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막후
먹을거리 포비아 확산, 한국인과 채소 건강학
“현대인 건강과 지구 미래 보장할 식량은 채소뿐”
김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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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5 [15:1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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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채식의 시대다. 프랑스 요리의 대가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파리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 메뉴에서 육류요리를 없애겠다고 했고, 한국을 찾은 바 있는 미국의 요리사 장조지(Jean-Georges Vongerichten)도 새로 문을 여는 레스토랑에서는 채식 메뉴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노르딕퀴진의 선구자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도 봄과 여름에는 완전 채식 메뉴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고기요리를 메인으로 하는 서양음식의 대가들이 앞다투어 채식 메뉴를 전면화한 이유는 대체 뭘까?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적을 두고 있는 정혜경 교수는 거기에는 무엇보다 ‘건강’이라는 코드가 한몫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비만과 각종 성인 질환이 위험수위에 이른 서양에서, 고기를 덜 먹고 채소를 더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었다는 것. 그러면, 늘 고기보다 채소였던 우리 밥상은 어떠한가? 살충제 계란과 닭고기, E형 간염 돼지고기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먹을거리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정 교수는 “한국인의 밥상이 건강한 이유는 채소에 있다”고 말하며 한식의 중심, 채소의 재인식을 제안한다.

 


 

한국의 채소 섭취량 세계 1위? 알고보면 대부분 배추

채소를 많이 섭취한다기보다 김치 많이 먹는다고 봐야

다양한 채소 조리법이야말로 우리가 나물민족인 비결

육류 생산 때 생성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채소의 24배

 

▲ 지금도 텃밭을 직접 가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는 곳 근처에 채소밭을 만들고 직접 가꾸어 일상의 반찬으로 삼았다. <사진출처=Pixabay>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한반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식생활이 시작되었다. 구석기인은 주로 과일이나 나무뿌리 같은 자연식물을 채집하고 또 동물을 사냥하여 이를 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곡물 농사를 시작하고 채소의 재배도 시작했다.

 

우리의 수쳔년 식생활 역사에서 채소는 곡식 못지않게 중요했다. 굶주림을 한자로 ‘기근(飢饉)’이라고 표현한다. ‘주릴 기(飢)’자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을 뜻하고, ‘주릴 근(饉)’자는 채소가 자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을 뜻한다. 즉, 곡식이 부족해도 굶주렸고 채소가 부족해도 굶주렸다. 굶주림 문제가 거의 사라진 현대에도 채소를 뺀 밥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한식 전도사를 자처하는 정 교수는 “한국인의 밥상이 건강한 이유는 채소에 있다”고 분석하면서 “여러 가지 나물이야말로 한국음식의 핵심이자 한민족의 생명줄이었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텃밭을 직접 가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는 곳 근처에 채소밭을 만들고 직접 가꾸어 일상의 반찬으로 삼았다. 채소는 농가뿐 아니라 청빈한 사대부의 생계수단이기도 했고 풍류의 대상이었으며 여가생활의 일부를 담당하기도 했다.”

 

사실 2015년 OECD 보고서는 회원국 중에서 한국의 채소 섭취량이 세계 1위라고 발표했지만, 그 섭취량의 대부분은 배추였다. 결국 한국인은 채소를 많이 섭취한다기보다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봐야 한다. 그 밖의 채소나 나물음식의 섭취량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밥을 먹기가 힘들 때 죽으로 밥을 대신했다. 그나마 죽을 끓일 쌀도 부족하면 여러 가지 산나물을 넣어 끓인 나물죽을 먹었다. 그러니 나물죽은 기아를 면하기 위해 억지로 먹은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죽에 넣은 나물에서 향긋한 향을 느낀 것이다. 어쩌면 어려움을 풍류로 넘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물죽을 풍류와 구황을 겸한 음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물민족의 생명줄, 채소

 

그래서 정 교수는 한국인에게 채소가 가지는 의미와 문화를 살피면서 우리가 먹어온 채소와 지금도 먹고 있는 채소의 역사를 추적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식량은 열매와 뿌리다. 우리 민족 역시 땅에 얕게 묻혀 있는 구근채소와 도토리 같은 나무열매를 선사시대부터 먹었다. 구근채소 중에서도 마는 서동요를 통해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신라의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백제의 무왕이 벌인 ‘노이즈 마케팅’이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게 한 것이었다. 서동(薯童), 마를 캐서 생계를 잇던 소년이 공주를 얻고 왕이 되었다.

 

우리가 나물민족인 것은 건국신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우리의 건국신화에 쑥과 마늘이라는 중요한 채소가 등장하는데, 이것으로도 이 시대에 쑥과 마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마늘은 시기적으로 보아 달래나 명이나물일 것이라 추측된다. 마늘 냄새가 나는 채소들이다. 현재의 마늘은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한자로 ‘대산(大蒜)’으로 쓰고, 그 이전에 산(蒜)으로 불리던 달래나 명이나물은 소산(小蒜)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니 단군신화 속 마늘은 달래나 명이나물로 보아야 한다. 아무리 참을성 많은 곰이라도 생마늘을 100일간이나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정 교수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 한자 ‘산(蒜)’자를 써서 마늘이라고 했지만, 마늘은 후한 때 서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으니 웅녀가 먹었을 리는 없다”면서 “한민족의 조상이 먹었던 것은 산마늘(명이나물)이나 달래였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마늘이나 쑥은 특유의 강한 향으로 오래전부터 나쁜 기운을 쫓는 신성한 식물로 여겨졌다. 쑥은 모깃불로 태워지며 실제로 나쁜 것을 쫓아주기도 한다.

