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실
지진의 또 다른 재앙 ‘액상화 현상’
바다 쓰나미, 땅속 액상화…“철저대비 필요하다”
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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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4 [14:1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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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이후 포항 전역에서 100여 곳 이상의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 주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또한 부울경 지역은 물론 수도권 지역까지 지반 액상화에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시급한 대책이 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항과 같은 연약지반 지역의 경우 정밀 조사한 후 철저히 대처해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퇴적층 내 물 입자가 강진으로 배출되는 ‘액상화 현상’

포항 상당수 지역관측…지역마다 성향 달라 조사 난항

비상걸린 위험지역 부울경…‘지반 침하현상’ 현재 진행

수도권 안전지대 아냐…강남·여의도 등 매립지역 위험

 

▲ 지반 침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액상화 현상이 포항 지진 후, 국내에서 첫 관측 됐다. <사진=KBS 뉴스 캡처>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액상화 현상은 퇴적층 내 흙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의 공간(공극)에 있는 물 입자들이 평소에는 유지되다가 강진으로 지진파가 그 지역을 지나가 땅이 흔들리면서 밖으로 배출되는 것을 말한다.

    

액상화 현상이란

 

배출된 물은 흙과 섞이면서 반죽 형태로 만들어진다. 단단했던 지표면 위로 물렁물렁한 흙이 쌓이면서 지반의 경도가 떨어지게 된다. 지반이 약해졌기 때문에 내진설계가 잘 된 튼튼한 건물이라도 통째로 쓰러지거나 금이 갈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강진으로 인한 액상화 현상으로 건물들이 기울고 무너진 사례가 다수 있다. 1964년 일본 니카타에서 발생한 규모 7.5 지진이 대표적이다. 이 지진으로 액상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아파트가 통째로 쓰러지는가 하면 땅속 구조물이 솟아올랐다. 이 지진이 ‘액상화’라는 용어의 시초가 됐다.

 

지난 2011년 2월22일에는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지에서 규모 6.5의 강진으로 액상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콘크리트 반죽처럼 물렁물렁해진 도로에 자동차가 빠졌다. 지표면을 뚫고 나온 흙탕물에 건물들이 잠기기도 했다. 1976년 발생한 규모 7.8의 중국 탕산 대지진 때도 액상화 현상으로 건물들이 쓰러지면서 약 24만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포항뿐 아니라 매립지나 과거 하천, 호수 등이 있던 퇴적물이 두꺼운 지역이라면 전국 어디에서든지 액상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큰 지진이 가까이서 일어나야 하고, 모래나 토사가 지하지층을 구성해야 하며, 물이 있어야 하는 ‘액상화’의 3박자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포항 액상화 현상

 

지난 11월15일 포항 지진이 발생한 이후 진원지인 포항 북구 흥해 뿐 아니라 포항 상당수 지역에서 지반이 액체 상태로 변하는 액상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11월21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논에서는 액상화 현상과 관련해 기관, 대학 등 다수의 연구팀이 원인 규명 등을 위한 작업을 벌이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부산대 지질재해연구소 강희철 박사팀이 액상화 현상이 나타난 모래와 진흙 분출구가 있는 논을 1m여 가량 파내자 물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강 박사팀은 조사 범위를 넓히며 본격적인 물길 찾기를 시작했다.

 

강희철 박사는 “지표 밑에 물을 머금은 모래층이 지진 충격을 받으면서 물과 모래가 분리되면서 솟구쳐 지료로 올라온 것이 액상화”이라면서 “어느 정도 깊이에서 모래층이 분포하고 액상화를 일으키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흥해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약 5km 떨어진 칠포, 남쪽으로는 10km 거리의 송도·해도동까지 도 액상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지난 11월15일 포항 남구 해도동. 지진으로 땅이 흔들린 이후 보도블록 사이로 흙탕물이 치솟았다. 흙탕물은 15m구간에서 30여초 가량을 솟구치다 잦아들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은 “땅이 흔들리더니 곧 흙탕물이 분수처럼 올라왔다”면서 “15m구간에서 어른 키 정도까지 한참 동안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밖에 포항도심인 북구 포항고등학교 운동장과 영일대 해수욕장, 송도주택가 등에서 유사한 현상이 100여건 이상 발생했다. 강희철 박사는 “지표로 올라온 물이 균등하게 올라왔다가 빠진다면 지반이 똑같이 가라앉을 것인데 물이 불규칙하게 올라온다”면서 “상부에 있는 건물들은 기우뚱하면서 차별적인 침강 또는 가라앉음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성아파트같이 구조물이 기울어지거나 파괴가 많은 건물은 액상화 현상으로 발생한 침하 때문에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모래층 지반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덮인 도심 등은 어디까지 액상화가 진행됐는지 알 수 없어 시민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시민은 “결국 땅이 탄탄하지 않다는 이야기 아니냐”면서 “몰랐을 땐 모르지만 알고 나니 불안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포항지역의 액상화 현상은 지역에 따라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흥해는 영덕 영해, 김해와 같이 분지형 평야에서 발생하는 액상화 현상이며, 송도·해도는 울산, 부산 등과 같이 바닷가·매립지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 액상화 현상은 지진 후 건물과 도로를 붕괴시키는 위험 요인으로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사진=KBS 뉴스 캡처>  

 

부울경 비상

 

실제로 포항 인근 지역에 액상화 현상도 심각할 것으로 예고됐다. 특히 인근 대도시인 부산과 울산도 액상화 현상 위험성에 빠진 상황이다. 이에 연약지반이 많은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서도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액상화는 규명이 쉽지 않은데다 지진에 취약, 지반이 순식간에 붕괴해 건물 및 도로 등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는 남구 삼산동과 달동 등 지진에 취약한 연약지반에 대한 액상화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11월22일 밝혔다.

