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박사모 집회 속 울려 퍼지는 ‘국민교육헌장’ 의미
유신독재 시절 최악 ‘세뇌교육’ 망령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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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4 [14:0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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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대한민국 최초로 국민의 의해 대통령이 파면되는 등 수많은 의미가 있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일부 보수층에서는 올해를 가장 기대했던 해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맞아 떨어지는 해였기 때문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며 박정희에 대한 사실을 ‘찬양’에 가까운 내용으로 바꾸는 등의 행동을 벌였다. 물론 이같은 야망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폐기되면서 좌절되었다. 결국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한 ‘국민 대통합’은 결국 국민들을 교육시켜 자신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재밌게도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도 교육으로 이같은 ‘국민 대통합’을 이루려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국민교육헌장’이다. 그리고 이 ‘국민교육헌장’은 박사모 집회에는 물론이고 이번 박정희 탄생 100주년 행사에도 어김없이 울려퍼지는 현실이다.

 


 

유신선포 이후 독재정권 유지 위한 세뇌 ‘국민교육헌장’

일본 ‘메이지 유신’의 ‘교육칙어’와 유사…군국주의 카피

끈질긴 ‘사상교육’의 잔재…노무현 정부 때 기념일 폐지

한국판 주체사상의 폐해…현재도 집단의식 형태로 잠재

 

▲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등장하는 조육형씨는 매일 아침 박정희 사진 앞에 절을 올린 후 ‘국민교육헌장’을 읽은 다음 하루를 시작한다. <사진=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최악의 프로파간다

 

위는 국민교육헌장의 전문이다. 국민교육헌장은 지난 1968년 12월5일 박정희 정권 당시 발표된 국가 차원의 정신 프로파간다(선전) 문헌이다.

 

독재 권력으로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던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진 프로파간다였던 만큼 당시 국민들은 잘 모르더라도 일단 외워야 했다.

 

1960년대~70년대에 학생 시절을 보낸 중장년 층에서는 지금도 이 전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도 처음의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정도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모두는 못 외워도 앞부분 정도는 외우는 장년층이 많다.

 

결국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393자는 40대 이상 대다수에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수많은 인권을 통제했던 박정희 정부 때의 행동 중에서도 ‘최악의 프로파간다’로 기억을 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개봉한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서도 이같은 세뇌의 강렬함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박정희·육영수와 박근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첫 번째 등장인물인 조육형씨는 청주에 사는 농부인데, 그는 의관을 갖추어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을 향해 절을 하고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국민교육헌장은 최근에도 각종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 등장한다. 그리고 지난 11월14일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100돌 기념식장’에서도 여지없이 국민교육헌장은 읽혀졌다.

 

결국 이같은 ‘세뇌’와 다름없는 국민교육헌장의 중요한 지점은 바로 제일 마지막 부부인 ‘대통령 박정희’라는 말도 있었다. 외우는 게 학교 과제였던 당시에는 '대통령 박정희'까지 외워야 완전히 외운 것으로 쳤다고 한다. 이름을 빼 먹으면 무효처리하고 다시 외워 오라고 했다고. 당시 유신 정권의 독재 권력이 얼마나 강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이 국민교육헌장은 기초위원 26명과 심사위원 48명이 모여서 초안 작성 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헌장으로,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운동만큼이나 많이 보급된 것 중 하나이다.

 

내용은 철학자 박종홍 전 서울대 교수와 안호상 전 문교부 장관이 주도하여 작성되었으며, 나름 존경받던 한국철학계의 태두 박종홍의 최악의 독재 부역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헌장은 학생들이 모두 외워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5차 교육과정 때까지는 교과서 앞부분에 가장 먼저 인쇄되어 나왔으며, 심지어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서는 영어로 번역되어서 쓰이기도 했다.

 

또한 각급 학생은 물론 회사원, 노동자, 공무원, 군인, 경찰 등을 막론하고 어떠한 의문도 질문도 가지지 않고 외워야 했다. 당연히 교육과정 고시문에도 가장 앞에 위치했다. 외우지 못하는 학생에겐 일반적으로 선생들 체벌이 더해졌고, 사원이나 공무원의 경우 상사들에게 한소리 듣거나 징계조치를 당했다.

