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자살, 박근혜의 ‘10월25일 대국민담화’

거짓된 사과의 말로…“탄핵은 필연이었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10/20 [14:52]

정치적 자살, 박근혜의 ‘10월25일 대국민담화’

거짓된 사과의 말로…“탄핵은 필연이었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7/10/20 [14:52]

대한민국 헌정사의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드러난지도 1년이 지났다. 지난 9월 말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흘러나오면서 커진 국정농단 사태는 10월 중순 태블릿 PC 보도와 대통령 박근혜의 사과로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어버렸다. 특히 지난해 10월25일에 있었던 대통령 박근혜의 ‘1차 대국민 담화’는 최순실이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힌 꼴이 된 ‘정치적 자살’과 다름없는 행위였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탄핵을 당했다.

 


 

10여 년 전부터 예고됐던 국정농단…지난해 중순 드러나

폭증하는 논란 정면 돌파 시도…개헌으로 국면전환 개시

JTBC ‘태블릿 PC 보도’치명타…1차 대국민 담화로 사과

진정성 없는 발언들로 국민 공분…사실상 ‘정치적 자살’

 

▲ 지난해 10월25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의 ‘1차 대국민 담화’ 당시 모습. <사진=JTBC 뉴스 캡처>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민간인 최순실과 사실상 한 몸이다’라는 의혹은 ‘대통령 박근혜’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2007년 17대 대통령 경선전이 한창이던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유력후보였던 이명박 측이 박근혜 후보를 향해 “박근혜가 대통령되면 최태민 일가가 국정농단을 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곤 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다양한 이니셜을 써가며 최태민·최순실 부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드러난 국정농단

 

이러던 중 지난해 7월경부터 미르재단에 대한 각종 의혹이 쏟아졌다. 지난해 7월 말 TV조선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이 전두환의 ‘일해재단’처럼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를 위한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출발한 것이다.

 

이와더불어 언론들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연루된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 폭로하며 청와대는 만신창이가 되가기 시작했다.

 

허나 직후 친박계 김진태 의원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요트 접대 의혹을 물고 늘어지며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몰자 조선일보 측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후속 보도를 내지 않았고, 이대로 사건이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한 달여 뒤인 9월, 한겨레에서 단독으로 취재한 결과 이 두 재단에서 벌어진 비리의 연결고리이자 핵심 인물로 최순실이란 인물이 드러났다며, 최순실이 박근혜의 대리인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다시 불을 붙여 일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알렸다.

 

그런데 이후 추가 취재 결과 최순실이 그저 재단 설립에 관여한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국정농단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심지어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 중 하나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8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특정 재단에 무상으로 기부한 것과 그 재단이 설립된 과정이 드물게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에 언론이 주목하면서 최순실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대한 권력 비리의 냄새에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또한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0월 국정감사 기간 도중 이레 동안 비공개 단식까지 불사하며 최순실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을 막으면서 사건은 여기서 일단락될 것으로 보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사건도 이화여대 특혜 논란과 엮여 대중의 공분을 샀다.

 

그러던 중 10월 중반 JTBC에서 대통령 연설문도 최순실에게 새어나간 거 아니냐는 의혹을 보도하는데, 이에 국회에 출석해있던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런 일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지난해 10월20일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론하며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발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의혹을 ‘불필요한 논란으로 규정하는 등 ’정면돌파 선언‘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메시지로 보인다는 비판들도 컷다.

 

이와더불어 10월24일, 국회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10차 개헌 논의로 화제를 돌리며 정국 전환마저 시도했다. 개헌 추진 자체는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막상 당선 후에는 다른 중요 사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는 이유로 개헌 논의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대통령 박근혜가 갑자기 개헌 카드를 꺼냈으니, 당연히 대중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을 덮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실제로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이날 오후까지 주요 대선 주자들과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정세는 혼란 속에 빠졌다.

 

그러나 겨우 12시간도 흐르지 않은 그날 저녁, 그야말로 나라를 뒤흔들 뉴스가 전파를 탄다.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 입수 사실을 밝히며 드레스덴 선언문을 포함한 대통령의 ‘말씀자료’와 대북 접촉 상황 등 중대한 국가 기밀이 최순실에게 사전 유출되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이 태블릿 PC 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부터 대선 후보 시절 연설문, 그리고 대통령 연설문까지 총 44개의 연설문이 들어있었다. 앞선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 연설문들은 길게는 4일, 짧게는 몇 시간 전 미리 최순실이 받아보았고, 최순실이 이를 수정한 사실까지 확인되었다. 이 연설문들 중에서는 극비라고 취급받은 드레스덴 연설문까지 포함되어있어 충격을 줬다. 또한 태블릿 PC 안에는 200여개의 파일이 더 있으며,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정리한 뒤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전 까지의 보도는 의혹 혹은 증언 수준 정도였고, 두 재단에 대한 흔히 있던 권력형 비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태블릿 PC가 발견되고 그 안에 박근혜와 최순실을 연결해주는 직접적인 물증이 발견됨에 따라, 이 보도를 기점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방향이 크게 바뀌게 됐다.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관점도 측근에 의한 단순한 권력형 비리에서 적극적 국정 농단 사태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블랙홀이 될 뻔한 헌법 개정조차 그대로 묻어버리는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결국 민간인인 최순실이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에 미리 연설문을 받아서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쳐 보내면 대통령은 그것을 그대로 연설했다는 사실에 대중들에겐 충격을 주며 여론이 들끓게 되었고, 블랙홀이라 불리던 ‘10차 개헌’ 논의조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사태가 단순한 권력형 비리에서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차 대국민 담화에서 최순실에게 연설문 등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고 실토했다. <사진=SBS 뉴스 캡처>

