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조민기…성추행 쇼크 흔들리는 공연계

심각했던 집단적 방조…무너뜨린 ‘미투 운동’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2/25 [12:00]

조재현·조민기…성추행 쇼크 흔들리는 공연계

심각했던 집단적 방조…무너뜨린 ‘미투 운동’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2/25 [12:00]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문화계에서 들불처럼 번질 기세다. 그간 숨죽이고, 숨어지내던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문화계 전체에 경계경보가 울렸다. 이번 움직임이 오랜 세월 묵은 문화계 권력형 성범죄의 뿌리를 뽑고, 나아가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변화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화계 세대교체에 대한 전망도 나온다.

 


 

성범죄 미투 운동 번지는 연극계…미온적 태도 유지 중

작동하는 조직보호 논리…성폭력 감내하는 문화가 주류

유명 배우도 폭로…충격적인 조민기·조재현 성추행 의혹

적폐 쌓여있는 문화계…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해

 

▲ 인기 배우 조민기 씨(왼쪽)와 조재현 씨(오른쪽)가 성추문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출처=SBS '아빠를 부탁해' 캡처>

 

문제는 국내 유명 극단의 연출가들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한국연극협회·한국연극연출가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경과를 지켜보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신중한 연극계

 

이에 대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연출가 오태석 씨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예술대학교 총학생회가 빠르게 후속 대응을 하는 것과 비교해 ‘미온적 태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2월23일 예술위원 긴급회의를 열어 오태석이 연출한 연극 모래시계의 공연 중단 절차에 착수했다. 서울예대 학생들도 2월21일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유명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 교수에 대한 해임과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연극 관련 단체들은 이윤택 성폭력 사건에 이어 ‘연극계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는 연출가 오태석의 성추행 정황이 드러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한국연극협회는 사태를 주시하며 의견을 모으고 있으나, 현재 구체적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한국연극협회 관계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그러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협회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는 오는 2월27일 이사회를 개최하나 성폭력 방지대책 등을 안건으로 올렸을 뿐 오태석 연출의 제명은 논의에서 제외했다. 한국연극협회처럼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한 다음에 행동을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서울연극협회다. 송형종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오는 2월27일 이사회를 개최해 윤리강령 피해자 보호건까지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오태석 제명부터 최근 협회로 제보를 받아 물망에 오른 연극인들도 논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극계에선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 이어 오태석 연출가도 성추행 논란에서 거론되자 각 협회들이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연극인 A씨는 “협회들이 이윤택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 사과와 재발방지 노력이 담긴 입장문을 발표했다”며 “반성문 써놓고 며칠 지나지도 않은 상황이라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할 수도 없어서 난감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연극인 B씨는 “신중을 빙자한 협회들의 눈치 보기 태도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얘기를 되풀이하지 말고 드러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보호 논리

 

이처럼 연극단체들이 갈팡질팡 하는 이유에는 ‘조직보호’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연출가 이윤택 씨의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이씨의 성폭력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대해 ‘방조자의 덫’에 걸려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직 보호의 논리로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2차 가해’가 만연해 있었다는 반성이다.

 

이윤택씨의 성추행·성폭행은 수많은 ‘방관’들 속에 지속돼왔다. 방관의 정당화를 위해서는 ‘연극’이라는 가치가 앞세워졌다. 최초 폭로자 중 한 사람인 김보리(가명)씨는 ‘최고 연극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분이 그들을 ‘집단 최면’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해 사실을 폭로한 홍선주씨는 “(성폭행)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이윤택) 선생님에게 누가 되는 것이라며 여자 선배들이 여자 후배들을 질책하고 비난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성폭력을 감내하는 것을 ‘연극’과 ‘연희단거리패’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이런 ‘집단적 방조’는 조직 논리와 예술계의 특수성이 결합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한 개인이 모든 공적 지위를 겸임하는 예술계의 권력구조를 지적한다. 이 대표는 “보통 대가로 불리는 예술가들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고, 현장에서는 감독이고, 공적으로는 기관장인 경우가 많다. 사실상 해당 분야의 상징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윤택씨는 극단의 수장과 극장의 대표, 교수 등을 겸임하며 ‘연희단거리패’라는 조직과 동일시됐다. ‘이윤택의 흠결은 연희단거리패의 흠결이고, 이는 곧 연극계의 흠결’이라는 내부 논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예술계의 특수성이 상습화된 성폭력의 ‘수위’를 끌어올렸다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조직 보호 논리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은폐라는 보편적인 대응으로 연결됐다. 앞서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사건 등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지만 ‘왜 조직을 흔들려 하느냐’는 질책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 민주노총 간부의 조합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 논리로 조직적 은폐 시도가 있었다. 이런 강요된 침묵이 성폭력 문제가 반복되는 ‘토대’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이에 ‘방조자의 덫’에 빠지게 하는 구조 자체를 허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미 대표는 “예술계의 경우 교수가 심사위원을 겸임할 수 없게 한다든가, 활동가와 교수의 영역을 분리시킨다든가 하는 제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폭력의 근간이 권력의 위계구조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권력의 분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폭력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미퍼스트’ 운동의 확산 역시 ‘침묵의 나선’에 균열을 내는 주요한 요소다. 지난 2월21일 연희단거리패의 조직적 은폐 시도를 폭로한 연극인 오동식씨의 추가 폭로가 대표적이다. 대학로의 연극 관객들도 성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관객이 응원합니다’라는 이름으로 지난 2월2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계 미투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SNS를 통해 스태프와 참여자를 모집했고, 행사를 진행했다.

