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속내
문재인 사법개혁 중심 선 ‘김명수 대법원장’
진보적 성향 수장…“사법부 지각변동 시작됐다”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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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22 [13:2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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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 벽을 넘으면서, 6년 간의 사법부 수장으로 낙점됐다. 김 대법원장은 30년 넘게 판사생활을 해오면서 ‘개혁적’ 모임을 주도해 오는 등, 사법개혁의 최적임자로 불려왔다. 다만 현재 사법부는 산적한 사안이 너무 많다는 이유 때문에, ‘행정 경험’이 적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이 크기도 하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낙점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활약에 따라, 사법부 개혁의 폭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천신만고 끝에 대법원장 오른 김명수…사법부 지각변동

각종 숙제 산더미…어수선한 ‘조직 다잡기’가 우선 과제

박근혜·이재용·통상임금·전교조 등 난제 재판들 산적해

문재인 개혁의 승부수…헌법재판소장도 임명 고심할 듯

 

▲ 김명수 대법원장이 천신만고 끝에 임명됐지만, 그 앞에 쌓인 사법 개혁과제는 만만찮다. <사진=김상문 기자>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국회는 지난 9월21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출석의원 298명 가운데 과반을 넘은 160명이 찬성했다. 보수 야당과 동성애 반대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대를 뚫고 김 후보자는 천신만고 끝에 대법원장 직에 올랐다.

 

이에 2023년 9월까지 6년 임기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 앞에는 사법개혁이라는 더 크고 험난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법원의 변화를 이뤄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핵심이다. 이런 큰 목표를 향해 가려면 대법원장 취임 직후부터 서둘러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 뒤 해나갈 일의 대부분은 ‘법관 독립’, ‘재판 독립’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사법행정을 개혁하고, 지금껏 지적돼왔던 낡은 제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법원 내외부로부터 재판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기득권과 부패엔 엄정하고,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재판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김 대법원장이 평소 일선 법관들의 독립성 존중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일선 법관들의 판결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숙제 산더미

 

이런 큰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우선 어수선한 조직 내 분위기를 어떻게 다잡느냐가 문제다. 지난 3월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개최한 학술행사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저지하려 했다는 의혹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진 뒤 법원은 내홍에 휩싸였다.

 

이 일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직했고,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열어 ‘법관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확인할지를 두고 판사들 사이 여론이 팽팽하게 대립해왔다. 김 대법원장이 이와 관련해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법관 블랙리스트 등 이전 조사를)다시 한 번 살펴보고 추가조사가 필요한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미 결론 내린 사안이라며 추가조사를 반대하는 법원 내 여론도 만만치 않아 ‘뜨거운 감자’를 얼마나 원만하게 다룰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수평적 소통과 의견 수렴을 강조하는 김 대법원장의 평소 스타일로 볼 때 법원 내 의견을 폭넓게 모아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 대법원장은 진보성향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이력도 있다.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이자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2대 회장을 지낸 이력도 있어 편향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법원 내 여론 수렴 방식에 대해 취임 직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법관 인사제도 개혁은 장기 과제이지만 당장 급한 불이기도 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1일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인사 이원화, 전보인사 최소화 등을 결의했다. ‘법원 관료화’의 주원인으로 꼽혀온 이들 제도를 다 뜯어고치려면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내년 2월 정기인사에선 어느 정도라도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할 상황이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 이원화 제도를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혁과 변화의 ‘주체’도 중요하다. 법원행정처는 법원 관료화와 정치화를 빚은, 대표적인 개혁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김 대법원장도 행정처의 기능과 규모를 축소하고 대법관회의·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 등 회의체에 권능을 분산·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도 곧 가시화할 전망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표회의 상설화를 받아들임에 따라, 각종 사법행정 위원회 인사 추천권과 주요 사법정책에 대한 의견제시권 등을 대표회의가 갖는 내용의 대법원규칙 안까지 이미 만들었다.

 

대법관 추천도 급한 일이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의 후임 선정에는 적어도 두 달 이상이 걸릴 전망이어서 취임 직후부터 서둘러야 한다. 김 대법원장은 청문회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추천 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이 추천 대상자를 사실상 제시하던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어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추천위 구성이 이전보다 중요해졌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인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어떻게 이뤄낼지도 관심이다.

