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 ‘공익재단 경고’ 던진 연유

마지막 경고?…“셀프 개혁 기대합니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11/03 [13:13]

김상조 공정위, ‘공익재단 경고’ 던진 연유

마지막 경고?…“셀프 개혁 기대합니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7/11/03 [13:13]

재벌 개혁 전문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행보는 초미에 관심사다. 프랜차이즈 갑질 논란때부터 시작해, 각종 대기업 관련 사안에 대해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며 ‘재벌 저격수’라는 명성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로 칭해지는 최상위권 그룹들은 그의 발언에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김상조 위원장이 재벌을 너무 적폐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흘러나오는 등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5대 그룹 전문 경영인과 간담회…이례적으로 긴 모두 발언

셀프 개혁 강조…현재 대기업의 자구책 불만족 토로하기도

지배력 강화도구 악용 공익재단…운영 실태 전수조사 천명

불만 터트리는 재벌들…급하게 적폐로만 몰리는 그림 불편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그룹과의 간담회에서 ‘셀프 개혁’을 주문했다. <사진=김상문 기자>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재벌 저격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1월2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5대 그룹 전문 경영인과의 간담회에서 본격적인 재벌개혁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개혁 대한 철학

 

이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간담회에 앞서 A4용지 9장 분량의 모두 발언을 꼼꼼히 준비했다. 통상 김 위원장이 행사에서 준비하는 모두 발언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길었다. 원론적인 딱딱한 발언이 대다수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내용도 상세해 눈길을 끌었다.

 

이례적으로 긴 그의 모두 발언에는 재벌개혁에 대한 신중한 태도와 평소 정부 정책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국민적 입장에서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며 기업들의 셀프 개혁을 강하게 촉구했다.

 

하지만 곳곳에 ‘몰아치기식’ 변화는 확실히 경계하겠다는 의지도 눈에 띄었다. 김 위원장은 정책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이라며 대기업 정책을 담당하는 공익법인 전수조사, 지주회사 수익구조 점검 등 기업집단국의 향후 계획을 일부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공익법인 전수조사와 관련해서는 “다음 달쯤 시작해 내년 상반기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일정까지 상세하게 밝혔다.

 

통상 공정위가 조사·점검과 관련된 업무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흔치 않은 일이다.

 

기업집단국의 역할 중 하나가 직권 조사와 제재는 맞지만, 그 결과로서 “기업정책에 대한 법 제도적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대기업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달고 새로 출범한 기업집단국에 대한 재계의 막연함 불안함을 씻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언론 등을 통해 자발적 개혁 시한으로 알려져 부담이 되는 ‘12월 말 1차 데드라인(시한)’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내놨다.

 

김 위원장은 ‘데드라인’에 대해서 “12월 정기국회에서의 개혁 입법 진행 상황을 반영해 공정위의 기업개혁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월쯤이 돼야 공정위의 인력 충원이 이뤄져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라는 나름의 조직 내부 ‘속사정’도 털어놨다.

 

그는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어떤 조직보다 변화의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 기업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며 기업에 힘을 싣는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지난 4개월간 기업들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인 출발”이라고 평가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업들이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앞으로도 개혁 드라이브의 끈을 더욱 강하게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피력한 셈이다.

 

시간을 달라는 기업의 요구에 대해서는 “변화 결과가 아닌 변화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의 시간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딱딱한 규제를 통해 칼춤을 추듯이 기업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며 재벌개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제가 기업인에게 시간을 드릴 수 있도록 국민도 저와 공정위에 시간을 달라. 일관되게 예측할 수 있게 가면 변화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며 공정위 재벌개혁 행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지난 11월2일 간담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은 ‘재벌 공익재단 전수조사’를 경고했다. <사진=YTN 뉴스 캡처>

 

공익 재단 개혁

 

이날 김상조 위원장은 ‘공익 재단’에 대한 개혁도 요구했다. 대기업 공익 재단의 운영 실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공익 재단이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공익재단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의결권 제한 등의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개 대기업집단의 39개 공익재단이 79개 계열사를 출자하고 있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이들 공익재단이 총수일가 사익편취나 부당지원행위에 활용되는지에 대해 우선 점검할 계획이다.

 

공익법인은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법인을 말한다.

보유한 자산은 공익 목적에 적합하도록 사용해야 하지만 계열사 주식을 기부 받아 장기 보유하거나 계열사 주식을 매수하는 등 공익목적 활동보다는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신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물산 주식 매입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에도 재단 보유 주식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재단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제기됐다.

 

공익법인이 어떤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는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장은 저서 ‘국세청은 정의로운가’를 통해 “공익법인의 정관을 보면 고유목적 사업을 명시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나 민간 감시단체에서 공익법인의 정관이나 이사구성 등을 열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홈택스를 통해 결산서류는 열람할 수 있지만 결산 공시 내용만으로는 이들의 편법이나 불법행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정위도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실제로 공익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 기본 재산이나 수익 재산 규모, 운영 형태 등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각 주무부처가 최소한의 규정 위반 여부로만 체크해왔던 걸 실질적으로 한번 들여다보겠다는 차원이었다”며 “실태 파악 이후에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나온 것인지 원인을 진단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공정위는 내달 공익재단 실태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공익재단 조사는 12월쯤 실태조사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모든 과정을 마무리 하려면 내년 상반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공정위는 지주회사의 수익구조에 대한 실태 조사 계획도 내놨다. 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 배당금이 주된 수입이 돼야 하지만 브랜드 수수료나 컨설팅 수수료, 건물 임대료 수입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대기업집단 브랜드 수수료'를 보면 2014년 기준으로 계열사로부터 연간 브랜드 수수료 수취 금액이 2000억원에서 3000억원 사이인 대기업집단은 2곳(LG·SK)이었다.

