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그때 그 사건] ‘KAL기 폭발테러’, 왜 국민은 믿지 못했나?
정치이용·공작 급급…‘오히려 음모론만 키웠다’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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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4 [13:5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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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급격하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미흡한 민주주의 국가’로 후퇴했다. 물론 올해는 지난해 말 국민들이 일으킨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세워지면서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현재까지도 각종 ‘반민주주의 적폐’들은 사회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드러나는 국가정보원·국군사이버사령부 등이 중심으로 저지른 각종 여론조작·정치개입 행보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박근혜 정부의 참사를 이용하는 모습과 아직도 이를 반성하고 있지 않는 일부 보수세력의 행태는 대다수의 국민들의 분노를 키운다. 이에 최근 발생한 ‘포항 지진’에서 보여준 정부의 모습은 그다지 기민하다고 까지는 볼 수 없지만, 지난 9년 여간 보기 힘들었던 상식적인 대응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간만에 보고 있다’는 평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에 본지에서는 국가가 참사를 바라보는 시점이 ‘정치’에만 국한됐던 사건의 예시인 지난 1987년 11월29일 발생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재조명해 본다.

 


 

곱상한 테러범 ‘김현희’…언론 엄청난 관심 쏟아져

北 테러목적 명확…그러나 무수히 쏟아졌던 음모론

신빙성 낮았던 전두환 정권의 수사…번지는 의혹들

대선에 이용 정황 포착…진상규명보단 정치적 이용

 

▲ ‘테러범 김현희’의 기자회견. 안기부는 당시 북한의 소행인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자라는 ‘무지개 작전’이라는 기획을 실행해 대선에 개입했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올해 참사가 발생한지 30년이 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지난 198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대체로 KAL기 폭파사건이라고 하면 보통 이 사건을 의미한다. 사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지령에 의한 공중폭발’로 결론짓고 사건조사를 마쳤다.

 

이후 당시 수많은 용공조작 사건을 기획했던 ‘전두환 정권시절’에 발생했던 사건이었고, 무엇보다 대선직전 발생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수많은 음모론이 쏟아졌다. 이에 참여정부의 과거사 위원회도 조사에 착수했으나,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지령을 받아 액체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한 것 자체는 100% 사실이며 조작 사건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사망자 시신 미발견 등의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고, 국가안전기획부가 대선을 앞두고 특정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른 사실은 존재하기 때문에 ‘억울한 수백명이 죽어간 참사를 선거에 이용한 전형적인 권위주의 권력의 공작정치 행태’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곱상한 테러범?

 

사건은 지난 1987년 11월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의 보잉 707 기종의 KE858편(HL7406)이 UAE의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서울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도중 발생한다. 비행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 초기에는 단순 기체 고장 및 돌풍 같은 갑작스런 기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이 중에 기체 고장의 가능성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사고기인 HL7406은 1987년 9월 2일 랜딩 기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 동체착륙을 하는 등의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 전력이 있었고, 수리한 후 첫 출항하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이 바로 858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고기의 고장 전력은 폭파 사건 음모론의 중요한 정황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주변 공항 관제탑이나 공용 통신망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러모로 의아한 사건이었기에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테러에 의한 공중폭발이다. 물론 TWA 800편 추락 사고처럼 전기 합선 등의 원인으로 폭발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폭탄처럼 갑자기 폭발 하는 건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승객 2명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이들은 즉시 검거되었는데 남성의 신원은 하치야 신이치(본명:김승일), 여성은 하치야 마유미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남자는 사망했으나 여자는 앰플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하치야 마유미를 최대한 빨리 국내로 압송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하치야 신이치, 즉 김승일의 허파에 박혀있던 2밀리리터 짜리 유리 파편은 1974년 다대포에 침투했다가 자결한 북한 공작원들의 부검에서 나온 청산가리 앰플의 파편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의 치아는 북한에서만 쓰는 방식인 납으로 이를 땜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다만 ‘청산가리 앰플’의 경우 1972년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청산가리 앰플을 소지한 적이 있다.

 

이후 사건 수사를 담당한 안기부는 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짓고, 추가 조사를 벌여 하치야 마유미로부터 본명은 김현희이며 북한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또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에 잠입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들에서 정보를 받은 결과 북한의 중앙통신의 베오그라드 지부에서 김현희를 목격한 정보도 확인했다.