 

초유의 기수 파괴 인사인데다 행정경험이 전무한 만큼 사법행정 능력을 증명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면 김 대법원장은 당장 두 기수 선배인 서울중앙지법원장과 서울고등법원장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것으로 행정업무를 시작한다. 대법원 규칙 개정 등 정기적으로 주요 사법행정 정책을 정하는 대법관회의에서도 의장 역할을 맡게 된다. 대법관회의에 참석하는 대법관 13명 가운데 9명이 김 대법원장 보다 선배다. 소장 판사들에게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는 김 대법원장이 고위 법관들에게도 인정 받는 지도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과제다. 지난해 전ㆍ현직 부장판사가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는 등 대형 법조비리가 잇따라 사법부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법원장이 얼마나 혁신적인 사법부 신뢰 회복 방안을 내놓을지도 평가 지표가 될 전망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은 ‘개혁 성향’으로 알려져, 지난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탄압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우리법 연구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사진=YTN 뉴스 캡처>

 

주요 분쟁 판결

 

또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현재 대법원에 이미 쌓여 있거나 도달할 예정인 주요 분쟁을 판결로 풀어내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최종심인 대법원이 내리는 형사·민사·행정 등 각종 판결은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 커다란 파장을 부를 수 있다. 그간 다소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던 대법원 판결은 진보 성향인 김 대법원장의 취임에 따라 일부 색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원에는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이 있으며 이들로 이뤄지는 전원합의체(법원행정처장은 재판 업무에서 제외)는 대법원장 주재로 중요 사건의 판결을 통해 사회 흐름을 바꾸고 하급심에 판결 선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김 대법원장이 임기 중 해결해야 할 주요 사건은 현재 하급심이 진행 중인 ‘국정농단’ 재판이 대표적이다. 1심 막바지인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와 1심 징역 5년형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은 모두 김명수 대법원이 좌우하게 된다.

 

지난 8월 서울고법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국정원 정치개입’ 관련자, 작년 총선에서 불법 선거 혐의로 기소된 국회의원 33명 중 아직 재판 중인 의원,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유무죄도 모두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결정된다.

 

현재 1·2심에서 무죄 선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김 대법원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효력정지 사건을 맡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법원 바깥의 첨예한 이념 논쟁을 부르는 사건들도 ‘김명수호 사법부’가 종결지을 전망이다.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기아자동차가 직원들에게 4224억원을 돌려주라는 1심 판결이 나온 상태다.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올 경우 최종 선고를 내리게 되는 등 국민 대다수에게 직결되는 노동 사건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것 역시 김명수 대법원의 몫이다.

 

대부분의 대법원 사건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3개의 ‘소부’에서 판결한다. 소부 대법관 사이에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은 사건,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많아 소부가 처리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사건,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할 사건 등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로 구성된 ‘전원합의체’가 심리한다.

 

한 법원 관계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기록을 검토해 10∼11월 중 첫 전합 선고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각종 개혁과제들이 탄력을 받게 됐다. <사진=김상문 기자>  

 

文 정권 사법 개혁

 

이처럼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과 개혁 드라이브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아울러, 청와대와 여당이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해 긴밀한 공조를 보임으로써 당·청 간 신뢰를 다지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낙마 이후 난관에 봉착했던 야권과의 협치에도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김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 가결을 계기로 문 대통령은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상을 다시 추진할 명분을 얻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4일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상을 밝히고 러시아 순방을 다녀온 직후 여·야 5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 이를 논의하고자 했으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부결로 여·야 관계가 급랭하면서 국정협의체 구상은 동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의 문턱을 넘는 데 성공한 만큼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상은 다시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협치 정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채널이 생기는 만큼 청와대와 국회 간 국정협력이 보다 원활해지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청와대는 협치 분위기가 무르익을 경우 이번 정기 국회에서 각종 개혁입법안의 통과가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김명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면 문 대통령과 여권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회에서의 주도권이 보수야당과 국민의당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것은 물론, 자칫하다간 청와대와 여당 간 불신이 싹트거나 여당 내부에서 책임론이 불거져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은 긴밀한 공조를 선보였다.

 

임명동의안 통과를 낙관했다가 허를 찔린 김이수 후보자 때와는 달리 방심하지 않고 청와대와 여당이 긴밀한 협력 플레이를 펼친 끝에 거둔 성과인 셈이다.

 

그러나 절대 밀려서는 안 되는 승부처에서 신승을 거두고 한숨을 돌렸을 뿐, 청와대와 여당 앞에는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헌법재판소장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7번째 후보였던 박성진 후보자가 종교·이념 논쟁 끝에 낙마한 이후 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청와대 인사·민정 라인이 인재 발굴과 검증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어지간한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과할 자신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형국이다.

 

헌법재판소장 인선도 현재 공석인 대통령 지명 몫 헌법재판관 1명의 인선과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이수 후보자를 제외한 기존 헌법재판관 7명 중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하고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 1명을 새로 지명하거나, 신임 헌법재판관 겸 헌재소장 후보자 1명을 지명할 수 있다.

 

기존 재판관 중 임명할 경우 고참 헌법재판관들의 임기가 1∼2년가량밖에 남지 않은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에 신임 헌법재판관 겸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되나, 이는 국민의당 당론과 일치한다. 야당 주장에 끌려가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헌재소장 인선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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