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막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암의 진실’
암치료는 왜 지난 100년 동안 제자리걸음?
김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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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2 [14:4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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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어쩌면 과학적 기반 자체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암은 손상된 DNA가 원인인가? 발암물질이 원인인가? 의학계와 과학자들은 아직도 암의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의학계는 암을 유전질환으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왔다. 암이 대사의 결함에 의한 질환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의 분자생물학 연구가 트래비스 크리스토퍼슨은 그동안 암 연구의 방향이 왜 잘못되었는지 짚어내고,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암 대사이론에 대해 깊숙이 탐색한다. 그는 “대사이론은 암 치료를 강력한 독성에 의한 전면전이 아닌 부드러운 회복의 과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모든 암세포의 공통적인 취약점인 대사의 기능장애를 활용하여 모든 유형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암 대사이론의 놀라운 특징이라는 것이다. 암이라는 적에 맞서 싸워온 오랜 전투의 커다란 전환점으로 밝혀질 암 대사이론과 치료법을 소개한다.

 


 

암은 화학요법으로 해결할 질환이 아니라 대사의 문제

의학계·과학계 잘못된 패러다임 오래 갇혀 암정복 못해

 

▲ 암 진료. <사진=PIXABAY>  

 

[사건의 내막=김혜연 기자] 의학은 지난 100년 동안 숨 막히는 발전을 이루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암 치료에는 왜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일까? 암의 주요 치료법 중 하나인 방사선 치료는 무려 100년도 더 전에 개발되었다. 암의 원인을 유전이나 돌연변이에서 찾기보다는 대사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연구와 주장이 이미 1930년대에 있었다. 의사와 연구자들은 임상시험을 통해 암이 화학요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라 대사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계는 아직도 여전히 화학요법을 표준치료로 채택하고 있다. 의학계와 과학자들이 잘못된 패러다임에 너무 오래 갇혀 있는 바람에 인류는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암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사질환으로서의 암

 

1970년대만 해도 의학계는 암은 곧 정복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 후로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암은 정복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도 화학요법 항암치료로 암 환자들이 받는 고통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인간게놈 프로젝트 등에 쏟아부은 예산 또한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 암 연구, 암 치료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암이 유전질환이 아니라 대사질환이라는 생각은 독일인 과학자 오토 바르부르크(Otto Warburg)가 1924년에 내놓은 의견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오토 바르부르크의 1930년대 연구는 종양의 초기 대사기능 장애를 암 증식의 계기로 설명했지만 암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1970~1980년대에 존스홉킨스의과대학의 피트 페데르센(Pete Pedersen) 박사가 이것을 다시 연구하지 않았다면 영영 망각 속에 묻혔을 것이다.

 

바르부르크의 발견은 이런 것이었다. 암세포는 도착적인 에너지 생성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글루코스가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의 일부를 생략한다.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하는 유산소 호흡이라는 효율적인 과정 대신 발효로 알려진 매우 비효율적이고 오래된 경로에 더 많이 의존한다.

 

기존 의학계를 향해 “지난 100년간 의학은 놀랍도록 발전해왔는데 암 치료는 왜 여전히 제자리걸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온 미국의 분자생물학 연구가 트래비스 크리스토퍼슨은 “그동안 암과의 전쟁은 잘못된 방향에서 길을 잃었다”고 지적하면서 바르부르크가 탐구한 생명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바르부르크가 암을 에너지 문제라고 확신한 이유는 비특이성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질환에는 특이성이 있다. 누군가가 결핵에 감염되었다면 호흡기 질환으로 나타난다. 순환계가 막히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나타난다. 바르부르크는 암을 더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다. 포트와 라우스가 발견했듯 암에는 무수한 원인이 있으며 많은 의사들이 증명했듯 어떤 조직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암은 본질적인 문제이며 생명에 있어 에너지만큼 본질적인 것은 없다.

 

당시 인간 세포가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다. 바르부르크가 존경했던 프랑스 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는 이러한 에너지 생성 방식을 유기 호흡이라고 명명했다. 반면 산소 없이 에너지와 젖산을 생성하는 방식을 무기 호흡이라고 불렀다. 무기 호흡의 유형 중에는 글루코스 1분자가 가진 고유 에너지의 일부를 추출하는 원시 경로가 있었다. 생물이 무산소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발효를 진화의 첫 번째 경로로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효는 사람에서부터 원숭이, 조류, 효모, 시금치,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 폭넓은 범위로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이 경로는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발효를 통해 유기 호흡과 같은 양의 에너지를 얻으려면 유기 호흡의 18배에 해당하는 글루코스를 소모해야 한다. 이를 모터 외의 모든 조건이 동일한 자동차에 비유해 보면 유기 호흡으로 1갤런당 38마일을 갈 수 있다면 무기 호흡으로는 2마일밖에 갈 수 없다.

