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미투 운동’, 폭발적으로 번지는 이유

쌓여왔던 적폐 문화…사회적 인식 바꿔야 한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3/03 [10:55]

한국판 ‘미투 운동’, 폭발적으로 번지는 이유

쌓여왔던 적폐 문화…사회적 인식 바꿔야 한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3/03 [10:55]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성추행 고발 움직임인 ‘미투 운동’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 수많은 가해자가 드러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와 수치 등을 밝히며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 또는 처벌을 바라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같은 미투운동이 궁극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사회전반적인 인식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성범죄 피해 폭로…문화예술계 넘어 직장까지

공무원·군대·경찰까지 번질 가능성 높아…언론·체육계도

반성 없는 선재적 자백들…거짓 폭로 피해자도 드러나

수술 위해선 조직문화 바뀌어야…성범죄 인식재고 필요

 

▲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  

 

최근 한 달간 우리 사회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이른바 ‘미투’(#MeToo·나도당했다)였다. 각계에서 성범죄 피해 사실을 드러내 진상 규명과 처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퍼졌다.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문화, 피해자가 오히려 조직에서 소외되는 권력형 성범죄의 오랜 병폐가 드러나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피해자들과 연대한다는 ‘위드유’(#With You)운동도 퍼져나갔다. 정부도 부응하고 나섰다.

    

이어지는 폭로

 

한국판 미투 운동은 지난 1월29일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45)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가 계기였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안태근(52)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은 안 전 검사장의 비위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 검사는 해외의 미투 운동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 스스로 침묵하지 않고, 미미한 발걸음일망정 한발씩 나아가야만 조직이 발전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썼다.

 

파장은 법조계에서부터 커졌다. 검찰은 서 검사의 폭로 이틀 만에 조직 내 성범죄를 전수조사하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꾸려 진상 규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현직 부장검사가 부하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기소 됐다. 과거 검사 재직 시절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대기업 임원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법원도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법원공무원 노동조합은 최근 실태조사를 벌여 4명의 여성 공무원이 판사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8%가 자신이 피해자이거나 피해 사례를 목격 내지 청취했다고 답변해 법원 내 성범죄 피해 사실 공개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투 운동은 법조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는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한 유명인의 성폭력 행태를 둘러싼 고발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지난 2월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연극계 대부로 알려진 이씨의 기행에 가까운 성범죄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연극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어 원로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씨의 성추행 의혹도 터져나왔다.

 

지난 2월20일에는 배우 조민기씨가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조씨는 소속사를 통해 의혹을 부인했지만, 성 추문으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학생들의 ‘미투’가 이어지면서 조씨는 지난 2월27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피해자는 10여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그에 앞서 최영미 시인이 원로 시인의 상습적인 후배 문인 성추행을 시를 통해 폭로하면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돼온 고은 시인이 당사자로 지목됐고, 그의 시를 중·고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지난 2월23일에는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서울예대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작업실 등지에서 여학생들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했다는 증언이 잇따르자 배씨는 공식 사과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연예계 미투 운동도 심상치 않다. 23일 영화배우 조재현씨 등 유명 연예인의 성추문이 터져 나왔고, 26일에는 배우 최일화씨가 과거을 성추행을 스스로 밝히고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여기에 지난 2월23일 천주교 신부가 해외선교 봉사활동을 하다가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지면서 미투 고백이 종교계까지 퍼진 양상이다. 대학가에서도 교수와 학생의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 성범죄 피해 사례가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유명 인사의 성 추문은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2월26일 “인지도가 있는 사회 각계 인사 19명의 성폭력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며 “정식 수사 착수가 3건, 영장을 검토하는 사안이 1건”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경남 김해의 극단 번작이 대표가 미투 운동 확산 후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로는 처음으로 체포됐다.

 

미투 운동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피해자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성범죄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이번 계기에 사회 각 기관에 물들어 있는 왜곡된 성문화와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요구로 번지면서 정부도 적극 대처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관련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온라인 특별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기로 했고, 교육부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성폭력 신고센터 운영실태 조사에 나선다.

 

미투 운동은 그간 눈에 띄는 동향이 없던 곳까지 번질 것으로 관측된다. 관료주의와 서열주의가 팽배한 공무원 사회나 군대, 경찰은 물론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조만간 미투 운동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엄격한 의료계와 언론계, 체육계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은 2013년 6월 성범죄 친고죄 폐지 후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단서가 수집되는 대로 적극적으로 수사해 엄벌할 예정이다.

    

▲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스스로 밝혔으나, ‘성폭행’인 것으로 폭로되며 큰 비판을 받고 있는 최일화 씨. <사진출처=SBS 뉴스 캡처>  

 

선재적 자백의 함정

 

‘미투’ 태풍이 한국 사회를 강타한 가운데 최근 들어선 선제적인 ‘가해자의 자백’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면피성 자백’에 2차 폭로가 이어지며 논란이 더 커지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가해자들의 자발적 반성 움직임은 북돋우되 자백이 ‘물타기’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사회적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우 최일화씨는 지난 2월25일 수년 전 자신이 성추문에 휘말렸던 사실을 고백하며 사죄의 뜻을 밝혔다. 최씨는 다음달 첫 방송 예정이었던 드라마 등 활동을 중단하고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 세종대 교수 등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다시 ‘진실게임’에 접어들었다. 극단 신시에서 최씨와 함께 연극을 했다는 피해자가 “성추행이 아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피해자는 “(최씨가) 마치 가벼운 성추행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명백한 성폭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국내 뮤지컬계의 대부로 꼽히는 윤호진 에이콤 대표도 지난 2월24일 보도자료를 내어 자신을 둘러싼 성추행 소문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피해자분의 입장에서 피해자분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사실상 제보자를 색출하면서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소리 소문 없이 묻혔을 피해자들의 고백이 ‘제 발 저린’ 가해자들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것은 미투 운동의 효과로 볼 수 있지만 김빼기용 자백은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하경주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미투 운동의 압박이 스스로 가해 사실을 돌아보게 만든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가해자 자백은 나중에 누군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나는 이미 반성했잖아’라는 면피의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는 자백 방식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해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고 온당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출 때 가해자의 ‘셀프 면죄부’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 대학의 사회학 교수는 “피해 여성들의 고백만큼이나 가해 남성들의 고백과 성찰도 필요하다”며 “현재 법으로도 성범죄를 확실히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 현실을 점검해 이것부터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투 운동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자칫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의혹을 제기하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관련한 성범죄 ‘거짓 청원’으로 홍역을 치룬 바 있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광고