 

수사결과 테러 수법은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승무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몰래 두고 중간에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이후 해당 비행기는 시한폭탄에 맞춰진 시간에 도달한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 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재량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다.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현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테러 목적과 음모론

 

이처럼 북한이 행한 테러중 ‘초대형’ 급에 해당하는 테러 이유에 대해서 대체로 의견은 통일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를 방해하기 위한 테러라는 것이다. 당시에 확증은 없었지만 사건 발생 1년 전인 1986년에 발생한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또한 서울 올림픽 유치 직후부터 북한은 올림픽 경기 일부를 할당해달라는 무리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858기는 폭파 당시 올림픽 특수 도장을 하고 있었다.

 

특히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자유 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고,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 진영이 보이콧해 반쪽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1988 서울 올림픽에 북한의 우방국이었던 중국과 소련이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다급했던 북한은 공산 진영의 참가를 막기 위해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요소가 테러의 이유가 되지 못하며, 안기부 등의 자작극을 의심하는 시선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대선 직전의 민감한 시기에 터진 테러라서, 여당의 승리를 위한 한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많이 퍼졌다. 실제 선거 승리를 위해 자작테러를 벌이는 짓은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례가 목격되고 있으니 가능성 자체야 충분하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범인이 잡히고 자백했기 때문에 무리한 억측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정말로 안기부가 폭탄을 실었다면 이것은 대통령 탄핵 등 심각한 사태로 나아가도 정당성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행위다.

 

초기 음모론은 ‘단순 사고로 실종된 대한항공기를 남한 정부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밀었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점차 음모론이 정교해져서 ‘사실은 남한에서 일부러 폭파시켰다’로 확대됐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새롭게 조사에 착수 했을 때 이런 류의 설이 난무했다. 국민의 정부 당시 월간 인물과 사상에 글 올린 전직 공무원과 일부 유족들은 지금도 당시 노태우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국가기관 수사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결국 국가가 키운 것으로,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횡횡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고의적 조사 방해’나 ‘국가정보원 북한 여종업원 고의 입국설’ 등등이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 KAL기 폭발 사건은 각종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를 키운 측은 당시 정부의 각종 정치이용 시도였다는 게 중론이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의혹만 키운 조사

 

당시 음모론의 핵심은 대한항공 858기의 탑승자 시신이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고, 블랙박스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중폭발한 항공기에서 시신이 온전히 남아있을 확률이 더 낮긴 하다. 폭발과 동시에 사라져 시신 흔적조차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실수를 숨기려하는 우왕좌왕 조사 행태였다. 범인 당사자의 증언으론 컴포지트 250그램이라 했는데, 사실 이 250g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폭파효과가 아니라 은닉 수단이었다. 이 폭파과정에서 언급된 양은 C4 350g을 파나소닉 휴대용 라디오에 숨기고, 액체폭탄인 PLX 700cc는 술로 위장했다고 언급을 했다.

 

그런데 C4 350g이면 파나소닉 라디오의 내부를 텅비워야 간신히 들어갔는데, 김현희는 라디오가 정상작동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C4 350g 설이 파기되고 250g으로 줄어들어서 다시 발표되었다. 나중에 이 분량이 안기부 추정치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정형근 당시 수사본부장에 의하면, 김현희에게 들은 것은 라디오에 고체폭약을, 그리고 술병에 액체폭약을 넣었다라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을 듣고 그럼 고체는 C4이고 액체는 PLX로 결정짓고, 이정도 폭발이 되려면 얼마나 필요한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정해서 용량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즉, 비행기가 터질만한 용량을 설정한 것이 초기의 350g, 700cc였다는 것이고, 350g이 라디오에 은닉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라디오가 정상작동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의 용량이 250g이 다시 설정된 것이다.

이 폭약량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후 청문회에서 다시 언급할 정도로 논란의 핵심에 서 있었다. 이 정도 폭약으로 구조신호조차 발신 못하고 여객기가 완파될 수 있냐는 언급도 있는데, 전문가들은 250g이면 절대 적은양은 아니라고 말한다.

 

고성능 폭약은 자신 무게의 1000배를 날려버릴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 특히 순항중인 항공기의 내부폭발은 상당히 치명적이다. 기내 기압이 외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순항중인 항공기의 특성상 폭발이 이루어져 부분적으로 파손이 되었다고 해도 지상에서의 파손 효과만을 생각하고 달려들면 오산이기 때문이다.

