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지배하는 나쁜기억 ‘트라우마’

마음 깊숙이 있는 상처…“트라우마가 뭐길래?”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1/26 [14:35]

감정 지배하는 나쁜기억 ‘트라우마’

마음 깊숙이 있는 상처…“트라우마가 뭐길래?”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1/26 [14:35]

축구 한일전이 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축구를 싫어하는 여성이라면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점점 감정이 흥분되기 시작할 것이다. 내 가족의 일도 아니고, 한국이 이긴다고 해서 내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일본과의 경쟁에 우리는 열을 올리는 것일까? 소위 말하는 라이벌의 배경에는 ‘상처’가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의 36년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상처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게는 지더라도 일본에게만은 지기 싫은 것이다. 요즘은 그래도 이런 상처가 많이 치유되어서 스포츠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일본과 다시 국교를 회복한 70년대에는 축구 한일전에서 패하는 것은 일제 36년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는 것과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나쁜 기억…성인되어서 지속

정신의학계에선 ‘트라우마’를 위험한 질병으로 인정

누구나 겪게 되는 ‘정신적 상처’…타인 이해 필요해

‘트라우마’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미워말고 보듬어야

 

▲ 트라우마는 평생의 고통으로 남아있게된다. <사진출처=PIXABAY>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많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특히 과거의 크고 작은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줄 수 있다. 주변의 친구나 동료들이 특히 어떤 상황에서 예민해진 것을 경험한 적은 한번쯤 있을 것이다.

    

기억의 지배자

 

간혹 우리 주변에는 모든 인간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친구가 있다. 아무도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쉽게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저 멀리 떨어져 나간다.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그때 그때 행동이 다르다. 한 마디로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왜 그럴까? 주변인이 아니어도 좋다. 나 자신은 어떠한지 돌이켜보자. 특정한 상황에서 감정적이 되거나 충동적 언행을 한 적은 없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 싫었을까?

 

음식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신이 못 먹는 음식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왜 못 먹을까? 대학생 A군은 고기를 안 먹는다. 아니, 못 먹는다. 초등학교 때 소가 도축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으로 인해 고기를 안 먹는 경우가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냥 조금 불편한 식습관일 뿐이다(서양의 경우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더 많이 불편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불편하건 불편하지 않건 간에 현재 우리가 보이고 있는 행동은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가이다. 가정생활도 잘 유지하고 있고 대인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그런데 B씨는 건강에 대한 집착이 유독 심하다. 조금만 이상한 징후가 있으면 큰 병이 걸린 건 아닐까 걱정한다. 초등학교 시절, B씨는 학교 신체검사에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감기몸살에 걸려있던 상황에서 신체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양호선생님이 어디 아프냐고 묻자, 왠지 아프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했다. 보건교사는 반 아이들이 듣는 데서 큰 목소리로 ‘허약체질’이라고 외쳤다. 보건선생님은 아프지 않은 상황에서 그 정도 몸 상태를 보이고 있으니까 허약체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경험은 B씨에게 큰 수치심을 불러왔다고 한다.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것. 이후 학업이나 사회생활에서 성공적인 과정을 걸어왔지만 그 기억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트라우마의 종류

 

이처럼 사람들이 경험하는 이러한 정신적 상처를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큰 트라우마(Big Trauma), 작은 트라우마(Small Trauma), 단일 트라우마, 복합성 트라우마 라는 4가지로 분류된다.

 

큰 트라우마는 전쟁, 재난, 강간, 아동기 성폭행처럼 일상을 넘어서는 커다란 사건이 한 개인의 삶에 극적인 영향을 주는 경험을 말한다. 작은 트라우마는 각 개인의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에서의 경험, 사건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반복적으로 놀림을 받은 경험, 너무 급한 나머지 교실에서 소변을 본 경험, 혹은 발표할 때 실수를 했거나 하는 경험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단일 트라우마는 일회성으로 일어난 경우를 말한다. 대개 충격의 강도가 큰 트라우마(Big Trauma)가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충격의 강도가 크기 때문에 단일한 경험이어도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복합 트라우마는 반복적인 트라우마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적 문제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지속적으로 경험했다던가, 학교에서 왕따를 경험하는 등 어떤 사건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자신감은 없어지고 우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증상들이 견고해지게 되면 마치 인격적 특성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더 나아가 영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람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정신과적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특정질환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이다. 이는 전쟁, 재난, 성폭력 피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는 등의 큰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후 공포·불안, 회피, 놀람과 각성반응이 나타난다는 개념이다. 최근 미국정신의학회가 개정한 정신질환분류체계(DSM-V)는 기존의 큰 트라우마에 의한 장애에 더하여 복합성 트라우마에 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개념을 추가하였다.

 

이것은 곧, 대형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외에도, 성장환경과 일상적 생활 상황에서 경험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 우울 및 회피 등의 정서적 문제도 ‘질환’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어느 누군가 경험해왔던 과거의 일들은 전혀 모르면서도, 불안해 하거나 우울해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은근히 ‘마음이 심약한 사람’, 또는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이 될 수 있다.

 

정신의학계에서도 이제는 기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확인이 가능하고 분명한 트라우마에 한해서만 질병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트라우마를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의 문제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문제라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아이시절의 충격적인 나쁜기억은 트라우마를 강화시킨다. <사진출처=SBS 뉴스 캡처>  

 

타인문제 이해하기

 

나를 비롯한 우리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그렇지 않은 운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한 주변인을 한두 명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는, 진절머리 나는 인간성을 보이는 그 친구는 원래부터 그렇게 못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 외에도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정서적인 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소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각자의 정서적인 문제를 지고 산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학교나 직장에서 조직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들은 어떤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정상적 범주에서 벗어나 보이는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생명을 끊으려고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들어서 그런 것일까?

 

“현재 문제의 태반은 과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이름 없는 누군가는 주장했다. 정서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러 종류의 사회적 부적응, 관계적 문제, 심리적 행동적 불안정성은 대개 그 사람이 경험했던 크고 작은 기억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정신적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피부에 상처를 입거나 다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피부에 난 가벼운 상처는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면 금방 낫는다. 그리고 흔적도 남지 않는다.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회복력 덕분에 그렇다. 그렇지만 상처가 큰 경우, 예를 들어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복부에 수술자국이 남게 마련이다.

 

정신적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 무수히 야단맞고 많이 혼나고 해도 대부분은 저절로 회복되어 마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경험은 마치 수술자국처럼 마음에 자국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그 자국은 현재의 행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 트라우마는 원래 몸에 난 상처 즉, 외상을 뜻하는 의학용어지만, 심리학에서는 ‘정신적인 외상’ 혹은 ‘정서에 영향이나 장애를 남기는 충격’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트라우마가 정서와 행동에 간섭을 하여 여러 문제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트라우마 받아들이기

 

주변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나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면 그들이 좋게 보일 리는 없다. 지금의 행동은 분명 그들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고,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과거에 심리적 상처를 입은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과거의 상처가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지각할 수 있다면 현재의 문제 행동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같이 있으면 분명 편안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러나 싫어하기 전에 그들의 상처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다. 다만 말 못할 어떤 상처를 가진 이들의 고통의 몸부림으로 이해한다면,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앞으로 좀 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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