 

여성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연극계 주변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시작으로 ‘미퍼스트’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덜 들려온 남성 내부인의 성찰이 오늘 오동식씨의 폭로를 계기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침묵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사회 구조에서 연대를 표현하고 연대체를 꾸린다는 것은 변화의 신호탄이다. 이런 연대의 움직임이 구조의 변화를 위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공연계 성추행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연출가 이윤택 씨.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쏟아지는 폭로

 

이같은 공연계 성추행 논란이 대학으로 확산하고 있다. 불이익이 두려워 함구하던 피해자들이 잇따라 성범죄를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공연계만큼 폐쇄적인 대학 관련 학과의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주대는 공연영상학부 부교수인 배우 조민기 씨를 2월28일 부로 면직처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교수로 일해 온 조씨는 지난해 11월 말 여학생들을 수차례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접수돼 조사를 받아 왔다. 학교 측은 관련 학과 학생들을 전수조사해 징계위원회를 열고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조씨는 징계 결정이 나기 전 “그런 사실이 없다. 억울하다”며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다. 청주대 관계자는 “구체적인 성추행 사실은 2차 피해가 우려돼 공개할 수 없다”며 “학교 양성평등위원회가 학생들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징계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씨는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실명 증언이 잇따르자 지난 2월21일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청주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신인 배우 송하늘씨는 페이스북에 “잊고 지내려 애썼지만 조 교수가 억울하다며 내놓은 공식 입장을 듣고 분노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조 교수가 여학생들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자주 불러 술을 마시고 자고 가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억지로 침대 위에 눕게 하거나 노래방에서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도 했다. 연극학과 졸업생이라고 밝힌 김유리씨는 청주대 홈페이지에 “조 교수는 오피스텔에서 제 옷 속에 손을 넣은 채로 잠들었다”고 폭로했다.

 

오태석 씨가 초빙교수로 재직해 온 서울예대도 들끓고 있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 교수에 대한 교수직 해임과 학교에서의 퇴출,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공개적 사과를 요청한다”며 “학내에서 이런 추악한 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더는 용인하지 않고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학 1회 졸업생인 오 교수는 최근 제자와 배우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대학 학생들의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인 ‘서울예대 대나무숲’엔 선배에게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잇따르고 있다. “강간 몰카(신입생 환영식 등에서 선배들이 강간하는 상황을 가짜로 연출하면서 마요네즈나 계란을 정액으로 속여 후배들에게 먹이는 등의 행동)는 어느 과에도 있었다”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한 재학생은 “신입생 오티에서 남자 선배가 여자 선배를 방으로 끌고 가더니 잠시 후 나와 ‘이게 내 정액인데 핥아 보라’며 얼굴에 들이밀었다”고 썼다.

 

또 다른 재학생은 “선배가 공원 언덕에 숨었다가 갑자기 나와 웃옷 단추를 뜯고 멱살을 잡은 뒤 미친 듯이 바닥으로 내리찍었다”며 “계단에서 후배들과 동기들이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서울예대 측은 “무기명으로 올라온 글이라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배우 조재현 씨도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월23일 배우 최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너 언제 터지나 기다렸지. 생각보다 빨리 올게왔군”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이제 겨우 시작. 더 많은 쓰레기들이 남았다. 내가 잃을 게 많아서 많은 말은 못 하지만 변태들 다 없어지는 그 날까지”라며 ‘미투’ 그리고 ‘위드유’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최율은 이와 함께 조재현의 포털 사이트 프로필도 캡처해 올렸다.    

 

조재현 소속사 씨에스엑터스 관계자는 “현재 관련 소식을 접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시스템 개선 필요

 

이처럼 공연계에서 성추행 폭로가 쏟아지면서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의 권력자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잘못은 쌓이고 또 쌓였다. 그 옆에서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도덕적 불감증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예술을 한다는 이들이 동료의 영혼이 잠식당하는 순간은 외면하거나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고 체념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너무 늦었다”는 한탄도 나오지만,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거센 미투 운동에 문화계가 전반적으로 뒤숭숭하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될까 봐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는 이들도 있고, 혹시라도 과거에 잘못한 게 있었나 뒤를 돌아보는 움직임도 있다.

 

한 관계자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냐”면서 “이번 기회에 다들 말실수 등 작은 잘못이라도 있었는지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 여성 드라마 제작자는 “권력형 성범죄는 우리 사회 전반에 있다. 문화계, 연예계만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문화계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 분야인 만큼 이참에 사회 전체 미투 운동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투 운동이 문화계 물갈이, 세대교체로 이어져야 한다는 바람도 나온다. 성범죄를 저지른 노회한 권력자들이 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제식 구습과 각종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와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미투 운동이 몇몇 가해자를 단죄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안되며, 문화계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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