 

지상실험에서 100g(박카스병 하나 정도의 분량)의 플라스틱 폭약으로도 767이상의 광동체에 큰 구멍을 뚫었을 정도인데, 순항고도에서의 기압차로 인한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그 파괴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北 소행 규정 후 조사?

 

이보다 더 문제는 시신의 관한 논란이다. 제대로 시신을 한 구도 건지지 못했는데, 이 당시 수색 정황이 수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태국-버마 국경 카렌족의 추락 목격 신고에 따라 육지 수색에만 전념하느라 7일을 허비했다. 이후 생각을 바꿔 해상수색으로 전환하지만 3일만에 포기한다.

 

이유는 수심이 너무 깊고 유속이 빨라 정확한 위치를 추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블랙박스를 찾기가 어렵고 상어 등에 의해 이미 훼손되었을 테니 시신을 찾을 가능성도 거의 없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해당 지역은 물살이 전혀 안 빠르고, 상어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시 수사팀의 주장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이후 음모론은 더욱 거세졌다. 애초에 문제가 지역인 안다만 해의 평균 수심은 870m에 불과하다.

 

물론 이 시기에 조사 내용들은 아직 노태우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정부에서 한 내용이라 100%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불확실한 제보로 정글을 해맨 것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유류물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행기 폭파는 확실했고, 김현희도 잡아놨는데 폭파된 비행기의 파편이 발견되지 않으니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정당의 똥줄이 타들어가는 상황, 이 때 증거물 2가지가 발견되는데 이건 ‘천안함 1번 어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첫번째는 한국 배 다곤 1호에서 발견한 구명보트였다. 여기서 발견한 배의 국적을 왜 강조하느냐면 당시 버마정부는 사고해역에 선박 1400여쳑, 쾌속정 4척, 전투기 28대, 민간 비행기 8대, 경비행기 1대를 동원해서 수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견한 것은 대한민국 선박, 그것도 화물선이었던 것이다. 대단한 우연이 겹쳐 발견했다기에는 너무 초라한 배인 것이다.

 

당시 가장 유력한 유류품이라고 발견된 이 노란색 구명보트는 인조피혁으로 제조된 것이었는데 개어진 형태였으며 내부의 49가지 물품도 멀쩡하게 발견되었으나 공중폭발시의 파편이 공기압축펌프만 파손시킨 상태였다. 당시 유일한 증거품으로 제시된 이 구명보트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유류품은 사건 이후 2년 이 지난 상황에서 발견되었다. 이번 발견품은 기체 파편. 가장 발견확률이 낮은 기체 파편, 그것도 정확하게 증거가 되는 자료만 딱 발견된 것이다. 일본 아사히 TV에서 미국 MIT 대학 항국우주학과 존 한스만 박사는 이 파편에 대해서 폭발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서둘러 폐기해버려서 또 한 번 의구심을 모았다.

 

즉, 진실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한 것이라는 의심은 나올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정치적 이용만 급급

 

결국 음모론은 키운 것은 국정원들의 국가기관이 스스로 키운 측면이 큰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음모론이 긴 생명력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때마침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이 폭로되어 국정원의 신뢰도가 바닥을 기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또한 이 사건을 추적한 일본 기자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국 입국을 막아버린 것도 음모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리고 김현희가 어린시절 화동을 했다라고 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사진에 대해서 나중에서야 실수라고 번복했기에 음모론을 정부가 더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김현희가 결혼한 상대가 사건 당시의 수사관인 것과, 항공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면 왜 사형 당하지 않았냐는 것, 그리고 그 당시 ‘땡전뉴스’(첫 뉴스는 무조건 전두환)이던 언론들이 김현희에게 묘하게 호의적이었다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이 당시 북한의 소행인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자라는 ‘무지개 작전’이라는 기획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했다. 김현희를 대선 직전에 송환시킴으로서 불리한 대선형국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정원 진실조사 위원회의 재조사에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이같은 ‘KAL기 폭발테러’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북한 소행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 사건은 결국 국가기관의 ‘양치기 소년’ 행태로 스스로 믿음을 찾지 못해 의심을 키운 측면이 있다”라며 “선거 등에 이용하려는 ‘공작 행태’는 실제로 저 사건에서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믿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최근 몇 년간 발생한 다양한 국정원 연루 사건에서도 드러나는 것으로서, 결국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전혀 신경도 안쓴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이런 행태가 지속된다면 국가기관은 절대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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