 

당연히 어른이건 어린이건 예나 지금이나 외우길 싫어하기 때문에, 이걸 외우라는 선생과 외우기 싫어하는 학생들의 실랑이도 자주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노래로 만들어져 음반으로 판매된 적도 있었다.

    

▲ 박정희 정권 당시 발매된 국민교육헌장 해설본들.  

 

국민적 사상교육

 

문제는 이같은 최악의 프로파간다인 국민교육헌장이 일본 ‘메이지 유신’때 발표된 군국주의+국수주의적 내용의 헌장인 교육칙어(혹은 교육에 관한 칙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교육칙어는 ‘짐이 생각하건대’로 시작하는 데, 이는 국민교육헌장이 ‘대통령 박정희’로 끝나는 것은 이념의 주입이라는 관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교육헌장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에 시발점이 되었던 메이지 유신의 교육칙어처럼 극단적인 민족주의만 더해주고 도움은 안되는 내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당연히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전면적인 비판은 못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당시에도 각종 비판을 하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1978년 발생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이 그것이다.

 

이는 지난 1978년 6월27일 당시 전남대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송기숙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교수들이 교육 민주화를 주장하는 ‘우리의 교육지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를 지지해서 일어난 6월29일 학생들의 시위를 말한다.

 

성명서 발표 직후 교수 11명 전원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고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29일 교수들의 석방과 민주화를 외치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관련 교수들은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 또는 전원 해직됐으며 학생들 또한 30여 명이 구속되고 제적·정학을 당했다.

 

성명서는 당초 전국의 교수들이 참여키로 계획됐으나 사전 발각 조짐이 감지되면서 전남대 교수 11명만의 서명으로 <AP통신>과 <아사히> 등 국내외 언론에 공개됐다.

 

이 이외에도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반발은 컷는데, 일본군 장교출신이었던 박정희가 일본 메이지유신을 따라 박정희 유신을 한 것으로 빗대기도 했다. 또한 ‘왜 충(忠)만 강조하고 효(孝)는 없느냐’고 문제제기를 한 교사도 있었다.

 

이같은 반발에도 박정희 독재정권은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을 강화했다. 심지어 국민교육헌장 발표일인 12월5일은 당시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로 암송대회 같은 게 열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일한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 시기부터는 국민정신교육이 강화되면서 특히 각급학교의 도덕, 국민윤리, 국사, 사회과 교과서 개편 작업이 진행되었고, ‘문교행정’, ‘국민윤리교육소식’, ‘국기·국가·국가원수에 대한 예절’, ‘기본생활습관지도자료’, ‘국어순화자료’ 등의 교육 자료가 제작 보급되었고, 교육공무원에 대한 이념교육 등이 강화되기도 했다.

    

끈질긴 세뇌 헌장

 

결국 국민교육헌장의 강제적인 교육은 박정희 유신독재를 넘어 전두환 군부독재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국민 정신 황폐화 교육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가 급진전되면서 각급 학교에서의 국민교육헌장 강제 낭독이 점차 사라졌다. 또한 1989년부터 교과서 뒷표지에 헌장이 삭제되면서 국민교육헌장은 점차 사문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88년 10월24일에 김형식 문교부 장관이 국민교육헌장을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 김 장관은 “국민교육헌장이 국가주의를 우선하고 기능과 능률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중앙교육심의회에 심의를 의뢰하면서 국민교육헌장 공식 폐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기인 1993년 12월4일부터 오병문 교육부 장관이 국민교육헌장 폐지에 대해 다시 검토한 뒤 여론조사와 연구를 거쳐 1994년 11월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삭제하고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식 역시 1993년에 열린 제25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1995년에는 국민교육헌장의 공식적 폐지에 대해 교육부는 헌장의 기능이 이미 소멸되었으므로 폐지를 유보했다. 이후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 11월28일부터 행정자치부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대통령령 규정’ 개정에 따른 기념일 정리 작업의 일환으로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이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 자체는 ‘국경일’도 아니었으며, ‘공휴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 영향력은 없었지만, 그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매우 늦은 폐지였다고 볼 수 있다.