 

유기체가 진화의 사다리를 타고 복잡성과 분화(specialization)를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호기성 에너지 대사가 주도권을 잡았다. 인간 세포는 일반적으로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호기성 대사와 무산소성 경로의 부산물을 통해 얻는다. 또 세포는 적응 메커니즘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근육세포와 같은 특정 세포는 산소가 없거나 근육에 과량의 에너지가 필요할 때 일시적이지만 무산소 조건에서 젖산만으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유용 산소가 생기거나 근육이 활동을 멈출 경우, 세포는 더 효율적인 호기성 에너지 생성방식을 재개한다.” 바르부르크는 말년에 이것이 암의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산화적 경로를 이용한 에너지 생성 능력에 손상이 발생하면 세포는 발효 체제로 전환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암은 그 어떤 질환보다 많은 2차 원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요 원인은 하나뿐이다. 간단히 말해 암은 정상 세포에서 유기 호흡이 당 발효로 대체되면서 발생한다.”

    

대사 기반 암 치료법

 

최근 5~10년간 암 연구의 방향은 암을 대사의 문제로 보고 치료법에 적용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대사기반 암 치료법의 개발과 시험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전임상 모델을 바탕으로 특정 유형의 암, 특히 치료에 대한 내성이 강하거나 유명한 바르부르크 표현형이 나타나는 암에 대사적 접근법을 사용하거나 표준치료 대신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대사기반 전략에는 암특이 대사(예를 들어 헥소키나아제Ⅱ)와 신호전달(예를 들어 PI3K/AKT/mTOR)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의 사용, 그리고 조작된 케톤식이가 포함된다. 영양학적 케토시스는 종양의 글루코스 사용을 제한하거나 인슐린과 성장인자의 신호전달을 억제함으로써 다수의 종양 촉진 경로에 영향을 준다.

 

지난 10여 년간 거의 종양 대사와 대사적 신호전달에 관련된 성장인자에만 초점을 맞추는 콘퍼런스나 협회의 수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중요한 것은 후성유전학적 통제에 의한 대사와 바르부르크 효과를 촉진하는 일탈적인 신호전달 경로의 대사 재프로그래밍의 교차점이다.

 

바르부르크 효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자 암 연구와 더 효율적인 암 치료법 및 예방 전략을 향한 경로 재설정이 활성화되었다.

 

“사이프리드는 열량 제한만으로 종양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 오늘날 이 관찰은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정당화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이해 가능하다. 열량 제한으로 혈중 글루코스 농도가 감소하면 암세포는 갈망하는 연료를 차지하기 위해 정상 세포와 맹렬히 경쟁한다.

 

사이프리드는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반적인 열량 제한은 유지하되 탄수화물을 배제하고 지방을 늘리는 식으로 식단을 살짝 변경하여 암세포의 대사를 더 압박했다. 탄수화물이 고갈되자 신체는 가장 선호하는 대사 에너지 생성 과정에 급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순환 연료의 근원인 글루코스를 대신해 케톤체라는 분자를 생산했다. 암이 대사질환이라는 틀을 갖추면서 케톤체는 암 치료에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케톤식과 암 치료

 

케톤식은 동물실험에서 혈관 생성 억제, 항염증, 암세포 사멸을 촉진하면서 암세포를 고립하는 효과가 입증됐고, 교모세포종과 같은 악성 뇌종양에서 여러 치료 사례가 발표된 바 있다. 케톤식을 하면 10일 후부터 혈당이 떨어지고 케톤 수치가 오르면서 암세포 증식이 억제되기 시작한다고. 그뿐 아니라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때에도 이 치료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케톤식은 또한 암 진행을 막아서 암 환우 생존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톤식은 진행성 암 환자의 36개월 생존율을 높이는 목적으로 많이 쓰이며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와 같은 부작용 없이, 다시 말해 정상 세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암세포를 죽이는 훌륭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크리스토퍼슨은 그동안 암 연구의 방향이 왜 잘못되었는지, 어째서 그렇게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암 치료 개발이 그토록 효과적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역사적 서술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암 치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첫 화학요법은 제2차 세계대전 중반쯤에 개발되었다. 독성이 매우 높은 물질을 환자의 혈관에 주입하자 암세포가 조금 더 많이 파괴되었고 이를 근거로 정상 세포에 비해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과학자들이 암의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라면 우리는 암의 운전자가 아닌 부작용에 불과한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으려다 30여 년을 허비한 셈이 된다. 만약 암이 대사질환이라면 이제 막 시작한 것이므로 진정한 진전이 빠르게 뒤따라야 한다. 우리는 병든 세포를 벼랑으로 밀어내는 방법을 더 많이 찾아낼 것이다.”

 

크리스토퍼슨은 암 연구가 이토록 헛된 경로를 택한 이유를 밝히고 과학적 측면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학계 전체가 암 치료에 진전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특히 표준치료로는 거의 효과를 볼 수 없는 암의 경우에는 더구나 대사기반 치료의 가능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암 치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체세포돌연변이설은 암이 필연적으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암을 정복하려면 언제나 진화하며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굉장히 복잡한 적을 표적으로 해야 한다. 또 수백 가지에 달하는 운전자 돌연변이를 공격하려면 방대한 양의 표적 약물도 개발해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악성종양을 촉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는 것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다. 종양 내 이질성이 치료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일 원종양 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 나타난 운전자 돌연변이도 반드시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운 좋게 새 돌연변이에 대한 약물을 개발하더라도 의사와 환자는 겨우 한 발 앞서는 것뿐이다. 그러나 현미경의 시야를 조금만 벗어나도 새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날 것이다. 적당한 때에 암성을 드러낼 것이므로 서열을 분석하고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이것은 끝없는 게임이다.”

 

gracelotus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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