 

양산단층대 영향을 받는 울산은 삼산동과 달동 등이 포항과 비슷한 펄층으로, 지진이 발생하면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들 지역은 과거 논이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비행장으로 사용된 펄층으로, 현재 고층건물이 밀집해있다.

 

아파트 등 고층건물은 땅속 기초암반에 파일을 박아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연약지반에서도 건물 안전을 담보할 수 있으나, 저층 건물이나 단독주택 등은 지진에 극히 취약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삼산동과 달동의 일부 건물은 최근까지 지반침하가 계속되면서 건물과 지반의 이음새가 벌어지고, 태화강역 철로의 경우 지반 침하현상으로 보강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울산시는 지난 6월부터 내년 12월 완료 목표로 UNIST에서 수행 중인 '울산형 지진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용역'의 지질조사 분야에 액상화 조사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부산과 경남도 해안이나 강 유역 매립지가 많아 액상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질학계에서는 부산과 경남도 매립지나 낙동강 하구 및 항만 쪽은 퇴적물이 많아 지진의 2차 피해인 액상화가 일어날 수 있는 요소를 다 갖춰 향후 일대에 강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얼마든 액상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지역의 경우 물금신도시나 수영만(마린시티), 북항부두 일대 등이 대표적인 매립지로, 곳곳에 연약지반이 산재돼 있다. 물론 이들 지역의 경우 지하암반과 지지대를 설치하는 등 대다수 고층건물이 진도 6 안팎의 지진에 대비하고 있으나 액상화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내년부터 정부가 실시하는 단층조사에 올해 지반에 대한 정보를 DB화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시 조례를 만들어 내년에 첫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경남도도 조만간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대비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액상화에 대한 대비가 걸음마 수준인데 반해 일본은 토지 액상화 위험도를 표시한 액상화 지도를 만들어 공개하는 등 대비책을 갖고 있다. 지역별 위험도를 5단계로 나눠 표시하고, 액상화 이력 등 자료를 갖추고 있는가 하면 건설업계도 액상화 피해를 줄이려 땅속에 파이프를 묻어 지하수를 빼내거나 격자형 콘크리트벽을 메우는 공법을 개발해 위험도를 낮추고 있다.

 

부산대 지질환경공학과 팀은 “부산과 경남은 해안을 따라 매립지역이 곳곳에 분포, 지진이 왔을 때 약한 암반이라 더 큰 흔들림이 오는 만큼 액상화 현상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도권도 위험

 

문제는 인구최다 밀집지역인 수도권에도 액상화 위험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단 서울의 경우 여의도 등 한강 주변이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서경대 도시환경시스템공학과 최재순 교수팀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3구와 영등포구 양천구 등이 다른 구에 비해 액상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최 교수팀은 장기간 지진과 액상화 우려 지역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9월에는 경남 양산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액상화 위험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한국지반공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서울시 액상화 재해도 연구’에서도 강남구 영등포구 등이 ‘액상화 가능성 지수(LPI)’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LPI는 지진의 힘과 지진을 버티는 땅의 힘, 지하수가 뭉쳐지면서 흙을 뚫으려는 힘 등을 계산한 지수로, 값이 높을수록 지진 시 건물 붕괴 등 위험이 커진다.

 

지반이 약한 곳은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 흙과 모래 사이로 물이 들어가면서 암석이 액상으로 변한다. 송파구 잠실 등은 개발 과정에서 하천을 막아 매립한 곳이 많다. 다만 최 교수는 “잠실 등은 액상화 가능성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뿐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LPI가 높은 지역은 낙동강 일대의 경남 김해와 울산, 부산을 비롯해 매립지가 많은 충남 서산, 인천 송도 등이다. 액상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시민 불안감이 커 집값 하락 등 재산상 손해를 볼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행정안전부는 전국 액상화 관련 정보를 내부용으로만 다룰 뿐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액상화 우려에 김영석 부산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뮬레이션 결과 서울에서 규모 6.5 지진이 발생한다면 부산지역까지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며 “매립지나 하천 주변, 호수 주변 지역에 강한 지진파가 전달되면 얼마든지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한강 주변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도 “서울은 대부분 강한 지반에 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한강 하구 등 퇴적층이 있는 한강 주변을 중심으로는 액상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희권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한강 주변 건물이 세워진 퇴적층의 두께, 지진 강도 등에 따라 액상화로 인한 위험이 다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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