 

CJ와 GS는 500억 이상 1000억원, 한국타이어 489억, 두산 389억, 코오롱 318억, 금호아시아나 302억 등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가격 산정이 다르다보니 브랜드 수수료가 악용될 소지가 있고, 대기업 지주사로 이익이 전달돼 결국 배당 등을 통해 총수만 배불리기 하는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누구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재벌개혁이지만, 막상 실행하기에는 방해물이 수없이 많다. <사진=KBS 뉴스 캡처> 

 

재계의 반응

 

이같은 김상조 위원장에 요구에 대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정책간담회 뒤 “어려운 가운데서 (5대 그룹이) 지배구조 개선과 상생협력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간담회에서 오간 얘기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상생협력과 관련해서는 이제 1차 협력사뿐 아니라 2·3차 협력사에 대한 대금 지원이라든지, 가급적이면 무이자로 지원하되 또 그중에서도 2·3차 협력업체에 임금, 직원들의 복지에 대해 조금 지원을 많이 해야 되겠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배구조 이슈와 관련해서는 “사실 그룹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다르다”면서도 “그렇지만 전반적인 글로벌 기준에 맞게, 또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그러면서 “그룹별로 약간의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겠지만 내부거래위원회라든지, 투명경영위원회 통해서 가급적이면 경영의 투명성이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노력하고 있고, 가급적 빠른 시기에 그것을 하겠다고 (공정위원장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5대 그룹에서는 위원장하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고, 앞으로도 이런 포지티브 캠페인이 잘 확산돼서 5대 그룹뿐 아니라 다른 그룹, 중견·중소기업에도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간담회의 분위기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는 5대 그룹에서 위원장하고 허심탄회하게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위원장도 그룹의 여러 입장들을 이해하면서 기업들에게 주문한 내용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재계는 김상조 위원장의 이야기에 대해 “잘못된 관행은 마땅히 고쳐야 한다”며 협조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의 실태조사가 ‘재벌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심도 내비치면서 이날 5대 그룹 간담회에 대해 내심 불만의 목소리를 내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혹시라도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면서 “이미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상생협력 확대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서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 고군분투하는데, 정부도 시선을 국내에만 둘 게 아니라 규제 완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5대 그룹 관계자도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혁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방향성이 더 명확해야 한다”면서 “초기에는 지주회사 전환을 촉구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듯 지배구조 개선 방향성에 기업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현 지배구조도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만큼 정부가 서두르지 말고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명목은 ‘5대 그룹 간담회’이지만 사실상 김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훈시’하는 자리가 아니냐”면서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후진적이고, 공직재단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고쳐보겠다고 덤비다가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는데 재계가 일방적으로 ‘적폐’로 몰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며 “정부도 함께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리더의 움직임

 

한편, 간담회에는 5대그룹 측에서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박정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 하현회 ㈜LG 사장,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 등 6명이 참석했다.

 

비공개 간담회는 50여 분만에 종료됐는데, 김 위원장을 비롯한 7명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산술적으로 7분여밖에 되지 않았다.

 

이중에서도 재계의 관심은 삼성에 쏠렸다. 현재 그룹의 실질적 리더인 이재용 부회장이 옥살이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방침에 어떤 입장을 보일까 시선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날 삼성 측 대표로 나온 이상훈 사장은 현재 삼성전자는 지난 10월13일 퇴임 의사를 밝힌 권오현 부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새로운 얼굴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CFO 자리에서 물러난 이 사장이 사업부문을 동시에 관장하며 실권을 행사해온 권 부회장과는 다른 케이스여서 의전적 이사회 의장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이 용퇴 의사를 밝힌 뒤 19일이 지난 10월31일 신임부문장 인사를 단행했다.

 

권 부회장과 ‘3인 체제’를 이루며 각 사업부문을 이끌어 온 윤부근(64) CE 부문장과 신종균(65) IM 부문장이 물러나고 김기남(59), 김현석(56), 고동진(56) 사장이 이들을 대신했다.

 

이와 함께 경영지원실장(CF0) 자리를 맡아온 이 사장도 함께 물러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장은 사외 이사들에 의해 이사회 의장으로 추천돼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됐다.

 

재계에서는 이 사장이 CF0에서 물러나고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되자 그를 둘러싸고 여러 관측이 나왔다.

 

사업부문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안살림’을 책임진 이 사장을 함께 교체해 진정한 삼성전자의 세대교체를 이루려는 시도라는 추측을 비롯, 앞으로 연쇄적인 인사·조직 개편에 따른 내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완충 역할이라는 해석 등이다.

 

여기에 이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이사회 의장으로 추천된 점에 주목, 이 사장이 권 부회장에 이어 대외적으로 ‘총수 대행’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를 분리하는 방안이 꾸준히 거론되면서 이사회 역할에 주목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장이 이날 김 위원장 주재 대기업 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날 열린 공정위와 재계 간담회에 참석할 임원을 행사 직전에야 확정, 공개했다. 불참 가능성마저 열려있던 상황에서 이 사장 참석이 확정되자 권 부회장에 이은 '총수 대행' 역할론에 힘이 실린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이번 참석은 현직 CFO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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