    

▲ 박정희 때 만들어지고, 전두환이 이용했으며, 아직도 우리사회를 좀먹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이 인간 개조를 목적으로 정신세계를 훈련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종교화되어 버린 북한의 ‘주체사상’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北 주체사상과 유사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국민교육헌장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서중석) 관계자들은 국민교육헌장이 변형된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교육받았기에 그 이념이 집단의식 형태로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정희 군부독재가 남긴 부정적 유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그 시대 통치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이들은 진단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1월24일 열린 국민교육헌장 관련 심포지엄에 모인 역사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은 거의 종교화되어버린 북한 ‘주체사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주제발표자 중 김석수(철학) 경북대 교수는 국민교육헌장에 담긴 파시즘적 성격 및 북한 주체사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사전배포한 ‘국민교육헌장의 사상적 배경과 참여철학자들의 역할’이라는 글에서 “국민교육헌장은 북한의 주체사상과 마찬가지로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 개조를 목적으로 정신세계를 훈련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국민교육헌장에 국민정신 개조라는 목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대학을 비롯한 일선학교에서 국민윤리 교육이 필수가 될 정도로 강화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한 권력자의 거대한 기획에 철학계 중추적 학자들이 참여한 결과, 이들의 파시즘적 경향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특히 주목한 인물은 국민교육헌장을 사실상 만든 박종홍 전 교수다. 이은상 등과 더불어 국민교육헌장 초안 작업에 깊숙이 관여한 박 전 교수는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내면서 유신체제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주력한 인물이다.

 

김 교수는 “박 전 교수는 ‘민족주의=반공주의=산업화주의=무력주의’ 등식을 강조하고 이른바 ‘한국식 민주주의’를 제창한 인물”이라며 “그의 철학관에는 파시즘적인 경향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박종홍 전 교수로 대표되는 이러한 경향은 한국 현대사에서 돌출적인 흐름이 아니며 이승만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진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또한 이승만 정권 시절 안호상 전 장관을 박 전 교수와 대동소이한 경우로 제시하며 “이들의 사상이 정치권 안에서 권력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면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의 기반이 됐다”고 주장했다.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안호상 전 장관은 국민들에게 무력투쟁·경제전쟁·정치전쟁뿐 아니라 사상전쟁을 치르게 해 이승만의 영도 아래 국가를 재편해야 한다는 이른바 ‘일민주의(一民主義)’를 제창했다.

 

더불어 5공화국(전두환 정권) 당시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국민윤리’로 대표되는 정치교육을 강조한 이규호 당시 문교부장관을 비슷한 경우로 제시하기도 했다.

    

최악의 정신 오염

 

결국 이처럼 국민교육헌장이 ‘나쁘고 불손하다’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특정한 사상’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국민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이와 같은 ‘모범 시민 의식의 강요’는 자주 있어 왔고 현재도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천차만별인 국민들에게 공통적으로 ‘최소한의 도덕성’ 이외의 특정한 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다. 이런면에서 국민교육헌장은 독재 기반 정부를 통해 자주 나타나는 과오일 뿐이다.

 

이에대해 한 교육학 박사는 “국민교육헌장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가고자 한다면 국가 형성 과정의 폭력성을 짚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폐지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흔적은 남아있다. 오래 된 초등학교에서 화단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이순신 동상이나 책 읽는 소녀 동상 사이에 뭔가 빼곡히 적힌 바위나 콘크리트 비석들이 있다면, 열에 아홉은 국민교육헌장을 새긴 동상인 가능성이 높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80년 대 이후 세대는 이게 뭔지 나이가 들어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어릴 적에 장난치는 곳이나 장식용 돌덩이 정도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편, 가수 故 신해철 씨는 자신의 앨범 1집의 ‘the pressure’라는 곡에서, 국민교육헌장의 시작 부분을 인용해 개개인에게 과도한 짐을 얹는 한국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 활용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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