’이 당대의 기준에서 봐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질적으로 마광수를 법적 처리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것은 당시 현승종 국무총리인데 현승종 총리는 원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였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후에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후 극우적인 시국선언에도 단골로 나왔다. 일설에는 연세대 교수가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검찰에 그런 지시를 했다는 말도 있었다.

 

참고로 문재인 정권 초기 법무부 장관후보자가 되었다가 자진사퇴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이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에서 즐거운 사라 2차 감정 때 재판부측 감정인으로서 감정을 했는데 그 감정서로 인해서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나 1998년에 다시 교수직에 복직했다. 그러나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재판이 허용되지 않는 금서이며, 마광수 교수 본인은 다른 교수들 사이에서 ‘변두리’ 취급을 받았다. 해임 및 복직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개인주의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하는 논쟁을 사회전반에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마 교수는 훗날 <즐거운 사라>를 인터넷에 다시 올렸다가 2007년에 약식기소되기도 하였다. ‘달라진 시대상에 비추어 봐도 음란물이기는 하지만 과거 정식기소했을 때보다는 음란성이 약하다’라는 것이 약식기소의 이유였다.

 

해당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이나 20년이 지난 2012년과 앞으로 이어갈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즐거운 사라>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뤄졌다. 덕분에 해당 판결은 비웃음거리가 되다 못해 아예 잊혀지고 말았다.

 

마광수 본인도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최근에는 해프닝이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즐거운 사라>는 재출판되지 않고 있다. 재출간되려면 마광수 본인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을 재심을 통해 뒤집어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보수적이고 마광수 또한 노쇠해서 법정 싸움을 다시 벌일 기력이 없는 탓이었다. 그리고 9월5일 마광수 전 교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더욱 힘들게 됐다.

    

▲ 마광수 전 교수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는 당시 큰 사회적 논란을 가져왔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쾌락주의 사상

 

마 전 교수는 허례허식과 허세를 비판하며, ‘성(性)’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이같은 마 전 교수는 ‘유미주의적 쾌락주의’를 전적으로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쾌락은 모든 사건의 근본이자 목표라는 것. 다원화된 사회에서 얼마든지 주장될 수 있는 사상이지만,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마광수 전 교수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자 이문열을 필두로 많은 동료 문인들은 ‘그런 쓰레기같은 소설을 쓴 자는 소설가로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맹비난을 가했다. 특히 마광수 전 교수와 이문열 작가의 사이는 상당히 나쁘다.

 

이런 사상외에도 문체에 대해서도 양 측의 갈등이 심했는데, 마광수 전 교수는 소설을 쓸 때 무조건 쉽게 읽히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어서 이문열처럼 작가 자신의 화려한 필력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어렵게 글을 쓰는 작가들을 비판했다.

 

실제 마광수 전 교수의 소설들은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쓰여 있다고 평가받는다. <성과이해> 같은 학술적 서적을 보면 마광수 전 교수가 글을 어렵게 쓸 수 없어서 쉽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마광수 전 교수의 최대 문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마광수의 적으로 돌리게 만든 ‘외모 우월주의’라는 것이다. 지난 2005년 MBC 백분토론에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고 발언한 사례는 아주 유명하다.

 

다만, 해당 발언 자체는 ‘예쁜 애들이 머리도 좋다’는 식의 억지스러운 건 아니고, 외모나 몸매를 가꾸는 것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공부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논조였다. 한마디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자기 관리를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외모에도 신경 써서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모습을 갖추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타고난 생김새처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자극적인 딱지만 떼고 본다면, 자기계발 열풍의 일환으로써 등장한 몸짱열풍과 별로 다른 주장은 아니다. 성형수술도 의료보험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공교육을 확충하자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인 셈이다.

 

하지만 같은방송에서 발언한 “외모 보고 반하지 마음보고 어떻게 아나?”, “마음이 고와야 여자다.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등의 발언을 보면 그가 온전히 자기개발과 외모관리의 상관성을 말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인간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원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사람을 평가하려는 전근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는 비판도 많다. 자기 영역에서 비할 바 없는 성실함을 보이지만, 외모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마 전 교수 자체가 자기 관심분야에서는 실컷 급진적인 척 하더니, 정작 인간관 자체는 근대적인 근면성실주의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났다고 비판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또한 마 전 교수는 부부강간죄, 성희롱 방지법, 원조교제, 즉 미성년자 성매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남성을 억누르는 악법이라고도 주장하여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법률가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남아있을 수 있는 법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이같은 마 전 교수의 사상의 영향으로 1990년대에는 불경한 음란문학이라며 지탄받았지만, 현재는 그가 말한대로 성적 욕망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중파에서 야한 농담이나 수위 높은 걸그룹들의 춤 등이 만연하는 이 시대와 비교해보면 가벼운 편이다.

 

변태이미지와 다르게 학생을 성추행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 한다. 마광수 전 교수 본인이 강의 중 그런 루머에 대하여 말하길, “소설이랑 현실을 구분을 못하는 거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설에 따르면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매너 있고 젠틀한 편이었다고 증언한다.

    

▲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된 마광수 전 교수는 “윤동주 처럼 멋진 시인이 꿈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구글 이미지 검색>

 

우울했던 말년

 

한편,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광수 전 교수가 각종 인터뷰를 우울한 심경을 전한 사실이 알려졌다.

 

마 전 교수는 지난해 8월 정년퇴임 직후인 10월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디에서든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아 많이 아쉽기도 하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교편을 놓는 시기에 대해 “착잡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라며 “무엇보다 학생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 무척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퇴임 후 계획도 밝혔다. 그는 “우선 올해 시집이 하나 발간될 예정이고, 내년 초에는 소설이 나오게 될 것 같다”며 “하지만 향후 문학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엔 너무 우울해서 예전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올해 초 <중앙선데이>에서 연재하는 ‘김동률 서강대 교수의 심쿵 인터뷰’에서도 우울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 전 교수는 인터뷰에서 “난 실패한 인생이다”라고 회한 가득한 본인의 인생을 되돌아봤다.

 

그는 “문학도 인정받지 못했고 학계나 문단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다”며 “한 많은 인생이다.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낸다. 같이 살던 어머니마저 연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넓은 아파트에서 덩그렁 혼자 산다. 말 상대도 없다. 몹시 우울하고 외롭다. 여자친구가 너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즐거운 사라>라는 작품을 왜 내놓게 되었냐고 김 교수가 질문하자 마 전 교수는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시비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 주위를 둘러보라. ‘섹드립(섹스에 관한 애드리브)’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라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슬퍼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도 했다. “난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됐고 교수가 됐다. 윤동주 처럼 멋진 시인이 꿈이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나를 변태, 색마, 미친 말(광마)로 기억할까 두렵다”며 우울해 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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