 

대통령의 사과

 

다음날인 지난해 10월25일 청와대와 여당 주요 인사들은 언론과의 일체 접촉을 끊은채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특히 친박 계열 여당 의원들은 난리가 나다 못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도 “연설문을 쓸 때, 친구에게 물어본다”고 말하는가 하면, 김태흠 의원은 “진솔하고 솔직하게 사과를 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감쌌지만,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고, 정권 출범 이래 최악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해명과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날 오후 4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연설문 유출 관련 의혹에 대해 인정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과문에 의하면 최순실은 과거 자신을 도와주었던 인연으로, 대선 후보 시절과 대통령 취임 초기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는 의도로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대통령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이러한 자문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시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습니다.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전날 국회에서는 최순실 의혹은 단 한 글자도 꺼내지 않고 개헌 필요성만을 부르짖던 모습과는 대조된다. 이날 박근혜는 1분 30초 만에, 최순실의 도움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을 만드는 수준에 그쳤으며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2014년 초)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것은 본인이 2016년 10월 20일에 했던 말과 정반대여서 국민을 또다시 농락했다는 것을 자인했다. 시민들이 흘려들을 까닭은 또 있다. 시간이 100초 내외로 무척 짧고, 녹화방송이었다. 실제로 사과에 대한 어떠한 예고도 없이 사과했다는 기사만 나왔다. 물론 이때도 기자들 질문을 모두 묵살했다.

 

이로 인해 국민적 지지를 크게 잃고 보수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붕괴하였다. 또한 당시 이 연설문의 작성자가 우병우 민정수석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언론을 통해 까발려진 대상까지로 범위를 한정해 법적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법에 정통한 검사 출신 민정수석이 손을 썼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후 수사과정에서 고영태, 최순실 등의 검찰진술이 이 수준에서 이뤄지면서 담화를 발표한 목적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공범들끼리 말을 맞추고, 검찰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게다가 그 날 저녁에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의 추가파일을 공개하여 최순실 일파가 대통령 의상·문체부 인사·재단 설립·국정 자료 열람 등 최근까지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뻔뻔하게 대국민사과 자리에서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이고, 오히려 국민들을 기만하는 결과만 낳았다.

 

또한 최순실이 미르·케이 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실소유주’이고, 재단을 사유화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이에 야당, 비박계는 물론이고 일부 친박계도 이를 비판하였다.

 

만약 당시 대통령 박근혜가 사건의 진상을 솔직하게 밝히고 진정성 있는 사과로 국면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차라리 끝까지 부인하면서 의혹과 대립하며 콘크리트 지지층에 호소했다면 미봉책이나마 시간을 더 끌었다면 진화효과를 약간이라도 기대해볼만 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진정성도 없는 사과와 함께 자신이 문서를 보냈다는 것을 일부나마 시인만 한 셈이라 의혹만 더 커지고 바로 그날 저녁 jtbc의 추가 보도로 연설문 외의 극비 문건 까지 태블릿 pc에 담겨 있다는 뉴스가 터지면서 사태는 더욱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나 청와대도 태블릿 PC에 어떤 내용이 들었는지는 알길이 없었지만 최소한 추가로 더 파일이 있을 수 있다라는 걸 고려 해야 했다. 심지어 jtbc도 추가 보도가 있음을 암시했다.

 

그런데 그 전날 보도 내용만 바로 반박해버리니 태블릿 추가 문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청와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추락했다. 대통령의 사과로 지지율이 반등될 것이라 생각한 청와대 측근들도 오히려 지지율이 추락한 결과가 나오자 당황했다는 분석이 있다.

 

단, 2016년 10월 말의 지지율 하락 사태는 누적적인 그간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이런 사건들만 보더라도 국민이 연이은 정책 실패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그런데도 박근혜는 항상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발뺌해오다 이번에는 일부나마 인정했으니 국민들의 남아있던 신뢰마저 와장창 깨졌던 셈이라는 분석이다.

 

혹은 대통령의 사과에도 지지율 추락을 선택한 것에 비추어 볼 때, 공공재에서 말하는 이타적 처벌(자신의 피해를 무릅쓰고 집단에 악영향을 끼친 이를 처벌하는 것)의 한 경우로 볼 수도 있다.

    

▲ 1차 대국민 담화 이후 국민 여론은 크게 악화되기 시작해, 결국 탄핵에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사진=KBS 뉴스 캡처>

 

정치적인 자살

 

이후부터 JTBC 및 한겨레는 물론, 아군이었던 대형 보수언론들 마저 박근혜를 자신들이 끌어 내리겠다고 선언한것 처럼 맹폭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졌다.

 

무대응을 하였다면 단순한 시간 벌이는 가능했겠지만, 성급하고 대충 보기에도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사실상 이 날 대통령 박근혜가 그녀의 국정 운영 능력에 그녀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끝내버린 것이다. 공교로운 점은 다음 날은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날이다.

 

결국 이후 매일 모든 언론사들이 최순실 사건을 다루고 곳곳에서 대학생과 교수를 중심으로 시국선언을 했으며, 분노한 국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열었다. 쉬지않고 터져 나오는 ‘최순실 특종’으로 말미암아 정치계는 물론이고 재계와 법조계까지 최순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음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좌파, 우파, 보수, 진보 등 진영논리를 떠나 다 같이 분노했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로 뽑은 것은 박근혜지 최순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최악의 자충수가 되었고, 이 날 박근혜정부는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는다. 이 후에도 여러 차례 사태를 수습하려고 대통령이 나섰지만, 그 어느 것도 여론을 진정시키지 못 한 것도 이 첫번째 해명에서 이미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력과 인간 박근혜의 신뢰성이 완전히 박살났기 때문이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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