 

지금도 대표적인 쌈채소로 아파트 베란다나 텃밭에서 많이 키우는 상추는, 고려시대에도 인기 있던 채소다. 심지어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이 심어서 먹는 것을 본 몽골인에게도 인기가 높아져 ‘천금채(千金菜)’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생채소에 밥을 올려 먹는 쌈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식습관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유일하게 속여도 되는 것이 쌈을 먹으며 자기 입을 속이는 것이라 했다. 다른 반찬 없이 얼마 안 되는 밥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가난의 음식이기도 하고, 갓 수확한 싱싱한 채소로만 해 먹을 수 있는 풍요의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쌈이 비위생적이고 창피한 음식이라 했으니, 같은 음식에 관한 평가가 시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채소 중에는 외국에서 전래된 것이 많다. 마늘처럼 이미 오래전에 들어온 채소도 있고, 최근에 이탈리아 음식이나 스페인 음식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많이 키우게 된 지중해산 허브도 있다. 고추처럼 비교적 늦게(17세기 이후) 한반도에 들어왔지만 한국음식에 완전히 동화된 것도 있고,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 들어왔지만 실제로 먹지는 않고 관상용으로만 재배되어 그 이름조차 외래어 그대로인 토마토도 있다.

 

자생한 채소이든 전래된 채소이든, 모든 채소가 한국인의 밥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 우리 땅에서 자생한 채소이든 전래된 채소이든, 모든 채소가 한국인의 밥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  

 

구황식에서 건강식까지

 

정 교수는 다양한 채소 조리법이야말로 우리가 나물민족일 수 있는 비결이라고 꼽는다. 밥에서 후식까지, 채소로 만들지 못하는 요리가 없을 정도다. 채소밥과 채소죽은 곡물이 부족할 때 주린 배를 채워준 구황식이었지만, 지금처럼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에는 훌륭한 다이어트식이다. 거의 모든 채소는 국의 재료가 되는데, 채소 자체의 영양소와 쌀뜨물, 된장까지 결합하니 보약이 따로 없다. 생으로 먹는 생채와 익혀서 먹는 숙채는 채소 저마다의 색과 맛을 살려 어떤 것은 소금만으로, 어떤 것은 갖은양념으로 맛을 내 밥도둑이 된다.

 

우리 조상이 특히 지혜를 발휘한 것은 추운 겨울 동안에도 먹을 수 있게 채소를 보관하고 조리하는 기술이었다. 제철 나물은 생채나 숙채로 신선하게 즐기고, 남은 것은 햇볕에 말리거나 소금이나 초, 각종 장이나 지게미에 절여 보관했다. 김이나 다시마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두었다 그때그때 튀겨 먹는 부각, 온갖 채소로 담가 아삭한 식감을 즐기는 장아찌, 배추와 무청을 삶았다 말리는 우거지와 시래기 등은 식물이 자라지 않는 겨울 동안 비타민과 무기질을 제공해준 보물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장문화는 그 지혜의 총아다. 더 나아가, 우리 조상들은 겨울에 신선한 채소를 키워 먹기도 했다. 500년 전 안동장씨가 쓴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비시나물 쓰는 법’이라는 항목이 있다. 마구간 앞에 움을 파고 파종한 후 거름을 부어 생기는 열로 새싹채소를 재배하는 법으로, 화석연료로 온도를 높여 재배하는 지금의 비닐하우스 재배와는 달리 친환경적인 온실재배라 할 수 있다.

 

채소를 구황식이나 반찬으로만 먹지는 않았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은 개성의 거상 일가를 다루는 만큼 인삼이 많이 등장한다. 인삼은 주인공 전처만과 손녀 태임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수단일 뿐 아니라 고급스러운 후식인 정과의 재료이기도 했다. 더덕과 도라지도 정과 재료로 많이 사용했음을 여러 고조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병에서는 여덟 가지 채소와 과일이 그 색과 모양을 뽐내고 있다.

 

이처럼 채소는 다양한 형태와 색으로 시와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그런데 이 화려한 색이야말로 채소가 몸에 좋은 이유다. 식물은 자외선이나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파이토뉴트리언트라는 성분을 만들어내는데, 저마다의 향과 색이 바로 이 파이토뉴트리언트에서 유래한다. 이 물질은 강한 항산화력을 가지고 우리 몸 안의 다양한 활동에 기여한다. 식품영양학자인 저자는, 채소마다 가지고 있는 영양소를 소개하며 채식에 기반한 한식이 건강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힌다.

 

그러나 정 교수는 아무리 몸에 좋은 성분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경계한다. 약이 아니라 음식으로 먹는 것, 지나치지 않고 골고루 먹는 지혜는 이미 조상이 실천한 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색과 오미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채소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다

 

“장수인들에게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질문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난 채소가 좋아’였다. 조금 구체적으로 ‘채소음식 중에서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데요?’라고 물으면 많은 분이 ‘응, 난 겉절이가 좋아’라고 대답했다. 장수마을 장수인의 거의 모든 집 마당이나 뒤뜰에는 텃밭이 있었다. 텃밭에는 싱싱해 보이는 상추, 깻잎, 아욱, 고추, 가지, 열무 등이 골고루 심어져 있었다.”

 

정 교수가 채소를 재조명하려는 것은 그저 우리 한식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육류를 생산할 때 생성되는 온실가스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채소에 비해 24배에 달한다. 선진국 국민이 곡류를 먹여 키운 육류를 먹을 때, 남반구 여러 곳의 빈민들은 여전히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정 교수는 채소에 기반을 둔 식생활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먹을거리 불평등 해결과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채소는 오랫동안 한민족의 생명줄이었다. 이제 정 교수는, 미래 세대의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을 위해 채소를 권한다. 채소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gracelotus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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