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유치원 영어 금지, 학부모 반발의 이유

“고액 사교육 방치하고 공교육 막겠다고?”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1/19 [14:08]

논란의 유치원 영어 금지, 학부모 반발의 이유

“고액 사교육 방치하고 공교육 막겠다고?”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1/19 [14:08]

교육부가 유치원 영어 교육 금지방침을 발표했다가 유보하면서 이에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정책에 반발움직임을 보이자, 결정 시일을 미룬 것이다. 특히 공교육에 틀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저렴한 영어교육을 할 수 없게 막으려하는 것에대해 서민층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조기 영어교육이 오히려 인지발달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어, 향후 유치원 영어 교육을 둔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싼 사교육은 놔두면서” 영어교육 금지 반발 부모들

“영어 노출, 영·유아 안 통해” 조기교육 회의적 전문가

 

▲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어교육 금지 방침을 밝혔다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사진=KBS 뉴스 캡처>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정부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어교육 금지 방침을 밝혔다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선행학습 금지에 이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어교육 금지 방침을 밝혔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발표 3주만에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학부모의 반발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에 대한 방과후 영어수업이 금지되면서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영어 특별활동도 금지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자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교육부는 일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방과후 특별활동 형태로 실시하는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어린이집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이달 중으로 구체적인 일정과 방법을 결정할 계획이다.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도 규제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조치를 보고 “그렇다면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최대한 빠른 시기에 영어에 노출돼야 학습효과가 좋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져 있고, 입을 막 떼기 시작한 돌쟁이 아기를 대상으로 한 영어교재도 팔리는 것이 현실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를 보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1~2세 영아들의 18.8%가 영어 특별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만 3~5세 아이들로 올라가면 영어 특별활동을 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선 59.7%, 유치원에선 46.9%다. 기관에 다니는 유아의 절반이 영어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영·유아 부모들의 25.6%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특별활동 중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체육(30.9%)에 이어 두 번째다. 만 3~5세 아이들 부모 중에서는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9.7%다.

 

소위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면서 유치원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채택한 유아 대상 영어학원들, 일명 ‘영어유치원’들은 비싼 원비에도 불구하고 2015년 376곳에서 2017년 474곳으로 늘었다. 서울시내 한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은 “조기 영어교육에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부모들에게 먼저 설득하지 않으면 학부모들은 당연히 학원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자녀에게 영어교육을 시켜야만 한다고 믿는 부모들은 어린이집·유치원의 영어수업 금지를 ‘정의’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비싼 사교육은 규제하지 못하면서 저렴한 수업만 막는 것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라는 논리다. 교육부가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수업시간과 내용을 규제하기로 했지만, 사교육을 규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예 영어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원은 규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루 한두 시간짜리 단기 수업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반면 정부의 보육·교육과정을 따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영어수업을 규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영어교육을 포기하기에는 영어가 대입과 취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쓴 학부모는 “일반인들이 접근 가능한 부분만 규제하고 부자들이나 기득권들이 이용하는 국제학교에는 아무 규제를 안 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서울 서초구나 강남구 등 상당수 중산층 이상 가정은 대부분 영어유치원부터 보내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영어학원에 보낸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학원 대신 저렴한 방과후를 통해 원어민 영어에 자연스레 노출됐는데, 이걸 없애 한 달 30만~40만원 하는 학원을 보내야겠냐”고 했다.

 

결국 학부모들의 반대 이유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3만원이면 영어교육을 받지만, 대다수 서민은 사설 영어학원 100만원을 감당할 형편이 못된다는 것이다.

    

▲ 정부는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도 규제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진=PIXABAY>

 

효과 있을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찍 영어교육을 하면 자연스레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클 것’이라는 기대에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육아정책연구소는 2015년 외국어 조기교육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만 5세와 초등학교 3학년, 대학생으로 구성된 세 집단에 한 달 동안 기초적인 중국어를 가르쳤다. 한 달 뒤 피실험자들의 중국어 실력을 시험하고, 안구운동과 뇌파를 측정해 세 집단의 중국어 듣기·말하기·읽기 능력 차이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모든 영역에서 가장 수업효과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 집단은 만 5세였다. 반면 교육의 효과가 가장 높은 집단은 대학생이었다. 교육 전후를 비교했을 때 듣기와 읽기 능력은 대학생 집단에서 가장 많이 향상됐고, 말하기 능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 대학생보다 조금 더 좋아졌다. 연구진은 “외국어 학습은 취학 전 유아에게는 큰 효과가 없을 수 있고 그나마 듣기 중심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학습을 하게 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영·유아 시기의 외국어 학습은 효과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만 5세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언어를 배운다. 영어 노래를 듣거나 TV 속 영어 문장을 따라하는 것처럼 상호작용이 없이 영어를 접하면 언어 습득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영어유치원들은 그 틈을 비집고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학원들도 읽고 쓰거나 듣고 따라하는 학습 위주 교육과정을 짠 경우가 많아 어린아이들에게 지나친 학습부담만 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 유명 체인 학원의 하루 시간표를 보면 아이들이 오전 9시30분부터 원어민 교사와 대화를 하고, 11시부터는 영어책을 읽고 파닉스(발음교육) 수업을 한다. 오후 2시 이후에는 보충수업 시간이 마련돼 있다. 지난해 7월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시내 반일제 이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조사해보니 하루 평균 수업시간이 5시간7분이었다. 초등학교 수업 시수로 환산해보면 7.7교시에 해당한다. 중학생의 하루 평균 수업시간인 4시간57분보다도 길다.

 

유치원 교사들도 너무 이른 나이에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인지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유아교육 전문가는 “만 3~5세는 아이들의 모국어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면서 “이 시기 영어를 지나치게 가르쳤다가 오히려 모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경험했다”고 했다.

 

영·유아 영어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동안 정부는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어떤 철학도, 가이드라인도 없이 갈팡질팡해왔다. 정부가 이번 논쟁을 계기로 이제라도 언어교육의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병민 교수는 “영어는 어차피 평생 연습해야 하는 것이지 언제 어느 시기에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는 아무도 잘라 말할 수 없는 문제”라며 “그동안 아이들에게 언어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적인 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교육 정상화

 

결국 교육부의 기존입장 후퇴 행보에 대해 교육단체에서는 유아발달 과정에 맞춘 교육 정책과 공교육 정상화의 후퇴라고 비판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관계자는 “반대 여론에 밀려 급하게 이런 방식으로 철회하는 것은 교육 개혁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상당히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불평등에 대한 반발 여론이 상당한 만큼, 사설 어린이 영어교육기관에 대한 규제 방안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며 “아울러 공교육 영어교육을 어떻게 내실화할건지 방안을 마련해놓고 정책을 추진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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